소설리스트

〈 79화 〉붕괴 1일차 (10) (79/87)



〈 79화 〉붕괴 1일차 (10)

혜지의 의식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 행복했던 과거를 유영했다.

퍽 – 퍽 – 퍽 –  -

듣기에도 소름끼치는 소리가 몸을 흔들어댔지만 두 눈을 질끈 감고 애써 딴생각을 이어간다.

오빠에게 받았던 보라색 장미.

그 장미는 집에 잘 있을까. 드라이 플라워를 만든다고 볕이 잘 드는 화장실 창문턱에 기대놓았는데.

태어나 처음 받아본 소중하고 특별한 꽃이었기에 곱게 말려 평생을 간직할 생각이었다.

보라색의 예쁜 꽃잎을 떠올려보던 혜지는 갑자기 목이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고보니 목걸이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빠가 사준 목걸이의 감촉이.

그녀는 황급히 목을 더듬으며 목걸이를 찾으려 했지만 뒤로 묶인 손은 꼼짝도 않는다.

그제야 지금은 손을  수 없는 상태임을, 혼나기 전에 목걸이를 잠시 벗어놓았음을 다시 깨닫는 그녀.

혜지는 잠시 외면하고 있던 현실로 되돌아와 비명을 질렀다.

"읍! 읍!"

"후우, 아깝네.  번째는 일  갈 줄 알았는데."

"웨에에에에엑! 끄으으으... 우에에에에엑!"

힘들다는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역류한 위액이 휩쓸고  목구멍이 계속 따끔거리고, 메슥거리는 속에는 더 이상 토해낼 음식물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침인지 아니면 토사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끈적한 분비물로 엉망진창으로 망가져있었다.

"많이 더러워졌네.  벌려."

현우의 명령에 마치 잘 훈련받은 강아지처럼 턱을 아래로 내리고 물줄기를 기다리는 혜지.

양손이 묶인  항거할  없는 폭력에 휘둘리던 그녀는 결국 뼛속까지 체념을 학습해버렸다.

벗어날 수 없는 가혹한 능욕의 연쇄 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 해버린지 오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일은 스스로가 해주고 싶어 해주는 일이 아닌가.

그래, 오빠와 다섯 번 연습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어린 애도 아니고 약속한 것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기야, 다 씻었는데 가만히 뭐하고 있어. 힘들어? 죽을 것 같아?"

"흐읏... 아니에요... 이제, 그...  번째죠? 두 번 남은거죠?"

"그렇지. 방금은 진짜 아쉬웠어. 조금만  버티면 신기록 각이었는데."

혜지는 남아있는 횟수를 마음 속으로 되뇌이며 천천히 다시 입을 벌렸다.

방금이 세 번째. 어느새 약속했던 다섯 번의 절반을 넘어섰으니 이제 두 번의 시련만이 남았다.

"다시... 다시 목보지 사용해주세요, 주인님."

그러니 용기를 끄집어 내 한 번 더 애원한다. 처음에는 그래도 여유가 있었지만 두어번  토하고나니 이제는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두 번이 더 남았다면, 두  더 입을 벌리면 되는 일. 여기에 괜한 의문은 쓸데없는 사치다.

"고마워, 힘내줘서. 잘 쓸게."

이젠 칭찬마저도 귀찮아진 현우는 대충 아무렇게나 말을 던지고는 다시 자지를 가져다댔다.

머리통이 사정 없이 흔들릴 정도의 무자비한 능욕과 이에 더해진 세 번의 구토.

그녀의 몸이 극한의 상태에 도달하였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그녀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터.

극한의 긴장과 이완을 오고가는 양가감정의 격발과 거기에 더해진 심리조작의 기술을 그녀가 버텨낼 수 있을  만무했다.

그러니 지금  여자는 일종의 고깃덩이와 다를게 없었다. 인간으로서의 아무런 존엄도 남아있지 않은 고깃덩이 말이다.

 -  - 퍽 - 퍽 -

"헉! 헉! 이번엔 왜 반응이 없어. 아까처럼 끅끅거려봐. 박기 심심하잖아."

"끅... 끄읍! 우읏! 우븝!"

얼마나 지친 것인지 비명조차 시원스레 질러대지 못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아 허리에 좀더 힘을 실었다.

아까보다 더 세게 박아넣자  만족스러운 소리를 들려주는걸 보면 아직 기운이 남아있긴 한  같다만...

그것도 이번의 행위가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흐윽! 사랑해! 내가! 너! 존나! 사랑한다고!"

현우는 그녀의 목젖을 쾅 - 쾅 - 두드리며 박자에 맞춰 사랑을 고백했다.

난폭한 행위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사랑고백이었지만 그런 사실은 중요치 않았다.

지금의 목표는 그저 그녀의  먹던 힘까지 모두 이끌어내는 것이었으니까.

사랑한다는 말로 그녀의 힘을 밑바닥까지 긁어낸 다음  줌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불태워버릴 속셈이었다.

"자기 오늘 개쩌는거 알지? 역시 이래야 내 여자지. 내! 착한! 여자친구! 나 이해해주는! 여자친구!"

"끅! 끄읍!"

현우는 어절 단위로 소리를 질러가며 뒤로 뺀 허리를 힘껏 앞으로 내질렀다.

퍽. 퍽. 퍽. 퍽. 고함소리에 맞춰 그녀의 몸이 크게 출렁인다.

터져나오는 살가죽 부딪히는 소리가 그녀가 느끼고 있을 충격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 했다.

"우읍! 끗! 우브붑!"

새삼 재미있는 광경이다.

찌르면 찌르는 대로 끅끅대는 모습도 그랬고,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구토를 참아내는 모습도 그랬고.

만일 그녀가 착하고 순진한 남자를 만났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

적어도 욕조에 무릎꿇은 채로 목구멍을 혹사당하는 신세는 면했을 텐데.

어쩌면 그런 남자의 세심한 케어와 관심 속에서 트라우마를 털어버리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더욱 재미있었다. 지금은 그 비슷한 가능성마저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그야말로 한 여자의 미래를, 그리고 인생을 모두 먹어치워버린 것이 아닌가.

현우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진해졌다. 한 사람의 절대자가 되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이대로 넣고 가만히 있을 테니까 숨 참아 봐. 토할 것 같은 것도 참아보고."

현우는 자지를 찔러넣은 채로 불알을 그녀의 턱에 비비적거리며 쾌락을 만끽했다.

명령을 어겼다고 혼낸 것의 효과가 생각보다 컸던 탓일까. 그녀는 도저히 상식의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고분고분했다.

"후... 이제 목보지 조이는 것도 잘하네. 목젖 올렸다 내렸다하면서 귀두 꽉꽉 물어."

현우의 명령에 따라 목젖을 꿀렁이며 귀두를 자극하는 것에 집중하는 혜지.

그녀의 목은 말로만 보지가 아니라 정말 보지처럼 사용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혀뿌리를 내리고 목구멍을 열어 귀두를 목젖 너머까지 삼킨다.

그 상태에서 다시 혀뿌리와 목젖에 힘을 주었다 빼며 목구멍의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오로지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한 천박한 기술이 어느새 몸에 익어버렸다.

"읍!"

그러나 호흡의 한계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기에 혜지는 폐가 쪼그라드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하... 진짜 개쩔었어. 우리 자기가 구멍 하나는 최고라니까."

"하아... 하아... 하아..."

자지가 빠져나가자 참아왔던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헐떡이는 혜지.

현우는 그녀가 헉헉거리는 것을 구경하다가 무심히 입을 열었다.

"방금껀 어떻게 해줄까. 토하진 않았는데... 네 번째로 쳐줄까, 말까? 힘들어? 힘들면 한 번 봐주고."

"하아... 주인님이... 흐... 원하는 대로 할게요."

"와... 내가 딱 듣고 싶은 말이 그거였는데... 자기 그런 예쁜 말도  줄 알아? 좋아! 한 번 빼줄게."

현우는 질질 흘러내리는 침을 그녀의 머리에 펴바르며 머릿속으로는 그녀에게 들려줄 세뇌의 말을 세심히 골랐다.

고문과도 같은 행위로 그녀의 의식을 새하얗게 표백시켜버렸으니 슬슬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작업만이 남았다.

방금의 자비에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입꼬리를 올리고 헤실헤실 웃는 꼴을 보니 세뇌를 박아넣기에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자기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게 좋아서 그렇게 말한거지? 하긴, 그렇게 하면 자기는 걱정할 일도 없고 혼날 일도 없고 얼마나 마음이 편해? 맞지?"

"네, 맞아요..."

"뭐가 맞는데?  입으로 말해봐."

"주인님이 원하는 대로..."

"주인님 말고 오빠. 오빠라는 말 넣어봐, 이번에는."

현우는 주인님이라는 말을 오빠로 바꿔가며 그녀를 한층 더 혼란으로 내몰았다. 물론 차분하고 다정한 어투와 함께.

안그래도 너그러이 한 번의 횟수를 차감해주어 기뻐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여기에 오빠라는 말까지 허락해주면 그 결과야 뻔했다.

방금까지의 무자비한 능욕과 상반되는 대접에 어리둥절해지겠지.

그러다 닳고 닳은 그녀의 의식은 지금의 자상함만을 곱씹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기대올  밖에 없었다. 그것이 어떤 대가를 수반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아... 오빠가 원하는 대로 하는게 나도, 아니 저도 좋아요."

"왜?"

"어..."

"너무 당연한거 아니야? 왜 대답을 망설여? 나 사랑해서 그런거잖아."

"아! 네, 맞아요. 사랑해서, 그래서..."

"그럼 그렇게 다시 말해봐."

"어, 오빠를 사랑해서... 네, 오빠를 사랑해서, 그래서 오빠가 원하는 대로 하면 저도 좋아요."

"방금 한 말 진심 맞지? 정말  사랑해?"

현우는 그녀의 턱을 잡고 치켜올리며 되물었다.

"진심 맞아요! 정말... 사랑해요."

"그럼 웃어줘.  자기 덕분에 지금 행복한데... 자기도 내가 목보지 써줘서 행복하지?"

아무렇게나 말을 지껄이면서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이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얼빠진 년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싶었지만  얼빠진 년이 바로 눈앞에 있지 않은가.

그녀의 입꼬리가 실룩이는 모습이 기묘하다.

어쩌면 그녀는  시간에 걸친 혹독한 조교 속에서 부정하는 법을 까먹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네, 행복...해요."

"왜 행복한지도 좀 길게 말해봐. 아까 사랑해서 그런다고 말했던 것처럼."

"아... 주인님이 목보지 쑤셔주셔서... 행복해요. 전 주인님 사랑하니까, 그래서 주인님이 원하는 대로 하면 어... 저도 행복하니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더듬거리는 말투로 방금의 궤변을 되새김질하는 혜지.

현우는 그녀의 정신이 눈 앞에서 망가져가는 광경을 바라보며 붕괴에 박차를 가했다.

"자기야, 봐봐. 지금 우리 얼마나 좋아. 나도 행복하고, 자기도 행복하고. 나도 웃고, 자기도 웃고."

그녀의 앞머리를 헝클이며 거듭 행복을 강요한다.

무력히 목구멍만 내어주는 노예보다 그것이 행복이라 믿는 노예가 더 탐났으니까.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런 노예가   있는 자질이 충분했으니까.

넥타이로 반쯤 가려진 그녀의 뺨은 어느새 어여쁜 보조개를 그려내고 있었다.

"자, 이제 그럼 마지막 한 번 남은거 마저 하고 끝내야지."

"아... 네!"

"지금처럼 예쁘게 웃으면서 개꼴리게 부탁해 봐. 마지막이니까 기운좀 내서 널 최대한 깎아내려도 보고."

현우는 그녀의 뺨을 툭툭 두들기고는 잠시 치워두었던 휴대폰을 다시 오른손에 들었다.

기쁜  미소지으며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내던지는 여자는 충분히 영상으로 남겨놓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자기소개."

"아... 정혜지는, 아니다, 21살 정혜지는 주인님이 원하면 언제든 어디서든 구멍을 벌리는 주인님 전용 창녀에요. 주인님이 원하면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걸어다니는 구멍이고, 그리고..."

"애완동물."

"네?"

"평생  좆물만 받아먹는 애완동물이라고도 말해. 어떤 애완동물이 될 건지도."

"어, 정혜지는... 평생 주인님 좆물 받아먹는 애완동물이에요. 그러니까... 목줄도 차고, 또... 음, 똥꼬에 꼬리도 넣고... 아! 잘못하면 채찍으로 혼나면서 주인님 말 잘 듣는 착한 암캐가 될게요."

혜지의 의식은 이미 인간다운 사고 기능을 상실했다. 현우가 쿡하고 찌르면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튀어나오는 말들은 일종의 조건반사나 마찬가지였다.

대답을 망설인다고 모질게 손찌검 당하며 교육받은 탓에 이젠 어떤 말이든 거리끼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입에 올렸다.

방금의 말들이 이상하다는 느낌은 딱히 들지 않는다. 모두 오빠가 들려주던 말을 그대로 따라한 것일 뿐이었으니까.

고된 담금질 속에서 현우의 악의에 흠뻑 젖어든 그녀는 결국 스스로의 의지대신 현우의 의지에 동조하고 말았다.

"존나 꼴리네. 나중에 우리 동거 시작하면 정말 너 애완동물처럼 길러보고 싶어. 그것도 내 로망 중에 하나거든."

"아... 네!"

혜지는 멍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동거. 그리고 오빠의 로망. 그 두 단어만이 기진맥진한 그녀의 머릿속에 웅웅 울렸다.

"그럼 멍멍 짖고 입 크게 벌려. 박아줄게."

"멍! 멍멍!"

그녀의 깜찍한 짖는 소리를 신호로 시작되는 마지막 다섯 번째 능욕극.

퍽 - 퍽 -  -  -

혜지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행복했던 기억들을 닥치는 대로 끄집어내며 미소지었다.

행복하다. 정말 행복하다. 지금의 행복은 결코 억지로 쥐어짜낸 행복이 아니었다.

오빠가 행복해하는 만큼 자신도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렇다고 믿고 또 믿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토하지마. 더 토할 것도 없잖아! 버텨!"

 - 퍽 - 퍽 -

끝없이 행복만을 되뇌이던 그녀의 귓가에 현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버텨야했다. 어떻게든 더 버텨내야 했다.

"끕! 우웁! 부으읍!"

"씨발년! 토하기만 해봐! 나 쌀 때까지 버텨! 씨발! 곧 싼다!"

현우는 귀두를 혜지의 목젖에 부딪혀가며 사정감을 끌어올렸다.

목표로 하던  분에 거의 근접했다는 생각이 들때쯤 참고 참았던 정액을 그녀의 식도에 토해낸다.

더이상 참기 어려울 만큼 자극이 강했었기에 언제든 사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싼다! 씨발! 싼다고! 하아... 하아... 씨발..."

사정과 함께 그녀의 뒷통수를 붙잡고 꽈악 눌러당긴다. 온몸을 휩쓰는 쾌감을 음미하며 마지막  방울까지 그녀의 몸 속에 털어넣는다.

그녀를 말그대로 정액을 배설하는 쓰레기통으로 써먹으며 기분 좋은 정복감에 몸을 떨었다.

"읍!"

숨이 막힌 그녀가 다급히 고개를 흔들며 비명을 지르자 그제서야 그녀를 놓아주는 현우.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구토에 두 눈을 부릅뜨고 매섭게 소리쳤다.

"끄으으으... 우웨에에엑... 후우... 후우..."

"어쭈. 좆물 받아먹는 쓰레기통이라는 년이 감히 주인님이 싸준 좆물을 토해? 너 마지막에 이럴거야?"

"아, 죄송... 흐으읏... 죄송합니다, 주인님. 지금  핥아먹을게요."

혜지는 현우가 언성을 높이자 숨을 헐떡이던 것도 잊고 급히 머리를 욕조 바닥에 가져갔다.

토라고 해봤자 좀전에 씻으며 삼킨 물과 침들이 전부였기에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걱정만이 앞선다. 오빠가 절대로 토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실컷 잘해놓고 마지막에 오점을 남길 수는 없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그거  먹으면 묶은거 풀어줄게. 맛있지?"

"네! 흐읏... 맛있어요!"

혜지는 혀에 비릿한 정액이 와닿자 알 수 없는 희열이 벅차올랐다.

얼마나 갖은 고생 끝에 얻어낸 귀한 정액이던가. 이젠 정말 끝이 보였다.

행복하다. 정말 행복하다.

너무도 행복한 나머지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자연스레 훌쩍거리는 울음소리도 입밖으로 흘러나왔다.

"자기 지금 울어? 다 끝났는데  갑자기 울고 그래."

"흐윽... 행복해서요. 너무 행복해서... 뭔가... 뿌듯하고... 흑... 그래서..."

"... 그래? 잘했어. 자기 오늘 최고였어. 역시 자기밖에 없다니까."

"흐윽... 다... 다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좆물 먹게 해주셔서 흑... 진짜진짜 감사합니다."

현우는 욕조 밖에 나가 슬그머니 휴대폰을 감추고는 난데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혜지를 위로했다.

그래도 베풀어준 양식에 대한 감사인사를 빼먹지 않는 것이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린 것일 수도 있고.

"자기 덕분에 난 오늘 정말 행복했어. 그저께보다 어제가,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한 하루였어."

"흐윽... 저도요. 저도 그랬어요."

"이제 말 편하게 해. 넥타이부터 풀어줄게."

현우는 세면대 위 거울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연습해보다가 그녀를 가리고 있던 어둠을 걷어내주었다.

잠시지만 눈이 멀었던 혜지를 반기는 현우의 환한 미소.

그녀는 빛을 되찾아준 현우를 바라보며 감격에 겨운 눈물과 함께 활짝 마주 웃어보였다.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와 눈물에 젖은 눈가였지만 그녀의 두 눈 속에 일렁이는 사랑만큼은 선명했다.

"자기  오랜만인데? 예쁘다. 사랑해."

"오빠... 흐윽... 오빠..."

"그래그래.  여기 있어."

혜지는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에 하염없이 오빠를 불러대며 얼굴을 비볐다.

긴 어둠 속을 헤매다 마침내 눈에 담은 오빠의 얼굴은 그 무엇보다 온화했다.

"으이구, 왜 울어 바보야. 힘들어서 우는거 아니지? 네 말대로 너무 행복해서 우는거지?"

"응, 흐윽... 너무 행복해서 그래. 진짜야."

"그래, 그럼 이제 씻고 나가자. 손 풀어줄게."

현우는 그녀의 팔에 감긴 테이프를 뜯어내고는 샤워기를 들었다.

좀전까지 그녀의 입보지를 세척하던 물줄기가 지금은 지친 그녀를 위로해주는 사랑의 세례가 된다.

그러나 그녀의 온몸에 적힌 지독한 맹세의 말은 그러한 세례에도 씻겨나가지 않았다.

현우에게 몸을 맡긴 채 미소 짓는 그녀의  위에서 검은 글씨들이 독사처럼 꿈틀거렸다.

그 뱀들이 그녀의 몸뿐 아니라 영혼에도 똬리를 틀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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