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아홉 번째 과외 - 미치게 보고 싶은 4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연예대상 포맷이 바뀌었는데요."
유리가 손에 올려놓은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다음은 내 차례, 인사는 대충 넘어갔고 많은 선배님들과 관객들이 나의 표정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다. 난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네, 작년에는 연기자 분에게 상을 줬다면 올해는 프로그램 자체에 대상을 주는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형식이 변하게 된다면 유재석 선배님이 제일 아쉬우시겠네요."
나의 말에 유재석 선배님은 고개를 도리도리, 그리고 손을 저으며 아니라고 발뺌했다.
"이제 재밌는 시상식으로 넘어가요. 우선 올해보단 내년이 더 기대되는 분들한테 드리는 상이죠?"
"네, 신인상인데요. 신인상은 세 부문으로 나뉘어져있습니다."
"쇼 버라이어티 부문과 코미디 부문 그리고 라디오 부문인데요. 먼저 쇼 버라이어티 부문부터 시상하겠습니다."
쇼 버라이어티 부문의 시상자는 유재석 선배님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를 비롯해서 많은 연예인들이 유재석 선배님의 등장에 웃음 폭탄이 터져버렸다. 저 분장, 여름 쯤에 무한도전 방송에서 본 적이 있었다. 정형돈 선배님과 같이 분장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시상대에 나타났다.
"아, 대박…푸훕."
"네, 저때문에 많이들 웃으실 수 있어서 희극인으로써 기쁩니다. 카메라 마주하기 너무 힘드니까 얼른 후보부터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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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MBC 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신인상 수상자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될지 딱 떠오르긴 하지만 조용히 하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날 향하긴 했지만, 난 설마 내가 받을 것이라고 생각도 안했다. 하지만 그 놈의 설레발이 뭔지. 유리와 티파니가 시상하기에도 앞서 툭툭 치면서 '축하해, 민식아.'라는 개드립을 날렸다. 이러다 수상 못하면 어쩌려고. 이 흥할 여자들아.
"<굿모닝 FM 이진입니다>의 이진씨…"
"너네들 김칫국 마셨네."
"미안…"
"으흠, 이진씨는 MBC FM4U 매일 오전 7시~9시에 방송되는 <굿모닝FM 이진입니다>에서 나긋한 목소리와 차분한 진행으로 청취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유리는 나에게 김칫국 먹인 것을 미안해하는 것을 감춘 채로 수상자에 대해 적혀있는 간단한 프로필을 읽어내려갔다. 나는 웃음을 지었다. 쓴 맛으로.
"아, 수상자가 또 있었네요. 죄송합니다, <김민식의 심심타파>의 김민식씨, 축하합니다!"
쓴 맛에서 단 맛으로 바뀌었다.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수상 트로피를 받으러 가려는데 유리가 프로필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난 속으로 물음표를 띄었다. 그러자 유리가 입을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센스있게 읽어주세요."
"아…"
시상식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모두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었다. 나는 유리가 준 프로필 대본을 들고 갔다. 다시 웃음이 파도처럼 스튜디오를 뒤덮었다.
"김민식씨는 MBC 표준 FM 채널, 매일 자정에서 새벽 2시까지 방송되는 심심타파에서 재치있는 진행과 다양한 코너를 통해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소속사인 유리와 미영이가 걸어와서 나에게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슈퍼주니어 선배들도 마찬가지로 꽃다발을 건네주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같이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피디 누나와 작가 누나들도 와서 축하한다며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아, 이거 꽃집 차려도 되겠는데요. 이 꽃다발 중 일부는 건네주신 분 수상하시면 다시 재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여튼, 이런 귀한 상을 저한테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송을 시작해서 처음 받은 상이네요. 이 상을 보며 항상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깜빡했네요. 심심타파의 지붕인 손연주 PD님께 감사드리구요. 작가 누나한테도 감사드리고, 퀴즈 서바이벌 25연승의 저력을 찍은 초롱양에게 감사합니다. 그거 할 때, 청취율이 가장 높더라구요. 안타깝게도 내일을 마지막으로 라디오에서 하차하게 되었는데요. 후임 MC인 초롱양과 은지양에게 많은 응원 보내주세요, 아. 제 2012년 소원은 무한도전 한 번 출연해보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연예인들의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나는 그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매니저 형에게 꽃다발과 트로피를 건네 주었다. 그리고 나는 MC석으로 돌아가 진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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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심타파 김민식, MBC 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 포함 3관왕 달성
[의지뉴스=김광수 기자]
<김민식의 심심타파>의 DJ인 김민식(23, 남)이 2011 MBC 연예대상에서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포함해서 신인상, 그리고 PD상까지 거머쥐는 영광을 얻었다. 김민식은 '제가 이렇게 상을 많이 받을지 몰랐다며 내년에 더욱 무한도전에 출연하고 싶다, 그리고 미국에 계시는 부모님과 부산에 계시는 고모님에게 영광을 돌린다' 라고 재치있게 수상소감을 전했다. 김민식은 오늘 12시 <김민식의 심심타파> 마지막 방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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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고마웠어요, 피디 누나."
"그래, 수고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피디 누나와 포옹을 했다. 9개월간 서로 수고했다는 말 없이 포옹으로 전하고 있었다. 피디 누나의 눈가에 눈물이 어렸지만 나는 피디누나와 악수를 하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럼, 김민식의 심심타파 마지막 사진 찍어요."
"그럴까요, 피디 누나하고 작가 누나들 다 일루 오세요. 태연이 너도 오고."
게스트인 태연이를 내 옆에 두고 피디 누나와 작가 누나는 내 앞에 서서 소소하게 브이질을 했다. 디지털 카메라에서 찰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라디오 DJ로서의 첫번째 하차의 기억은 지나갔다. 아쉬운 마음에 몇 번 더 인사를 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주차장에는 시끌벅적한 인파가 없어서 그런지 태연이는 당당하게 내 손을 잡고 주차장을 걸어갔다.
"그 게임기 바꾸는 곳 어디 있다고?"
"너는 나보다 그 게임기에 관심 있지?"
"시크릿 가든에서 김주원 하는 것보고 내가 얼마나 부러워 했는데. 자, 가자. 오늘은 마님처럼 모셔줄게."
투아렉 앞에 도착하자 나는 오토키로 문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리고 태연을 들쳐 안았다. 태연은 꺄악, 거리며 날 쳐다보았다.
"마님처럼 모셔준다고 했잖아."
나는 당당하게 말하고 태연이를 조수석에 앉혔다. 그리고 나는 운전석으로 걸어갔다. 운전대를 잡았다. 이제는 일상이었다. 매니저 형이 밴 끌고 가자고 하는데, 수도권 지역에 있는 행사는 내가 직접 운전한다는 것이 함정이었다. 물론 그 외에는 기름값을 아껴야 되기 때문에 밴을 쓴다.
"태연씨, 네비 찍으시죠."
태연이는 아담한 손가락으로 있는 힘껏 찍었다. 위치를 확인하니 영등포 타임스퀘어였다.
"인파 많은 곳이네요. 자칫하다 큰 일 나겠습니다."
"걱정마세요. 코디 언니 대동하면 됩니다. 코디 언니 옷 사주는 걸로 합의 봤으니까요."
"역시 태연씨는 치밀하시네요."
"제가 좀…호호."
지금은 태연이가 멘탈이 좋아서 잡힌 채로 연애하고 있지 않아서겠지만, 언젠가는 잡힌 채로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치밀한 여자, 김태연. 너무 치명적이다. 운전학원에서도 미영이랑 같이 올 때 말도 안되는 셀프카메라를 공위터(회사 공식 트위터)에 올려서 모면하더니.
방송국을 빠져나와 영등포로 가는 도로 위를 하염없이 달리고 있었다. 강을 보고 싶다는 태연의 개드립에 하는 수 없이 강가를 끼고 달리는 중이었다. 태연이는 창문을 열고 팔을 내미는 퍼포먼스를 보여줬지만, 난 그러다가 니 팔 차에 치여서 짤린다, 라는 협박으로 태연이의 팔을 안전하게 차 안으로 두게 만들었다.
운전하면서 끊임없이 투닥거리다가 어느새 타임스퀘어에 도착했다. 참, 거지같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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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기분좋다!"
"나보다 게임기가 그렇게 좋은가봐?"
"게임기한테 질투 느껴?"
"엄청 좋아하잖아, 기분 나쁘게, 치."
태연이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나는 빵빵한 볼을 두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푸훗, 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빠졌다. 나는 태연이의 입술에 내 입술을 맞대었다. 그리고 이내 뗐다.
"게임기는 네 입술처럼 촉촉하지 않잖아."
"으으, 오글거려."
하긴 나도 그랬다. 이런 오그리토그리한 대사를 날리니 태연이는 역정을 냈다. 나도 내 발가락이 안으로 휘었다. 이러다가 시공간이 오그라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게임기도 집으로 택배 부쳤으니까 영화나 볼래?"
"좋은 생각! 나 오싹한 연애 보고 싶다, 보러 가자."
"그 손예진 선배님 나오는 거?"
"그래, 이민기 선배님 나오는 거."
뭐가 좋은지, 우리 둘은 손예진 선배님과 이민기 선배님의 언급으로 깔깔 웃어댔다. 나는 너무 웃다가 염통이 터질 것 같아 화장실을 가기로 했다.
"화장실 갔다올게."
"응, 난 표 사놓을게."
"그래, 화장실 갔다온 뒤에 내가 먹을 거 살게."
"오, 센스 있는데?"
"지갑에 잉여놓은 쿠폰이 있거든."
태연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센스있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다가 싱긋 웃었다. 그리고 또각또각, 구두굽 소리를 내면서 영화표를 사러 프론트로 갔다. 나는 압박이 심해지는 염통의 조임을 이완시키기 위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화장실로 걸어갔다.
나는 깔끔한 소변기 안에 가득찬 그것들을 강하게 뿌렸다. 몸무게가 빠지는 느낌, 그리고 시원한 이 느낌. 곧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참 이런 묘사하는 것도 더럽다. 그만큼 화장실에선 쓸만한(?) 내용이 없다. 나는 세균들이 묻었을 손을 씻으러 세면대로 갔다.
그 때, 내가 여기에 오기 전 페로몬 억제 주사를 맞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뭐, 지금까지만 해도 멀쩡한데. 영화 보는 시간 동안에는 견딜 수 있겠지.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 손을 씻었다. 그리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태연이는 아직도 영화표를 구매하고 있나보다. 나는 의자에 앉아있다가 이내 팝콘과 콜라를 사러 카운터에 갔다.
"팝콘 大자로 달달한 맛 주세요, 그리고 콜라 작은 거 두 개 주시구요."
몇 십 초를 기다렸을까. 아르바이트생이 팝콘과 콜라를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돈 계산을 얼른 하고 의자에 앉아있는 태연이에게 걸어갔다. 영화표를 샀나보다. 태연이는 내가 주는 콜라 두 개를 받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 때였다. 시야가 흐릿했다. 귀에선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끔찍한 이명이 들렸다. 그리고 탱크 바퀴로 내 머리를 밟고 지나가는 듯한 고통이 강타했다. 감각이 무뎌졌다. 힘이 빠졌다.
손아귀에서 풀어진 팝콘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수 십개의 팝콘 알갱이가 바닥에 흩어졌다. 나의 정신 또한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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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악!"
민식이가 쓰러졌다. 이 비명소리는 내가 낸 게 아니었다. 옆에 앉아있던 커플 중 여자가 낸 비명이었다. 나는 갑자기 힘없이 쓰러진 민식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염없이 눈을 감은 채 쓰러진 민식이의 얼굴만을 쳐다보고 있을 뿐.
"…저기요, 119 좀 불러주세요."
"…네? 네…119 불러드릴게요."
비명 지른 여자의 남자친구는 나의 부탁에 바로 핸드폰을 꺼내들고 119에 연락을 했다. "여기, 영등포 타임스퀘어 영화관인데요. 사람이 쓰러졌어요, 빨리 와 주세요. 급해요." 라고 통화를 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주위로 몰려들었다. 찰칵, 찰칵, 듣기 싫은 촬영음이 빠르게 귀에 쌓여갔다. 하,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데이트인데…"
울컥하긴 했지만, 민식이가 눈을 뜨는게 먼저겠지. 멤버들에게 이 사실을 전할까? 아니야, 충격을 먹어서 어쩔 줄 몰라 할 거야. 비밀에 부치자, 그래. 비밀에 부치는 거야.
"저 여자 소녀시대 태연 아니야?"
"…태연 맞는 것 같은데? 왜 눈물 흘리지."
"앞에 남자친구인가봐."
"진짜? 이거 대박인데. 트위터에 올리자."
"저 남자 어제 MBC 연예대상에서 라디오 최우수상 받은 김민식인것 같은데?"
"어, 그럼. 태연하고 김민식이 연인 사이?"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싼 채 뭐라고 떠들어댔다. 그들은 관객, 우리들은 배우였다. 허나,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면 지금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는 나의 봄이다>를 촬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 상황이었다. 현재의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얼빠진 표정으로 민식이를 쳐다보고 있을 때, 과거의 기억이 갑자기 나타나 나의 머리를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