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5화 (186/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일흔 여덟번째 과외 - 시크릿 가든 2

“...”

말문이 턱 막혔다. 어쩜 내 주변 여자들은 이런 말들을 거리낌없이 내뱉을 수 있을 정도로 음탕한걸까.

“장난 치지마.”

“힛, 장난 아닌데?”

하라가 좀 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걸 말해주듯 물은 살랑살랑 부드럽게 찰랑거렸다.

그녀의 젖은 머릿칼에 맺힌 물방울도, 그 머리카락도 내 살결 위에 어느샌가 붙어있다.

“너..너.. 왜 이래..”

“왜 이러냐니, 당연한 거 아닌ㄱ..”

이 모습은 내가 알던 하라구의 모습이 아닌데, 하라구라고 말하기엔 보여지는 눈빛이 그 동안과는 달랐다.

마치 누군가가 하라의 안에 들어와서 하라구 행세를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라구, 저녁 먹으러 가자-.”

“칫.. 아쉽네..”

다행히도 멀리서 들려오는 카라 멤버들의 목소리로 인해 혼자 벌였던 작당(?)을 포기하고,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하라구였다. 이윽고 그녀는 물에 적셔진 매끈한 다리를 뽐내며 나와 멀어졌다.

“여우도 아니고 왜 저러는 거야..”

하마터면 온천수 안에서 꼼짝없이 당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살짝 소름이 돋은 나는 옷을 입으로 탈의실로 향해 걸어갔다.

탈의실로 걸어가기 직전에 보고야 말았던 푯말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노천탕은 혼탕. ※ 수영복 착용 필수’

으어어.. 나만 홀딱 벗고 있었던겨.

그럼 하라구도 그렇게 입은 것처럼 보여서 그렇지, 안에는 수영복을 다 착용하고 있었던 것이었나.

어쨌든 내가 아담돋는 완전한 나체미를 안 보여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휘이이잉-.’

플러그만 안 뽑는다고 가정한다면, 뜨거운 바람을 끊임없이 내뿜을 드라이어기로 신명나게 몸에 부착된 빨래판과 노란 미역을 건조시키는 중이었다.

그리고 검은 나시를 입고서는 좀 따신 가디건을 입고 탈의실 밖을 빠져나왔다.

“응..?”

아직 다 마르지 아니한 머리카락들을 흩날리는 채로 바깥을 나왔더만, 나보다 더 촉촉한 금빛의 머릿칼을 날리는 여자가 탈의실 앞에 서 있었다.

"아까, 왜 그냥 갔어?”

“음? 아, 피곤해서 그냥 먼저 몸 담구러 간건데.”

박규리양은 내게 한 발자국 더 다가온 채로 들이대며 말했다. 이 사람들 도대체 다들 왜 이러시나.

“부끄러워서 그래..?”

“언제 눈치 채셨나.. 아, 아무튼 밥 먹으러나 가자.”

눈을 꽤나 크게 뜬 채로 나를 쳐다보며 씨익 웃는 규리누나.

아무래도 온천수에 뭔가 이상한 액체라도 함유되어있었나보다. 하라말고 규리누나까지 이렇게 구는 걸로 봐선.

“아깝다.. 잘 하면 민식이 몸 볼 수 있었는데..”

규리누나의 돋는 드립 때문에, 대장 주위의 모세혈관에서 열심히 순환하고 있던 백 스물 일곱번째 적혈구가 반응해버렸다.

이게 다 귤 때문이야. 제주産 귤 말고, DSP産 귤.

“잘 먹겠습니다-.”

오오미돋는 일이 훅훅 생겼던 점심은 지나가고, 어느새 날이 어두워짐과 함께 저녁식사는 시작되었다.

내 건너편에는 규리누나가 깨작깨작 음식을 먹고 있고, 옆에는 하라가 자신이 나의 여자친구임을 주장하며 겨우겨우 앉아있는 채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오빠!”

“음?”

“히힛, 내 사랑이 가득 담긴 싸암-. 맛있게 먹어주세용-.”

하마터면, 할 뻔하게 만든 장본인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은 한껏 귀요미모드다.

그래, 하라구의 눈빛은 색기와 음탕함이 가득 찬 눈빛이 아닌 저런 순진무구하고 초롱초롱한 눈빛이란 말이다.

아무래도 아까의 하라구는 귀신이라도 씌인 듯 싶다.

“아-.”

입을 벌리자 그 안으로 들어오는 적당한 크기의 상추쌈, 우걱우걱 입을 움직이자 야무진 질감의 삼겹살이 느껴졌다.

하라구는 내가 쌈을 먹는 모습을 괜히 사람 부담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맛있지?”

“하하, 맛있네-.”

역시나 이런 류의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이런 류의 질문은 이미 모범답안이 있으니 그걸 쓰도록 하고, 솔직히 속마음을 말하자면,

‘마늘의 양이 평균치보다 한 52g 더 있는 것 같고, 난 초장보다 된장을 더 좋아한다고 이 하라구야.’ 였지만, 너무 깐깐하니 그냥 접어두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모범답안도 가끔 해가 된다고, 괜스레 질투가 돋아버린 승연누나와 니콜이 때문에 저런 류의 쌈을 몇 번이나 더 쳐먹어야했다.

손이 없어도 알아서 음식물이 들어오는 것도 좋지만, 내 혀좀 살려주오.

“흐아.. 잘 먹었습니다아-.”

언제 다 먹을까. 라면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많았던 삼겹살은 한 시간만에 행방불명상태.

다행히도 더 먹고 싶다는 디자이어는 지나가던 사 랑님이 스텝 되기 전부터 사라져버려서, 

그저 순수하게 쌈으로만 가득찬 이 위장의 내용물들을 다른 장으로 옮겨버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자, 다들 맛있게 먹었고하니 이제 담력체험 하러가자.”

앗, 매니저 형님이 다시 나타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더럽게 안 보이시더니, 갑자기 툭 튀어나와선 자신의 할 말을 하다니.

좀 노련한 형님이신듯 했다.

“히잉.. 담력체험 무서운데에..”

헐, 분명히 여기 오기 전 숙소에서 자기들 담력체험 하러간다며 날 놀리려고 시도했던 하라구와 승연누나가 저러고 있다.

진짜로 무서워하는 건 지, 아니면 무언가를 노리고 연기를 하는 건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 자-. 앉아있지만 말고 일어서서 좀 움직이자구.”

“하라구, 움직이라구!”

“칫, 알았다구!”

대화하는 사람들끼리 ‘-구’로 끝나는 종결어미를 반복하자고 약속이라도 한 건가, 

그런 말투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까이는 건 내 여친행세 하고 다니는 구하라(20.여) 였다.

근데, 나를 포함해서 다들 산으로 움직이고 있는 데 매니저형님만 전혀 움직이려 들지 않고 있었다.

“형은 왜 안 오세요?”

“나? 여태까지 준비하고 왔는데, 또 가라고? 걍, 준 약도 갖고 오오미돋게 담력체험 니가 통솔 잘하고 와라.”

으헣헣, 이런 대책이 넘치는 매니저형 같으니라고. 너무 잘 챙겨줘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매니저형이 대충대충 넘겨준 ‘담력체험 장소 및 규칙’이라고 써져있는 종이쪼가리를 든 채로 어둠이 이미 하늘을 물들인 밖으로 나왔다.

“매니저 오빠는?”

“몰라, 피곤하다고 나한테 이거 주고 자러 가셨어.”

“흠, 어디 보자.. 신비산장..?”

규리누나는 내가 나오자, 매니저오빠의 행방을 찾았고. 나는 그 매니저형이 자러 갔다라는 말과 함께 받은 종이 쪼가리를 흔들어보였다.

그러자 규리누나는 리더답게 그 종이 쪼가리에 적혀있는 산장의 이름과 약도를 읽었다.

‘흐음, 어찌하여 산장 이름에서 김주원과 길라임이 갔다왔을 듯한 자작나무가 솔솔 타는 스멜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산장의 이름을 보고,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에서 느껴졌던 스멜이 있었지만 뭐 어때.

이런 이름의 산장이 어디 한 두 개인가. 각 산 마다 하나 씩은 있을 법한 흔하디 흔한 간판같은데.

어쨌든 겁이 많은 카라 멤버들을 이끌고 산장이 있는 곳까지 야밤인데도 불구하고 신명나게 등산을 했다.

‘까악-. 까악-.’

참, 적절하게 곁들어지는 기분 나쁜 까마귀 소리로다. 이런 곳에 까마귀가 있음직한 무덤의 모습도 보이지 않으니,

이런 것도 다 미리 준비되어진 음악에 불과했다.

“꺄악-. 꺄악-.”

하지만 카라 멤버들이 내는 까마귀 소리는 레알이었다. 

뭐랄까, 귀가 째지는 줄 알았달까. 리얼 까마귀 목소리보다 더 소름이 끼쳤다.

산장까지의 거리는 좀 있었고, 가는 길목에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한 스산한 스멜이 나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꺄악-.”

“괜찮아, 벌레니까.”

“꺄악-. 사,사람 손!”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나뭇가지잖아.”

“꺄악-.”

매니저형님께서 카라 좀 엿 맥인다고 참 여러가지들을 준비해놨다고 했지만, 

진정으로 엿 먹은 건 나 인 것 같다. 다른 스산한 것들보다도 카라 멤버들의 비명이 더 소름 끼쳤으니까.

어쨌든 오래 살려고 그렇게 카라 멤버들에게 엿을 한참을 먹어서야, 종이 쪼가리에 써져있는 그대로의 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 주인아저씨!?”

“허허.. 어쩌다보니 여기서 뵙게 됬네요.”

좀 많이 허름해보이는 간이 산장안에 들어서자, 온천이 있는 숙소의 주인아저씨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서있었다.

알고보니, 이 ‘신비산장’이라는 산장도 운영하고, 밑에 있는 온천도 운영하는 중이었던 아저씨였다.

“룰이 뭐예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고 여기 있는 훤칠한 청년이 잘 알텐데.”

씨방, 뭐라는 겨. 이렇게 갑작스레 내게 진행을 떠넘겨버리는건가. 

그럼 아저씨는 진행도 안 하시고, 여기 왜 오셨나. 설마 이 산장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라도 해주시려 온 건가.

아니면 카라 아해들의 심심함을 달래주기 위해서 오신건가. 어쨌든 그렇게 딴 생각을 해봐도 카라 멤버들은

모두 일체히 나에게 시선을 꽂고 있는 상태라서, 나는 어쩔 도리 없이 꾸깃꾸깃 접어둔 종이뭉치를 펴 규칙을 읽어내려갔다.

“일, 2인 1조로 정해진 코스를 돈다. 이, 정해진 코스 이외의 곳을 돌아다닌다면 조난 될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야한다. 삼, 각 조당 주어진 종이에 도착점이 있는 곳에서 도장을 찍고 와야 한다.

  미션을 실패할 시에는 이유없이 내일 짐꾼 노릇, 내일 갈 때 짐이 엄청나니 웬만해선 미션을 성공하는 게 이로울 것이다.”

볼펜 똥이 가득 묻혀있는 글자들을 막힘없이 읽어내려갔다. 다 읽고나니 카라의 표정을 하나하나씩 쳐다보았다.

그리고 일제히 그녀들의 입에서 터지는 한 마디.

“악마같은 매니저 오빠.”

헐, 이 정도 갖고 악마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것을 기획한 매니저 형보다도, 전에 단지 소시가 집에 있었다는 이유로 날 열심히 두들겨 팬 님들이 악마같은데요.

“악마고 뭐고, 여기에 제비뽑기로 팀을 뽑으라니까, 어서 뽑고 빨리 시작하자.”

주인아저씨가 들고 있는 작은 나무젓가락통, 일단은 나부터 나무젓가락 하나를 뽑았다.

“어, 파랑색이다.”

젓가락 끝에 묻어있는 파란 잉크, 어쩐지 매니저 형 손에 아스트랄하게 잉크들이 묻어있는 게 좀 수상했는 데, 다 이유가 있었구만.

“이번엔 내가 뽑는다!”

의욕 넘치는 막내 지영이, 의욕이 넘치게 젓가락을 뽑았다. 뽑아서 나온 색은 다름 아닌 검정색.

고로, 나랑은 팀이 아니다.

“그 다음은 내가 뽑을래!”

니콜이는 뭐가 그리 신나는 지, 눈웃음을 빵긋 터뜨리며 젓가락 하나를 딱 집고 들어올렸다.

“음, 빨강색이네? 나랑 같은 색?”

승연누나도 언제 뽑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빨강색이라고 리액션을 하고 있었다.

고로, 니콜과 승연누나는 같은 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하라구. 자, 뽑아.”

“파랑파랑파랑파랑파랑파랑-. 꺄앗, 파랑색이다!”

하라구는 고작 젓가락 하나를 집으면서 아웃사이더씨 돋게 말하더니, 시끄럽게 젓가락 하나를 뽑고는 자진방아를 돌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에 잡힌 젓가락의 색깔은 푸르디 푸른색. 고로, 하라구와 나는 같은 팀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뽑을 필요도 없이 지영이랑 규리 누나는 한 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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