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4화 (165/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쉰 일곱 번째 과외.

“다들 이제 멍 그만 때리시고, 숙소로 들어가죠.”

어찌 할 수 없는 분위기를 애써 연지가 끌어올리려는 듯, 동기들이나 선배들의 등을 밀며 숙소로 하나 둘 씩 보냈다.

유리와 수영이도 뒤늦게 제 정신을 차리고, 내가 잠시 세워두었던 각자의 캐리어들을 끌으며 숙소로 먼저 가려고 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녀들을 뒤따라서 숙소를 향해 움직이려고 했으나, 여러 개의 손길이 나의 몸을 잡아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니가 어째서 감히 율느님이랑!”

“아,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깐. 친하긴 하지만 그 정도 까진 아니라고!”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을 해보아도 이 녀석들은 부러움마저 모두 분노에 포괄화시킨 건 지, 금새라도 주먹을 들어 나의 몸에 주먹도장을 새기려는 듯 보였다.

위험하다, 위험해. 유리가 아니라고 부정을 하면 좋은 스토리라인이겠지만.

“어머,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까 차 안에서 나한테 달라붙어서는 그렇게 뜨겁게.. 아잉-. 몰라!”

헐, 저 냔 ‘부끄럼쟁이 권유리 모드.’로 들어간 것 좀 보게. 많은 권유리 모드 중에서도 저 모드가 가장 얄밉더라.

유리는 ‘저 놈 잡아라’라는 스킬을 시전하며 나를 툭 주먹으로 어깨를 살짝 밀치고 지나갔고, 그녀가 지나가자 분노에 어린 뇨석들이 나를 붉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 이젠 성별을 가리지 않고 다구리를 해대는구나.’

버서커를 연상케할 정도로 공포스러운 눈빛을 뿜어내고 있는 남정네 무리들을 보며, 오늘의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조짐이 보였다.

아마도 내가 죽어서 생기는 시체는 강촌 근처에 흐르는 강물 따라 뼛가루들이 바람에 실려 흩뿌려질 듯 보였다.

“죽어어어!”

‘네, 죽을게요. 천국에서는 시달리지 않겠지요?’

“어차피 이미 걸레짝이니, 나중에 때리기로 하고 오빠들은 짐부터 들어줘요.”

다행히도 생명을 어느정도 배려하는 듯한 연지의 말에 남자 동기 및 선배들은 대학생 치곤 좀 되는 외모의 연지의 말을 순순히 따르며, 짐을 하나 씩 들고 숙소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들이였다.

“이제 대충 멤버들 다 모인 것 같으니, 과 소개는 안 해도 다 아실테고. 몇 명이 대표로 자기소개를 하기로 해요.”

어째서 총무는 나인데, 진행은 서연지가 하고 있는 걸까. 뭔가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지만, 별 문제 없는 것 같아서 탈 없이 넘어가기로 했다.

“저부터 할게요. 중앙대 영문학과 과대표 서연지라고 합니다. 우리 이틀동안 열심히 놀아봐요-.”

“우와아아아아!! 이쁘다, 이뻐!!”

이쁘면 다 되는 이런 더러운 세상. 청순하고 인형같은 외모를 중시하지말고, 알맹이를 살펴보라고 이 사람들아.

어쨌든 시크하지만 은근히 붙임성 좋은 연지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그 다음은 바로 옆에 있던 내 차례였다.

“중앙대 영문학과 학생이자, 요번 엠티 총무인 김민식이라고 합니다.”

“우우우우우우-. 너 같은 뇨석이 율느님을 가지다니.”

역시나 환호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들 하나같이 시기에 눈이 멀어 야유소리만 열심히 토해내고 있다.

우우, 두고봐라. 너님들이 자기소개 할테도 똑같이 야유를 쏟아낼테다.

“우와아아앙!”

“!?”

그렇게 더러운 남자동기들의 행동들을 마음 속에 담아두며, 혼자서 분위기가 암울해질 때 쯤.

왼쪽에 나란히 앉아있던 두 연예인들은 나에게 열렬한 환호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고, 암울해지기만 할 뿐이다. 이러다가 우울증 걸리는 건 아니려나.

“안녕하세요, 소녀시대 수영이라고 합니당-.”

“휘이익!! 사랑해요, 소녀시대!! 당신없인 못 살아!!”

“하핫..”

대한민국 최고 인기 여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는 역시나 환호하는 급이 달랐다. 온 몸이 호루라기인 마냥 열렬히 수영을 환영하는 그들의 모습에, 순간 월드컵을 다시 하는 줄만 알았다.

아, 월드컵 하니 돋았던 상황이 하나 떠올랐네. 그 때는 참 팔팔했었지..

“히히, 안녕하세용-. 소녀, 소녀시대 유리라고 하옵니다.”

“우오오오오오오!!”

이젠 시끄러운 것도 모자라 괴기스럽기까지한 남정네들의 함성이 방 안 가득 울려퍼졌다.

“옆에 있는 민식이의 여자친구인..”

“...”

하지만 유리가 시끄러웠는 지 쳐서는 안 될 망할 놈의 드립을 다시 한 번 쳐버렸다. 덕분에 뜨거웠던 분위기는 모두 사그라들고, 정적만이 방 안을 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서로 딱히 할 대화도 떠오르지 않고, 헛기침만 하면서 서로의 눈치를 보는 참 찝찝한 상황이랄까.

“대충 소개 끝난 것 같으니까, 이제 놀아봅시다! 강에서 놀 사람은 강으로 저를 따라오시고, 여기 안에서 노실 사람은 충분히 음료들을 즐길 수 있게 구비되어있으니 재밌게 즐기세요!”

“끼얏호!”

나는 이 가라앉은 분위기에 물 대신 활활 타오르는 청춘의 불을 띄우며, 본격적으로 엠티를 즐기기 위해 수상레포츠를 할 수 있는 장소로 일행들과 함께 움직였다.

물론 그 일행에는 유리양과 수영양이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남아있는 건 심심하다나, 뭐라나.

“깝율, 팔에 엉겨붙지마. 사람들 다 보잖아..”

“히히, 뭐 어때. 남자친구라고 밝혔는데에-.”

이 년이 티파니 전용 애교를 쓰다니, 티파니랑 완전히 반대되는 이미지의 유리의 티파니 패러디는 별로 성공하지 못한 듯 했다.

다만 나의 뒤에서 나를 따라오는 많은 남자들의 무리들의 부러움과 분노와 시기를 한 몸에 받는 것만은 성공한 듯 했다.

“아, 거참 앞에 계신 분들 조용히 갑시다?”

연지마저 조잘조잘대는 소리를 못 참겠는 지, 아저씨에 빙의한 듯한 말투로 앞에 있는 세 일행(나를 비롯하여 소녀시대 아해 두 명)에게 따지듯 말했다.

덕분에 레저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만든 호수에 조용히 도착할 수 있었다.

드넓게 펼쳐져있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과는 다르게, 이 호수의 수심은 동해바다의 연안에 맞먹을 정도로 조금 깊었다.

제일 얕은 곳이 팔미터, 제일 깊은 곳이 이십 미터라고 해서 멋 모르고 호수에서 깝쳤다간 물고기밥이 되기 일쑤니, 죽음의 호수라고도 불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 주의점만 숙지하고 구명조끼를 매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었기에, 많은 청춘들이 찾아오고 있는 곳이다.

“우와아, 수상스키는 내가 먼저 탄다!!”

“아니야, 나 먼저야!”

모두들 이 곳의 명물인 수상스키를 즐겨보겠다고, 다들 폭풍같은 속도로 수상스키를 타는 곳으로 열심히 뛰어들가고 있다.

심지어 수영이 마저 저 곳으로 뛰어가는 데, 유리는 오히려 타는 곳에서 좀 떨어진 호숫가에 앉아서 멀리서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깝율, 넌 저거 안 타?”

“헤헤, 난 물이 무서워서.. 민식이 너 타는 거 구경할테니까 가서 얼른 타고 와-.”

“응.”

모든 걸 다 잘할 듯한 그녀가 물을 무서워한다니. 뭔가 떨떠름했지만, 일단은 수상스키부터 즐기고 보자.

군대에서도 혹한기훈련 때 거의 스키를 마스터하다시피 했으니, 수상스키 정도야 뭐 식은 죽 먹기지. 균형감이라면 더럽게 잘 잡는 남자 민시그니까.

“후아아아, 신난다!!”

비록 초겨울에 접어드는 터라 물이 조금 시리긴 했지만, 그 시린 느낌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수상스키의 쾌감은 꽤나 짜릿했다.

“우와아아, 잘 탄다!”

자기소개 때만 해도 그렇게 나에게 야유를 퍼붓던 많은 선배들과 동기 그리고 후배들도, 내가 물살을 가르며 스키를 타는 모습에 열띈 함성소리를 토해냈다.

수영이도 초롱초롱, 호수보다 맑은 눈빛으로 내가 새하얀 물살을 가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듯 했다.

물이 무섭다는 유리도 용기를 내긴 했는 지, 물가 근처로 와선 긴장된 표정을 짓다가도 금새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꺄아아악!”

‘풍덩.’

그 때였다. 갑작스러운 비명소리와 함께 누군가 물에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를 본능적으로 들은 나는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고.

은은하게 물자욱이 그려진 동심원의 가운데에 빠져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유리의 모습이였다.

“씨발, 도대체 누구야.”

일단은 잡고있던 봉을 놓고는, 물 속으로 뛰쳐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나의 살 위에 내려앉으며 시린 느낌을 주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유리를 향해 헤엄쳐 달려가며, 유리를 물에 빠뜨린 범인을 찾아냈고 범인은 유유히 다시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숨고 있었다.

서연지, 도대체 유리한테 왜 그러는거야.

“젠장, 아래로 가라앉나.”

다른 사람들도 내가 갑자기 물 속으로 뛰어드는 걸 보고, 무슨 일인 지 감을 못 잡다가 내가 헤엄쳐오는 모습을 보고

대충 눈치라도 챘는 지, 모두들 그 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물 속으로 잠겨버린 유리를 걱정했다.

하지만 걱정만 했을 뿐, 나서서 같이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로선 아쉬울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잠시 숨을 크게 몰아쉬고 호수 밑으로 잠수했다.

‘권유리, 너도 정수연처럼 물에 빠지기냐.’

눈을 감은 채 바닥을 향해서 천천히 잠겨오는 그녀의 몸을 감싸안고는 발로 물 속을 세게 차며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갔다.

“푸하-. 소월아, 가만히 구경만 말고 유리 좀 끌어올려줘라.”

“네? 아, 네!”

나는 그녀를 점점 안전한 곳으로 올리고, 소월이는 기절한 그녀를 위에서 끌어올렸다.

유리가 안전한 곳으로 옮겨지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들을 향해 소리치며 말했다.

“권유리 거기까지만 옮겨주고 더 이상 건들지마. 권유리 남자친구로써 말하는거야.”

소월이 말고도, 다른 선배들이나 동기들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내가 쓰러진 그녀를 향해 걸음을 내딛자, 서서히 공간을 만들어주며

내가 유리에게 가까이 갈 수 있게끔 만들어줬다.

그리고 코에 손가락을 대어서 숨을 안 쉬는 것을 확인하고, 망설일 새도 없이 즉시 유리의 흉부를 몇 번 압박하고는, 어두운 빛으로 변해가는 유리의 입술을 벌려 그 안으로 공기를 불어넣었다.

“케엑.. 켁.. 흐으..”

“유리야, 괜찮아!?”

그렇게 심폐소생술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유리가 정신을 차려가는 지 물을 토해내며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는 유리의 모습을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흐아아아앙-. 민시가-. 흐윽.. 흑..”

유리는 깨어나자마자, 눈 앞에 있는 나를 보더니 두려웠던 것이 한 순간에 풀리니, 어린아이마냥 울음을 크게 터뜨리며 나에게 안겼다.

“괜찮아.. 실컷 울어..”

나는 서글프게 울고 있는 유리를 더 끌어안으면서, 젖은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진정을 시키고 있었다.

“아, 수영아. 잠시 유리 좀 데리고 있어줘. 찾을 사람이 있거든.”

“으응..”

일단은 점점 진정되어가는 유리를 수영이에게 맡기고, 굽혔던 무릎을 다시 일으켜서 서연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수상스키를 타는 곳의 반대 쪽에서 우리를 거의 악랄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그녀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후훗, 왔네?”

전 여자친구라고 생각했던 녀석이 이렇게 악랄한 악녀였을줄이야. 

나를 보며 짓는 미소가 다른 사람에겐 청순한 웃음일지는 몰라도, 나의 눈에는 가면을 쓴 마녀의 사악한 미소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 지는 몰라도, 이제 서연지. 너는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야.

‘짝.’

나의 손바닥이 매섭게 그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적막해진 호숫가에 순식간에 울러퍼졌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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