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4/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쉰 여섯 번째 과외.

“야, 빨리 안 와?”

“여자가 되서 인내심도 없냐, 곧 가니까 재촉 좀 하지마라.”

역시 몇 일 전에 시도해본 나의 예언은 한 치의 틀림없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한 참 드림월드를 허우적거리며 헤메고 있을 때, 날 그 곳에서 벗어나게 해준 건 다름 아닌 권유리양의 새벽 모닝콜이었다.

유리의 닦달하는 소리에 어쩔 수 없이 재빨리 가볍지 않은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뒤, 한강을 지나서 저 멀리 떨어진 소녀시대 숙소 앞까지 도착했다.

“안 오냐고오오오!!”

“문 열어, 현관문 바로 앞이니까.”

이러다가 핸드폰이 고음의 소음에 버티지 못하고 고장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잠시 불안해했지만,

다행히 터지는 일은 없었고 함부로 열어주지 않는 소녀시대 숙소가 보란듯이 가볍게 열렸다. 

‘시발, 여긴 점점 입장레벨이 높아질 기세다.’

첫 입장 때만 해도, 초보자가 사냥하기에도 참 안전한 던전이었는데. 이제 여긴 고렙의 몬스터 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부르면 제 때, 제 때 못 오냐!”

소녀시대 숙소(입장허용레벨 Lv.22­, ‘소녀시대의 전화번호’아이템을 소지해야 입장가능.)를 입장 가능케한 장본인인,

권 유리(Lv.22)를 보자니 코웃음과 안정된 마음이 밀려왔다, 깝율 정도야 절대로 무섭지 않다구.

같은 레벨이라도 노멀 몬스터 급에서, 보스 몬스터 급까지 나뉠 수 있으니깐 말이다.

“제 때 왔잖아. 강 건너서 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건 이해해줘야지.”

“음? 강 건너서? 또 이사했어!?”

아뿔싸, 아직 이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스스로 헬게이트를 개방한 꼴이 되어버렸구나.

“뭐?! 이사!?”

다들 문에 귀를 대고 엿듣고 있었던 것일까, 현관 앞으로 많은 수의 소시 멤버들이 리젠되었다.

“하하하하하-. 흑석동은 환경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더 신선한 공기와 삶의 여유를 느끼고자 행당동으로 이사갔지.”

하는 수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드립을 쳐보기라도 했지만, 소녀들은 그 드립을 간단하게 귓등으로 듣고 무시했다.

이럴 때는 나를 구해줄 구원자 정 수연(Lv.22, 비숍)양이 매우 필요했다. 도대체 갈색머리의 그녀는 어디로 짼 건지.

“근데 수연이는!?”

“수연이? 아직 아침이라서 침대에서 기절 중이랍니다-. 어쨌든 번지 수까지 정확한 주소를 내뱉지 아니하시면, 소녀 탱의 주먹에 민시그 도련님은 나가떨어지십니다. 호호-.”

젠장, 나의 편은 아무도 없는건가. 그리고 더 춰는 건 아직 나도 주소를 자세히 알 지 못하는 데.

그냥 맘 편하게 포기하고, 맞기 전만이라도 방어력이 상승하는 버프라도 걸어야되나.

‘금강불괴!!’

‘퍼억-.’

“아아아아악!!”

젠장. 스킬 시전 중에 팔뚝에 꽂히는 강력한 탱의 훅이라니, 마나 100을 소비하는 나의 액티브 버프 스킬은 장렬하게 캔슬되었다.

“호홍, 알아내면 바로 문자 잊지 마렴!”

하는 수 없이 엠티 장소를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광수사장에게 주소를 알아내기로 합의를 보고, 유리와 수영양은 이 장면을 지켜보는 것으로 협약까지 맺었다.

내가 왜 이래야하는 지 도저히 알 턱이 없었지만, 김 태연(Lv.22, 보스)양의 인파이트에 시체가 되기는 싫었기에 하찮은 목숨을 지키고자, 일주일도 안 되어 나의 집을 ‘그랜드 오픈’해야 할 기세였다.

머리가 안 좋으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이건 몸빵이 안 좋으면, 몸과 머리가 둘 다 고생하는 꼴이다.

“근데, 내가 왜 니네들 캐리어를 끌고 댕겨야 하는거냐.”

전화번호로 끝내지, 내 양 손 끝에 걸린 발칙한 컬러의 캐리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덕분에 그녀들의 손은 매우 자유로운 제스처를 선보이고 있었고, 나는 소녀시대 밴 안으로 들어갔다.

‘?!. 내 애마는!?’

이미 민 시그(Lv.22, 게임의 주인공)의 애마는 그의 곁에서 점차 멀리 떨어져가고 있었다.

“내가 옆에 있는데, 뭐가 그리 아쉬워서 뒤를 계속해서 쳐다보시나.”

언제 스틸당할 지 모를 내 애마가 불안해서 그래요, 권 유리양. 근데 유리가 마법이라도 걸린 날인건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날 닦달하는 지 모르겠다.

“하아, 아무 것도 아니야.”

“우걱우걱-.”

민시그의 한 숨을 가득 실은 밴은 이미 서울을 벗어나, 엠티로 유명한 지역인 강촌을 향해 신명나게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수영양은 과자를 입에 한 가득 쳐문 채, 지 혼자만 쳐먹고 있다. 

‘꼬르륵-.’

‘나도 좀 주지, 망할 냔.’

하지만 과자를 먹는 데 온 신경을 쏟는 수영양이 민시그의 독백을 들을 리가 없었다. 그저 신나는 분위기의 밴 안에서 쳐진 한 숨만 토해내는 민시그였다.

그의 한 숨과 그의 위장에서 일어나는 공명소리는 은근히 어울리는 비트를 이루어, 민시그의 암울한 모습을 한 층 더 돋보여주게 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요-. 오빠가아아아-. 좋은 거어어어얼-.”

“흥, 아이유 노래?!”

혼자서 무겁고 암울한 공간을 구축해나가던 나는 때 아닌 지은양의 고음에 정신을 차리고는, 핸드폰을 확인해서 수신자가 누군지 살짝 쳐다보았다.

물론 옆에서 질투서린 유리양의 리액션은 가볍게 무시해주고서 말이다.

‘010-XXXX-XXXX 서연지’

아힝흥헹, 이 냔은 왜 나한테 전화하고 앉아있는 지 모르겠다. 아주 오늘 골고루 갈궈지겠구나-.

“어이, 선배, 동기, 후배 가리지않고 민폐끼쳐드리는 복학생씨.”

연지냔이 나를 디스하는 어휘력과 문장구성력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듯 했다. 아니 점점 진보하는건가!?

“왜요, 기분 뭐 같은 아침부터 시비십니까.”

“기분 뭐 같은 건 그 쪽이 아니라, 우리 쪽이거든? 어쨌든 니 안 오길래 우리 먼저 강촌으로 떠난다.”

흑흑, 내가 권유리만 아니었어도 그 쪽에 끼어들어서 강촌으로 기분 좋게 떠나고 싶었다고.

그걸 네가 아십니까.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디스하시는 연지냔아.

“아, 그건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하다. 따로 강촌을 향해서 바삐 달리는 중이야.”

“아, 그러셨어요? 강촌에 오시기 전에 일단 맷집부터 기르고 오시길 권장할테니, 맷집 기르고 강촌 오세요-.”

“이, 이보세요! 자..자비ㄹ.. 야!”

미처 변명을 하기도 전에, 연지냔으로 부터 걸려온 전화는 연지냔에 의해 끊겨져버렸다.

잠시 멈추었던 한 숨부터 나오면서, 뛰어난 상상의 나래를 펼친 나는 선배님들에게 야무지게 쳐맞는 섬뜩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아, 진짜 연지냔 말대로 가드를 올려야겠다. 근데 어디서 다른 장소에 비해서 온도가 높은 느낌이..?’

문뜩 귓잔등이 다른 부위에 비해서 심히 따뜻하다고 느낀 나는 고개를 훽 돌렸고, 고개를 돌리니 유리가 바로 내 눈 앞에 있었다.

“!?”

“누구야?”

‘急’여친 권유리 모드로 전환한 유리는 도끼눈으로 날 째리며 추궁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

‘急’남친 민시그 모드로 전환한 나는 보통 커플과 다르지 않게 유리의 추궁에 다른 남자들이 하는 대답을 내뱉었다.

“왜 핸드폰에서 나 말고 다른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거냐고-.”

난 조금 연기가 있었는데, 지금의 유리는 진심으로 하는 말 인가 보다. 질투가 만땅으로 섞인 듯한 말투로 계속해서 나를 추궁하는 그녀였다.

“아, 과대표.”

“아-. 과대표?”

동일한 문장, 동일한 단어지만, 발음을 짧거나 길게 하거나. 마지막을 마침표로 끝내느냐, 물음표로 끝내느냐에 따라서 이해하는 모양새도 달라졌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선배들에게 털리기 전에, 권 유리양에게 털릴 준비를 해야하는 터였다.

“응.”

“웃기지 마! 또 누구랑 바람난거야!! 말 안해!?”

“으어어억..”

질투의 화신 권유리 모드로 전환한 유리는 나의 관자놀이에 정확히 헤드락을 걸며, 고통의 세계로 날 서둘러 인도했다.

하이톤의 비명은 나오지 않고, 대신 고통의 신음이 나즈막히 내뱉어지고 있었다.

“하아, 놀고있네-.”

“하아, 놀고있네-.”

이를 지켜보던 두 명의 목격자. 최 수영(22. 여)양과 매니저 형은 나와 유리의 모습이 한심한 듯 한 숨을 쉬면서 우릴 비난하고 있었다.

“자, 이제 도착했으니 내일 데리고 온다. 잘들 놀아라-.”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나를 포함한 세 일행은 떠나는 밴을 향해 손을 정겹게 흔들어주며 떠나보냈다.

‘흑흑, 매니저 형 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물론 앞으로 털릴 예정인 ‘민시그(나)’는 통한의 손사래였지만. 유리나 수영은 통상적 의미의 손사래였다.

“엠티하는 민박집이 어딘데?”

“흐음, 분명히 내가 1학년 때 엠티 갔던 시아민박이 맞을텐데. 어, 저기있다.”

수영이는 내게 민박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이번 엠티를 가는 장소도 저번에 갔던 민박집이었기에,

몇 년전의 기억을 되살려 그 민박집을 향해 발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한 몇 분을 아무 말 없이 걸었을까, 시아민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익숙한 글씨체의 간판과 익숙한 얼굴의 영문학과 후배들이 보였다.

물론 그 센터에 서 있는 연지냔도 말이다.

“우와아아아!!!!! 소녀시대다!!!!!!!”

저 선배들은 나까지 쪽팔리게 내 양 옆에 있는 유리와 수영양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었다.

소녀시대가 뭐가 그리 좋다고 저렇게 난리부르스를 떨어댈까. 그녀들의 내숭없는 행동을 봐야 차라리 일반인이 더 낫구나-. 할테지.

‘퍼어억-.’

“끄아아악, 연지냔아!”

많은 사람들이 소녀시대에 열렬히 환호하고 있을 때, 연지냔이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길라임의 전매특허 액티브 스킬인 로우킥을 내 정강이에 제대로 작렬했다. 작렬한 그 순간 만큼은 정강이뼈가 뿌러진 듯 했다.

물론 고통은 시간이 지나서야 사라지긴 했지만, 고마 해라.. 마이 맞았다 아이가..

“왜 때렸단 말은 하지마라, 너 선배들한테 맞을 거 내가 대신해서 때린거니깐. 그리고 니가 뭔데 소녀시대님이랑 같이 와?!”

갑작스런 연지냔의 로우킥에 모두들 일제히 환호하는 제스처를 멈추고, 연지냔과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유리와 수영이도 살짝 당황한 눈빛으로 나와 그녀를 쳐다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창 질투의 화신 권유리 모드인 유리는 이 상황에서 끼어들고 싶었는 지, 연지냔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연지씨?”

“아, 유리씨 왜요.”

“저기.. 제 남자친구 그만 좀 때리시죠?”

“!?!?!?”

유리의 갑작스러운 ‘여자친구 권유리 모드’ 전환에 놀란 건 나 뿐이 아닌 듯했다.

멍 때리고 나와 연지냔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당사자인 연지냔도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보았다가, 유리를 쳐다보았다.

“응? 이상하다.. 민식 선배가 군대 가기 전 까지만 해도, 여자친구는 연지 선배였는데. 헤어지기라도 했나..”

영문학과 후배였던 신 소월군의 목소리가, 유리가 드립을 친 지 몇 초가 지나지 않아서 다시 정적을 형성했다.

갑작스런 소월군의 드립에 유리는 말하면서 벗었던 선글라스를 땅바닥에 떨어트리고, 수영은 먹으려고 들고 있었던 과자봉지를 땅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나는 사실이었던 이야기라서 별 말 안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유리와 수영은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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