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마흔 세 번째 과외.
“어.. 서현아 니가 어떻게..”
“화영이랑 지연이한테 시달리다가 기절하셨다면서요?”
여전히 천사의 순백색 자욱이 사라질 줄 모르던 서현이의 모습에, 나는 네가 여기 왜 있냐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나의 말에 대답은 안해주고, 일단은 내가 기절한 원인을 다시 되뇌이게 해주고 있었다.
젠장, 되뇌이고 싶지 않은 기억인데, 그걸 다시 떠올리게 하다니.
“으응.. 그렇긴한데, 니가 왜..”
“다들 스케줄 있다고하고, 저만 쉬는 날이라서 병간호하러왔어요-. 히힛..”
아아, 소녀시대 아해들이 없고, 그저 티아라 아해들만 있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내가 몸살로 몸져 누워있을 때, 이렇게 간호를 하는 착한 천사같은 애들이 있다니,
몇 달 전 윤아가 병간호 해준 이후로는 오랜만에 받는 간호다.
그 때 보단 백 배 더 안심되는 것 같아. 특히 서현이의 청순한 미소에 불안감이 사르르 녹고 있었다.
“오빠, 요새 힘드시죠? 언니들한테 시달리느라.”
“흐윽..응, 내가 이게 무슨 꼴이야..”
내 마음까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듯한 서현이다.
흐흑, 이렇게 착한 서현이에겐 냔이라거나 냥같은 호칭은 어울리지 않아.
냔과 냥이 어울리는 아해들은 효민이나, 지연이나, 써니나, 유리가 어울릴 듯 하네.
여튼,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서현이 덕분에 감동한 나는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그래도 이해해주세요, 다들 오빠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애정표현이 과해진거예요.”
“흐흑, 고맙다. 서현아..”
으음, 애정표현이 내가 이해할만큼 과하면 모르겠는데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이라서.
그리고 내가 뭐빠지게 시달리는 것을 저렇게 미화해서 풀다니, 서현이의 언어구사능력도 보통이 아닌 듯 했다.
아, 내가 지금 서현이를 관찰하고 탐구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분석적으로 서현이에게 다가가는거지.
내가 뭐라고 분석하든 서현이는 내 생각은 알아채지 못하는 듯, 자신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체온기를 하나 꺼내들었다.
“오빠, 그럼 열 좀 잴게요. 아- 하세요.”
“아-.”
“체온기 넣었으니까 삐- 소리 날 때 까지 입술 좀 닫아주세요.”
그리고는 입을 벌리는 모습을 하면서, 내 입을 자연스레 벌리게하는 서현이었다.
내 입을 벌리자 그 안으로 서현이가 갖고 있던 하얀색 체온계가 내 입 안으로 들어왔다.
체온을 재는 차가운 금속의 촉이 내 혀에 닿자 살짝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잔잔하고 서정적인 서현이의 말투에 천천히 입술을 닫아 잠시동안 체온계를 물고 있었다.
‘삐, 삐-.’
“으음.. 37도네요, 아까 오빠 잠들 때 잴 때보단 많이 내리긴했지만 아직도 열이 있네요.”
“아아.. 어쩐 지 맞은 것 치고는 많이 아팠어.”
서현이는 체온계에 적힌 내 체온을 보면서 살짝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걱정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것일까, 아니면 더 아프길 비는 듯한 표정일까.
왠만해선 전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에 별 신경을 안 쓰고 체온을 잰 나는 다시 이불을 덮어 침대 위로 누웠다.
오늘은 돌아다니지도 말고, 침대 위에서만 살아야지.
“걱정마세요, 오늘은 제가 확실히 간호해드릴게요!”
“고마워..”
서현이는 나와 체온계를 번갈아보더니, 잠시 후 체온계를 다시 큰 주머니 속에 쏘옥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내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면서, 오늘은 간호에 이바지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이는 서현이였다.
낄낄, 귀엽네.
귀여운 서현이의 모습과 또한 배려와 순수하고 착한 마음이 가득한 서현이의 모습을 보자니 고마움이 느껴졌다.
“배고프시죠? 제가 죽 끓이고 올게요.”
간호로 모자라서, 이번에는 죽까지 끓여오겠다는 서현이의 모습에 나는 그저 폭풍으로 눈물을 흘려댈 뿐.
내가 많이 아플 때 이렇게까지 간호해 줄 아해들이 또 있을까.
흐음, 은정누나나 시카면 충분히 그럴지도.
그리고 아직 죽 만드는 방법을 모르는 지, 뒷주머니에 대충 꽂아놓은 듯한 접힌 레시피 종이의 모습에 귀여움과 고마움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흐윽.. 차라리 서현이가 내 여친이었으면..”
순간 ‘나윤권-나_였으면.mp3’라는 파일이 떠오르는 이유는 뭐일까.
괜스레 우리 결혼했어요에 열심히 나오는 정용화가 부러워졌다.
저렇게 섬세하고 배려심깊고 마음씨 착한 서현이의 모습을 다른 아해들이 반 정도만 닮았으면 좋으련만.
그런 바램은 이루어 질 수 없는 헛된 바램이려나.
“아, 맞다. 오빠!”
“응?”
“태연언니가 오빠한테 뭐 전해달래서, 오빠 머리맡에 있는 서랍 위에다 올려놓았어요. 따뜻하니까 지금 드셔도 되요.”
드셔도 된 다는 소리는, 뭐 건강음료나 액기스라도 된다는 건가.
나도 의외로 건강을 챙기는 남자라, 망설이지않고 고개를 위로 올려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플라스틱으로 된 물병에 좀 누리끼리한 색깔의 우유같은 게 올려져있었다.
손을 힘껏 뻗어서 우유색의 병을 만져보니, 따뜻하긴 진짜 따뜻했다.
마치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듯한 그런 따뜻함과 포근한 느낌이랄까.
여튼 그 물병에는 쪽지라도 되는 마냥 노란색의 포스트잇이 붙여져있었다.
「
힘내라는 의미로 서현이를 통해 대신 전해주는 우유!
예능 스케쥴로 대관령 목장에 가서 하나 얻어 왔어 ^^
너님은 갓 짠 듯한 신선한 느낌의 우유에 소울이 요동치겠지.
여튼 나의 사랑도 듬뿍 담아놨으니 맛있게 먹어♡
- 너의 사랑 탱♡.
」
흐음, 소녀시대에 날 걱정해 줄 아해는 시카와 서현이 밖에 없다는 말은 취소.
그 리스트에다가 아무래도 태연이를 추가해야겠다.
아마 직접 오지 못한 이유가 스케쥴 때문일 것 같으니, 서현이에게 전달해달라고 전해주었겠지.
여튼 자칭 ‘태연의 사랑이 듬뿍 담긴 우유’가 담긴 파란 물병의 뚜겅을 열어 다 먹지는 않고, 일부만 먹기로 했다.
‘후릅, 후르릅, 후르르릅-.’
“흐음.. 뭐랄까, 뭔가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 맛은 뭐지.”
태연이가 준 우유를 한 번 입에 댄 채 몇 모금 씩 먹기 시작했다.
흐음, 뭐랄까. 어디선가 목장에서 많이 먹어본 듯한 신선한 맛이긴 하지만, 뭔가 밤 중에 많이 먹어본 듯한 비리게 신선한 맛이 뒷맛으로 느껴졌다.
어쨌든 뭐라고 형언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오묘하게 비범한 맛이었다.
갓 짠 우유는 다 원래 이런 맛인가? 언젠간 목장도 가볼까나.
그 때 가서 짜 먹어야 이것이 진정 목장의 맛인지 가릴 수 있을 것 같아.
태연이가 나중에 오면 이 우유를 어디서, 어떻게 구해낸 건지 한 번 물어봐야겠다.
“힛-. 오빠 죽드세요.”
“으응.. 고마워.”
우유를 마시고 난 뒤, 그 애매모호한 맛에 대해 여러모로 머리를 굴려가며 탐구를 하다보니,
어느샌가 서현이는 쟁반에 죽이 담긴 그릇을 얹혀놓은 채 내게 와 있었다.
순수한 미소를 계속해서 지어내던 그녀는 나를 일으키고는, 침대 위에 죽 그릇이 올려놓았다.
나는 죽 그릇 옆에 있는 숟가락을 들어 본격적으로 그 죽을 떠먹기 위해 집긴했는 데.
‘툭-.’
숟가락을 들자마자 죽 그릇 안으로 떨어트렸다.
좀 높은 곳에서 떨어트리느라, 부딪힐 때의 충격으로 인해 여러 밥알들이 곳곳으로 흩어졌다.
물론, 죽에 있는 국물도.
“어머.. 오빠 숟가락 집을 힘도 없으시구나.. 제가 먹여드릴게요.”
“나에게 먹여준다니 고맙소.”
감동이다. 서현이는 어느새 내가 떨어트린 숟가락을 다시 집은 채, 죽을 한 스푼 떠서는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젠장, 먹여준다는 건 훼이크였던가!? 자신의 포만감을 채우려고 이런 짓을 하다니!!
“밥은 먹어야 살잖아요, 후우-. 후우-. 자, 아-.”
역시나 내 생각은 무리수류 甲 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장면이었다.
서현이가 자신의 포만감을 채우기 위해 숟가락을 든 것이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뜨거운 죽을 식혀주려는 지 입으로 후후 불다가,
내 입에다가 죽을 먹여주는 서현이었다. 흐흑, 서현이 너는 감동이었어.
그런데 가만히 보니, 처음 봤을 때의 서현이보다 많이 이뻐진 모습이었다.
역시 여자는 사랑을 하면 여러모로 많이 이뻐진다더니, 아마도 우리결혼했어요에 나오는 정용화랑 결혼생활해서 그런가보다. 라고도 생각을 했다.
어쨌든 정용화, 전생에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신의 축복을 받다니. 부러운 뇨석.
“그런데 서현이, 너 많이 이뻐졌다?”
“아.. 그래요..? 히힛..”
여자들은 예쁘다는 칭찬은 마다하지 않는 것인가.
예쁘다는 칭찬은, 서현이나 시카나, 소연누나나 은정누나나, 설리나 수정이나.
여튼 많은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듣고싶고, 들으면 기분이 좋아라하는 칭찬인 것 같다.
이것도 많이 써먹어야제.
하지만 서현이를 보고 한 말은 진심으로 이뻐져서 진심으로 한 소리.
“누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나봐? 사랑한다면 이뻐진다는데.”
“아이.. 오빠도 참..”
서현이는 나의 칭찬에 어쩔 줄 모르는 채, 완전히 농익은 사과의 불그스름한 빛보다도 더 볼이 매우 붉어졌다.
그리고 그 붉어진 볼을 한 손으로 감싼 채 몸을 베베 꼬는 서현이였다.
서현이의 이런 모습도 처음 보는데, 참 귀엽구나.
“히히.. 그 상대방이 용화인가 하는 분이야?”
무심결에 장난스레 농담삼아 던진 말에 서현이의 히죽거리는 표정은 살짝 정색한 표정으로 바뀌며,
입으로 제대로 가던 죽이 담긴 숟가락이 방향이 잘못 되어 턱으로 가버렸다.
그리고는 충돌, 뜨거운 죽이 턱에 가득 묻었다.
“아, 앗 뜨!!”
“아! 오빠 미안해요.”
“아냐, 괜찮아. 닦으면..”
뜨거운 죽이 턱에 와닿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레알 뜨거운 기운이 내 턱에 그대로 진하게 느껴졌다.
뜨거운 촉감도 가득 드는데, 너무 뜨거워서 그럴까. 따가운 느낌도 들고 있었다.
어서 내 턱에 묻은 죽을 떼어내고 싶었달까, 여튼 그러한 감정이 가득 들었다.
서현이는 잠시 멍을 때렸다가, 내 턱에 죽이 묻자 어쩔 줄 몰라하며 숟가락을 든 채 연신 미안하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서현이의 모습을 진정시키며, 휴지를 향해 손을 뻗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텁.’
하지만 서현이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휴지를 향하고, 휴지를 집어서 턱에 묻은 죽을 닦아내려고 하는 내 손을 붙잡는 그녀였다.
그리고는 죽이 묻은 나의 턱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잡더니, 잠시 가만히 있다가.
살짝 당황해 몸이 굳은 나의 얼굴을 향해 서현이의 얼굴이 점차 다가왔다.
그러고는 서현이의 말랑말랑한 입술의 감촉이 죽이 묻는 내 턱에서 느껴졌고,
이윽고 끈적하게 입술로 빠는 소리가 들리고 난 뒤, 죽이 묻음으로써 느껴졌던 뜨거움이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리고 입술을 떼며 묘한 웃음을 짓는 서현이.
나에겐 서현이의 입술의 감촉과 뜨거움의 여운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다시 씨익 웃으며 뭔가 야리꾸리한 말투로 내게 말하는 서현이였다.
“히힛.. 깨끗해졌네요,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