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 (141/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서른 세 번째 과외.

“그럼 우리가 놀러가면 되겠네.”

마냥 철 없는 소리만 하던 유리가 간단명료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자, 

울상을 짓던 소녀시대의 말풍선에서는 느낌표가 ‘짠’하고 일제히 떠버렸다.

하지만 소녀시대 멤버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느낌표를 띄우지 않은 아해가 있었으니,

그런 그녀의 영어 이름은 Jessica요, 한글 이름은 정수연이로다.

“안돼!”

“어째서!?”

유리의 발언으로 인해, 어느 순간 대결구도는 ‘티아라 vs 소녀시대’에서 ‘제시카 vs 소녀시대 8인’으로 바뀌어버렸다.

시카도 발끈하고, 제안하던 유리도 발끈하고, 리더인 태연도 발끈하고, 순규도 발끈하고, 과외하고싶은 파니도 발끈하고,

힘자랑하는 윤아도 발끈하고, 예의바른 막내 서현이도 발끈하고!?

“놀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어!”

“...”

시카의 귀여운 억지에 나는 흐뭇하게 웃었으나, 가만히 시카의 말을 기다리던 소시와 티아라는 전혀 그렇지 못한 듯 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시카를 쳐다보는 그녀들, 그리고 절대로 나를 너네들이랑 공유하지 않겠다는 시카.

근데, 나 언제부터 교환이 자유로운 상품이 된거지.

여튼 프레데터들의 타겟은 어느샌가 ‘때때에서 민시그로, 민시그에서 정시레씨’로 간 것 같다.

하지만 정시레씨는 특유의 냉기와 겸디 기운을 발산하면서, 여덟 명의 소시에게 대항하고 있었다.

아, 근데 하도 소시와 티아라랑 있어서 그런가, 웬만한 별명은 다 알게 되네.

“뭐! 내가 제일 먼저 알아낸 집인데! 민식이 집은 내 영역이야! 민식이 아이스크림도 내 꺼고, 민식이도 내 꺼란 말이야! 절대로 안 빼앗겨!”

“....쟈를 어떻게 할까요.”

시카가 이렇게 나에 대해 소유욕이 짙은 아해였나, 소유욕으로 따지자면 소연누나와 맞먹는 레벨인데.

어쨌든 시카의 귀여운 억지에 나는 눈치없이 계속 쿡쿡 웃음을 참고만 있었고, 순규는 공격을 준비하려고 하는 지, 옆에 있던 소연누나에게 방법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소연누나는 써니의 물음에 대답 대신 씨익 웃으며, 시카에게 다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 몸뚱아리의 방향을 기준으로 左탱 右싴 이었는데, 태연이는 태연한 표정으로 은근히 내게 붙어있었고,

시카는 뭐, 지금 억지 부려가면서 내 팔에 들러붙어있었다.

근데 태연이 스킬 좀 짱인 듯, 아무도 눈치를 못 채고 시카에게 시선이 가있다니.

태연이가 은근히 미소를 띄고 있다는 것을 나만 알고 있는걸까. 

“뭐, 내가 잘 이뻐해주면 조용해질 것 같아.”

“흠칫.”

한참 억지를 부리다가, 소연누나가 나즈막히 뱉는 말에 억지부스터가 오작동을 일으켰는 지 잠시 멈칫했다.

소연누나는 점점 시카에게 다가온 뒤, 무릎을 굽히며 손으로 시카의 아기만큼 보드라운 얼굴결을 쓸었다.

그리고는 뭔가 음란한 말투로 시카에게 말하는 소연누나였다.

“시카야, 그 때처럼 같이 씻으면서 재미있게 놀아볼까아?”

“...덜덜덜덜..”

“자, 그럼 시카는 해결 완료.”

바로 옆에서 벌어진 일을 비추어 봤을 때, 실질적 서열은 퀸쏘가 최강이란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안 그래도 나한테도 제일 무서운 여캐가 퀸쏘였는 데, 여태까지 무적인 줄 알았던 시카가 소연누나에게 무참히 당하는 걸로 봐서는 앞으로 소연누나한테 잘해줘야 살아남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지금부터라도, 음료수 한 병이라도 사서 갔다 드려야 하나.

학창시절 때 발동하지 않던 셔틀 능력이 자꾸만 소시와 티아라 앞에서 발동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열심히 한탄 중이었다.

“다들 어떻게 할꺼야? 소시애들이 놀러와도 괜찮겠어..?”

“뭐, 나쁠 건 없지만. 뺏어가는 것도 아니니까.”

“그건 그래.”

생각해보니, 자기네들끼리만 이야기하고 내 의견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이건 억울하잖아! 내 마음 같아서는 다들 출입금지령을 내려버리고만 싶다고. 

하지만, 그녀들이 내 말을 들을 리는 절대로 없고, 일단은 말을 아끼며 람뽀누나의 질문과 효민이와 은정누나의 대답을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대답들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생길 때 내가 말할 수 있는 타이밍이 생겼고, 나는 과감하게 말을 던졌다.

“저.. 저기 저의 의견은!?”

“넌 거기 찌그러져 있으렴.”

“아.. 네..”

역시나 나의 의견은 어느샌가 가볍게 무시당하는 수준으로 존재감이 하락했다.

아니, 존재감은 그녀 사이에 쩔겠지만, 하찮은 정도도 그 정도로 올라가는 듯 했다.

독이 배인 큐리누나의 말에 나는 상처를 입고, 또 다시 두 번째 찬스가 오기만을 바랬지만 더 이상 오지 않는 것 같다.

쳇, 갑옷 입고 좀 맞서 싸우려고 했는데, 숫자가 너무 많아서 안 되겠다.

훗, 나는 의외로 포기가 빠른 남자 민시그. 자랑은 아니지만, 나만큼 포기가 빠른 남자는 없을 꺼야.

“그럼 결론난거지?”

람뽀누나의 말에 모두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물론 그 모두에서 나만 빼고.

“자, 그럼 민식이는 열 여섯명의 소파가 되는거네.”

!?!?!?!?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내가 당황할 틈도 없이, 열 여섯명의 레이디들은 내게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호텔 프론트로 연결되는 인터폰을 향해서 팔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열 여섯명은 보통 무게가 아니란 말이야, 나 좀 살려줘.

*

‘나는요오오 오빠가아아아 좋은거어어어얼’

“으으으.. 나의 단잠을 깨우는 상큼한 지은이의 목소리라니.”

일본에서 주어진 일주일의 시간 중 둘쨋날. 

둘쨋 날은, 따라오지도 않은 지은이의 목소리가 행복한 단잠에서 날 깨워주었다.

맞아서 뻐근해진 온 몸을 땡기며 스트레칭을 하려다가, 간단히 기지개만 피고 쉴새없이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 맞는데요.〕

“뭔, 개드립이야. 바로 옆 방에 있으면서 왜 전화로 하냐.”

전화를 건 주인공은 바로 나의 가짜 사촌 효민이었다.

분명히 옆 방에서 놀고 있을 게 뻔한 그녀인데, 왜 전화로 꼭 이야기해서 나의 잠을 깨워버리는 건 지.

어차피, 내 방에 와서 말해도 깨우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나, 니가 꿈 속을 헤매고 있을 때, 분장 끝내고 촬영 갔거든!?〕

“음, 그래? 그럼 촬영 열심히 하고 힘내.”

〔음? 힘내?〕

“응, 힘내야지. 그래야 돈 많이 벌꺼 아냐.”

효민이의 ‘나 힘드니까, 투정 좀 받아달라.’라는 의미가 숨겨진 듯한 앙탈에,

나는 귀찮지만 대충대충 삐지지 않을 정도만 받아주었다.

여자는 삐지면 참 귀찮아지게 되거든.

여튼, 나는 효민이에게 일본에 신한류열풍이 불고 있으니, 이 때라도 바짝 벌어야한다고 효민이에게 격려를 해주었다.

아, 아무래도 나는 좀 착한 것 같아.

〔너도 와.〕

“내가 왜.”

〔놀아야지. 싫어?〕

“....응”

〔왜?〕

“무서워.. 아니 두려ㅇ.. 아니 힘들어.”

어제 그렇게 시달렸는데, 효민이 너 같으면 내가 놀 기운이 충만해지겠니.

나는 효민이의 놀러오라는 말에 시크하게 대처하고 다시 편안한 잠을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게 씁쓸해.

그리고 내 뜻대로 되는 일도 손가락에 꼽힐 만큼 없지.

〔사촌 동생이 오라고 하는 데 안 올꺼야?〕

“니가 무슨..”

〔히잉..〕

“으윽..”

설마했는 데, 다시 한 번 떠오르고야 말았다.

자칭‘귀효미’모드 발동이, 귀요미도 아닌 ‘귀효미’모드라서 애교가 정말 더럽게 많아진다.

특히 순규에게 배웠는 지, 주먹을 부르는 애교만 골라서 하는 귀효미모드.

난 효민이의 여러가지 모습 중 가장 무서운 게 귀효미모드인데, 젠장 그게 발동되다니.

벌써부터 발동이 걸렸는 지, 칭얼거리면서 찡찡거리면서 복합적으로 내 귀를 괴롭히는 귀효미다.

〔히잉..와줘어어어어잉..〕

“으윽..”

〔히잉.. 히잉.. 귀효미가 우는 데.. 안 올끄야?〕

“으으윽..”

〔흐으으응.. 귀효미 레알 운다아..? 히이잉..〕

“젠장, 간다 가!”

하마터면 손발이 옷 소매 안으로 퇴갤할 뻔 했다.

역시나 귀효미의 위력은 장난이 아니야, 이건 귀여운 게 아니라 징그러운 거라고.

처음에는 애교를 부려서 좋았지만, 과도해지면 독이 되듯. 귀효미의 레벨이 증가할 수록 점점 약이 아닌 독이 되어갔다.

효민이의 애교 섞인 협박에 못 이긴 나는, 샤워를 말끔히 한 다음 길게 자란 머리는 간단히 묶어서 정리하는 걸로 때우고,

알 없는 패션안경을 장착한 뒤, 오늘의 도쿄는 외출할 만큼 따뜻하다고 하니 하얀 면티에 검은 패션정장만 입고,

목에는 효민이가 안 메면 죽여버린다고 술 취한 채로 지껄였던 H라는 이니셜의 목걸이를 메고, 검은 색에 가까운 진청바지를 입고, 따스한 도쿄의 햇살이 스며들어오는 복도를 걷는 나였다.

뭐, 효민이 때문에 패션센스가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에 준하여 정신적 데미지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듯 했다.

‘앗, 디즈니월드가 이렇게 먼 곳이었나!?’

도쿄 디즈니월드라길래, 도쿄에 있을 줄 알았는 데, 도쿄 옆동네인 지바(千葉)에 있는 테마파크라니.

일단 여기가 아카사카니까, 아카사카미스케역이 있는 긴자선에 탑승해서 어느정도 가다가 디즈니리조트가 있는 민영철도에 환승했다.

그리고 어느덧 두 세시간이 지났을까, 가까운 줄만 알았던 디즈니랜드가 레알 가기 힘든 곳이라는 것을 몸으로 직접 체험했다.

그 대신, 길치가 아니라서 가는 길은 평생동안 기억할 것 같았다. 혼자 갔으니깐 말이야.

어쨌든 혼자 열심히 가서 도착한, 디즈니랜드는 롯데월드는 쨉도 안 될만큼 거대한 테마파크였다.

입구부터 한국에서도 흔히 보지 못할 그런 웅장한 스케일이랄까.

하지만 췃같은 게 하나 있다면,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는 줄도 한국과 쨉도 안 될만큼 커다란 스케일이였단거.

문득 줄에 서서 이렇게 기다란 줄을 기다리며, 한 번 소녀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요즘 소녀시대나 티아라가 일본에서 한류열풍을 이끌고 있다지만, 좋은 시선만 있는 게 아니고.

2CH 같은 사이트를 뒤지다 보면, 일본 혐한들이 소녀시대를 안 좋게 보고 있고, 특히 성적으로도 많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을 기사로 접한 나 여서 그럴까, 소녀시대 애들도 그런 기사를 한 번 쯤 봤을거고, 또 많이 정신적으로 힘들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카사카에서 옆 동네 지바현 까지 오느라 조금 힘든 몸이었지만, 오늘만은 소녀들이랑 열심히 놀아주자고 다짐하는 나였다.

그렇게 딴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매표소 앞까지 줄이 짧아져 있었고, 난 표를 구매하기 위해 기본일본회화책을 뒤졌다.

빨리 암기해야 돼! 그래야, 편하게 표를 구매할 수 있다!

무언가를 구매할 때. 라고 써져 있는 챕터에 다다른 나는 재빠르게 문장들을 암독하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매표소 바로 앞까지 와있고. 지금 바로 방금 암기한 문장들을 내뱉어야했다.

이것이 바로 실전. 실전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いくつかのオトゥレクションマン使用するチケットを購入しますか、それとも自由利用券を購入しますか?

  몇 개의 어트랙션만 이용하는 티켓을 구매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자유이용권을 구매하시겠습니까?”

“아아.. 다시.. 가 아니라.. Would you say that again in English?”

나는 역시 일본어 보단 영어가 더 편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일본어로 대답할 생각을 안 하고 영어로 말을 돌리는 바람에 수월하게 티켓 구매를 마쳤다.

물론 돈도 없는 가난한 아르바이트생에게 5500円(약 73000원)의 지출은 데미지가 컸지만 말이다.

젠장, 한국으로 다시 가면 라면만 또 먹게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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