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8화 〉 728. 또 다른 신수(3)
* * *
사당의 거실에서 구미호의 시종 노릇을 하고 있는 제라드는 오늘도 어김없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흐음.”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그는 현재 중대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오늘 저녁은 무엇을 해야하지?”
저녁 메뉴를 무엇으로 차려드려야 구미호의 호평을 얻을 수가 있을까 하는 최대의 난제.
이것은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찾아와 언제나 제라드를 고심하게 만드는 난제다.
불평같이 들릴 수도 있지만, 구미호는 정말로 입맛이 까다롭다.
간을 너무 약하게 하면 젓가락은 쥐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짜거나 달면 또 간이 너무 세다고 역정을 낸다.
메뉴도 육류나 어패류, 채식의 비율도 잘 맞춰야 하고 매 끼니는 물론, 매일 싫증이 나지 않도록 잘 구성해야 하는 만큼, 구미호는 정말로 시중을 들기 까다롭기 그지없는 이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변덕스럽고 까탈스러운 성격에 어울려준 것도 초반에야 몹시 힘들었지만, 그녀의 성향이나 성격 등의 파악을 끝내고 난 다음부터는 굉장히 쉬워졌다.
하지만 오히려 구미호를 굉장히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식사 메뉴만큼은 더더욱 제라드를 고민하게 만드는 난제였다.
“음?”
제라드가 오늘 저녁 메뉴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고 있을 때, 거실 쪽에서 구미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호님?”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던 구미호가 몸을 일으키며 천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했던 것은 구미호의 표정이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잔뜩 굳어 있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언가…. 나와 비슷한 무언가가 그 미숙한 것의 앞에 나타났다.”
“네?”
제라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머릿속을 가득 차지했던 저녁 메뉴에 대한 고민이 간단하게 지워질 정도로 놀라운 말이었다.
구미호가 말한 ‘자신과 비슷한 무언가’라는 것은 아마도 그녀와 같은 특별한 힘을 가진 신수를 뜻하는 말일 터.
그리고 ‘미숙한 것’이라 함은 에린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에린 양에게?”
곧바로 에린의 얼굴을 떠올린 제라드는 곧바로 생각했다.
에린의 앞에 새롭게 등장한 그 신수는 과연 아군일까, 적일까.
설마 은현의 제자인 에린이 그렇게 쉽게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낙관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구미호의 표정이 너무 심상치 않았다.
“…에린 양이 걱정되십니까?”
“…내가? 그 미숙한 것을?”
구미호는 제라드의 물음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그 미숙한 것이 어디가 가서 쉽게 당할만한 녀석인가.”
“하하. 그렇긴 하죠?”
이 부분에서만큼은 제라드나 구미호나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신경이 쓰이신다는 표정이십니다.”
“…이상하구나. 그 미숙한 것과 만난 그 신수는 나와 같은 계통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말씀은….”
“나와 동족이다.”
“…….”
에린의 몸속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지금 에린이 가지고 있는 힘은 신수인 구미호의 마력에서 시작된 것.
그 연결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상태이다.
구미호가 지금 에린의 상황을 곧바로 느낄 수 있었던 것도 그 연결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는 말씀은….”
“그래. 나의 동족들은 이미 몇백 년 전에 모두 멸했다. 악마들과 다른 신수들과의 싸움에서.”
지금까지 잘 숨어 살았던 신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도 희박할테니 지금 에린에게 닥친 현상은 몹시 이상했다.
“그 미숙한 것이 지금 마주한 건…. 누구인지 나도 모르겠구나.”
◆ ◆ ◆
구미호를 향하여 에린은 또 한 번 질주했다.
힘차게 땅을 박차며 빠르게 최고점의 속도까지 도달한 에린이 구미호에게 도달하는 것은 정말로 한순간이었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구미호에게 당도한 에린이 고요하면서도 날카롭게 레반테인을 휘둘렀지만, 역시나 그 칼날이 당도하는 일은 없었다.
[호족 요술(?? ??)]
[잔불 바꿔치기]
다시 한번 구미호의 목을 노리는 매서운 찌르기를, 구미호는 또 한 번 자신의 육체를 여우불로 바꿔버림으로써 깔끔하게 피해냈다.
‘아, 저거 진짜!’
너무나도 허무하게 자신의 공격이 검은색의 불꽃을 통과해버린 이 불합리한 현상에 에린이 짜증을 느꼈다.
구미호가 자신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에린이 보내오는 살기와 마력의 흐름, 그것을 느끼고 몸으로 받아들이는 속도는 그녀가 에린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속도를 가볍게 상회한다.
말 그대로 야생의 감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본능적인 그 감각이 에린의 공격을 피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이윽고 구미호가 변화했던 흑염들이 사방으로 둘러싸며 에린을 덮쳐왔다.
“으…!”
[호족 요술(?? ??)]
[여우불]
에린은 작게 신음하며 자신의 마력으로 만들어낸 여우불을 전방위로 흩뿌렸다.
자신을 덮치기 위해 스멀스멀 접근해오는 흑색의 여우불들은 에린이 만들어낸 여우불에 의해 가로막혀 그 침입을 저지당했다.
본능적으로 펼친 에린의 방어법은 어느 의미로 정답에 가까웠다.
“미천한 수준이지만 나의 힘을 사용할 줄은 아는구나.”
공격이 가로막히자 다시 실체화하여 모습을 드러낸 구미호는 새삼 다시 본다는 눈빛으로 에린의 요술을 평가했다.
“흥.”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윗사람이 어리숙한 아랫사람을 깔보는 태도다.
자신을 비웃고 있는 구미호를 보며 에린도 코웃음을 쳤다.
여전히 자신이 불리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지만, 그렇다고 쉽게 질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면….’
자신의 여우불과 구미호의 흑색 여우불이 맞부딪치며 어우러졌던 것을 떠올리고 에린은 어떠한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리고 또다시 구미호를 향해 돌진했다.
“흥! 몇 번을 해도 소용없다!”
구미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육신을 흑염으로 바꾸려 했던 찰나, 빠르게 도달한 에린이 자신의 형체를 감추려는 구미호를 향하여 손을 뻗었다.
흑염으로 변화하던 도중, 반투명한 구미호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엇…!?”
본래라면 이미 정신체로 변화한 자신의 육체를 만지는 것은 불가능할 터.
레이피어의 공격조차도 통하지 않았을 진데, 맨손으로 자신을 만질 수 있는 것에 경악했다.
구미호는 곧바로 그 원인을 파악했다.
‘그렇구나…! 자신의 몸에 신수의 마력을…!’
자신의 육체를 신체로 강화하는 그녀의 마력은 평범한 마력이 아닌 신수의 마력이다.
평범한 마력이 아닌 정갈하고 밀도 높은 마력의 향은 검에 담긴 검기의 양과 위력을 간단히 상회한다.
그것은 미처 구미호가 상정하지 못한 변수였다.
본래 신수들은 모두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 나오지 않는 편이며, 그 영역을 침범하거나 싸움을 걸어오지 않는 한, 전투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하는 편.
그렇기에 신수 간의 전투 자체를 수백 년의 시간 동안 경험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크윽…!”
멱살을 붙잡힌 구미호가 다급히 에린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억지로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에린은 쉽게 그 의도를 따라주지 않았다.
“에잇!”
있는 힘껏 힘을 실어 그녀를 패대기 쳤다.
가벼운 그녀의 몸은 허공을 날아 에린의 악력에 의하여 바닥과 충돌한다.
쿠웅!
“커헉!”
바닥과 충돌한 등짝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충격이 내덮치며 전신에 물리적인 데미지가 퍼지는 이유는 그녀가 완전히 정신체로 변화하지 못한 상태로 에린에게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됐다!”
솔직히 우연으로 인해 얻어걸린 요행이었지만, 에린은 자신의 공격이 통했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게…!”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의 공격이 자신에게 데미지를 주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수치스럽고 분노하게 만든 나머지, 구미호는 자신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으로 보이는 그녀의 격정적인 감정의 변화는 이윽고 진심으로 에린을 짓밟으려 했던 그녀의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시발점으로 변화한다.
구미호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뒤로 도약하면서 에린과 거리를 벌렸다.
“흥!”
그녀의 노림수를 읽은 에린은 거리를 내어주지 않기 위하여 집요하게 구미호에게 따라붙었다.
신수의 마력을 다룸으로써 발현되는 요술의 수준과 그 깊이의 차이는 명확하다 못해 압도적일 정도로 차이가 벌어져 있다.
하지만 그와 달리 물리적인 요소인 신체 스펙의 차이는 당연히 압도적으로 에린이 유리하다.
통할 수 있는 공격 수단을 찾은 에린에게는 이 상황이 전혀 불리한 형세는 아니었다.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거리를 내어주지 않는 에린을 앞에 두고, 구미호는 이를 갈면서 자신의 요술을 펼쳤다.
[호족 요술(?? ??)]
[도깨비불의 연회]
주변에 흩뿌려두었던 구미호의 마력들이 강하게 휘몰아치며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기중에 떠돌며 강력한 열을 발산하는 검은색의 여우불들은 이윽고 구미호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며 주위를 떠돌기 시작하였고, 그로 인해 생기는 소용돌이는 거대한 폭풍으로 변화하여 에린의 몸을 집어삼킨다.
“……!”
에린은 주위의 공기 흐름이 빠르게 회전하고, 열기가 올라가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구미호의 감각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인간들과 달리 예민한 그녀의 감각이 이성에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위험하다.
빠르게 이 흑염이 휘몰아치는 중심부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
그 경고를 빠르게 받아들인 에린의 사고가 빠르게 회전했다.
‘어디로?’
에린은 이미 질주하며 구미호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상태.
당장이라도 질주를 멈추고 뒤로 빠져서 이 흑염의 폭풍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는 자신의 본능에 이끌려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에린은 이 위기 상황 속에서 오히려 반대의 선택지를 골랐다.
‘못 먹어도 고야!’
뒤로 빠지며 퇴각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욱 빨리 가속하여 앞으로 돌진하는 것을 택한다.
다리의 모든 신경과 근육을 가속하고 또 가속하는 것에만 집중하여 움직이고, 당장이라고 폭발할 것만 같은 각력을 발휘하면서 누적되는 피로를 애써 외면하며 전방의 적을 노리는 것만을 생각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에린의 질주는.
퍼어어엉!
음속을 돌파했다.
“뭣…!?”
제대로 된 폭풍이 휘몰아치기 직전, 흑염의 장막을 뚫고 돌진해오는 에린을 마주하며 구미호가 경악했다.
여우불과 신수의 마력으로 자신의 몸 전체에 둘러 방어력을 높였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흑염을 정면으로 마주하다 못해 그대로 뚫고 돌진해오는 무대포 식 전진에 기가 질린 표정이었다.
자살이나 다름이 없는 미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흑염의 열기를 견뎌내며 돌파한 에린은 올곧게 구미호의 목을 노리며 거리를 좁혀왔다.
그 기세는 어리고 미숙한 인간 여성의 기세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
순간 구미호의 본능을 움찔 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뭐, 이런 무식한 년이…!”
“뭐래! 전략이거든!?”
발끈하며 반박하는 에린은 망설임 없이 구미호의 목을 향해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이런…!”
구미호는 처음의 공격과는 달리 에린의 레이피어에 둘러져 있는 푸른색의 검기를 보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같은 신수의 마력으로 대항하는 것으로 자신을 공략할 방법을 찾은 에린의 이 공격은 정신체에도 데미지를 줄 정도로 위협적인 공격.
단순히 자신을 정신체로 바꾼다고 할지라도 확실히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에린의 레이피어가 마침내 구미호의 목에 닿기 직전, 에린은 확신했다.
‘잡았다!’
라고 확신한 순간.
[호족 요술(?? ??)]
[백귀야행(???行)]
[멈추세요!]
“어…!?”
에린의 행동을 제지하는 목소리는 에린을 따르는 백귀들 중 하나이며, 그녀에게 세검술의 기초를 가르쳤던 백귀, 갤러해드다.
자신의 이성에 직접적으로 경고를 보내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에린은 본능적으로 구미호의 목을 꿰뚫으려던 레이피어를 거두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윽고 자신의 급소를 노리고 들어오는 매서운 검격을 뒤늦게 인식한 에린이 황급히 그 검격을 막아냈다.
카아앙!
“읏…!?”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던 감지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빠르고 날카로운 검격.
명치 부근을 베기 위해 파고드는 검격을 레이피어로 막아낸 에린이 그 검격의 힘에 밀려나 뒤로 튕겨나갔다.
충격의 여파는 레이피어를 타고 손을 통해 전신으로 퍼지며 부르르 떨리게 만들고, 허공으로 튕겨나간 에린의 몸이 순간 경직의 상태에 빠졌다.
그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두 번째 검격을 느낀 에린은 공중에서 다급히 몸을 억지로 움직여 경직을 풀었다.
허공을 날고 있던 에린의 시야에 간신히 포착된 것은 검을 쥐고 있던 흑색의 기사였다.
카아앙!
좌에서 우로, 횡으로 그어지는 깔끔한 일섬은 두 눈으로 인식했을 때는 이미 공격이 행해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에린은 본능적으로 흑색의 기사가 노리고 있는 자신의 가슴 부근을 방어했다.
“꺄아아악!?”
다시 한번 묵직한 충격이 레이피어를 통해서 전신으로 퍼지면서 바닥으로 추락한 에린이 비명을 질렀다.
바닥을 세차게 두 세 바퀴 구르면서 다급히 몸을 일으켜 레이피어를 쥔 에린은 자신을 기습한 흑색의 기사를 찾기 위해 시선을 전방으로 옮겼다.
“어…?”
시야에 들어온 흑색의 기사를 확인한 에린이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가…. 아니야?”
흑색의 기사는, 아니, 흑색의 기사들은 하나가 아니었다.
열명을 넘어 스물, 서른을 가볍게 넘는 그 숫자는 도합 백명.
구미호가 소환해낸 도합 백의 백귀들이 일제히 자신들의 무기를 들고 에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