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4화 〉 724. 뱀의 꼬리(5)
* * *
높이와 몸집, 그리고 얼굴은 일반적인 수사자였지만, 등 부분에는 악마의 날개가 달려있고, 꼬리에는 사자와 같은 짐승의 꼬리보다는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한 철퇴가 움직이고 있었다.
크르르
“…헐.”
릴리가 만들어낸 충격적인 비주얼의 괴물에 에린이 어이를 상실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런 기척도, 전조도 없이 나타난 그 괴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감옥 안을 장악하며 그 존재감만으로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리고 그 괴물을 보고 경악한 것은 에린 뿐만이 아니었다.
“마, 만티코어…!?”
실제로 마계에서 서식하고 있는 포식자들 중 상위 등급에 위치한 아주 위협적인 마수의 구현은 루시조차도 쉽게 해낼 수 없는 수준의 영역.
마계의 주민이었던 그녀가 만티코어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그것을 단 한 번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이번이 처음 해보는 듯한 어색한 태도로 성공을 시킨다는 것이 경악스럽기 그지없었다.
“죽여.”
크륵!
현실에 구현화된 만티코어는 자신을 창조한 주인의 명령에 충실했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짐승이 자신의 몸을 물어뜯기 위하여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광경을 직시한 루시는 경악하며 외쳤다.
“아, 안돼!”
물리적인 법칙으로는 자신에게 데미지를 줄 수 없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저것은 자신과 같은 악마의 마력으로 구현된 마수.
당연히 정신체인 자신에게도 데미지를 줄 수가 있다.
게다가 이미 에린의 여우불로 한번 전신을 불태워진 그녀는 만티코어가 뿜어내는 위압감에 압도되어 사색이 된 상태다.
잔뜩 동요한 그녀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거리를 벌리기 위해 도망쳤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의 신체 스펙과 다를 바가 없는 그 육체로, 있는 힘껏 땅을 차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는 만티코어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또한 천장이 존재하는 이런 좁은 지하 감옥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날개를 이용하여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절체절명의 순간 속에서 그 짧은 순간, 어떻게든 살 방법을 모색하여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루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는 경고를 했었던 마녀의 말을 떠올렸다.
[혹시라도 위험해진다면 이걸 쓰도록 해.]
그렇게 건넨 수정구슬을, 루시는 받지 않고 오히려 마녀를 비웃었다.
[내가 겨우 인간들에게 당한다고? 날 공격하기는커녕 내 세뇌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는 저급한 것들에게?]
[평범한 인간들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페르니아스 왕국이라면 틀려. 그곳에는 리오드가 있고, ‘내’가 있어. 그리고…현이도 있으니까.]
그렇게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아니 마녀는 루시가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흥.]
루시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을 깔보고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겨우 인간에게 당할 정도로 저급한 악마라고 생각하고 있는 마녀의 그 태도가 몹시 아니꼬웠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다.
‘이게 뭐야? 이곳에는 왜 저런 것들이 있는 거야? 악마까지 완전히 인간의 편에 서있다고?’
릴리와 에린을 마주한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몽환을 현실로 구현시키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서큐버스는 그 종족 안에서 중급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그 힘은 결코 약하지 않다.
인간에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루시는 오만했던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내가 겨우 인간 따위에게…!”
정확히는 릴리도 있었기 때문에 올바른 표현이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격렬한 고통을 안겨주었던 에린에게 더 큰 증오심을 품고 있었던 루시의 감정은 격양되어 있었다.
이윽고 만티코어가 무시무시한 근력으로 그녀의 팔을 물어뜯었다.
“꺄아아악!”
팔이 뜯겨나가 비명을 지르고 있음에도, 루시의 팔에서는 피 한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정신체에 불과한 악마의 팔은 말 그대로 마력으로 이루어진 것.
그녀는 지금 그대로 자신의 힘 일부를 만티코어에게 빼앗긴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본래라면 만티코어 또한 자신의 세뇌로 정신을 장악할 수 있겠지만, 이미 릴리의 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인지 그녀의 세뇌는 통하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뭐야? 지금 저 악마가 나랑 동급이라고?’
아니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만, 자존심이 강했던 루시는 그 가능성을 애써 무시했다.
루시의 팔을 그대로 먹어치우며 힘을 흡수한 만티코어가 아예 루시의 머리 자체를 뜯어먹기 위해 커다란 입을 쩍 벌렸을 때.
[그러니까 내 경고를 들었으면 좋았잖아.]
루시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텔레포트라는 전이 마법이 각인된 수정구슬 속에서 들려온 마녀의 목소리였다.
“어?”
“이…목소리는….”
에린과 릴리가 익숙한 목소리에 멈칫했다.
마녀의 목소리는 두 사람에게도 굉장히 익숙한 일리아나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우우웅
이윽고 제멋대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아티팩트에 루시가 당황했다.
“이, 이게 무슨…!”
[넌 졌으니까 어차피 소멸할 목숨. 날 위해서 쓰도록 해.]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루시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이 망할 인간 년이…!”
황급히 수정 구슬에게서 떨어지려고 했지만, 수정구슬은 이미 루시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며 그녀의 몸을 흡수했다.
정신체로 이루어진 악마의 몸은 그것 자체로 강력한 마력이나 마찬가지.
이미 대상의 지정을 마친 듯이 루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던 수정구슬은 계속해서 루시의 정신체를 갉아먹고 흡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 안돼! 이럴 수는 없어!”
경악하며 발버둥을 쳤지만, 루시의 정신체는 결국 수정구슬에 완벽히 흡수되어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에린과 릴리도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수정구슬에서 익숙한 마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소환 개시.]
◆ ◆ ◆
“마약류 불법 제조 및 유통. 그리고 악마와의 내통 등의 혐의로 에프라테 백작. 당신을 구속하겠습니다.”
빼든 검으로 에프라테 백작을 가리킨 에이라가 한 첫마디였다.
에프라테 백작은 느닷없이 저택을 쳐들어와 검을 들이미는 아르티아 기사단원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태도였다.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올 것이 왔다는 듯이 전혀 동요하지 않았던 그는 에이라에게 물었다.
“마약이라….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준비해두었던 대사를 읊듯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답하자 에이라는 그가 악마와 함게 제조한 분홍색 액체가 든 마약을 제시하며 말했다.
“이 마약이 영지의 창관과 많은 부호 상인, 귀족들에게 정기적으로 넘어가고 있었다는 정황은 확보했습니다. 물론 증인 또한 준비되어 있죠.”
“…….”
에프라테 백작은 순간 눈썹을 꿈틀거렸다.
최근 자신의 아래에서 마약을 제공받아, 창관과 다른 상인 귀족들에게 마약을 중독시키고 판매하는 행동책이었던 모험가들이 영문도 모른 채로 소식이 끊겼다는 것을 떠올렸다.
에린과 릴리에게 수작질을 걸려 했던 모험가들이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소리 소문도 없이 모습을 감췄다.
그것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 모험가들이 가지고 있던 마약이 아르티아 기사단에게 넘어간 것은 최악의 흐름이다.
“그건 마약이 아니라 그냥 상처와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포션입니다. 확인이 필요하시다면 제가 직접 마셔보는 걸로 효과를 증명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에프라테 백작은 모르는 척 잡아떼는 식으로 주장했다.
그가 루시와 함께 제조한 마약은 서큐버스인 루시의 마력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마약으로, 시간이 지난다면 서큐버스의 마력은 자연스레 소멸하여 평범한 포션으로 변화한다.
종적을 감춘 모험가들에게 마약을 제공했던 것은 약 일주일 전.
에이라가 가지고 있는 것이 그들에게서 빼앗은 마약이라면, 지금 쯤이라면 효력을 잃고 평범한 포션으로 변하였을 터다.
그렇다면 아직 자신의 무죄를 어필할 수 있는 기회는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점은 이 마약의 특성을 릴리에게서 사전에 들어두었던 만큼, 에이라도 알고 있었던 부분이다.
당당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가증스럽기는 했지만, 순순히 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그녀 또한 생각해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짜증을 표정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리고…악마라뇨. 저는 악마와 내통을 했다뇨. 억울합니다.”
“…하.”
에이라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광경이란 정말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물론 순순히 본인의 부정을 인정할 수 없었던 에프라테 백작은 에이라와 차한성이 자신이 악마와 내통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근거로 한 행동.
대체로 이성적인 판단이었지만, 에이라와 차한성 쪽에 릴리가 있다는 것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변수는 오히려 에프라테 백작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건 심문을 통해 증명하도록 하죠. 페르닌의 기사단 본부까지 동행해주시겠습니까?”
“…진심이십니까? 이곳에서 페르닌까지 1개월이 넘게 걸린다는 건 기사님께서도 잘 아실 텐데요.”
왕복까지 감안한다면 늦게는 3개월을 가까이 영지를 비워야 한다.
장기간 영지를 방치하는 것은 영주에게도, 영지에게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리도 없다.
“아무리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아르티아 기사단이라고 할지라도, 너무 무리한 요구는….”
“그럼 정기적으로 구매한 노예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네?”
“백작께서는 정기적으로 노예를 구입하지만, 그 사용처가 어디인지는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알 수가 없더군요. 그 사용처가 ‘악마에게 바치는 제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시기만 한다면, 저희는 정식으로 백작님께 정식으로 사죄하도록 하겠습니다.”
“…….”
에프라테 백작이 그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구매한 노예들이 실제로 버젓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하지만 이미 루시에게 모든 정기를 흡수당하고 그 시체마저 깔끔하게 처리된 지금,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루시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노예들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어 환상을 펼치는 것으로 이들의 눈을 속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가 스스로 에이라와 차한성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야만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라붙는다.
악마와의 내통을 감추기 위해서, 악마가 스스로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니 본말전도가 따로 없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자신과 악마와의 관계를 이리도 빨리 찾아내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애초부터 에이라와 차한성이 악마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정황을 포착하여 이 영지를 찾아온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에프라테 백작은 고민했다.
일단 지금은 순순히 협조에 응해야 하는 상황이 맞지만, 자신이 영지를 비운 사이에 이 두 기사들은 틀림없이 또 다른 증거들을 찾아낼 것이라 확신했다.
쿠우웅!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땅을 뒤흔드는 거대한 지진이 저택을 덮쳐왔다.
거칠게 덜덜 떨리는 지진에 깜짝 놀란 차한성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꽉 쥐며 주위를 살폈다.
“서, 선배! 이건…!”
거칠게 떨리는 지면을 응시한 차한성이 아래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을 느끼고 경악했다.
에이라는 고개를 홱 돌려 에프라테 백작을 노려보고는 따지듯이 물었다.
“이 아래에, 뭐가 있죠?”
“그, 그게…!”
“대답하세요!”
“아,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지하 감옥에는 악마에게 정기를 제공할 인간들밖에 없을 터.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항상 그 시체까지 처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악마 이외에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믿어주세요!”
적어도 에프라테 백작이 보이는 표정과 동요는 진짜다.
그것은 본인의 집임에도 이 상황 자체를 전혀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는 뜻.
지하에는 에린과 릴리가 있을 터이니, 아마도 에프라테 백작과 손을 잡고 있는 악마 쪽에서 무언가 수를 쓴 것이 분명했다.
쿠구구구!
마침내 거칠게 진동하는 지진은 저택 자체에 영향을 주어 기둥과 벽면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선배!”
“일단 저택 안에 있는 사람들부터 대피…!”
그말을 끝내기도 전에, 지면을 뚫고나온 거대한 무언가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키아아악!
마녀가 소환한 ‘재앙’이 출현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