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723화 (706/730)

〈 723화 〉 723. 뱀의 꼬리(4)

* * *

쇠창살을 구부린 것도 모자라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해오는 에린과 마주한 악마.

루시는 자신도 모르게 경악하며 숨을 삼켰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투기와 폭발적인 살기는 순식간에 감옥 안을 장악하여 루시를 움찔 떨게 만들기 충분했다.

‘뭐, 뭐야. 이 인간은?’

아무리 죽일 듯이 달려들어 온다고 하더라도, 현재 육체가 없고 정신체에 불과한 루시에게 물리적인 데미지를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인간과 악마의 사이에서 악마가 일방적으로,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법칙.

하지만 반드시 자신을 때리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에린의 눈은, 그 시선만으로 루시를 압도하고 위축되게 만들기 충분했다.

게다가 어느샌가 에린의 주먹에 응집된 푸른색의 마력이 심상치가 않았다.

‘어쩌면…!’

그 법칙을 깨고 정말로 자신에게 데미지를 가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싹트게 했다.

고민과 망설임 사이에서 루시의 판단은 빨랐다.

곧바로 자신의 마력을 사용하여 돌진해오는 에린에게 세뇌를 걸었다.

[멈춰!]

악마의 힘이 담겨 있는 루시의 언령은 그대로 에린의 정신을 강타하여 그녀의 행동을 강제할 터.

하지만 루시는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직면해야만 했다.

“뭐래.”

“…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에린의 목소리를 들은 루시가 얼이 빠진 반응을 보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세뇌가 먹히지 않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겪어보는 이 사태에 대하여 당황했다.

멍한 표정을 지음과 동시에 이윽고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온 에린의 주먹이 루시의 뺨을 강타했다.

퍼억!

“컥…!”

루시의 불안대로, 에린의 주먹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정신체 상태인 그녀의 뺨을 정확히 가격했다.

홱 돌아가는 루시의 목과 함께 그녀의 전신이 틀어지며 날아간다.

순식간에 그녀의 목을 낚아채어 벽면에 밀치자, 루시의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커윽…!”

신음을 내뱉은 루시는 두 눈을 부릅뜨며 에린을 노려보고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세뇌를 시도했다.

[이거 놔…!]

“싫어.”

하지만 역시나, 그녀의 세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럴…수가….”

루시는 착각이 아니라, 자신의 세뇌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경악했다.

“도대체…. 어떻게…?”

에린은 도대체 어째서 자신의 세뇌가 통하지 않는 걸까.

그리고 애초에 어떻게 그녀는 자신을 만질 수가 있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목을 조르며 압박하고 있는 에린의 무시무시한 악력에 경악했다.

“끄…윽!”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쳐봐도, 에린은 루시의 발악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루시는 인간이 아닌 악마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악마들이 인간을 압도할 수 있는 신체적인 스펙을 갖춘 것은 아니다.

루시의 종족인 서큐버스라는 종족은 대상의 정신을 장악하고 조종할 수 있는 세뇌라는 사기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육체의 스펙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수준.

‘이건…위험해!’

루시는 경악했다.

자신의 세뇌가 통하지 않는 인간이라니.

이런 존재를 만나본 것은 처음이었고, 동시에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이 인간은 강하다.

망설임 없이 자신에게 손을 뻗어 공격을 해왔고 물리적으로 데미지를 가하여 만질 수 있는 수단까지 가지고 있는 이상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일 터.

한시라도 빨리 에린의 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또 다른 능력을 사용하려 했던 찰나.

[호족 요술(?? ??)]

[여우불]

루시의 목을 움켜쥐고 있던 에린의 주먹에, 활활 불타오르던 푸른색 여우불이 루시의 전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가느다란 여성의 비명이 감옥 안에 가득 울려 퍼지고 에린에게 목을 졸려 압박당하고 있던 루시가 발버둥을 쳤다.

약 몇 초 동안 루시의 정신체를 모조리 불태우고 그녀를 바닥에 내팽개치자, 루시의 전신을 불태우던 여우불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허억, 허억, 허억!”

여우불이 모두 사라진 루시는 방금까지 전신을 불태웠던 그 격통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버텼네?”

하지만 에린으로서는 여우불에 의해서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루시는 굉장히 예상외였다.

완전히 소멸시켜버릴 생각이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버텨냈다는 것은 이 악마 또한 그렇게 약한 악마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윽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루시가 에린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너어!”

“겨우 한 대 맞은 거 가지고 엄살은.”

에린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정신체로 이루어져 있는 악마들에게 있어 에린의 여우불은 그야말로 천적이나 다를 바가 없는 수준의 공격이지만, 그것은 에린이 알바가 아니었다.

반면 루시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격렬한 고통을 안겨주었던 에린에게 격렬한 분노를 느끼고 그녀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키아악!

“에린!”

“……!”

다급히 자신을 부르는 릴리의 목소리에, 에린은 곧바로 반응했다.

빛이 비추지 않는 어두운 측면의 사각으로부터 접근해오는 무언가의 존재를 느꼈다.

‘뱀?’

에린의 머리를 향해 접근해오는 것은 얇고 기다란 몸체를 가진 뱀이었다.

소리소문없이 기어 나와 날렵한 몸놀림으로 접근해온 뱀은 단숨에 에린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그 기다랗고 가느다란 몸을 움직였지만, 황급히 감지를 펼쳐 그것의 존재를 확인한 에린은 몸을 비틀어 뱀의 공격을 피해냈다.

허공을 지나치는 뱀의 몸체에 자그마한 여우불을 붙이자, 기다랗고 가느다란 뱀의 몸이 모조리 불타버렸다.

‘…방심했어.’

에린은 지금쯤 머리의 일부가 뜯겨나가 즉사하였을지도 모른다.

‘지금 현이가 있었으면 아마 엄청…혼냈겠지?’

언제 어디서든 방심을 하지 말라는 은현의 충고가 새삼 비수가 되어 가슴을 콕콕 찌르는 기분을 느꼈다.

설마 다른 사각에서 공격을 해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지만, 그런 핑계는 은현에게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두 번은 없어.’

방심으로 그대로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는 것을 자각하고, 전방위로 마력을 흩뿌리며 감지를 펼치는 것으로 사각을 보완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조용히 눈앞의 악마를 노려보면서 상황을 분석했다.

‘그 뱀은…. 아마도 이 악마가 조종한 거겠지?’

악마가 가리킨 자신을 향하여, 사각에서 튀어나온 뱀은 정확히 자신을 노리고 공격해왔다.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딱 들어맞는 타이밍과 상황은 에린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서큐버스의 능력은 세뇌라고 그랬는데…. 그건 인간에게만 통하는 게 아니었던 건가?’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에린은 루시의 세뇌 능력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뱀은 싫은데.’

뱀뿐만이 아니라, 에린은 기다랗고 구불거리는, 그리고 미끈거리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이전에 은현과 아르티아 기사단, 모험가들로 구성된 원정대에서 탐색을 진행했던 개미굴의 경험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번식을 위해서 자신에게 발정하고 어마어마한 성욕을 내보였던 마수의 감정은 에린에게 정말로 끔찍한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수십 개의 구불거리는 촉수로 자신을 구속하고 밤낮을 쉬지 않고 범하여 마수의 알을 수태하게 만들고 싶다는 괴물의 강렬한 욕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그때는 정말로 정신이 무너질 정도로 아득한 데미지를 입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가다가 꿈에 나올 때면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어찌 되었건, 다시 생각을 되돌리면 지금 루시의 능력이 정확히 어떤 것이라고 확정을 내리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싸워보면 알겠지. …그래도 두 번이나 방심하지는 않아.’

은현에게 혼나는 것 이전에, 자신이 그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

재차 그것을 다짐하면서, 에린은 다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루시에게 달려들었다.

“큭…!”

루시는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여우불에 의해서 정신체의 데미지가 꽤 상당했던 탓인지, 그녀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거리를 좁혀오는 에린의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던 탓인지, 아까 느꼈던 여우불의 데미지가 너무나도 두려웠던 탓인지, 조바심을 냈던 루시는 황급히 에린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또 다시 사각에서 튀어나온 뱀들이 에린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녀의 몸을 물어뜯기 위해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이번엔 한 마리가 아니라, 스무 마리에 가까운 대량의 뱀들은 그 등장만으로도 경악스러워 당황했을 법했지만, 에린은 두 번의 방심은 없다는 듯이, 이미 감지를 통하여 그것들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다.

거리를 좁히던 발걸음을 멈추고, 오히려 몸을 뒤로 뺌으로써 뱀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으으….”

수십 마리의 뱀들이 구불거리며 각기 움직이는, 징그럽기 짝이 없는 광경에 에린이 인상을 썼다.

당장이라도 인벤토리 안에 있는 레반테인을 소환하여 뱀들을 썰어버리고 싶었지만, 간접적으로라도 뱀들과 닿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여우불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호족 요술(?? ??)]

[여우불]

바닥에 내던지자 불이 옮겨붙은 뱀 한 마리를 시작으로, 차례차례 불타오르기 시작한 뱀들이 이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린 뱀들을 보고, 에린은 두 눈을 빛냈다.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아무리 자신이 감지를 펼쳐두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각에서 튀어나온 뱀의 공격을 아예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에린의 감각은 무디지 않다.

시각은 물론 청각과 후각까지 평범한 인간에 비해 배는 뛰어난 자신이 눈치를 채지 못했던 이유로 여러 가지를 짐작하였으나, 에린은 지금의 루시가 한 공격으로 그 정체를 파악했다.

“너. 환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구나?”

“……!”

정곡을 찔린 듯 루시의 어깨가 움찔 떨리더니 경악하는 표정으로 에린을 쳐다보았다.

“어, 어떻게 그걸…!”

“예전에 서큐버스와 싸워봤던 적이 있었거든. 그리고…. 잘 아는 친한 언니도 있고.”

정확히 말하자면 꿈의 세계 속에 있는 서큐버스가 특정의 환상을 원하는 대로 조작하여 그 환상을 실물로 만드는 것을 보았던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이 아니라 꿈의 세계라는 정신세계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눈앞의 이 악마는 꿈속에서 만든 환상.

몽환을 현실에 구현시켰다.

비록 그것이 고작 뱀을 구현시키는 보잘것없는 수준에 그쳤다고 할지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그 능력은 법칙을 거스르는 경지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사용 방법에 따라서 무궁무진하며 위협적이다.

“몽환을 현실로….”

아직 감옥 안에 있었던 릴리는 에린의 설명을 듣고 스스로 입에 담으며 읊조렸다.

자연스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시선을 옮긴 루시가 다급히 릴리에게 말을 걸었다.

“이, 이봐! 도와줘!”

“뭐?”

“같이, 같이 이 인간을 처리하자!”

다급히 도움을 요청하는 루시의 말을 듣고 릴리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

아무래도 같은 악마이니까 당연히 자신을 도우리라 생각하는 것 같지만, 어째서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과 에린은 함께 감옥에 투옥되어 있던 사이로 당연히 동료라고 생각하는 판단이 옳을 터인데, 아무래도 루시는 설마 악마인 자신이 인간과 한통속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말이 되나?’

그녀 또한 인간인 에프라테 백작과 서로의 목표와 이익을 위하여 함께 행동하고 있었을 터인데, 그런 가능성 자체를 생각하지 못하는 건 너무도 어리석지 않은가.

에린 또한 ‘뭐지. 이 멍청이는?’이라는 표정으로 루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껏 자신이 만나본 악마 중에서, 몽환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능력을 가진 것에 비해, 가지고 있는 지능은 그에 반비례하듯 바닥을 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건 나름대로 기회이기도 했다.

“…에린.”

“응?”

“내가 처리할게.”

“어?”

에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릴리를 향해 뒤를 돌아보았다.

“언니가?”

릴리는 이렇다 할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놀랐다.

“시험해보고 싶은 게 생겼거든.”

몽환을 현실로 구현하는 능력.

그것이 서큐버스가 사용할 수 있는 힘이라면, 어쩌면 자신 또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하는 건가?”

릴리는 루시가 했던 것처럼, 손을 내저으며 자신의 마력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상상 속에 있는 괴물의 모습을 현실에 구현시킨다.

크르르

몽환 속에서 구현되어 현실로 나타난 그것이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광경에 에린이 어이를 상실한 표정을 지었다.

“…헐.”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