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709화 (692/730)

〈 709화 〉 709. 신전 복구(2)

* * *

그럭저럭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하는 에레니움을 뒤로 하고, 은현은 아주 오랜만에 베르단디에게 부탁하여 신계에 소환되었다.

[…아이야.]

“네. 베르단디.”

[꼭 그 여자를 만나야겠느냐?]

“제가 시작한 일입니다.”

[…….]

베르단디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보였다.

은현이 신계를 찾아온 이유는 이번에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어야 할 여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현재 하계에서 큰 변혁을 맞이하고 있는 베스타 신전의 사제와 성기사들이 받들어 모시는 여신, 베스타다.

“베르단디님은 이상하게 베스타님을 꺼리시네요.”

보통 신들은 다른 신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은현이 지금까지 겪어본 신계의 경험은 다른 신들에 비하면 한없이 짧지만, 지금까지 은현이 만나 본 신들은 서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같은 소속과 계통에 속해있는 신들도 서로를 신경 쓰지 않을 진데, 본래라면 사적으로 만나서 대화조차도 하지 못하는 베르단디가 베스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느냐.]

베르단디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이에게 집적거리는 베스타가 나는 정말 싫다.]

“…네?”

은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유를 듣고 멈칫했다.

[무엇을 그렇게 보는 것이냐?]

“어, 아니…. 그게…. 그런 이유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분명히 자신은 물어볼 수 없는 이전, 어떤 불화나 갈등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을 하였을 뿐이다.

설마 그런 시답지 않은 이유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전혀 시답지 않은 이유가 아니다.]

영혼으로 이어져 있는 베르단디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은현의 사고를 읽고 그의 몸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베스타 뿐만이 아니다. 나는…나 이외에 누군가가 아이에게 접근하는 것이 정말로 싫다.]

“…일리아나나 다른 아내들은요?”

[그 아이들은 괜찮다. 그 아이들은 진심으로 아이를 연모하고 아껴주며 헌신하고 있으니. 하지만…. 나 이외에 나와 같은 다른 신이 아이에게 접근하는 것은 나로선 전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은현이 베르단디에게 있어 여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사도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여신으로서가 아니라, 여자로서, 연인으로서 베르단디 나름의 기준선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베스타는 그 기준선에 비교해본다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여신이었다.

은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베스타님이 반신(半?)인 저한테 그런 관심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아이는…묘하게 베스타를 변호하고 있구나. 설마…. 나보다 베스타 같은 여신이 더 취향인….]

“그럴 리가 없잖아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기 시작하는 여신의 시선이 두려워 은현은 즉시 답했다.

최근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베르단디는 생각보다 독점욕이 넘쳤고 너무도 쉽게 잘 삐친다.

최대한 온화하게 돌려서 자신의 여신을 설득했다.

“베스타님은 엘레노아와 아니에스에게 신성력이라는 은혜를 내려주는 여신이시지 않습니까.”

직접적인 연결점은 없더라도, 은현으로서는 베스타와의 관계도 가능하면 원만하게 유지를 하고 싶었다.

게다가 엘레노아에게 아니에스의 ‘간청’보다 더 높은 능력에 가까운 ‘신성회수’라는 권한을 부여해준 것에 대한 배려도 있으니,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베스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가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아이의 생각은 나도 잘 알겠지만….]

이것이 옳은 행동이라는 것은 베르단디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말고의 감정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다.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해야 할까, 이런 부분에서까지 은현은 쓸데없이 성실했다.

은현은 자신의 상체를 꼭 끌어안은 베르단디의 팔을 풀고는 그 손을 맞잡았다.

등 뒤를 끌어안고 있었던 베르단디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여신의 허리에 팔을 감아 강하게 끌어당긴다.

[아, 아이야…?]

갑작스레 적극적으로 나온 스킨십에 당황한 베르단디를 본 은현은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설마 제가 베르단디를 두고 다른 여신에게 빠지기야 하겠습니까?”

[…….]

“제가 모시는 여신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사실은 베르단디를 포함하여 우르드와 스쿨드까지 포함을 하여야 했지만, 이 상황에서 세 여신을 모두 언급하는 것이 악수라는 것쯤은 눈치 없는 은현도 알고 있었다.

은현의 멘트가 제법 먹혀들었는지 베르단디는 살짝 뺨을 붉히면서 기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 좋구나.]

베스타를 혼자서 찾아갈 은현을 생각하니 떨떠름한 생각으로 가득했던 베르단디의 기분이 조금씩 기분이 풀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고, 은현은 속으로 안도했다.

‘뭐 사실 베스타님이 나를 가지고 장난치는 건 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흥미를 보이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아마도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에게 기대를 거는 것 같은 관심과 비슷하다.

게다가 굳이 이성으로서 직접거리는 이유는 자신이 아니라 베르단디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격하게 반응해오는 베르단디를 놀리는 것에 재미를 붙인 시덥잖은 이유일테지만, 은현은 굳이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머릿 속에서도 애써 그 생각을 지워버려 베르단디가 읽을 수 없도록 감춘 것은 여신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후우. 알았다.]

베르단디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결정한 것을 잘 바꾸지 않는 은현의 고집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야.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바로 나를 불러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벌써 몇 번째 들었는지 모를 당부에 재차 답하고는 은현의 몸은 전송되었다.

◆ ◆ ◆

베르단디의 힘으로 전송된 장소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새하얀 공간이였다.

하지만 은현은 이 익숙한 장소에 몇 번인가 와보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감으로 느껴지는 주위의 감각이 아니라, 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아득한 힘이었다.

[반가운 손님이군.]

영혼에 직접 소통을 걸어오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 힘의 존재를 느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두 눈에 인식되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지만, 명확히 자신을 맞이한 그 존재에게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뒤늦게 실체화하여 모습을 드러낸 이는 이 공간, 도데카테온의 영역 안에서 가장 높은 힘과 권위를 가지고 있는 신.

유피테르다.

“…….”

새하얀 공간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옥좌에 앉아 턱을 괴고 있는 신의 시선을 마주했다.

은현은 곧바로 용건을 입에 담았다.

“베스타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신계라는 공간은 지면과 실체가 존재하는 하계와 달리 굉장히 모호한 곳.

스스로 베스타를 찾아갈 수 없는 은현이 여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유피테르의 도움이 꼭 필요한 과정이다.

[흐음, 결국엔 도데카테온의 여신들에게도 손을 대려는 것인가?]

“…….”

은현은 또 시덥지않는 이야기를 해오는 유피테르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 양반이 진짜….’

어디까지나 자신을 동류로 바라보고 있는 유피테르의 시선은 정말로 불쾌했다.

문란하게 다른 여신들이나 인간들과 관계를 맺어온 유피테르의 이력이 자신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다.

“…그런 게 아니란 걸 아시지 않습니까.”

[알고 있다.]

그저 유피테르식의 질 나쁜 장난일 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은현은 더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흠. 뭐, 좋다. 네가 베스타를 찾는 이유도 대강은 알고 있으니.]

그것은 현재 은현이 하계에서 벌이고 있는 신전의 변혁을 베르단디를 포함한 노른의 세 여신뿐만이 아니라 도데카테온 쪽에서도 주시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하계의 존속과 그것을 위협하는 악마들의 개입은 신들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하니, 당연하다.

유피테르는 길게 장난을 치지 않고 은현을 곧바로 베스타가 있는 공간으로 전이시켜주었다.

성희롱을 좋아하는 변태 양반의 장난에 적지 않는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리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그럭저럭 분위기를 읽고 순순히 이동시켜주는 유피테르의 배려에도 은현은 순순하게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첫 만남의 당시, 베르단디에 대하여 성희롱을 해왔던 유피테르의 만행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현은 특정의 분야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뒤끝이 길었다.

[어머?]

다시 한번 공간이 전이되고 은현은 베스타와 대면하게 되었다.

반가운 얼굴을 확인한 베스타의 표정이 단번에 확 밝아졌다.

[후후, 어서 와. 유피테르 님에게서 네가 올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어.]

“…너무 늦게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은현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엘레노아에게 ‘신성회수’라는 특별 권한을 내려 달라고 요구하고 신전의 복구 작업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느라 약 2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늦다니, 오히려 생각보다 빨리 찾아와줘서 고마운걸.]

하지만 반가워하는 베스타의 반응은 달랐다.

신계의 시간 흐름은 하계와 독립적인 형태로 흘러가며, 애초에 시간이라는 것에 구애받지 않는 신들의 특성상 2개월이라는 시간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계에 속한 은현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괴리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나, 베스타는 자신을 생각해서 차려준 은현의 예의가 제법 마음에 든 눈치다.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네가 필요한 일이라고 했었잖니.]

그래서 베스타는 엘레노아에게 ‘신성 회수’라는 특권을 부여했다.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엘레노아가 스스로 판단하여 대상의 신성력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그 능력은 아니에스의 ‘간청’보다도 더 위협적이며, 베스타에게 있어서는 도박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특정의 한명에게 엄청난 특권을 몰아주는 것은 하계에 간섭할 수 없다는 규율과 섭리에 어긋나 금지되다시피 한 일.

베스타는 하계에 간섭할 수 있는 권리를 한계까지 모두 사용했으며, 앞으로는 이 이상의 은혜를 하계에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하계에 부여한 신성력들을 유지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간섭도 할수 없음을 의미했다.

아니에스의 뒤를 잇는 엘레노아는 이제 더는 후임이 나타나지 않을 마지막 성녀였다.

“쉽게 해주신 선택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다른 신들이 너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만큼, 나도 너희에게 기대를 걸어보았을 뿐이야.]

“…감사합니다.”

베스타가 허락해주었기 때문에 신전 안의 변혁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신성 회수’라는 막강한 수단이 생긴 지금, 사제들이나 성기사들은 다른 생각을 품거나 행동할 수 없어졌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어 신성력을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자신들은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공파가 그들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힘이, 도리어 목줄이 된 셈이기도 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터.

하지만 부패하고 있던 신전 안의 종양을 도려내고 새롭게 출발하는 시작점은 확실히 성공적이다.

[감사는 내 쪽에서 전해야지. 너는…내가 해내지 못한 걸 해냈잖니.]

베스타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베스타는 다른 여섯 여신들과는 다르게 인간들을 꽤 아끼고 좋아한다.

그래서 그들이 악마들이나 마수들과의 싸움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신성력이라는 은혜를 내렸다.

유일한 실수라면, 인간들을 너무 아낀 나머지, 맹목적인 신용을 주었다는 점이다.

닥쳐오는 고난을 잘 이겨내고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너무 믿었기 때문에 미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라는 이면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결과 자신이 내린 은혜로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보았고, 최악으로 재앙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악이 탄생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시스템을 잘못 설계하고 그것을 바로잡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라고, 베스타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

은현은 그런 베스타의 자책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베스타의 선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냈으니 어설픈 위로는 베스타의 기분을 풀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딱 하나 뿐이었다.

“앞으로…. 그런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 노력하겠습니다.”

[후후. 정말이니?]

베스타는 은현의 장담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그리고…미안해. 원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일 텐데…. 너희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아서….]

“괜찮습니다. 저희에게도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충분히 도와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베스타는 정해진 섭리 속에서 한계까지 힘을 소모하여 엘레노아에게 ‘신성회수’의 권한을 부여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베스타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은현과 엘레노아에게 쏟아부어 도박을 한셈이다.

[그래도…그것만으로는 내 마음이 편치 않네. 혹시 따로 원하는 거라도 있니?]

“원하는 것 말인가요?”

[응. 더 필요한 거나,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말해보렴.]

“…글쎄요.”

은현은 고민했다.

더는 하계에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베스타에게 부탁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으니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해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은현을 보고 베스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예를 들면 말이지….]

베스타는 천천히 은현에게 다가가 그의 뺨을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나의 입맞춤 같은 건 어떠니?]

“…예?”

은현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적잖게 당황한 순간, 은현의 몸을 새하얀 빛이 감싸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누군가가 강제로 은현의 몸을 자신이 있는 쪽으로 소환시킨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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