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676화 (659/730)

〈 676화 〉 676. 교황 대면(1)

* * *

모든 준비를 마친 출발 당일의 거실.

은현은 자신과 엘레노아, 에린과 아니에스를 텔레포트로 전송해줄 일리아나와 인사를 마쳤다.

“그럼 다녀올게.”

“응. 나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아쉽네.”

이제 막 출산과 산후조리를 마치고 몸을 회복하여 움직일 수 있게 된 일리아나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오랫동안 함께 은현과 행동하지 못한 탓인지, 그 반동으로 자유의 몸을 만끽하기 위해 활동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어쩐지 재미있었다.

하지만 은현은 그럴 수 없는 현 상황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일레이나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배웅의 와중에도, 일리아나는 잠옷의 상의를 열어젖히고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인 일레이나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와…. 나 쟤가 저런 모습 보이는 거 처음 보네.”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고 있는 친구의 모습에 아니에스가 경악에 가까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독선적이고 성격이 까칠했던 일리아나의 성정은 그녀와 은현을 포함한 일행들 사이에서 가장 성깔이 강했다.

대외적으로 팀의 리더를 담당했던 리오드나, 여성 관계에 관해서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제라드도, 이성은커녕 타인에게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레이넌조차도 불가능한 영역.

그녀를 달래고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은현뿐이었으니, 어차피 언젠가 이러한 결실을 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으리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설마 그 일리아나가 저렇게 온화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는, 아니에스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런가요?”

그런 아니에스의 반응이 제법 웃겼는지, 옆에서 엘레노아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흥. 야. 넌 쟤의 옛날 모습을 몰라서 그래. 옛날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

아니에스는 코웃음을 치면서 20년 전, 눈앞의 두 부부와 함께 팀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있었던 해프닝 하나를 입에 담아 풀기 시작했다.

“한창 팀으로 활동할 당시에 말이야. 어쩌다 보니 제라드랑 일리아나가 물리적으로 부딪친 적이 있었거든? 그때 제라드가 자기도 모르게 일리아나의 저 큰 젖통을 만졌던 적이 있었어.”

“…헐?”

엘레노아와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에린의 낯빛이 순식간에 딱딱해져 갔다.

당시의 상황을 체험해보지는 않았지만, 어떠한 전개가 되었을지는 상상이 되었다.

진심으로 화가 난 일리아나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에린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처음으로 만났던 서큐버스 하급 악마를 가볍게 압도하고 농락했던 여자가 일리아나다.

“제라드님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계신 거죠…?”

아직까지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은 그가 그때의 그 위기를 잘 넘겼다는 뜻이었느나, 에린은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는 에린의 반응이 마음에 든 아니에스가 신나서 그녀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흥. 그거야 은현, 저놈이 중간에 중재를 해줬으니까 그렇지.”

솔직히 그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정말로 별것 아닌 해프닝이었다.

한순간의 작은 판단과 선택으로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전장의 한복판에서는 팀원들과 몸을 부딪치는 것쯤은 정말로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모험가 길드에서 솔로로 활동하고 있는 에린도 그것 자체는 크게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몸을 접촉하게 된 부위가 가슴과 손이라면 그것이 상대에 따라서 온화하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리라.

“그때는 진짜로 난리도 아니었어. 화가 난 쟤는 제라드의 손을 잘라버리는 거로 용서해주겠다면서 마법을 사용하려고 들지, 제라드는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다 못해 은현의 뒤에 숨어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지.”

“…….”

제라드에게 정상 참작의 여지는 있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이 일리아나라는 것이 문제였다.

한마디로 상황과 타이밍 자체가 너무 나빴다.

에린도 은현이 아닌 다른 남자가 자신의 가슴을 만진다면 온화하게 넘어갈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때는 저놈이 일리아나랑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는 게 천만의 다행이지.”

“그건 그렇네요.”

엘레노아는 쓰게 웃으며 동의했다.

은현이 자신을 포함한 다른 아내들을 얼마나 아끼는지는 엘레노아는 물론 에린이나 릴리도 동의하는 바였다.

만약 그때 은현과 일리아나의 관계가 동료가 아닌 연인의 관계로 발전해 있었다면, 제라드는 정말로 어림없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당시의 상황을 쓰디쓴 해프닝이라고 회상할 수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젠장. 생각해보니까 그때가 유일한 기회였네. 그때 만져봤어야 하는데….”

아니에스는 정말로 아쉬운 듯 주먹을 꽉 쥐며 투덜댔다.

“…네?”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은 듯 에린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어리둥절 반문했다.

“아니. 그렇잖아! 저 커다랗고 부드러운 젖통 사이에 얼굴을 파묻어보고 싶은 욕구! 이걸 어떻게 참냐고! 아오!”

“어, 어…. 어…?”

에린은 느닷없이 시작된 아니에스의 발작에 적잖게 당황했다.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려 엘레노아의 눈치를 살폈다.

엘레노아는 작게 쓴웃음을 지을 뿐 아니에스를 보며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그녀의 비정상적인 취향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 반쯤은 포기한 모습이었다.

선임의 폭주에 대해서 부끄러운 반응을 보인다기보다는 이미 이것에 관해서 해탈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엘레노아의 표정이 더더욱 기괴했다.

엘레노아는 타인이 가득한 공적인 자리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이지만 않고, 신전과 베스타 여신의 명예를 지켜주기만 한다면 크게 관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아, 너네는 좋겠다. 저걸 만질 수 있으니까. 예전에 살짝 시도해보려 했는데, 은현 저놈이 단호하게 막더라고.”

은현의 여신인 베르단디를 처음 대면했을 때, 가차 없이 막아섰던 것을 떠올린 아니에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간에 자신의 여자 몸에 손대는 것을 단호하게 차단했다.

“…….”

그녀의 그 말속에 진심으로 부러움이 묻어나왔기 때문에, 에린은 더더욱 뭐라고 반응하기가 곤란해졌다.

“그럼 조심해서 잘 다녀와.”

“주인님. 마님과 일레이나는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마음 편히 다녀오세요.”

“알았어. 다들 이제 그만 출발하자.”

“아, 응!”

타이밍 좋게 은현이 불러주자 에린이 아니에스의 투덜거림을 회피하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은현은 뒤따라오는 엘레노아와 아니에스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에린에게 물었다.

“셋이서 무슨 이야기했어?”

“벼, 별말 안했어.”

에린은 애써 당황을 숨기면서 얼버무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일리아나님.”

“다녀올게요!”

“응. 조심해서 다녀오렴. 둘 다.”

웃으며 다른 아내들과 인사를 마치자, 마지막 차례로 아니에스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일리아나에게 말했다.

“뭐, 그래도 재미있었다. 네 딸을 본 것도 진짜 신기한 경험이었고.”

“고마워. 네 덕에 아기도 건강하게 낳고 이렇게 회복도 빨리할 수 있었어.”

“어, 어? 어…. 그래.”

아니에스는 감사의 인사를 들을 줄은 몰랐다는 듯 적잖게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시나 과거의 모습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니에스에게는 엄마가 된 일리아나의 모습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싫은 것은 아니다.

‘뭐 이건 이거대로 나쁘지 않네.’

은현이 죽었을 당시, 거의 폐인처럼 살아가던 그녀의 과거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모습은 몹시 긍정적인 효과를 의미하니까.

적응이 아직 되지 않았을 뿐이지, 지금의 그녀는 아니에스의 마음에 꽤 마음에 드는 편이었다.

“또 놀러 올게.”

“그래. 다음에는 내가 요리를 해줄게.”

“…그건 봐주라.”

그녀의 전반적인 가사 능력을 알고 있는 아니에스는 요리만큼은 먹어줄 생각이 없었다.

[여덟 자릿수 고위 마법]

[텔레포트]

인사를 끝으로 일리아나가 그려낸 마법진이 네 사람의 주위를 감싸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공명음을 만들어내며 네 사람은 일리아나가 지정한 좌표, 에레니아 신성국으로 전송됐다.

◆ ◆ ◆

우우웅

마력의 공명음과 함께 주위를 뒤덮고 있던 마법진이 사라지면서, 주위를 둘러싼 배경이 일변했다.

집안과 다르게 일변한 주위는 잔잔한 바람이 부는 숲속이었다.

“어?”

울창한 나무들이 가득한 장소로 바뀌었음을 자각하고 에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신전이 아니네요?”

일리아나의 텔레포트로 에레니아 신성국의 신전 본교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만 들은 에린은 어째서 신전 본교가 아니라 숲 한복판으로 이동을 한 것인지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

“여기서 신성국의 수도인 에레니움까지 걸어갈 예정이야. 그래도 이 사람이 레토나만 소환해준다면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니까.”

도보가 아니라 차를 타고 이동한다면 아마도 3시간 정도면 도착할 거리다.

“어…. 전에 일리아나님은 아니에스님을 데리러 텔레포트로 신전 본교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적이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그렇게는 불가능한 건가요?”

육로를 이용하여 이동하는 것은 에린에게도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지만, 굳이 이것을 물어본 것은 어째서 이번엔 그러지 않는지 그 이유가 순수히 궁금했던 호기심 때문이다.

“아, 얘는 그 얘기만 들었지, 그 이후의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나 보네?”

아니에스는 싫은 것을 떠올리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요?”

“그때 일리아나 걔가 다짜고짜 신전 안으로 텔레포트해서 날 데리고 간 뒤로, 본교는 발칵 뒤집혔어.”

“…네?”

“당연하잖아. 느닷없이 신전 안에 나타나서 대주교를 데리고 사라졌는데. 그것도 남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히.”

에레니아 신성국의 본교는 대외적으로 여신의 은총이 가장 집중되는 장소로 엄중한 겸비는 물론 외부의 침입을 일절 차단하는 최상위의 신성 결계로 뒤덮여 있다.

국교로 칭송되고 있는 에레니아 신성국의 신전 본교는 신성국의 최고 권력자나 다름없는 교황이 있는 장소.

페르니아스 왕국으로 치자면 국왕과 왕족들이 있는 왕궁과도 같은 곳이다.

그것은 절대로 뚫려서는 안 되는 장소를 의미하기도 하며, 명예와 위신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리아나라는 단 한 명의 개인에게 방위 결계가 무력화되고 신전 본교의 최중심까지 아무런 피해도 없이 무혈입성을 했는데, 그 명예와 위신이 무사할 리가 없다.

“다행히도 그 사건이 외부로 새나가는 일은 없어서 다행이었지, 만약 새나가지 않도록 막아내느라 진짜로 진땀 뺐었다?”

만약 침입해온 사람이 아니에스의 옛 동료가 아니었다면, 페르니아스 왕국의 소속이기라도 했다면, 이것은 아니에스와 일리아나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에레니아 신성국과 페르니아스 왕국 사이의 국제 문제로까지 발전했을지도 모르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나도 그때 그 사건 때문에 할배한테 엄청나게 혼났다고. 다음부터는 그런 식으로 친구를 부르지 말라고. 내가 부른 것도 아니고 멋대로 찾아와서 날 데려간 건데, 도대체 왜 내가 혼을 나야 하는 거야?”

일리아나의 그 막무가내식 행동 때문에 교황에게 잔뜩 꾸지람을 들었던 아니에스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열이 뻗치는지 씩씩거렸다.

텔레포트 전까지 일리아나와 그럭저럭 훈훈한 작별 인사를 주고받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다.

“뭐, 그건 내가 했던 부탁이 원인이기도 하니까 미안하네.”

“흥. 이번에 우리 할배를 만나주겠다고 니가 그랬으니까 용서해주는 거야. 다음부터는 어림없어. 알겠냐?”

은현은 아내 당시에 벌였던 돌직구 행동의 원인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멋쩍게 사과하자, 아니에스는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윽고 이동을 개시하기 위해서 레토나를 소환했다.

“야. 그런데 말이야.”

갑자기 아니에스가 소환된 레토나를 불길한 시선으로 유심히 바라보며 은현의 팔을 붙잡았다.

“이거 편리한 건 좋은데, 운전 누가 하냐?”

“그건 왜 물어봐?”

아니에스는 진지한 얼굴로 에린을 가리키며 은현에게 말했다.

“쟤한테 운전시키지마. 진짜 드럽게 못해.”

그녀는 과거에 아무것도 모르고 에린이 운전하는 레토나에 탔다가 후진 기어를 넣은 상태로 풀악셀을 밟아 그대로 나무에 들이박았던 그녀의 운전 실력을 은현에게 빠짐없이 고자질했다.

“아, 아니에스니임!”

깜짝 놀라 얼굴을 붉히는 에린의 얼굴을 뒤로하고, 아니에스는 양념 하나 안치고 오로지 사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표정을 유지했다.

“그때 이후로 가끔 가다가 뒷목이 엄청 땡겨. 이거 진짜야.”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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