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90화 (573/730)

〈 590화 〉 590. 쿠르델 산맥(3)

* * *

쿠르델 산맥에 있는 악마에 관한 이야기를 끝낸 여관주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에린과 은현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자네들이 저 산맥을 오르지 않았으면 하네. 이건 진심이야.”

이 산맥의 어딘가에 있는 오리하르콘을 노리고 오는 모험가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죽음이 예정된 이들이 자신의 여관에 머물렀다고 한다면 뒷맛이 심하게 좋지 않다.

이미 자신의 여관에서 스스로 목에 칼을 찔러 자살한 모험가도 나왔다.

많은 모험가를 상대로 여관업을 해왔던 여관주인은 이미 은현과 에린의 앞날을 내다보기라도 한 듯 진심 어린 걱정을 해오고 있었다.

“여관은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접어야지. 어쩌겠어.”

여관주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질문에 답했다.

쿠르델 산맥의 악마에 대한 뒤숭숭한 소문은 점점 밖으로 퍼질 테고, 소문을 접한 모험가들의 방문은 여기서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자신의 할아버지 대부터 운영해왔던 여관이기는 했지만, 여관주인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것으로 평생을 벌어 먹고살 생각도 없었다.

여관주인은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모험가들에게서 받는 수입이 끊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타격을 입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마음의 준비도 끝내두었다.

평생을 해왔던 자신의 생업을 생각보다 간단히 포기하는 판단은 현실적인 걸까, 아니면 어리석은 걸까.

스스로 생각해봐도 한심하여 쓴웃음이 나왔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은현은 여관주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고 이내 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우리 여관은 거슬러줄 만한 돈이 없는데.”

하룻밤을 숙박하는 방 하나를 잡는 비용은 은화 30닢.

사실 아예 없지는 않지만, 이쪽에서는 금화 같은 큰 단위의 화폐를 내놓는 것은 큰 민폐나 다름이 없다.

지구의 비유로 치자면 버스 한번을 타기 위해서 만 원짜리 지폐를 내는 것과 비슷한 경우.

하지만 은현이 이런 기본적인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아뇨. 잔돈은 필요 없습니다.”

“하루만 묵는다고 하지 않았나?”

“네. 하루만 묵을 겁니다. 이건 그냥 정보료가 포함된 값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은현은 싱긋 웃어 보이며 여관주인에게로 테이블 위의 금화를 쓱 밀었다.

자신과 에린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호의에 대한 보답이랄까, 산맥 안에 들어가기 전에 괜찮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자신도 호의로 보답하는 것뿐이다.

“…고맙게 받지.”

여관주인은 그렇게 길게 고민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만나보았던 모험가 손님 중에는 본인들의 명줄에 어울리지 않게 꽤 정이 넘치는 이들도 있었으며 단골 중에는 심심찮게 팁을 주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럼 저희는 1시간 뒤에 내려오겠습니다.”

“알았네.”

은현과 에린은 숙박하게 될 방안에서 짐을 풀고 휴식에 취했다.

간략한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올라온 에린은 곧바로 은현에게 물었다.

“정말로 악마일까?”

“흐음….”

은현은 곧바로 에린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짐승에게 팔이 뜯긴 듯한 흔적, 등에 났다는 커다란 손톱으로 할퀴었다는 상흔.

반쯤 무너진 정신이 완전히 미쳐버리면서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

강력한 마수의 소행이라면 ‘그 여자’라는 것을 명확히 지칭할 이유가 없다.

정말로 악마가 한 짓인 걸까.

이곳이 페르니아스 왕국이나 다른 장소였다면 악마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가설에 더 높을 가능성을 두었겠지만, 이곳이 아르케나 대륙 북부에 있는 쿠르델 산맥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에린. 이곳에는 마수들 이외에도 다른 게 있다고 했었지?”

“아…. 그 ‘스펙터(Specter)’라는 것들?”

흔히 말하는 유령이나 망령, 또는 요괴와 같은 존재들.

육체는 죽어도, 그 안에 깃들어있는 영(?)은 하늘로 승천하지 않고 이곳, 구천을 떠도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은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구천을 떠도는 혼이 잘못된 경로로 오염이 되기라도 한다면, ‘스펙터’로 변질하여버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육체를 가지고 있되, 혼과 지성이 존재하지 않아 그저 본능에 충실한 마수.

반대로 혼과 지성을 가지고 있으나, 실재하는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스펙터.

두 존재는 전혀 다른 반대의 특성이 있지만, 모두 오염된 마나가 영향을 끼쳤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오염된 것이 육체인가, 영혼인가에 대한 차이였지만,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존재들은 몹시 다양하다.

“…으.”

은현의 설명을 떠올린 에린이 작게 신음했다.

에린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이야기다.

이미 살아있는 상태로 영혼의 상태만 존재하는 유체이탈을 경험해보았던 자신이었기에, 자칫 잘못했다면 그 스펙터라는 것으로 변질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구미호의 유해에서 흘러나온 마력들로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온전히 유지한 채로 오염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천만의 다행으로 여겼다.

“그런데 현아. 여기 사람들은 어째서 그 스펙터라는 것들이 아니라,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특출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거니까.”

신력을 품고 신격을 갖추어 반신이 되면서 상위 차원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은현이나, ‘영안(??)’이라는 것을 소유하여 영적인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면 스펙터의 존재를 인식하는 건 힘들다.

“아니면 감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스펙터를 보지도 듣지도 못해도, 느낄 수는 있겠지.”

하지만 실제로 스펙터와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그것들에게 대응하는 것은 그들에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영적인 존재들이니까.

“환청을 들었다거나, 헛것을 봤다거나,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홀리고 속여서 함정에 빠뜨리고 사람들 속에 있는 마력을 집어삼켜 자신의 힘을 성장시켜.”

실제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것을 상대로 어떻게 할 수가 있을까.

영적인 존재를 느낄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정말로 불합리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본인 자체가 그 불합리함을 인식할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내가 이번 여행에 에린, 너를 데려온 것도 이것 때문이야.”

신수인 구미호의 마력을 계승한 에린은 영혼의 존재를 직접 두 눈으로 인식하고 두 귀로 들을 수 있는 체질을 지녔다.

에린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내들 또한 모두가 각자의 방법으로 스펙터의 존재를 인식할 수는 있을 것이다.

스펙터의 근원인 오염된 마나와 변질하여버린 악령을 정화할 수 있는 엘레노아.

마수나 스펙터들의 상위 계통에 속하는 악마인 릴리.

태생부터 마력에 민감한 마녀의 체질을 가지고 있는 일리아나.

현재 임신 중인 일리아나나 드워프들과 인간들 사이의 중재를 하고 영지의 운영에 힘쓰고 있는 엘레노아, 그리고 그녀들을 보좌하는 릴리를 빼면 사실상 은현의 여행에 동행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는 에린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렇구나.”

에린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현이는 이 쿠르델 산맥에 있는 악마라는 게 사실은 스펙터의 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일단은 그래. 정황으로만 들은 얘기로는 역시 확정 짓기가 어렵네.”

하지만 그저 말로만 정황의 설명을 들은 것으론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내일 한번 올라가 보자.”

결국, 직접 나서서 확인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목표를 수정하자. 우리의 목적은 불순물이 없는 깨끗한 오리하르콘을 채광하는 거였지만, 일단은 소문의 진위부터 파악하는 거로.”

그리고 가능하다면 문제의 해결도 고려했다.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고 간다면 역시 은현이나 에린 쪽도 좀 찝찝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호의를 베풀어 걱정해준 여관주인이 폐업을 고민하는 걱정도 덜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에린은 은현의 말에 동의했다.

◆ ◆ ◆

“…정말로 가는 건가?”

해가 뜨기 시작하는 아침 일찍부터, 여관을 나가기 위해 1층으로 내려온 은현과 에린을 본 여관주인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젯밤에 왔던 것과는 달리, 식량과 소모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배낭은 산맥 안으로 진입하려는 모험가들과 똑같았다.

결국, 자신의 조언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조언은 감사했습니다. 그래도 저희도 목적이 있어서 온 거라서요.”

“…그래. 부디 살아서 다시 봤으면 좋겠군.”

“내려올 땐 꼭 들러서 하룻밤을 쉬고 가겠습니다.”

은현과 에린은 그렇게 여관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산맥을 올랐다.

종아리까지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쉬지 않고 계속 올라가기를 약 한 시간.

산맥 아래에 있던 마을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은현이 말했다.

“꺼낼게.”

“응.”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에 손을 뻗어, 인벤토리 안에서 은현이 꺼낸 것은 새하얀 색상의 마력 구동형 스노모빌이었다.

다른 이름으로는 설상차(雪上?)로, 말 그대로 얼음이나 눈 위를 수월하게 달리는 자동차다.

이번 눈길로 가득한 이 쿠르델 산맥을 등반하기 위해 은현이 현대의 지식을 기반으로 특별히 제작한 야심작이기도 하다.

가끔 옵티머스와 같은 골렘의 제작에 이상하리만치 집착을 보이고는 있었지만, 에린은 이번만큼은 큰 관심을 보였다.

이전에도 은현이 만들어준 바이크를 운전해본 적이 있었던 만큼, 이 스노모빌이라는 것에도 당연히 흥미가 샘솟을 수밖에 없다.

“이게 그거구나. 눈길 위를 달리게 해준다는 차?”

“맞아.”

은현은 웃으며 스노모빌 위에 탑승했고 핸들 위에 부착된 마정석에 마력을 흘려 넣어 스노모빌을 가동했다.

“혹시…이것도 막…. 골렘으로 변형하는 기능 넣은 거 아니지?”

“아쉽게도 그런 기능을 넣기엔 시간이 모자랐어.”

“…….”

뭐가 아쉬운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에린은 말을 아꼈다.

곧바로 스노모빌의 뒷좌석에 안착하고는 떨어지지 않도록 은현의 허리에 팔을 둘러 안착했다.

은현이 건네준 헬멧을 착용하는 것은 솔직히 불편할 것 같았지만, 여기서 빠른 속도로 주행하면서 맞게 될 상황을 생각하니 마음속 고민이 쏙 사라졌다.

모든 준비를 마치자 은현이 앞으로 손짓했다.

이제 출발하겠다는 의미였다.

따로 말로 소통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에린은 은현이 하고자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에린은 사전에 정해두었던 신호로 허리에 감고 있던 팔을 움직여 은현의 허리를 두 번 가볍게 두들겼다.

한 번은 부정의 신호.

두 번은 긍정의 신호.

은현이 핸들을 조작하자 작게 진동하던 스노모빌이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점점 가속하여 빠른 속도로 주행을 하자 하늘 위에서 내리는 눈발이 헬멧과 부딪쳐 툭툭거리는 소리가 헬멧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

이윽고 에린은 자신의 감각에 걸린 다수의 기척에 몸을 작게 떨었다.

에린이 한쪽 팔로 은현의 허리를 단단히 고정한 채로 반대쪽 손으로 기척이 감지되었던 장소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여 이동하고 있는 스노모빌의 존재를 눈치채고, 맹렬한 기세로 은현과 에린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들의 존재를 은현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에린에게 답한 은현은 또다시 인벤토리를 활성화해 스노모빌과 함께 이번에 새로 제작한 무기를 꺼냈다.

허공에서 나타나 은현의 손에 쥐어진 것은 손잡이위에 동그랗고 은현의 팔뚝 보다 두껍고 기다란 쇠기둥이 달린 기이한 형태의 무기였다.

“…응?”

은현이 꺼낸 처음 보는 무기에 관심을 가진 것도 잠시, 빠르게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기척의 정체를 맨눈으로 확인하고 에린이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토끼?’

위로 뻗어있는 한 쌍의 길쭉한 귀를 가지고 있는 마수들은 멀리서 보기엔 귀여운 토끼의 외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와 달리 이쪽으로 달려오면서 울리는 진동이 심상치가 않다.

‘…헐!’

이윽고 점점 가까워지는 ‘눈토끼’들의 실제 외관을 확인하고 에린이 경악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눈보라 때문에 제대로 된 외관을 특정할 수 없었지만, 점점 가까워져서 확인해보니, 귀여운 토끼가 아니라 그저 한 쌍의 길쭉한 귀가 달린, 야생의 곰만 한 몸집을 가진 사나운 마수였다.

그 눈토끼들이 육중한 거구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은현과 에린이 타고 있는 스노모빌을 맹렬한 기세로 쫓아왔다.

마침내 무리 중 가장 앞장서서 뛰어오던 눈토끼가 은현과 에린의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무시무시한 거구의 앞발이 그대로 내리쳐지려는 순간 은현은 손에 쥐고 있던 커다란 쇠기둥의 끝을 눈토끼의 앞발을 향해 겨눴다.

타앙!

은현의 팔뚝보다 두꺼운 한 두께를 가진 기다란 쇠기둥의 끝, 은현이 제작해낸 특제 대구경 리볼버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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