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9화 〉 589. 쿠르델 산맥(2)
* * *
악마.
그 단어를 듣게 된 순간 에린은 순간 몸을 떨었다.
순간적으로 시선을 옆으로 슬쩍 옮겨 은현의 반응을 살폈다.
“…흐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사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를 가늠하고 있다.
생각을 마친 은현이 곧바로 위병에게 말했다.
“일단은…날도 어두워졌으니 이곳에서 숙박하려 합니다. 나중에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뭐 그거야 그렇지. 이야기는 여관의 주인장에게나 듣게나.”
“조언 감사합니다.”
설렁설렁 손짓하며 안으로 들여보내 주는 위병에게 간단히 목례를 하여 인사를 하고, 에린과 은현은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생각해. 현아? 정말로 악마가 있을까?”
악마 자체와 엮여본 경험도 있었으며 쉬이 넘길 수 있는 사안도 아니기에 에린은 은현의 생각을 물었다.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확률은 굉장히 낮겠지.”
은현의 대답은 에린에게 굉장히 의외였다.
당연히 당장이라도 악마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산맥 안으로 들어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은현은 쿠르델 산맥에는 악마가 존재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 어째서?”
“그것들은 이렇게 대놓고 자신들의 정체를 까발리며 다니지 않아. 자칫 잘못하다가 토벌대라도 편성이 되어 이곳으로 들어온다면 귀찮아지니까.”
현재 대륙에 넘어올 수 있는 악마들은 제약의 간섭을 받아 하급 악마들, 아니면 약체화가 진행된 중급 악마 정도가 한계이리라.
그 정도라면 피해가 있을지언정 토벌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지 않다.
에린이 아이테르의 학생이었을 시절 조우했던 리라라는 서큐버스는 하급 악마로서 귀족 남성들 몇몇을 은밀히 습격하여 정기를 흡수함으로써 힘을 축적했던 하급 악마다.
게다가 강제적으로 던전을 폭주시켜 스탬피드의 상태로 만들어 대규모의 마수들을 소환시킨 끝에 모그라프령에 대규모 학살을 일으켜 영혼을 갈취하려 했던 비프론스 역시 하급 악마다.
마지막으로 흡혈귀 소탕 작전에서 갑작스레 출현했던 옛 영웅인 레이넌과 그와 계약하고 있었던 악마는 정체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아마도 힘을 제약당한 중급 악마일 가능성이 컸다.
모두 은현이 개입해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며 막아낼 수는 있었지만, 은현이 없었더라도 악마들과 싸움 자체는 페르니아스 왕국의 승리로 끝을 맺었을 것이다.
리오드나 사이먼과도 같은 기사단과 마법사단의 전력은 그것을 해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하며 페르니아스 왕국의 국력이기도 하니까.
‘뭐 노스페라드의 경우에는 엘레노아의 힘이 전적으로 크기는 했지만….’
엘레노아의 강신이 아니었다면 노스페라드가 흩뿌리는 질병을 막아내지 못하고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면치 못했으리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아무튼, 이야기를 되돌려서 은현은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악마들의 기본적인 습성은 몸을 숨기거나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앞세워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이득을 착취하지. 지금 이 산맥에 나도는 악마의 소문은 놈들의 방식과는 많이 달라.”
진짜 쿠르델 산맥에 악마가 존재한다면, 이렇게 대놓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소문이 나도는 것은 ‘나 좀 잡아가 주세요.’라고 말을 하는 것과도 같아서, 그들에게도 좋은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 근처에 있는 나라라고 하면, 에레니아 신성국이 있잖아.”
악마들에게 있어 신성력을 다루는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천적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다.
유독 페르니아스 왕국에서 악마들이 활개를 칠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사제와 성기사들이 밀집해 있는 에레니아 신성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도 한 가지 요인이었을 터.
반대로 말하자면 에레니아 신성국과 인접한 이 쿠르델 산맥은 악마들이 활개를 치기 좋은 장소가 아니다.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지는 않는 거지.”
그냥 좀 상식에 어긋난 비상식적인 악마가 이곳에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아니면 어떠한 다른 목적이 있거나.
“아마 에레니아 신성국 측에서도 조만간 진상 조사를 위해 사람을 편성해서 이 산맥으로 보낼 거야.”
“음…. 그렇겠네.”
에린은 은현의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악마가 나타난 것이라면 자신들이 아니라 에레니아 신성국 측에서 손을 쓸 것이다.
나서는 것은 여러모로 귀찮지만, 그냥 두기에도 몹시 신경이 쓰이는 애매한 상황에서 은현은 먼저 여관을 잡고 정보를 수집하기로 했다.
위병이 설명해준 방향으로 곧장 발걸음을 향하자, 두 사람은 머지않아 여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을 안에서도 제법 큰 크기의 건물에는 ‘순록의 집’이라는 간판이 달려있었다.
“그 위병 아저씨가 말한 곳이 여기인가 봐.”
“들어가자.”
“응.”
에린이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여관 건물의 내부를 훑어보았지만, 광활한 넓이와 달리 내부는 휑했다.
손님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십 개의 테이블 중 손님들이 사용하고 있는 테이블은 벽난로에서 가장 가까운 세 테이블뿐이다.
에린이 활짝 문을 열어젖히자 여관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단번에 은현과 에린에게로 집중이 되었다.
“…….”
집중된 시선의 의미에서 에린이 읽어 들인 감정은 흥미, 의아함, 그리고 가장 신경이 쓰였던 것은 짜증이었다.
생전 처음 본 사람들이었을 진데, 그들은 어째서 자신과 은현에게 짜증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걸까 의아해하던 차, 활짝 열어젖힌 여관의 입구로부터 뼈를 얼릴 것만 같은 한기가 스멀스멀 들어왔다.
“에린, 들어갔으면 바로 문을 닫아야지. 찬바람이 들어오잖아.”
“…아!”
은현의 말을 들은 에린이 황급하게 문짝을 다시 닫아버렸다.
여관 안에 있던 손님들이 자신을 보고 짜증스러운 시선을 보낸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확실히 이런 추위를 동반한 냉기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그들에게는 굉장히 싫은 일일 것이다.
본의 아니게 굉장히 실례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한 에린은 황급히 여관 안의 손님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저씨들! 잘 몰랐어요!”
“흠흠. 뭐…몰랐다면야….”
“일부러 한 것도 아니라면….”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지. 흠.”
에린의 진심 어린 사과를 들은 손님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적대적이지 않았다.
저렇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정중한 태도로 사과를 해오는데, 그것을 뭐라 할 만큼 인성이 글러 먹은 인물은 보이지 않는 듯했다.
게다가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앳되어 보이는 티가 나는 외모이면서도, 뛰어난 미색을 가지고 있는 것도 한몫했으리라.
여관의 안에 있던 손님들이 모두 에린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며 용서를 하자, 에린이 꾸벅 숙였던 허리를 다시 폈다.
“다음부터는 바로 문을 닫아. 그게 매너야.”
“헤헤. 알았어.”
머쓱한 듯 웃음을 짓던 에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현은 에린을 데리고 카운터로 향했다.
“…손님인가?”
“네.”
“짐이 생각보다 가벼워서 이곳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은현과 에린이 착용하고 있는 짐은 고작 배낭 하나씩뿐.
여행하면서 필요한 필수품들은 웬만하면 인벤토리 안에 모두 넣어두고 여행을 하기 때문에 그리 큰 배낭을 선호하지 않았다.
특히나 먼 곳에서 온 이들이라면 멀면 멀수록 챙겨야 하는 짐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모험가입니다.”
“흠…. 그렇겠지.”
자신과 에린을 간단히 소개하는 은현의 말에 여관주인은 크게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오리하르콘을 채광하기 위해 각지에서 오는 다수의 모험가가 숙박하는 여관.
이 여관을 운영하는 여관주인은 은현과 에린과 같은 모험가는 처음 봤지만, 그들의 행색이나 정체 같은 걸 일일이 따질 정도로 까다로운 성격이 아니었다.
“방 하나에 은화 30닢일세.”
아르미타스 공작령 안에도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상인들을 수용하는 다수의 여관이 존재했지만, 그 여관들의 가격이 은화 10닢에서 15닢 정도를 하는 것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와, 비싸아…! 흡!?”
깜짝 놀라서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에린은 자신의 실수를 자각하고 황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관주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이 아가씨는 이쪽 지방의 여관을 처음 이용해보나?”
“네. 지금까지는 모두 야영을 했거든요.”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원래는 히터가 빵빵한 레토나 안에서, 의자 시트를 젖히고 만든 침대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잠을 잤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미쳤군. 이 추위에 밖에서 야영이라니.”
하지만 내막을 알지 못하는 여관주인은 은현과 에린이 눈이 펑펑 내리는 야외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쪽 지방의 여관 숙박료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아, 됐어. 딱히 불평을 늘어놓고 깎아달라고 흥정하는 것도 아닌데, 이쯤이야 뭐.”
깜짝 놀라는 에린의 표정은 정말로 몰랐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으니, 여관주인은 별로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밥은?”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하다 1시간 뒤에 내려오겠습니다. 주문은 그때 하죠.”
“그러지.”
“그것보다…. 아까 위병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지금 저 산맥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별로 추천하지 않더군요. 저 안에 악마가 있다면서.”
여관주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원래는 다수의 모험가 손님으로 북적거려야 하는 여관의 1층이 굉장히 조용한 이유는 그 악마 때문이니 마음에 들 수가 없다.
“…그 얘기를 듣고 왔군.”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냥 말 그대로야. 2개월 전부터 저 산으로 자주 올라갔던 모험가들의 소식이 하나둘씩 끊기기 시작했어.”
원래 위험을 달고 사는 모험가들이 자신의 앞날을 한치의 앞도 예상하지 못하듯, 갑자기 소식이 끊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 여관에서 기분 좋게 술과 고기를 먹으며 동석을 했던 누군가가 다음날 마수들에게 물어뜯긴 끝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을 나뒹굴다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직업이 모험가.
그래서 여관주인도 처음에는 손님의 숫자가 줄어들었을 때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꼈던 것은 오리하르콘을 조달하기 위해 자주 여관을 찾아와 숙박하는 단골 모험가들이 저 산맥 위에서 마을로 도망쳐 왔을 때였다.
동료들과 함께 산맥 안으로 들어갔던 한 파티는 전멸한 끝에 단 한 명만이 생존하여 마을에 도달하였고, 그의 몸에는 상처로 가득했다.
생존한 모험가의 등은 커다란 짐승의 손톱으로 찢겨나간 듯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고, 팔 하나는 거칠게 잡아 뜯긴 모양새로 떨어져 나간 상태.
“게다가 다리 하나가 부러져있었지. 그 상태로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산맥을 내려왔다니, 살아있는 게 기적일 정도였어.”
생존한 모험가의 그 몰골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지, 여관주인은 인상을 쓰며 풀지 않았다.
“…그 모험가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은현은 생존한 모험가의 행방을 물었다.
아직 이 마을에 거주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죽었네.”
“어? 살았던 게 아니었나요?”
에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여관주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살했어. 내 여관의 객실 안에서 스스로 자기 목에 칼을 꽂았지.”
“…….”
“그 친구를 발견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그 친구는 계속해서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더군. ‘그 여자가 온다.’, ‘도망쳐야 해. 어디든, 어디로든.’ 끊임없이 그 말만을 반복한 끝에, 내 여관에서 자살했지.”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이야기에 에린도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어…. 그리고 계속해서 산맥 안으로 들어갔던 모험가들의 소식이 일제히 끊기면서, 우리 마을은 확신할 수밖에 없었네. 저 산 안에 무언가가 있다고.”
그것도 아예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생존했던 모험가가 계속해서 언급했던 ‘그 여자’라는 존재와 끝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스스로 자살을 선택했던 것.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악마의 소행으로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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