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7화 〉 557. 스승의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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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과 고위계 악마의 싸움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으며 조용히 시작되었지만, 재앙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이 안 될 수준.
검과 주먹이 부딪칠 때마다, 그 충격의 여파로 하늘이 찢어지고 바닥이 갈라져 천지가 뒤흔들렸다.
“그 악마는 스스로를 ‘구시온’이라고 소개했지.”
구시온은 어떤 의미로 다른 악마들과는 다른 몹시 특별한 악마였다.
고위계의 악마들은 모두 강력한 고유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
대표적인 예로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는 강력한 힘이었던 아스타로스의 ‘소멸의 겁화’처럼 다른 악마들 또한 그보다 뛰어나거나, 뒤떨어지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인간들에게는 터무니없이 위협적인 능력들이다.
다른 고위계 악마들과 달리, 구시온은 그 어떠한 특수한 고유 능력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구시온의 시작은 보잘것없는 하위계의 악마.
아무런 능력도 갖추지 못했고, 힘도 그렇게 강력한 것도 아니었던 악마는 인간들을 죽이고 영혼을 흡수하여 힘을 축적하였고 그것을 기반으로 인간들이 사용하는 ‘기술’을 흡수하여 성장했다.
그리하여 더 많은 인간을 죽이고, 더 많은 기술을 흡수하고, 고위계의 악마로서 격을 갖추게 된 구시온이 동족인 악마들 사이에서도 별종의 취급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
구시온의 고위계 악마로 성장하는 과정까지는 시에테가 알 길이 없었지만, 적어도 목숨을 건 사투 속에서 그녀는 구시온의 기술을 높게 평가했다.
“내가 졌던 악마는 그 악마가 처음이었으니까.”
지구에 모습을 드러내어 들끓고 있는 몬스터들도, 그 어떤 악마들도 감당해낼 수 없었던 시에테의 기술을 처음으로 막아낸 구시온은 시에테가 처음으로 만났던 고위계의 악마였으며, 이길 수 없었던 유일한 벽으로 남게 되었다.
“스승님의 검으로도…. 이길 수가 없었나요?”
그것은 어떤 의미로 굉장히 무례하여 물어보기에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은현의 그 질문 의도를 알고 있었던 시에테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기술은 호각이었다고 한다면, 믿을 테냐?”
“믿습니다.”
은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시에테는 그 누구도 따라잡지 못한 최고의 검사였고 은현의 목표인 검사이기도 했다.
그녀의 기술과 힘에 대해 의심을 할 리가 없다.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해오는 제자의 신뢰에 시에테는 웃음을 지어보였고 와인을 음미했다.
“기술의 차이는 호각이었지. 하지만 나는 졌다.”
애초에 구시온이 사용하였던 무(?)의 시작점은 인간들의 기술이다.
그 기술들을 흡수하고 모방하여 자신만의 무(?)를 만들었다고 한들, 같은 기술의 영역에서는 시에테의 검술이 밀릴 수 있을 리가 없을 터.
그렇다면 그곳에 다른 요인이 작용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옳다.
은현은 곧바로 그 요인을 입에 담았다.
“종족의 차이…인가요?”
“그렇다.”
시에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심플하면서도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는 두 종족 간의 차이.
그것은 인간과 악마라는 종족이라는 차이가 만들어낸 신체 능력의 격차가 시에테와 구시온의 사이에는 승패를 가르는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했다.
물론 인간들 사이에서도 유독 강력하고 튼튼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이 나타나는 반면, 그러지 못하는 인간이 있는 것처럼.
악마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차이는 존재하였으나 인간들보다 그 편차가 더욱 심하다.
구시온의 경우에는 압도적으로 강인한 육체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축에 속해있었다.
“결국, 호각이었던 싸움도 지속이 되고 데미지가 누적될수록 점점 나에게 불리한 형세로 이어졌지.”
호각의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구사하는 그릇이, 육체가 너무도 가련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결국 시에테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시에테의 주먹이 꽉 쥐어지며 작게 떨렸다.
“현아.”
“…네.”
“너는 나를 죽였던 그 악마에게 보복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겠지?”
“…그렇습니다.”
은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의 검술을, 가르침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때의 자신은 너무나도 무력했고 한심했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원망하며 언젠가 시에테를 죽였던 그 악마를 죽일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반드시 그 악마를 죽이자고 다짐했었던 적이 있었다.
한때는 불멸자의 삶과 시간이 너무도 오래되어 정신이 피폐해지면서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며 평온을 찾았었던 적도 있었지만.
여신들의 노력으로 부활하고 여신의 제약이 풀려 개인의 감정을 우선하게 된 지금의 은현은 그 원한의 감정을 다시금 떠올리며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그러지 마라.”
“…네?”
하지만 시에테는 그러한 은현의 그 마음을 거부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계획을 말리는 스승을 앞에 두고, 은현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설마 거절을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몹시 당혹스러운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평소였다면 절대로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았을 은현의 그 표정은 20대 시절 자신을 가르쳤던 시에테에게만 보일 수 있는 유일한 표정.
시에테는 제자의 그 마음을 대견하고 고맙게 여기면서도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 악마에게 복수하는 것은 너의 역할이 아니다.”
“…….”
“그건 나의 역할이지.”
“아.”
시에테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뒤늦게 깨닫고 작게 탄식했다.
“그 악마는 확실히 나보다 강했다.”
종족의 차이 때문에, 우월한 신체 능력의 차이 때문에 졌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비겁한 변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의 검술이, 그 악마의 무(?)보다 강했다면, 내가 지지는 않았겠지.”
그 불리한 신체 능력의 차이를 뒤집고도 남을 만한 압도적인 기술의 격차가 시에테에게 있었다면, 그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시에테였으리라.
“이번엔 반드시 이길 것이다.”
현재 모든 악마들은 은현의 노력으로 인해 만들어진 통로를 통해 마계로 추방을 당한 상태.
그 싸움 이후로 몇백 년이 지난 지금, 마계에 있을 터인 구시온은 지금보다 더 강해져 힘을 축적했으면 했지, 절대 약해지진 않았으리라.
그것을 감안해서라도 시에테는 다시 한번 이루어질 재전에서 자신의 승리를 다짐했다.
“그러니까 그 악마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너의 역할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역할이지. 네가 나설 자리는 없다.”
취기가 오른 듯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천장을 응시하고 있는 시에테의 얼굴은 누군가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자의 증오심이 깃든 얼굴이 아니다.
검성이라는 칭호를 거머쥐며 검사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와 있었던 자신에게 새롭게 주어진 과제를 직시하고, 지금에서 더 성장할 수 있는 자신의 앞날을 기대하고 있는 그녀는 무인(?人)이었다.
자신을 한 차례 죽였던 상대에 대해 두려움이나 공포, 분노 등의 감정을 품지 않고, 오직 자신이 뛰어넘어야 할 벽으로서 생각하고 있는 그녀의 멘탈은 터무니없이 단단하다.
아직 더 성장할 수 있다.
뛰어넘어야 할 목표가 있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살아있는 몸이 있다.
그것만으로 시에테에게는 충분했다.
“…그렇군요.”
오직 검사로서, 무인(?人)으로서 자신의 성장을 추구하고 있는 스승의 모습을 보고 은현은 안도했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자신의 스승은 어디까지나 검술만을 생각하는 단순한 사람으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자각했다.
“그리고 너도 도와라.”
“…예?”
은현은 느닷없이 자신에게 알 수 없는 요구를 해오는 시에테를 보며 반문했다.
“내 검술의 상대가 되어줄 만한 마땅한 자가 없구나.”
“…제가요?”
“그래.”
“아니. 갑자기 어째서….”
“성장이라는 것이, 어떻게 혼자만으로 이루어질 수가 있겠느냐. 아니면….”
시에테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은현을 노려보았다.
“설마 나와 검을 섞는 것이 싫은 것이냐?”
“그, 그럴 리가요!”
은현은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고 황급히 답했다.
“그게…스승님께선 저를 가르치실 땐 단 한 번도 저와 대련을 해주셨던 적이 없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거야 네 녀석의 수준이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이지.”
“갑자기 뼈를 때리시니까 좀 아픈데요….”
“그때의 너는 성취가 느렸던 건 물론이고, 무언가를 받아들이는데 기본적인 준비도 부족한 상태였지.”
체술의 기초만을 배워온 상태로 시에테를 찾아왔던 은현은 정말로 검술의 ‘ㄱ’자도 모르는 초짜에 가까워 시에테가 대련을 통해 무언가를 가르쳐도 그것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은현은 성장했다.
시에테는 그것을 두 번의 기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데스나이트가 되었었던 자신과 싸움을 통해서.
두 번째는 신격을 갖추기 위한 시련 속에서 몇백 번이고 죽음을 맞이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꺾었던 그 경험을 통해서 시에테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은현을 자신의 제자이면서 한 명의 검사로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물론 알고 있다. 그때 네가 나를 꺾기 위해서 편법을 사용했다는 것쯤은,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으냐.”
검성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는 머나먼 미래의 자신을 자신의 육체에 빙의시켜 시에테를 쓰러뜨렸던 것은 확실히 편법이었지만, 이 세상은 모든 조건을 동등한 상태로 두고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공평하지가 않다.
자신과 구시온 사이에 있었던 그 격차 또한 그러하다.
“나는 지금 나만큼이나 강력한 강자가 필요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알겠습니다.”
은현은 스승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굉장히 기쁘면서도 앞으로도 몹시 바빠질 것만 같은 자신의 일정에 복잡한 생각을 품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아니. 당장 필요한 것은 따로 없다. 필요한 것들은 이미 네 아내라는 녀석이 모두 준비를 해주었지.”
은현은 곧바로 자신을 시에테가 기다리고 있던 이 방으로 안내해준 엘레노아를 떠올렸다.
“…엘레노아가요?”
“그래.”
에린을 혼내고 있던 시에테와 엘레노아의 첫 만남은 그렇게 좋지는 못했지만, 그 상황이 에린의 말실수로 벌어졌다는 것과 시에테가 은현의 스승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엘레노아의 대처는 몹시 신속했다.
곧바로 모그라프령 영지 내부에 그녀가 한동안 머무를 수 있는 숙소를 제공했고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 필요한 것들을 일사천리로 준비해주었다.
“나는 이곳에 머무르면서 그 마수들이라는 것들을 토벌하면서 되살아난 이 몸에 조금씩 적응을 해나 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내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신분을 보장해주고 당분간 생활하는데 필요한 돈도 받았지. 그리고 모험가라는 직업을 소개해주었다.”
모험가로서 활동하면서 마수들을 토벌하여 보상을 받는 것은 막강한 검술을 가지고 있는 시에테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자신의 바람과 계획을 효율적인 방향으로 재빠르게 제시하여 준비한 엘레노아의 배려가 시에테는 제법 마음이 든 듯 보였다.
“그 버르장머리 없는 여우 꼬마와는 달리 제법 배려심은 물론 수완도 좋은 처자가 아니더냐.”
기분 좋은 듯 늘어놓는 엘레노아의 칭찬을 들은 은현이 순간 멈칫하며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시에테를 보았다.
“…혹시 에린이 무언가 실수를 저질렀나요?”
“아.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그 꼬마. 네 녀석은 도대체 제자 교육을 어떻게 한 것이냐!?”
순간 에린에게 들었던 모욕적인 말을 떠올린 시에테가 와인으로 인해 오른 술기운으로 얼굴을 붉히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
은현은 작게 탄식하며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자각했다.
과거 그녀를 모시면서 쌓인 자신의 경험이 지금 ‘지뢰를 밟았다’라는 것을 경고했다.
“다짜고짜 나를 아줌마라고 했단 말이다! 네 녀석의 제자가!”
“…….”
이후로 은현은 시에테의 분노가 담긴 술주정에 약 세 시간 가까이 시달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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