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51화 (534/730)

〈 551화 〉 551. 부활과 재회(1)

* * *

“…….”

엘레노아는 속으로 적잖게 당황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정체불명의 여성이 에린을 훈계하고 있지를 않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은현의 이름이 언급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동요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얼굴을 굳히고 다시 물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당혹스러운 상황이에요.”

“흐음.”

여성은 팔짱을 낀 채로 엘레노아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듣기 위해 계속 이야기해보라는 눈짓을 보냈다.

페르니아스 왕국 안에서 왕가 다음으로 큰 권력을 쥐고 있는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의 사람을 앞에 둔 여성의 태도는 몹시 오만불손했지만, 엘레노아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신분이나 권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태도를 관철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일리아나나 은현 같은 면모가 돋보였다.

따로 대화를 나누거나 정체를 파악하지 않아도, 엘레노아는 그녀가 평범한 인간이 아닌 강자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먼저 저희 에린이 무슨 잘못을 하였는지부터 사정을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꽤나 정중한 태도로 사정을 물어오는 엘레노아의 말이 그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는지, 여성은 흘끗 뒤를 보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어 올려 벌을 서고 있는 에린을 불렀다.

“꼬마.”

“네. 넵!”

이제는 애로 불릴 나이도 지난 지 한참이었지만, 에린은 자신을 부르는 말이라는 것을 곧바로 깨닫고 황급히 답했다.

“네 입으로 직접 설명해라.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네가 무슨 잘못을 하였는지.”

“으…!”

여성의 말을 들은 에린은 벼락을 맞은 것만 같은 얼굴로 몸을 움찔 떨어야만 했다.

“…에린?”

“힛…!”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에린의 이름을 부른 엘레노아의 모습은 마치 철없는 여동생을 나무라는 언니와도 같다.

“그, 그게….”

벌을 서고 있는 에린의 두 동공이 거칠게 흔들리며 지진을 일으켰고, 목소리는 덜덜 떨리며 추궁해오는 엘레노아의 시선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피했다.

차마 그 시선을 버텨내지 못한 에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이분은…. 현이의 스승님이세요….”

“…스승?”

엘레노아는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은 표정으로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홱 돌렸고, 여성의 얼굴을 재차 확인했다.

은현이 400년을 넘게 살면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들에게 많은 기술을 배워왔지만, 그가 정식으로 무언가를 계승하여 스승으로 모셨던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이윽고 눈앞의 여성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시에…테님…. 이신가요?”

“나를 알고 있나?”

“그 사람에게서 들었으니까요.”

여성의 정체를 알게 된 엘레노아가 지금까지 애써 동요를 드러내지 않고 있던 표정을 풀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이…이 소식을 들으면 좋아하겠어요.”

약 400년도 더 된 과거에 사망했던 그녀가 어떻게 되살아났는지에 대한 경위는 따로 파악할 것도 없었고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은현이 어떠한 얼굴을 할지 기대가 될 뿐이었다.

“하, 그놈이?”

“그럼요.”

시에테는 피식 웃으며 그럴 리가 있냐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엘레노아는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 사람은 시에테님을 기대하고 계셨어요. 최근까지도 조금이라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시겠다고 다시 만날 날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계셨으니까요.”

“…….”

“다음에 만났을 때는 제자가 아니라 검사와 검사로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셨다고 들었어요.”

“흥….”

시에테는 멋쩍은 듯 고개를 돌리며 엘레노아의 시선을 피했다.

신계에서 시련을 진행하였을 때 했었던 말은 은현에게 있어서 제법 기쁜 말이었던 듯했다.

“그런데…. 도대체 에린이 시에테님께 무슨 잘못을…?”

다시 에린에게로 시선을 옮겨 묻자, 에린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고했다.

“제, 제가…. 그것도 모르고 이분을 아줌마라고….”

“…….”

생각보다 하찮고 별 볼 일 없는 이유였지만, 엘레노아는 에린의 그 실언을 가볍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이쪽에도 최근에는 몹시 누그러지긴 했지만, 나이 쪽으로는 아직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곤 하는 일리아나를 생각하면 이것은 확실히 누군가에게는 실언이 맞다.

“저희 애가….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엘레노아는 곧바로 시에테를 향해 몸을 돌리고 허리를 숙여 정중한 사과를 보냈다.

“흠…. 그래.”

딱 보기에도 고귀한 신분의 여성이 자신의 몸을 굽히며 정중한 사과를 보내오는데, 이것을 매몰차게 거부할 정도로 시에테도 모난 성격을 가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분이나 다른 차이를 떠나서 은현의 아내로서 그를 가르친 스승인 자신을 존중하고 있는 의사를 보이는 것이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정중하군.’

철이 없고 생각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단순한 성격을 가진 에린과는 달리 격식과 예의를 갖춘 엘레노아의 사과를 받아들인 시에테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현재 그 사람은 이곳에 바로 올 수는 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실 수는 없을까요?”

“상관없다. 어차피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시에테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되살아난 것도 모자라 전성기의 육체를 가지게 된 지금 자신에게는 은현과의 재회도 기대가 되었지만, 살아있는 이 감각을 천천히 느끼며 만끽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리고 쓸데없이 성실한 그놈의 성격상, 이곳에 직접 오지 않고 대리를 보냈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또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테지.”

시에테의 추측이 정확하다는 듯 엘레노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까지의 경위를 대강이나마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건 나보다는 이 녀석에게 듣는 게 훨씬 빠르겠지. 꼬마. 일어나라.”

“넵! 앗…!”

시에테는 흘끗 에린을 바라보며 벌을 멈춰주었고, 에린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내리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몇 시간을 가까이 무릎을 꿇고 있었던 탓인지 생각처럼 몸이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다, 다리가 저려요….”

“에린. 아까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귀들도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것 같던데, 시에테님이 되살아나신 것과 연관이 있니?”

에린은 다리를 조금씩 움직이며 풀어주고 사정을 묻는 엘레노아를 보며 말했다.

“으음…. 네.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한꺼번에 설명하려니 머릿속이 복잡해진 에린이 머뭇거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방안으로 들어와 말을 걸었다.

“제가 설명을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세 여성의 대화에 난입한 것은 갑옷의 쇠가 부딪치는 쇳소리와 함께 등장한 젊은 남성의 목소리다.

“당신은….”

엘레노아의 눈에 들어온 남자의 갑옷은 굉장히 익숙한 갑옷이다.

그것은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는, 에린이 가진 신수의 마력으로 구현된 백귀가 착용했던 갑옷.

하지만 평소와 달리 청염으로 불타오르지 않고 평범한 갑옷처럼 보이는 백귀의 무장은 몹시 고요했다.

엘레노아가 생동감과 함께 느꼈던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었다.

거기에 더욱 놀라웠던 것은 투구의 착용을 해제한 검사 백귀의 맨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

“와아…. 백귀님의 얼굴 처음 봐요.”

금발의 머리카락을 가진 20대 중후반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검사 백귀의 맨 얼굴은 그를 소환하여 부리고 있었던 에린조차도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놀람과 신기함이 공존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하. 저도 주인께 이렇게 살아있는 제 얼굴을 보여드릴 수 있는 날이 오다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을 싸움터에서 영혼만으로 투쟁을 이어왔던 자신이 이렇게 생전의 육체를 다시 가지게 되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재차 소개하겠습니다. 현재 모든 백귀들을 통솔하고 있는 백귀. 아서 브렌델이라고 합니다.”

“아서 아저….”

“아서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주인이시어.”

“아, 아서….”

에린의 말을 끊고 재차 자신을 부를 호칭을 강조하는 아서의 말투에서는 묘한 강박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을 아줌마라고 불렀던 시에테가 크게 발끈을 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똑같은 실수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에린은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저희는 주인의 힘으로 완벽하게 되살아난 것 같습니다. 생전에 가장 강했던 시절의 육체로.”

“…그게 가능한 건가요?”

엘레노아는 미간을 좁히며 아서에게 되물었다.

한 번 사망한 인간을 다시 되살리는 것은 현재 가장 많은 신성의 축복을 받고 있는 아니에스나 엘레노아에게도 불가능한 기적이다.

그것은 정말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자소생(死者??)’의 영역으로 가장 유사한 케이스로 망자의 시체에 혼을 억지로 정착시켜 되살리는 금기된 마법 사령술이 존재했지만.

지금 아서나 시에테의 엄연히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고 있는 살아있는 인간의 몸.

살아있는 인간의 몸이 아닌 죽은 자의 시체에 혼을 정착시키는 사령술과는 엄연히 경우가 틀리다.

“그게…. 제가 꿈을 꿨는데요.”

에린은 천천히 자신이 꿈속에서 베르단디와 베르단디의 자매 여신인 우르드를 만나 힘을 부여받았다는 신비로운 경험을 엘레노아에게 설명했다.

“그렇구나. 여신님의 힘이….”

에린의 설명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현재의 이 상황을 납득했다.

‘과거를 불러오는 힘’이라는 표현은 몹시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표현이었지만, 엘레노아는 이것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은현을 알고 있기에 이해하는 데에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가 무기를 소환하거나, 현재 던전 내부에 건축한 주택도, 취미의 일환으로 옵티머스를 비롯한 다양한 골렘과 발명품들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자재들을 충당했던 것이 이 힘이었을 터.

그렇다면 에린이 과거에서 불러온 것은 시에테가 죽기 전, 백귀가 되기 이전 생전에 존재했었던 이들의 육체.

시에테와 백귀들의 혼을 매개로 불러낸 생전의 육체들에 자연스레 호응하여 그들의 영혼이 정착되었다면 현재 상황도 납득이 간다.

비록 부활시킬 수 있는 대상이 몹시 한정적이라는 제약이 붙기는 하지만, 망자를 죽기 전의 상태로 완벽하게 부활시킬 수 있는 이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엘레노아는 알고 있었다.

“…정말로 터무니없는 일을 저질렀구나.”

대륙에서 제일 가는 고위 사제들도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 버린 에린이 대견한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주자, 에린도 기분이 좋았는지 웃어 보였다.

“그럼 백귀 분들은 이제 영구히 이곳에 존재할 수 있게 된 거니?”

“네. 따로 소환을 해제하지 않아도 이곳에 머무를 수 있게 된 육체가 존재하니까요.”

“정말 기쁘게도…. 먹고 마시며 잠을 잘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설명을 덧붙이는 아서의 목소리에도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백귀의 상태로는 느껴볼 수도 없었던 식욕이나 수면욕을 다시 느끼게 되고 전투 이후 몸에 누적된 피로조차도 기분이 좋게 느껴질 정도.

“그래…. 그 사람도 에린의 이 성장과 소식을 들으면 굉장히 좋아할 거야.”

백귀들의 부활은 은현에게 있어 앞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계에서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시에테의 재회가 생각지도 않은 형태로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은현이라면 이 소식을 반길 것이 틀림없다.

“정말요? 현이가 좋아해 줄까요?”

“물론이지.”

“헤헤. 잔뜩 칭찬해줬으면 좋겠어요. 아! 맞다!”

에린은 칭찬을 받을 생각에 헤실헤실 웃던 차,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리고 시에테를 바라보았다.

“시에…테님…!”

“대스승이라고 불러라.”

“대, 대스승님! 대스승님께 꼭 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흥. 나 같은 아줌마에게 뭘 배울 게 있다고?”

“그, 그건 진짜로 죄송했어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적잖게 비아냥대는 투로 대꾸하는 시에테의 태도에 에린은 또 한 번 몸을 움찔하며 용서를 빌었다.

뒤끝이 얼마나 심한지 현이를 가르친 스승이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지만, 그녀가 보여주었던 검술 실력은 진짜였다.

‘이분이라면 어쩌면…!’

자신의 현재 목표를 이뤄줄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줄지도 모른다.

“꼭…반드시 혼쭐을 내주고 싶은 ‘무기’가 있어요! 저한테 조언을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흠?”

시에테은 고개를 갸웃했다.

혼을 내주고 싶다는 상대가 ‘사람’도 아니고, 고작 ‘무기’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시에테의 흥미를 끌기엔 충분했다.

“한 번 얘기해 봐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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