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6화 〉 476. 존재해서는 안 될 것(6)
* * *
“저, 저는…. 저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비히클에 의해 바닥에 고정된 소영주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필사적으로 외쳤다.
눈앞에서 맹렬히 회전하고 있는 고무 타이어는 그저 닿기만 해도 자신의 살갗을 찢어발길 것처럼 위협적이다.
자신의 얼굴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는 소영주는 몇 번이고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이자에게 들은 바로는, 너와 이 자는 비즈니스로 맺어진 협력관계였다는데?”
“그, 그건…!”
패닉 상태가 되어버린 소영주는 이미 한쪽 팔을 잃고, 정신을 잃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펠론이 이미 자신과의 관계를 불어버렸을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대답하기를 주저하는 소영주의 태도를 본 은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정답이었나 보네.”
위이이잉!
다시 맹렬하게 회전하는 비히클의 타이어가 소영주의 코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소영주가 황급히 다시 입을 열었다.
“협박당했습니다! 협박이요!”
“협박?”
“예. 예! 그렇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지 궁금해진 은현이 비히클의 행동을 중지시키고 되물었다.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소영주는 황급하게 답했다.
바로 코앞에서 멈춘 고무 타이어의 냄새와 열기에 아찔함을 느끼고 가슴의 고동은 더욱 빨라져만 갔다.
“저 마피아 놈들이…! 저를 협박했습니다! 자신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처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제 영지에 불을 지르고, 영민들을 학살하고 겁탈하겠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저는…! 저는 그 협박에 굴복해서 어쩔 수 없이 저들이 요구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명백히 꼬리를 자르겠다는 의도가 다분한 발언에 도리어 어처구니가 없음을 느낀 것은 마피아 건달들 쪽이다.
“웃기고 있네. 이 X발 새끼가!”
일제히 모여서 무릎을 꿇고 있던 무리 중에서 한 건달이 몸을 일으키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저 새끼가 하는 말 다 거짓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명이 일어서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며 욕을 했던 건달의 말에 동조하는 건달들의 숫자가 한둘이 아니다.
이내 은현의 품속에서 그의 냄새를 맡으며 행복에 젖어있던 에린이 자리에서 일어난 건달들을 노려봤다.
“앉아요.”
“…옙.”
처음의 기세와 달리, 에린의 짧은 한마디에 건달들이 쪼그라들 듯 곧바로 바닥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에린에 대해 공포의 기억이 각인된 건달들은 혹시라도 해코지를 당할까 봐 그녀의 말에 저항하지 못했다.
“에린.”
“응?”
“어때?”
은현의 물음에 에린은 소영주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내 인상을 살짝 찡그리고는 곧바로 답했다.
“거짓말이야.”
회전하는 타이어로부터 얼굴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변호했던 자신의 말이 거짓이라고 단번에 치부하는 에린을 보며 소영주가 인상을 구겼다.
“네, 네까짓 게 뭘 안다고…!”
이내 은현을 보며 다급함과 필사적임으로 가득한 호소를 내보였다.
“설마 저 어린 계집과 마피아들의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
마피아 건달들은 그렇다 쳐도, 자신을 깎아내리는 소영주의 말에 에린이 기분이 상해 소영주를 노려보며 은현의 품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움직이려는 에린의 몸을 은현이 강하게 끌어안으며 제지했다.
“네가 말한 어린 계집이라는 이 여자는 내 아내인데. 설마 내 아내를 모욕한 건가?”
“그, 그런 것이…!”
소영주는 다급함에 못 이겨 자신이 제 무덤을 팠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남자의 품에 찰싹 달라붙어서 애정을 듬뿍 표현하고 있는 저 모습을 보고 당연히 둘의 관계를 추측할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기에 결백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무심코 거친 언사를 내뱉었다.
평소의 행실이나 성격에서 나온, 그저 어리석은 행동 그 자체였다.
“히히.”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소영주와 달리, 은현의 말과 행동에서 자신에 대한 애정을 느낀 에린이 다시 기분이 풀어지며 실실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시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은현은 아까 자리에서 일어나 소영주의 말이 거짓임을 주장하며 욕지기를 내뱉었던 건달 무리 쪽을 응시했다.
“거기 너.”
“예. 예!”
은현과 눈이 마주친, 가장 먼저 일어났었던 건달이 은현의 부름에 급하게 답했다.
“이 영주의 말이 뭐가 거짓말이라는 건지 설명해 봐.”
“그것이….”
자리에서 일어난 건달은 주위의 눈치를 살짝 보았지만, 철판을 깔고 거짓말을 한 소영주의 얼굴을 보더니 괘씸함이 치밀어올라 입을 열었다.
소영주와 네슬라 사이에서 오갔던 거래에는 협박 따위는 없었다.
행위 자체는 위법이었지만, 오히려 정당한 대가와 요구가 오갔던 나름대로 합당함이 존재했다.
애초에 네슬라는 전체 규모의 70%가 아르티아 기사단에 의해 구속되면서 붕괴의 위기에 가까운 큰 쇠락을 겪고 있는 상황.
괜히 일을 키워서 은신하고 있는 위치가 들키는 것은 네슬라의 입장에서도 원하는 전개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몸을 숨기며 세력을 키우기 위한 적당한 장소를 원했고, 그 과정에서 이 영지의 소영주가 네슬라에 대량의 금품을 요구한 것이다.
쇠락하기는 했다지만, 마피아를 상대로 도리어 협박을 했던 소영주는 어느 의미로 굉장히 탐욕스럽고 부은 간덩이를 가지고 있었다.
본래라면 펠론 또한 주제넘게도 건방진 생각을 하며 금품을 요구하는 배불뚝이 소영주를 죽여버리고, 이 영지의 영민들을 쓸어버려 이곳을 점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르티아 기사단이 이곳을 알아차릴지도 모른다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안전한 쪽을 선택한 것이다.
“흐음….”
가만히 들어보니 참 웃기는 얘기였다.
페르닌에서의 소문을 들어 네슬라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그 요구를 들은 펠론과 마피아들이 조금만 더 몸을 사리지만 않았어도 소영주를 비롯한 이 영지의 영민들은 모조리 참담한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큰 피해로 몸을 사리는 마피아를 상대로 역으로 협박하여 금품을 요구하는 탐욕스러운 소영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은현은 에린을 흘끗 바라보았다.
“사실이야.”
“그렇다네?”
은현은 자신의 행동이 낱낱이 까발려진 소영주를 응시하며 말했다.
“어떻게 마피아의 말을 믿을 수가…!”
“나는 너나, 저 건달의 말을 믿는 게 아니야.”
은현이 믿는 것은 에린의 말이다.
타인의 감정을 읽어 들이는 것으로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에린의 능력은 이런 부분에서 절대적인 성능을 보인다.
은현도 ‘기억견문’을 통해서 상대방의 기억을 읽어 상대방의 발언에 대한 진위를 밝힐 수 있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기억을 모조리 읽는 것과 오로지 감정만을 읽어 들이는 것에 대한 차이는 스트레스를 비롯한 그 정신적인 피로가 남다르다.
“내 아내의 말을 믿는 거지.”
“헤헤.”
“…….”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상냥한 손길을 느끼며 헤실거리는 에린의 모습은 건물에 난입하자마자 내부를 모조리 깨부수며 난동을 부리던 아까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 갭의 차이에 모든 건달이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그런 시선으로 보거나 말거나, 에린은 그저 연인의 애정을 잔뜩 만끽할 뿐이었다.
“그럼 끝났네.”
은현은 손짓하여 소영주를 향해 앞으로 들이밀었던 타이어의 앞바퀴를 다시 회전시켰다.
위이이잉!
“안 돼…! 안 돼!”
코앞에서 회전하는 타이어에서 전해지는 공기의 떨림과 살벌한 소리가 소영주의 귓가를 직설적으로 때렸다.
그것은 이미 그것 자체로 압도적인 폭력이다.
“살려, 살려주세요!”
“그래. 살려는 줄게.”
하지만 그것이 비히클의 행동을 멈춰주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히클의 앞바퀴가 소영주의 얼굴에서 조금씩 옆으로 이동하며 위치가 옮겨졌다.
맹렬히 회전하는 타이어가 짓누르기 시작한 것은 단단히 고정되어 있던 소영주의 오른팔이다.
“크아아악!”
옷은 물론 살갗이 찢겨나가고 천천히 뼈가 갈려나 가는 고통에 전신이 비틀리고 처절한 비명을 뱉어냈다.
그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그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는 건달들이 얼굴을 굳혔다.
어쩌면 자신들이 당했을지도 모르는 잔인한 형벌이라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에린. 가자.”
“응!”
이곳에서의 용무를 마친 은현은 에린과 함께 걸터앉았던 계단에서 일어났다.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자리를 뜨는 두 남녀와 달리, 건물 안에 덩그러니 남겨진 건달들은 방치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건물을 나온 은현은 움찔 떨며 경계의 기색으로 가득해 있는 소영지의 경비병들을 바라보았다.
이 사달을 일으키고, 건물 안에서 자신들의 영주를 어떻게 하는지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인지, 경비병들의 경계는 당연했다.
“이곳의 책임자가 누구지?”
“…접니다.”
경비병 중 한 남자가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투구를 벗으며 겨드랑이 사이에 낀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은현과 에린을 바라보았다.
다른 병사들보다 연륜이 있어 보이는 그는 검문소에서 은현의 신분을 검문했던 남자다.
은현이 공작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의 얼굴에는 더 긴장이 서려 있었다.
은현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병사에게 물었다.
“곧 아르티아 기사단에서 사람이 올 겁니다. 그들에게 이 사람들을 넘기도록 하세요.”
마피아 건물의 내부는 이미 제압이 끝난 상태.
건달들은 물론이고 우두머리인 펠론이나, 그와 마찬가지로 비히클의 타이어에 갈려 한쪽 팔을 잃은 소영주를 포박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경비병들 사이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탐욕스럽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에 바빴던 영주의 악행은 이미 그들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영지의 일원으로서, 영주에게 고용된 병사로서 자신들의 상관인 영주를 포박하는 것에는 나중에 뒤탈이 없을까를 걱정하며 살짝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책임자로 나섰던 연륜이 있는 경비병 남자는 은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영민들을 착취해왔던 악행이나, 아르티아 기사단이 쫓고 있던 마피아 잔당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던 점이나.
아르티아의 기사가 와서 수사가 진행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피하지 못한다.
“그럼 이만. 비히클. 변형해.”
[명령을 수락합니다.]
은현은 짧게 말을 나누고는 바이크 위에 올라타 에린과 함께 영지를 나왔다.
영지의 외곽으로 나와 에린과 둘만이 있게 되자, 은현은 수정 구슬을 꺼내어 리오드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아르미타스 공작령에 수작질을 걸어왔던 네슬라 마피아의 잔당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던 소영주에 대한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렇군. 곧바로 그 영지에 사람을 보내도록 하지.]
“알았어.”
[고맙다. 본래 우리가 해야할 일이었을텐데.]
“겸사겸사한거야. 지금 한창 바쁘잖아.”
순전히 은현의 개인적인 화풀이를 동반한 행동이기는 했지만, 공작으로 승작이 결정되어 한창 다양한 준비로 바쁜 리오드를 배려한 의도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이득도 없이 한 것도 아니고.”
은현은 품에서 두둑한 돈주머니를 꺼내어 수정구슬 너머의 리오드에게 보여주었다.
펠론이 들고 도주하려 했던 네슬라 마피아의 비밀금고 속의 재산이다.
“절반은 우리가 먹고, 네가 원한다면 줄 수도 있지만 어떻게 할래?”
[필요 없다.]
리오드는 절대 적지 않은 금액을 조금의 고민도 없이 단번에 거절했다.
기사단의 운영자금은 국가에서, 왕가에서 나오는 돈이다.
이외의 출처가 불분명한 검은돈을 받는 것은 위법이나 마찬가지.
친구라지만 그런 돈을 개인적으로도 받는 것을 허용하는 성격도 아니다.
“그래. 공작 승계 축하 연회 준비 잘하고.”
단칼에 거절하는 친구의 대답에 은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통신을 끊은 은현은 비히클을 역 소환시키고, 다시 레토나를 소환했다.
“현아. 우리 이제 뭐 해?”
“글쎄…. 목돈도 생겼는데.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갈까?”
원래 크게 한탕을 한 날은 크게 써야 하는 법.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에린이 말을 이었다.
“좋아! 그리고 건강에 좋은 재료도 사자!”
한창 좋은 것을 먹어야 할 시기인 일리아나를 위하는 에린의 마음씨에 은현은 기특한 마음을 품었다.
“그래. 가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