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64화 (447/730)

〈 464화 〉 464. 신화를 재현하는 신의 열쇠(2)

* * *

화로 속에 몸을 던진 은현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따뜻하고 포근하다.

신격으로 보호를 받아 괜찮을 것이라는 불카누스의 확언은 정말로 사실이었다.

영혼이 소멸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점점 연해진 은현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화로 속에 들어온 기분은 마치 망망대해의 깊숙한 곳에 빠진 기분이었다.

다리는 바닥에 닿지 않고, 해류에 휩쓸린 온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만 같은 기분.

이대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자신의 권능은 완성이 되는 것일까.

그런 안일한 생각을 품고 있을 때.

까아앙!

“……!”

가슴을 때리는 무쇠의 충격에 은현이 놀라며 몸을 들썩였다.

하지만 비명은 나오지 않는다.

화로 속에 있으면서 목소리 자체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까아앙!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파악할 새도 없이, 자신의 가슴을 강타하는 무쇠의 충격은 계속해서 은현을 괴롭혔다.

이윽고 뒤늦게 은현이 깨달았다.

‘그렇구나.’

이 화로는 불카누스의 공간.

그렇다면 자신의 가슴을 강타하는 이 무쇠의 충격은 불카누스가 자신의 영혼을 제련하면서 생기는 여파다.

은현은 이 화로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을 깨달았다.

‘버텨야 해.’

훌륭한 무기라는 것은 수십, 수백 번의 반복된 망치질을 통해서 탄생하는 것.

이곳에서 지금의 자신은 인간도, 반신도 아닌, 무기로 만들어지기 위한 강철과도 같다.

까아앙!

은현은 이를 꽉 깨물고 자신의 영혼을 두들겨오는 망치의 충격을 견뎌내었다.

충격은 매우 강렬하다.

어쩌면 신격을 갖추지 못했다면 이 화로 속에서 정말로 참을 수 없는 격통에 미쳐버리며 영혼이 소멸하여 버렸을지도 모른다.

까아앙!

정신이 혼미해질 것만 같은 강렬한 충격의 이후, 은현은 자신의 영혼에 흘러들어오는 막대한 신력의 기운을 느꼈다.

자신의 영혼을 두들기며 제련해주고 있는 불카누스의 신력이다.

그 신력은 은현의 영혼 속으로 흘러들어와 어우러져, 내부를 더욱 단단하고 강인한 강도를 만들어낸다.

까아앙!

하지만 단단해지면 단단해질수록, 반복하여 영혼에 가해지는 충격의 양은 초반과 달리 매우 강해졌다.

끝을 모르고 반복되는 불카누스의 망치질은 점점 거세져만 갔고, 그것은 은현의 영혼을 더욱 제련하기 위한 과정이다.

은현은 이 제련을 악으로, 깡으로 버텨냈다.

몇 번의 반복이 이어진 것인지 셀 정신적인 여유도 없이 그저 이 고통을 감내하는 시간이 이어진 끝에.

은현의 영혼을 두들기던 망치의 제련이 끝을 맞이했다.

망망대해를 떠도는 듯한 감각을 느끼던 은현의 몸이 화로 속에서 튀어나와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축하하네.]

몽롱한 정신 속에 말을 걸어오는 신의 목소리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은현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여 불카누스의 모습을 확인했다.

“끝난…겁니까?”

[그렇지.]

화로 속에서 전혀 낼 수 없었던 목소리는 화로를 나오자마자 낼 수 있었지만, 마치 열흘 동안 수분을 섭취하지 못한 것처럼 목소리의 끝이 심하게 갈라졌다.

불카누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현의 물음에 답했다.

[기분은 어떤가?]

“…최악입니다.”

은현은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자신의 몸 상태를 느끼며 인상을 찡그렸다.

갈라진 목소리는 물론, 전신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뼈가 불타는 것 같고, 체내의 혈액들이 증발하여 근육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 같은 기분.

화로에 들어가 있을 때보다, 밖에 나온 지금이 더욱 큰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가 있는 일이네.]

“저는…제 권능은 그럼….”

[고생했네. 성공했어.]

“그렇…군요.”

은현은 최악의 몸 상태인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열쇠를 사용하려 했지만, 머릿속을 짓누르는 두통과 전신의 통증으로 생각만큼 제대로 열쇠가 사용되지 않았다.

[조금 쉬도록 하게.]

“하지만 지금 당장 사용해보고 조정을….”

[원래 화로에서 막 나온 쇠는 그 열을 식히고 마지막 공정을 거쳐야지만 진정한 무기로서 거듭나는 법이지.]

“…….”

은현은 불카누스의 조언에 반박하지 못했다.

[지금은 자네의 영혼을 천천히 회복시키면서, 완성된 그 권능과 신격, 그리고 자네의 신력을 한데 어우러지도록 만들어야 하네.]

그것이 불카누스가 언급한 ‘마지막 공정’이다.

[이것은 순전히 자네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 역할이며 내가 도와줄 수는 없는 영역이지.]

“…그렇군요.”

은현이,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다.

[그럼 이제 자네의 여신에게로 돌아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군.]

“…이런 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가게 되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준 은혜에 보답하기는커녕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도 못한 못난 모습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한다니, 정말로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하지만 불카누스는 그런 은현의 실례에도 전혀 개의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대장장이로서 매우 뜻깊은 경험을 가질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네.]

“언젠가…. 꼭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그렇게 은현과 불카누스는 언젠가 다시 만날 약속을 맺으며 작별했다.

‘베르단디님.’

다시 마음속으로 자신의 여신을 강하게 부르자, 뒤바뀐 공간은 이전까지 몇 번이고 베르단디와 살을 맞대고 있었던, 가상으로 재현된 은현의 침실이었다.

“아이는 정말…말을 듣지 않는구나. 그렇게나 걱정을 끼치지 말라고 이야기했거늘.”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은현을 흘겨보았다.

“…죄송합니다.”

설마 불카누스의 제련 방식이 그렇게 살벌할 줄은 은현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후우, 됐다.”

베르단디는 몇 번을 말해도 듣지 않는 자신의 사도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바닥에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은현을 부축하여 침대 위에 눕혔다.

이윽고 은현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베르단디님?”

“가만히 있어라. 지금 아이의 영혼을 회복시키는 중이니.”

“…네.”

베르단디는 영혼으로 연결된 자신의 사도에게 신력을 흘려보내었다.

살을 맞대거나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등의 행위보다는 효율이 낮지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은현에게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후우….”

은현은 뼈가 불타고, 혈액이 증발할 것만 같은, 격통으로 가득했던 전신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는 것을 느끼고 안도의 한숨을 토해내었다.

어쩌면 지금이라면 자신의 권능인 열쇠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생각을 읽힌 듯 상체를 끌어안고 있는 베르단디에게 등짝을 찰싹 얻어맞았다.

“지금은 회복에만 집중해라.”

“…네.”

은현은 어쩔 수 없이 여신의 잔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많은 사람의 대기열로 북적이고 있는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관문을 지키고 있던 위병들은 오늘도 매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공작령의 내부로 유입되는 인구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고, 당연히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영지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관문에서 검문 절차가 한창이다.

“들어가도 좋습니다!”

하지만 유독 바쁜 일거리를 소화하고 있는 위병들은 현재 정신없는 하루를 맞이하고 있는 와중의 한창이었다.

“일렬로! 차례대로 입장해주세요!”

끝을 모르고 줄줄이 들어오는 사람들의 행렬은 매우 다양했다.

의뢰를 마치고 영지로 복귀하는 모험가들이나, 다양한 상품들을 싣고 영지 안에서 물건을 팔기 위한 상인들.

그리고 그 행렬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난민들이다.

허름한 복장들과 오랜 시간을 노숙과 이동으로 체력을 소비해 초 최해진 얼굴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여 깡마른 몸들은 기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큰 인구수를 자랑하는 아르미타스 영지에서 검문소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숫자는 거의 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그것이 24시간의 하루를 기준으로 내린 추정의 숫자일 뿐, 거의 천 명이 넘는 대규모의 행렬로 꽉 들어선 검문소는 현재 교통 체증으로 인해 마비 상태에 가까웠다.

모험가와 상인들을 비롯한 영지로 들어오는 다른 이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다수의 위병을 더욱 지원한 현재의 검문소는 시끌벅적한 도떼기시장과도 같았다.

“이곳이….”

검문소의 위병들에게서 검문을 통과하고 영지 안으로 들어오게 된 티즈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내부를 응시했다.

굉장히 깨끗하게 잘 정비된 도로와 그 도로 위를 뛰어노는 아이들.

인산인해로 북적이는 영지의 내부는 그 숫자에 비해서 질서가 매우 잘 잡혀있는 듯 보였다.

“…대단하군.”

치안은 잘 잡혀있었고, 어린아이들이 밖에서 마음껏 떠들고 활기차게 놀고 있다.

길거리는 밝은 분위기로 가득 차 있으며 거리를 걷는 영지민에게서는 하루하루를 넘기기 위한 고달픔이나 궁핍함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렌디르 왕국의 소속으로 소영지를 경영해본 적이 있었던 티즈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이상적인 영지 그 자체였다.

“영주님. 여기는….”

티즈의 뒤를 따라온 한 어린 난민 소녀가 티즈와 같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아르미타스 공작령을 보고 중얼거렸다.

“마치 천국 같아요.”

“…그렇구나.”

티즈는 동의한다는 듯 난민 소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을 가득 메우는 영지의 길거리는 활기로 가득 차 있다.

어린 소년 소녀들이 밖으로 나와 안심하고 웃으며 뛰어놀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은 티즈나 그와 함께 입성한 난민들에게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루하루를 넘기기 위한 고단함과 궁핍함이 가득한 표정이 아니라, 웃음으로 가득한 밝은 활기가 가득하다.

“…….”

“영주님?”

“마리. 나는 이제 영주님이 아니다.”

티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손을 움켜잡은 가녀린 소녀의 말을 부정했다.

나라에서 부여받은 영지를 버리고, 영민들과 함께 도망쳐 난민의 신세를 이어가던 자신이 어째서 아직도 영주라는 칭호를 불리며 살 수가 있을까.

“으음? 하지만 영주님은 영주님이에요.”

마리라는 소녀는 티즈의 그 복잡한 심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마리는 부모를 잃고, 갈 곳을 잃은 고아로 질 나쁜 이들에게 걸려 노예의 신세를 지게 된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가녀린 소녀였다.

티즈는 돌고 돌아 일손이 항상 부족했던 티즈의 영지에까지 팔려왔지만 나름의 나쁜 대우를 받지 않고 농노로서 생활을 이어나갔던 그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구나. 많이 힘들었지?”

한창 좋은 것을 많이 먹고 자라야 할 어린 소녀는 과도한 행군으로 인해 잘못하면 부서질 것만 같은 가느다란 팔다리와 허름한 옷을 입고 있다.

마리라는 어린 소녀뿐만이 아니다.

티즈는 자신의 영민들 전체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지금까지 해왔던 고생 속에서 어떠한 희망의 돌파구 또한 찾을 수 있었다.

“내 선택은 옳았구나.”

렌디르 왕국이 멸망하고, 영민들을 데리고 곧장 이곳으로 도망쳐온 선택은 정답이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 확신은 지금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한 메이드 여성으로 더욱 굳어졌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티즈님.”

기다란 메이드의 치맛자락의 양쪽을 살짝 들어 올려, 우아한 인사를 건넨 릴리의 행동에 티즈도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굽혔다.

“오랜만이오. 릴리.”

“고개를 들어주세요.”

“그럴 수는 없소. 그대는…. 나의 은인이오.”

“티즈님과 티즈님의 영지에 속해 있는 영민들을 구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신 분은 제가 아닙니다. 저의 주인님이시죠.”

릴리의 말에 티즈는 곧바로 한 남성을 떠올렸다.

릴리와 함께 자신의 영지를 방문하여, 릴리의 어머니의 유품과 편지를 간직해두고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며 임종을 지켜주었던 것에 큰 감사를 표했던 백은발에 적안의 남성.

“그대의 주인이자, 남편인 그분에게도…. 언젠가 꼭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소.”

“물론 전해드리겠습니다.”

릴리는 은인이나 다름이 없는 티즈에게 기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

티즈를 믿고 따라와 준 그의 영민들의 숫자는 약 천 명이 넘는 숫자의 대규모다.

이 숫자를 단번에 난민으로 수용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티즈는 릴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미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영주님께서는 티즈님과 티즈님의 영민들을 모두 수용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네.”

재차 확인을 해보았지만, 티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계속 지었다.

릴리의 말을 들은 티즈의 영민들 또한 술렁이며 소란스러워지려 하자, 릴리는 티즈에게 다가왔다.

“일단 난민들이 쉴 수 있는 임시 거처를 마련해두었습니다. 엘빈? 에린?”

“그래.”

“응. 언니.”

릴리의 부름에 두 남녀가 반응하며 대답했다.

“난민들의 인솔 부탁할게.”

“그러지.”

“응. 자자! 여러분 저를 따라오세요!”

손뼉을 짝짝 치며 주위를 끌어모으고 난민들을 인솔하기 시작하는 두 남녀와 병사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릴리는 다시 티즈에게 말을 이었다.

“티즈님은 곧바로 영주님이 계신 공작 저택으로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네. 렌디르 왕국이 어떻게 해서 멸망하게 되었는지, 그 자세한 경위를 파악하고자 하십니다.”

겨우 소영지 하나를 경영하는 소영주인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하지만 티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쪽도 티즈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을 터.

그런데도 렌디르 왕국 쪽에서 직접 넘어온 사람의 증언은 매우 귀중한 정보이다.

적어도 자신과 천 명의 영민들을 수용하기로 결정해준 것에 대한 은혜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알겠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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