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3화 〉 463. 신화를 재현하는 신의 열쇠(1)
* * *
베르단디와 은현만의 공간.
신계에 재현된 은현의 방안에서, 은현과 베르단디는 몇 번을 반복하며 서로의 몸을 겹쳤다.
그 횟수는 이내 두 자릿수를 넘어서고, 앞 자릿수가 1을 넘어 2가 되고, 3이 될 때까지.
질리지도 않고 서로의 몸을 탐한다.
“후우….”
작은 탈력감을 맛보던 은현이 침대 위에 풀썩 드러누웠다.
이윽고 함께 누워있던 베르단디의 상체를 꽉 끌어안으며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여신의 감촉이 얼굴을 간질였다.
“후후, 이럴 땐 아이는 정말 아이 같구나.”
마치 어린 아들이 어머니의 품을 강하게 요구해오는 것만 같아, 베르단디는 미소지었다.
여신은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어오는 은현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꼭 끌어안아 주었다.
“…일하러 가기 싫습니다.”
이 시간이 끝나면 은현은 서서히 갖춰진 자신의 신격을 바탕으로 영혼에 각인되어있는 자신의 권능을 강화하러 도데카테온을 찾아가야만 한다.
한 번 살을 맞댄 영향인지, 은현의 마음속에 게으른 감정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이래서 일이 다 끝난 뒤에, 베르단디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건데….”
“그랬구나.”
베르단디가 그런 은현의 마음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이야.”
“네.”
“나는 지금 이렇게 아이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아이가…너무 힘들어 보였으니까.”
“…….”
은현은 자신이 그 정도로 죽을상을 하고 있었나 싶은 생각을 품으며 곰곰이 과거의 자신을 되짚어 보았다.
여신과 사도로서 은현과 영혼으로 연결된 베르단디는 은현의 표면 의식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럴 필요도 없이 그의 얼굴을 보고 생각을 읽었다.
“지금 ‘내가 그렇게 심했던 걸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느냐?”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는 추궁에 은현이 당황하며 답했다.
“네, 네.”
“아주 심한 얼굴이었지. 요즘엔 그런 면이 많이 나아졌지만, 아이는 아이의 몸을 너무 막 쓴다.”
그것은 은현의 나쁜 버릇 중 하나다.
신체 일부가 잘리거나 짓뭉개져 결손이 되더라도, 간단히 시간 역행을 통해서 본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베르단디가 부여한 권능의 일부는 은현에게 아주 큰 혜택을 가져다주었지만, 장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리스크가 적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무리를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부여한 권능으로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항상 베르단디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죄송합니다.”
그 시련 속에서는 그렇게라도 해서 무리를 이어나가는 것이 정답이었다는 것은 은현의 생각도 틀리지는 않았지만, 여신의 걱정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 얼굴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게다가 일리아나의 경우에는 은현의 이런 행동이나 얼굴을 베르단디만큼이나 싫어한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은현은 베르단디의 그 충고와 우려를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여신의 살결과 향기를 맛보며 마음의 치유를 얻고 몸을 일으켰다.
“가는 것이냐?”
“네.”
알몸의 베르단디가 은현을 올려다보자, 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베르단디님.”
“나야말로 오랜만에 아이와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즐거웠다.”
은현을 따라 몸을 일으킨 베르단디가 은현의 등을 꼭 끌어안았다.
풍만한 가슴이 등에 밀착되어 여신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왔다.
그 온기를 잠시나마 느꼈던 은현은 베르단디에게 말했다.
“다녀올게요.”
“그래. 다녀오너라.”
베르단디와 작별을 마치고 옷을 모두 갖춰 준비를 마친 은현의 주위 배경이 뒤바뀌었다.
베르단디가 은현을 다시 도데카테온으로 전이시켜준 것이다.
[왔군.]
뒤바뀐 은현을 반긴 것은 아니나 다를까, 유피테르다.
베르단디의 공간에 비하면 꽤 웅장한 신전의 안, 커다란 왕좌에 앉아있던 유피테르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은현의 상태를 유심히 살폈다.
시련을 마치고 녹초의 상태로 베르단디에게 소환되었을 때보다, 현저히 많은 신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
그 원인이 다름 아닌 그의 여신과 살을 겹친 것 때문이라는 것을 곧바로 파악했다.
[흐흐.]
“…….”
살짝 비웃는듯한 유피테르의 시선에 은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보나 마나 그 커다란 가슴 속에 얼굴을 묻고 침대에서 뒹굴거리겠지.
마치 ‘거봐? 내가 뭐랬어?’라는 의기양양한 시선을 보내오는 것이 너무나도 짜증이 났다.
유피테르의 그 시선에 아니꼬움을 느낀 은현이 말을 걸었다.
“뭘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감히 도데카테온의 왕이나 다름없는 유피테르에게 보이는 한없이 무례한 태도였지만, 은현은 이제는 이런 것으로 유피테르가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런 근엄함과 권위를 중시하는 성격을 지녔다면, 초면에 베르단디의 몸은 어땠냐는 성희롱적인 질문을 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은현의 그 무례한 태도에 피식 웃음을 보인 유피테르가 답했다.
[신력이 더 진해졌군.]
“…….”
강해지거나, 많아졌다는 표현이 아닌, 더욱 진해졌다는 표현을 고른 그것조차도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작게 한숨을 내쉰 은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혈색도 좋아 보이고.]
“…네.”
[개운해 보이는 게 아주 좋은 시간을 보냈나 보군.]
“아,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뭡니까.”
결국, 참지 못하고 은현이 물었다.
계속해서 의미심장한 뜻을 내포한 말을 돌려 말하던 유피테르가 인상을 찡그리는 불손한 은현의 태도에 실없는 웃음을 보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여신의 가슴은 어땠나?]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그것보다.”
이대로 가다가는 유피테르의 페이스에 곧이곧대로 말려들 것 같아, 은현은 억지로 화제를 돌렸다.
“저는…이제 신격이 갖춰진 겁니까?”
[흠.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
은현의 진지한 물음에 말장난을 계속 치던 유피테르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너의 영혼은 틀림없이 ‘반신(半?)’에 걸맞은 격으로 향상되었다.]
“…….”
그렇게 확언을 받았음에도 본인이 느끼기에 은현은 별달리 달라진 것이 없었다.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가 보군.]
“그렇습니다.”
[그럼 곧바로 확인을 해보도록 해라.]
“확인이라 하시면?”
[너의 목적은 제대로 된 신격을 갖춤으로써 네가 가지고 있는 권능을 제대로 완성하기 위함이었다지?]
“맞습니다.”
은현의 본래의 목적은 아직 미완성에 불과한 자신의 권능, ‘역사를 재현하는 신의 열쇠’를 좀 더 완전한 상태로 가공하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가지고 구전과 전승으로 이어진 전설의 무기들이 아닌, 신화를 가지고 있는 신의 무구들을 재현하기 위한 열쇠.
은현이 최종적으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 권능의 제련을 직접 해보는 것으로 확인해보면 가능할 일이지.]
“…….”
이전에 은현이 권능을 완성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의 격이 부족했기 때문.
하지만 이제 완전한 신격을 갖추게 되었다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
게다가 이번에는 은현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도와줄 지원자도 존재한다.
[드디어 자네에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차례가 왔군.]
“불카누스 님.”
은현이 어느샌가 신전의 내부에 나타난 불카누스에게 인사를 전했다.
[그럼 곧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유피테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가를 내렸다.
또다시 뒤바뀌는 주위의 배경이 일그러지고 재구성된 곳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대장간이었다.
“이곳은….”
하계에서 보았던 평범한 대장간이 아니다.
은현의 눈에 보인 것은 시야를 가득 채우는 하나의 화로다.
“…화로?”
그것도 평범한 화로가 아닌, 평범한 인간 남성의 체구보다 약 서너 배가 넘는 크기의 거대한 화로.
화로 안에서 불타오르는 새하얀 불꽃의 후끈한 열기가 가까이에 있는 은현을 덮쳐왔다.
“…아프지 않아.”
‘뜨겁다.’라는 감상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화상을 입을 정도로 ‘아프다.’라는 감각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성화(?火)’일세.]
“성화…입니까?”
[신력을 불태우며 끝없이 불타오르는 불꽃이지.]
은현의 옆에 서 있던 불카누스가 성화가 불타오르는 거대한 화로의 앞에 서서 손을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뜨겁지 않으십니까?”
[무엇을. 이 불꽃을 일으킨 신력은 나의 일부나 다름이 없거늘.]
“아.”
은현은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 놓인 거대한 화로는 불카노스의 일부나 다름이 없는, 그가 가진 또 하나의 거대한 신의 무구다.
[지금부터 자네는 이 안에 들어가게 될 걸세.]
“이 안에…제가 직접…?”
[그렇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불카누스의 말에 은현은 얼굴을 굳혔다.
[나는 이 화로에 들어간 자네의 영혼을, 그리고 영혼에 각인된 자네의 권능을 완전하게 제련하여 완성할걸세.]
그것을 위해서 저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라니.
아니, 애초에 아프다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카누스가 저 화로 속에 몸을 던지라는 말을 할 리가 없었다.
‘괜찮겠지?’
그렇게 은현이 자기 자신을 설득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보통 인간의 영혼이라면, 이 화로 안에 몸을 던지는 순간부터 영혼은 성화의 기운에 휩쓸려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곧바로 소멸해버리겠지.]
“…….”
멘탈을 굳게 잡으려던 은현의 의지가 강하게 흔들렸다.
[하하,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게.]
“…그 설명을 듣고도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는데요.”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영혼의 소멸’을 의미한다.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하고, 그 영혼이 명계에 도달하여 천국행과 지옥행의 판결을 받고, 많은 절차를 통해 다음 생의 윤회로 거쳐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자체에서 자신의 영혼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리며 존재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
은현은 침을 삼키며 불카누스의 설명을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지금의 자네는 다르네. 완전히 갖춰진 신격이, 자네의 신화가 그대의 영혼을 보호 할 테니.]
“…….”
권능을 완벽히 제련하기 위해서 완전한 신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이것을 위함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은현은 불카누스의 설명을 듣고 자신의 앞에 놓인 거대한 화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자칫 잘못한다면 그대로 영혼의 소멸.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불카누스의 장담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과 이것은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다.
마치 성공 확률이 90%나 되는 확률의 수술을 권하는 의사의 ‘괜찮아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이랄까.
혹시라도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작은 가능성에 불안함을 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은현은 그 불안을 떨치며 결정을 내렸다.
“하겠습니다.”
이미 은현은 자신의 권능인 열쇠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영혼이 망가지는 것을 각오하는 도박을 감행한 바가 있는바.
게다가 이번에는 불카누스라는 신의 든든한 백업도 있다.
[알았네. 그럼 곧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네.”
은현은 망설임을 떨쳐버리고 새하얀 불꽃의 성화가 일렁이는 거대한 대화로 속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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