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2화 〉 362. 마중(3)
* * *
“…….”
“…….”
에린의 발언은 은현의 이성을 망치로 강하게 때려눕히는 것만 같은 강렬한 충격이었다.
은현의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생각이 오갔다.
‘얘는 지금 저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쓰는 것일까?’
아니, 모를 리가 없다.
굳게 결심하면서도 혹시라도 자신이 거절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을 가지며, 조마조마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흔들리는 눈동자.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은현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에린의 마음도 불안한 마음이 점점 커져만 갔다.
‘어쩌지? 혹시 거절인가…?’
분위기와 기세에 취해 일단 저질러버리긴 했지만, 이 선택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 점점 확신이 사라지고 마음속에 조마조마함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감정을 대변하듯 에린의 가슴은 점점 빠르게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고, 그 두근거림은 그녀의 가슴골에 끼워져 있는 은현의 팔에 그대로 전해져왔다.
“…에린.”
이윽고 마침내 은현이 입을 열었다.
“으, 응….”
에린은 가득 찬 긴장으로 인해, 성대의 떨림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대답을 입에 담았다.
그의 대답은 거절인가, 승낙인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신수의 힘으로 사람의 감정을 읽어 들일 수 있는 에린이 유일하게 감정을 엿볼 수 없는 은현의 감정을 알 수가 없어, 점점 애가 탈 뿐이었다.
“그거 무슨 의미인지, 알고 쓰는 거야?”
“다, 당연하…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끝에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한 에린의 얼굴은 이미 새빨갛다.
두근거리는 가슴의 고동은 점점 빨라지고, 거세진다.
“알았어.”
“아….”
은현의 대답은 승낙이다.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 찼던 에린의 기분이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은현은 에린에게 붙잡혀 있지 않은 반대쪽의 팔을 들어 올려 에린의 뺨을 어루만졌다.
뺨을 어루만지던 손은 이내 뒤로 향하여 에린의 머리를 단단하게 고정했다.
“싫으면 피해.”
“…….”
싫을 리가 없다.
이것은 그토록 그녀가 바라고 고대해왔던 순간이다.
에린은 조용히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승낙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은현은 천천히 두 눈을 감은 에린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겹쳤다.
“응….”
작은 신음을 흘리는 것과 동시에, 맞닿은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넣었다.
서로는 겹친 입술을 마치 탐내듯이 서로의 입술을 맛보았다.
“흐….”
키스가 지속 되어 갈수록 머릿속에 늘어지는 쾌감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이게…키스….’
좋아하는 사람과의 키스는 이렇게도 달콤하고, 가슴속을 기쁨의 감정으로 가득 채워가는 것일까.
처음 해보는 키스는 에린의 이성을 조금씩 잠식해나갔다.
“으응…현아….”
에린은 자신의 가슴골 사이에 끼우고는,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은현의 팔을 풀어주며 자신의 뒤꿈치를 들어 올렸다.
자신과 은현 사이의 신장 차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노력.
그리고는 양팔을 은현의 목에 두르며 매달리듯이 끌어안았다.
은현의 키스에 호응하여 자신의 가슴을 밀착시키고는 적극적으로 그의 몸에 자신의 체중을 실었다.
발돋움으로 인해, 발끝이 불안정하기 때문인가, 에린의 몸은 좌우로 살짝씩 흔들렸다.
은현은 에린의 불안정한 체중을 지탱하기 위해, 에린이 자신의 목에 팔을 두르듯,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키스에 응해주는 에린의 마음이 은현의 가슴 속에 전해졌다.
“좋아해. 현아.”
“…….”
애정이 듬뿍 담긴 키스를 교환하고, 이후에 이어진 에린의 일방적인 고백.
은현은 그녀의 고백에 답하지 않았다.
“…대답해주지 않는 거야?”
그렇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에린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키스까지 했는데? 나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에린의 고백을 들은 은현의 마음은 굉장히 복잡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새삼스럽지만, 나 이제는 아내도 셋으로 늘어날 예정이고, 여신님도 계신 데…. 에린은 정말로 괜찮은 거야?”
정말로 새삼스러운 질문에 에린은 순간 얼이 빠진 표정을 지으며 어처구니없음을 토로했다.
“바보.”
목에 두르고 있던 팔을 풀고, 그의 가슴에 이마를 부딪쳤다.
이윽고 그대로 얼굴을 비비며 입을 열었다.
“현이는 엘레노아님 때도, 릴리 언니 때도 똑같은 말을 했지?”
“…그랬지.”
“그럼 내 대답도 알고 있으면서.”
에린은 다시 한번 자신의 이마를 은현의 가슴팍에 부딪쳐왔다.
“현이는 나한테 영웅이야. 나는…현이한테 마지막 여자여도 상관없어. 그냥…나도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베르단디처럼, 일리아나처럼, 엘레노아처럼, 릴리처럼.
자신에게 키스해주고 안아주고, 사랑을 속삭여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래 왔다.
그 순서가 마지막이라도 상관없다.
그저 그 울타리 안에, 자신도 넣어줬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에린.”
그녀의 감정을 모두 들은 은현은 더는 고민하지 않았다.
“사랑해.”
“…헤헤.”
드디어 듣고 싶은 말을 들었다는 에린의 표정은 단번에 풀어졌다.
“키스. 한 번 더 해줘.”
“그래.”
에린의 요구에 은현은 순순히 응해주었다.
다시 한번 입술을 겹치며 키스를 하자, 은현의 혀에서 흘러나온 타액의 단맛을 느낀 에린은 또다시 은현의 목에 팔을 두르며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
“응…츄으.”
그저 입술을 겹치고 혀와 타액을 섞고 있을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도 마음속이 충족되는 기분을 느낄 수가 있는 걸까.
“흐으…현아….”
그 충족감은 끝을 모르고 채워지고 있어, 더욱 많은 것을 탐하기 위해.
에린은 입술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마찬가지로 은현 또한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작은 입술은 약간 엷으면서도, 부드러워서 그저 겹치고 있는 것만으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하고 있을수록, 학생의 시절부터 자신이 키워왔던 ‘소녀’는 정말로 어른이 되어 ‘여자’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응…. 하아….”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가 빨라진 호흡의 와중에도, 서로를 탐하는 적극적인 키스는 계속 이어졌다.
폐 속에 가득 공기를 들이마시고는, 서로의 입술을 탐하는 행위는 끊어지지 않았다.
‘떨어지고 싶지 않아. 더, 더 느끼고 싶어.’
서로 입술을 겹칠 뿐인 키스로는 부족하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듯 강하게 자신의 몸을 밀착시켜 더욱 은현의 입술과 혀를 탐했다.
“후아아….”
두 번째 키스를 마치고, 에린은 제대로 쉬지 못했던 숨을 토해냈다.
“좋았어?”
“응. 너무 좋았어.”
만족한 기분을 느낀 에린은 은현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미소지었다.
그런 에린의 모습이 꽤나 사랑스러워서, 은현도 허리를 두르고 있던 팔에 살짝 힘을 주어 자신의 몸에 밀착시키도록 끌어당겼다.
이윽고 바로 아래에 위치하게 된 에린의 귀 테두리 부분, 귓바퀴 또는 이륜(??)이라 불리는 부위를 혀로 핥았다.
“힉!?”
아예 입술을 이용하여 귓바퀴를 물자, 에린이 깜짝 놀라 몸을 벌벌 떨었다.
“현…아! 뭘…!”
자신의 귀가 핥아지는 감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느낌이다.
“현아…! 간지러워…!”
몸을 비틀어 그 낯선 감각을 피하려고 했지만, 은현에게 허리를 붙잡혀 단단히 고정된 에린은 도망치지 못했다.
그 사랑스러운 반응과 수치심이 가득한 호소는 은현의 흥분을 더욱더 강하게 자극했다.
“간지러운 것뿐이야?”
귓불을 입술로 머금고는 귓바퀴의 테두리를 따라 천천히 위로 올라가며 혀로 핥았다.
“흐앙…! 핥으면 안 돼…! 기분 이상하단 말이야…! 현아, 그만…간지러워!”
은현의 품에 안겨있는 에린의 양손은 그런 은현을 밀쳐내지도 못하고, 그저 바들바들 떨고 있을 뿐.
하지만 간지럽다고는 말하지만, 에린의 반응이 이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귀가 약한 것 같네.’
타인보다 감각이 예민한 에린의 신체적인 특성상, 유독 민감한 부위를 찾아낸 것일지도 모른다고 은현은 생각했다.
혀를 이용하여, 조금씩 안쪽을 괴롭히고, 귓불을 입술로 머금으며 일부러 그 행동을 점점 과격하게 이어나갔다.
“흐으…! 왜, 왜 귀만…!”
동시에, 허리를 감고 있던 한쪽 손을 천천히 위로 들어 올려, 새하얀 목덜미를 어루만져 주었다.
에린은 그런 은현의 손길을 느끼며 간지러운 듯 목을 움츠렸다.
붉어진 얼굴과 흔들리는 눈동자는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귀와 목에서 느껴지는 이 낯선 감각이 익숙하지 않은 듯 잔뜩 흔들리고 있는 눈동자와 손가락은 마치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작은 애완동물을 연상시켰다.
그런 에린의 반응을 보면서, 한층 더 공격을 이어나갔다.
한쪽 귀를 입으로 농락하면서, 반대쪽 손가락으로 에린의 다른 한쪽 귀도 똑같이 희롱했다.
“으, 으, 힛!”
에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은 달게 녹아내리는 매우 야릇한 소리다.
조금 전까지는, 어깨와 목을 움츠리며 은현의 애무로부터 도망치듯이 행동하고 있었는데, 어느 샌가부터 에린의 몸으로부터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 하아아….”
숨을 어지럽히며, 뜨거운 한숨을 흘리고 있는 에린은 마치 더 해달라는 것처럼, 은현이 귀를 핥기 쉽도록 머리를 기울여왔다.
굉장히 야릇한 숨소리를 내는 에린은 자신이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상태.
그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현…아!”
뺨뿐만이 아니라, 귀의 끝까지 새빨갛게 되어 있는 에린은 달게 녹아내리는 신음을 흘리며 은현의 이름을 계속 부르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은현은 허덕이는 연분홍색의 입술에, 다시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응흐으….”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다시 서로의 입술을 핥았다.
타액이 윤활유의 대신이 되어, 미끈거리는 입술이 스쳤다.
이윽고 다시 키스를 끝낸 에린은 은현의 얼굴에서 얼굴을 떼고는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볼을 부풀렸다.
“이 심술쟁이!”
자신의 귀를 희롱당했던 감각이 수치심을 너무 크게 자극해버린 탓일까.
에린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익어있었다.
뜨거움을 포함한 한숨도, 타액으로 젖은 연분홍색의 입술도.
굉장히 순수하면서도 요염함이 공존하는 모순도.
모두 매력적이다.
그런 작은 반항이 귀여웠던 탓에, 은현은 작게 헛웃음을 지었다.
“싫었어?”
“…….”
짓궂은 은현의 질문에 에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혼자 방에서 자위할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경험과 감각은 확실히 새로웠다.
너무나도 낯설었지만, 계속해서 당하다가 적응이 되어보니 오히려 괜찮다고 느꼈던 자신도 존재했다.
더 나아가, 키스한 것만으로 잔뜩 달아오른 에린의 몸은 에린에게 다른 것을 요구해오고 있었다.
“에린.”
“이다음에 내가 뭘 할지 알고 있어?”
“…응.”
에린은 작게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말해두는데,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좀 뭐하지만…. 나 침대 위에서는 좀 거칠어. 무심코 에린에게 심하게 대할지도 몰라. 괜찮겠어?”
“…괜찮아.”
이미 각오해두었던 바다.
이전에 지하 공방의 가장 깊숙한 곳에 설치되어있는 비밀의 방, 조교실에서 은현이 엘레노아를 어떻게 조교 했었는지도, 에린의 기억 속에서는 생생했다.
그 사건은 일리아나에게 들키면서 성행위에 대해서, 자위에 대해서 처음 배우고 자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상냥하게 해줬으면 좋겠어.”
“알았어. 그러면 오늘 밤은 에린이 바라는 대로….”
은현은 에린의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말을 이었다.
“집에 보내지 않을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