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3화 〉253. 과거의 응어리(1) (253/730)



〈 253화 〉253. 과거의 응어리(1)


필요한 짐들을 모두 챙기고 배낭을 짊어진 에린은 빠뜨린 것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점검을 위해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았다.
평소 애용하던 레이피어와, 은현이 선물한 뽑지 못하는 레이피어까지  자루를 모두 챙긴 것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자.”

 안에 설치된 게이트를 통해서 공작령 내부로 전이하고는, 출정을 위해 성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많은 마차의 행렬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행렬의 앞에는 긴급 의뢰 원정을 받아들인 많은 모험가들이 출발을 앞두고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숫자는 처음 소집령에 모험가 길드로 집합했던 모험가들의 총인원 수에 비하면, 반의반도 되지 않는 적은 수였다.
신참과 동위계의 모험가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며, 이곳에 참여한 대부분의 모험가들이 금화 5닢이라는 거금으로 한탕을 크게 벌어보려 하거나, 자신이라면 생존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 피부를 통해서 에린에게 느껴졌다.

“…범상치 않은 사람들도 많네.”

하지만 그 이외에도,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기백과 관록을 뿜어내고 있는 만만치 않은 모험가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1년 만에 은위계 등급을 달성한 경험 부족 에린을 제외하면 많은 사선을 넘어 지금까지 경험과 실적을 쌓아오며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모험가들이 대다수였다.

“저 아가씨도 왔군.”

실력과 안목을 갖춘 상위계의 모험가들 사이에서도, 에린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들 중 몇몇은 과거에 리오드가 선봉으로 서서, 사령술사가 엮였던 언데드 합성 마수들의 토벌 원정에도 참가 했었던 전적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토벌전에서 활약했었던 은현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에, 은현이 결혼을 통해 사위로 들어온 공작령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자연스레 은현의 제자라고 소문이 나 있는 에린에게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만 좀 쳐다봤으면 좋겠는데….’

본의 아니게 주위의 이목을 사로잡으면서, 많은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에 그럭저럭 익숙해지긴 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썩 좋은 것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애써 태연하고 있는 척을 하고는 에린은 마차의 행렬들 옆을 서성이며아닌 얼굴을 찾아다녔다.

‘제라드님은…안 보이시네.’

어쩌면 영웅으로 알려져 있는 제라드는 이미 알렉스가 준비한 가문의 마차를 타고, 하루 일찍 먼저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알렉스는 에린에게도 아르미타스의 사병들의 출정에 맞춰 함께  것을 권했지만, 에린은 그것을 거절했다.
급하게 짐을 꾸리고, 에밀리아에게 릴리와 보육원의 아이들을 부탁하는 등, 떠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생각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역시 좀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걸 그랬나….’

모든 준비를 어젯밤에 마쳤을 때는 이미 공작 가문의 출정은 출발한 뒤였다.
작게 아쉬운 한숨을 내쉰 에린은 어쩔 수 없이 모험가들이 타고 있는 마차에 올라탔다.

“출발하겠습니다!”

큰소리로 출발신호를 외치는 마부의 목소리가 잠잠해지자마자, 마차가 움직였다.
흔들리는 마차 속에는 많은 모험가들이 타고 있었으며,  안에는 자신과 안면을 익힌 모험가들은 없었다.
항상 솔로로 활동해왔던 에린은 타인과 파티를 맺거나,  인연을 만들어두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에도 통성명을 나눴던 모험가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

마차에 타고 있는 인원 중에서 가장 어린 축에 속했던 에린에게 다른 모험가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
 성인이 되는 소녀는 성숙한 여성의 몸과 아름다운 외모로 많은 남성 모험가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었다.
에린은 두 자루의 레이피어를 품에 꽉 끌어안고 있던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무의식적으로 경계의 태세를 취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르미타스령에서 모그라프령까지의 거리는 마차로 대략 사흘을 꼬박 달려야 닿는 거리.
해가 지고 어두워지는 순간부터는 제대로  시야의 확보도 되지 않았기에 운행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에린은 그대로 마차에서 내리고는 자신의 배낭에서 1인용 텐트를 치며 야영의 준비를 개시했다.

“아가씨.”

“…네?”

자신을 부르는 한 남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에린의 시야에 들어오는 처음 보는 인상의 남자는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얍삽하게 생겼다.’라는 평가가 단번에 떠오르는 표정으로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에린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이지.”

“네? 아…네.”

말을 건 모험가의 기척이나 표정에서는 악의를 비롯한 자신을 해를 입히려는 의도와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에린은 약간 이나마 경계를 풀었다.
굳이 모험가에서 느낀 인상을 말로 표현하자면, 악의보다는 ‘비굴함’같은 감정으로 에린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더 가깝다.

“아가씨가 정말로 그 ‘수은’의 제자가 맞수?”

야영의 준비를 마치고 길드 소속의 모험가가 배급하는 식량을 받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던 에린은 남성 모험가가 언급한 ‘수은’이라는 단어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런데요?”

“음? 혹시 내가 뭔가 아가씨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말을 내뱉었는감?”

불편한 표정을 드러내는 에린의 얼굴을  남성 모험가가 살짝 당황하며 물었다.
남성 모험가의 짐작은 정답이었다.
에린은 페르닌에서 은현에게 붙은 ‘수은의 뱀’이라는 별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마녀의 연인이라는 점을 내세워, 말로 사람들을 구슬리고, 일리아나의 명성과 능력에 기생하여 위세를 떨치는 기둥서방 같다는 평가를 시작으로 처음의 페르닌의 궁정 귀족들과 모험가 길드 사이에 퍼진 은현에 대한 불명예스러운 ‘이명’이다.
자신을 지금까지 성장시켜주고, 이끌어준 더 대단한 남자인데, 많은 사람들이 은현을 깔보고 무시하고 있는 것만 같아 ‘수은’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뇨. …아니에요. 아저씨는 성함이…?”

“지스라고 부르쇼.”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눈앞의 지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성 모험가가 은현을 무시하거나 깔보는 투로 그의 불명예스러운 이명을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 즈음은 알 수 있었다.
이제는 검은 마녀와 아르미타스 공녀를 아내로 맞이한 은현의 능력을 무시하거나, 깔보는 태도를 보이는 이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작 은현, 본인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인지,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나서, 더욱 고착화되어버린 지경에 이르렀다.
에린은 그저 자신이 너무 과민 반응을 하고 있다는 것에 지나지 않아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는 그게 왜 궁금하신데요?”

“아…그게 말이지…. 하, 하하….”

멋쩍은 미소로 이것을 밝혀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지스의 낯빛을 보고 에린의 그의 감정을 읽어 들여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부끄러움?’

자신의 부끄러운 경험을 꺼내는 것이 옳은 일일지, 고민하는 얼굴에는 자신이나 은현에게 수작을 걸려는 검은 속내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말이지. 아가씨의 스승인 그 양반에게 내가  가지 사과할 일이 있어서….”

“사과요?”

“그, 그래! 혹시 이번 긴급 의뢰 원정이 끝나고 나면 수은, 그 양반에게 나를 좀 소개시켜 줄 수 없겠슈?”

“…….”

에린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표정을 지으며 빤히 지스를 쳐다보았다.
이야기는 즉, 은현에게 무언가 잘못을 했다는 모험가가 은현에게 제대로 사과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달라는 것.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는 것인지, 궁금해진 에린이 지스에게 물었다.

“우리 스승님한테, 무슨 잘못을 하셨는데요?”

에린은 그가 없는,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은현을 스승이라고 칭하며 깍듯이 모시는 말투를 사용했다.

“아…혹시  양반이 아가씨한테 ‘포션사기꾼’같은…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은 없수?”

“포션…사기꾼…?”

지스의 말에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고는 미간을 좁혔다.
모험가의 자잘한 기초를 알려주면서, 은현이 했었던 말들을 차근차근 떠올려 나갔다.

-신참 모험가만큼 등쳐먹기 좋은 모험가는 없어. 세상 물정을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게 맞는지 아닌지, 어떤 행동이 옳은 것인지 옳지 못한 것인지, 모험가로서의 일반 상식이라는 것이 아예 없다시피 하니까, 어떤 게 맞는지 모르니 속이기가 쉽거든.

제대로 된 경험을 쌓고 상식과 업계의 체계를 제대로 배우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타인의 호의도 일단은 의심해보라는 은현의 조언.

-대표적으로는 ‘사기’ 같은 건 당하기 쉬우니까. 주의해야 해.

-사기?

-예를 들어서 ‘포션 사기’ 같은 걸 예로 들어볼까? 모험가에게 있어서 포션이라는 존재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일발 역전, 기사회생의 만일의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동앗줄이기도 해. 보통 포션의 효과는 바닥을 드러낸 마력의 일부를 회복시키거나, 네가 입은 상처의 악화를 호전시킬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모험가들은 많은 목숨을 부지할 수가 있지.

-응. 그건 나도 알아.

-그런데 만약에 바닥이  네 마력을 모조리 채워주고, 잘려나간 결손 부위의 팔다리를 복구시킬  있는 놀라운 효과를 지닌 포션이 있다고 치자. 이 포션의 가치는 엄청나서 금화 10닢은줘야지 살 수 있어. 그런데 만약 내가 이 포션을 너에게 금화 2닢에 팔고 싶어. 에린이라면 어떻게 할래?

-당연히 사야지. 80%나 싸게 팔아준다는 거잖아?

-푸흡…!

“…….”

망설임 없이 대답한 자신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일리아나가 빵 터지며 웃음을 참지 못했던 수치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고 에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틀렸어.

-어? 어째서?

-이 포션의 효과를 어떻게 증명할 수가 있겠어? 가치는 누가 보증해주는 거고? 에린은 이런 효과를 지닌 포션을 누군가가 시장이나 모험가 길드에서 판매하는 걸  적이 있어?

-…아니?

-그렇지.  너에게 포션을 판매하려는 녀석이 말로만 설명한 것뿐이지. 포션의 가치를 누군가가 보증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팔다리를 잘라버리고 직접 사용하지 않는 한 효능 자체를 확인해보는 것조차 불가능해. 그 포션이 정말로 진품이며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증명해줄 수단은 아무것도 없어.

-…….

즉 ‘이 물건 굉장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너에게만 특별히 싸게 팔아주겠다.’라는 의도를 내비치면서 ‘이 물건은 무조건 사야 이득이야!’라는 생각을 유도하는 거지. 실제로 원가는 은화는커녕 동화 몇개 밖에 하지 않는 싸구려 포션을 금화를 받고 팔아버리는 수법으로 신참 모험가들의 등쳐먹으려는 악랄한 모험가들도 있으니까.

-…그거에 그렇게 쉽게 걸려드는 바보가 있어?

아무리 그래도 동화 몇 닢밖에 들지 않는 원가로 거의 몇백 배나 되는 폭리를 취하는 사기를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은 사기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에린으로써는  와 닿지 않았다.

-너 방금 나한테 이 포션 산다고 했었잖아. 금화 2닢에.

-그, 그건 너가 나한테 판다고 그랬으니까! 널 믿은 거지! 아야!

자신의 이마에 딱밤을 때리는 은현을 바라보며 에린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항의했다.

-아파!

-뭐 지금 내가 말한 가정이 확실히 많이 극단적이긴 했지만, 이거는 사기를 치려는 사기꾼의 화려한언변이나 주위를 장악하는 개인의 기술에 좌우되는 영역이니까. 진짜로 무서운 사기가 뭔지 알아?

-뭔데?

-사기를 당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게 만드는 사기꾼이 진짜로 무서운 거야. 마지막에 ‘아, 당했다.’라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손  방법이 없는 상황까지 와버리게 되니까,꼭 주의해.

이후에도 에린은 모험가 일을 하면서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단 한 번도 사기를 당한 적이 없었다.
은현이 무언가 주의를 해주었던 것도 영향이 있기는 했었지만, 타인의 감정 속에서 악의를 읽어내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에린에게는 누군가가 접근하여 사기를 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회상을 끝낸 에린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 사기꾼에게 주의하라고만 얘기를 들어서….”

“그, 그렇수…? 하, 하하….”

“그런데 ‘포션사기꾼’에 대한 건  물어보세요? 설마…?”

“하, 하하…. 내, 내가 바로  양반한테 사기를 치려했던 사람인데….”

“…그런데요.”

은현에게 사기를 치려했던 남자가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볼일일까.
에린의 두 눈이 가늘어지며 사기꾼 모험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 그야 사과하고 싶어서 그런 거지!”

과거 ‘언데드 키메라 토벌 원정’에서 은현에게 ‘자양강장제’라는 포션을 비싸게 팔면서 사기를 치려다가 나중에 돼서야 그의 정체를 깨닫고 식겁했던 사기꾼 모험가는 혹시라도 언젠가 자신에게 보복을 할까, 도둑이 제발 저려서 에린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나중에 다른 모험가에게서 자신이 사기를 치려 했던 대상이 ‘마녀의 부하’였다는 것을 듣고 나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줄로만 알았다.
이후에는 가끔가다 모험가 길드에서 들려오는 그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불안감이 증폭되고 그때의 잘못을 사죄하고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다.

“…….”

“지, 진짜로 포션 사기는 이제 끊었수다! 성실하게 살고 있으니, 수은, 그 양반에게 사과를 할 수 있는 자리를 한 번만….”

절박해 보기기까지 하는 사기꾼 모험가의 모습을 본 에린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지…?’

은현이 겨우 이런 저급한 사기에 당했으리라고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사기를 당할 뻔했던 것에 앙갚음을 해줬으면 진즉에 해줬지, 지금까지 방치를 해두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이유가 있거나 신경  가치조차 없는 사소한 사건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은현이 집으로 복귀했을 때, 이 전직 사기꾼 모험가라는 작자를 안 그래도 매우 바쁜 은현에게 자기 마음대로 소개를 시켜줘도 괜찮은 걸까?

‘아, 이런 고민 진짜로 싫은데….’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빨리빨리 가져와!”

“죄, 죄송합니다…!”

“쯧! 느려터져가지곤!”

“빌라드님. 첫날부터 그렇게 험하게 다루시면 남은 일정을  노예가 따라 갈  있을리 없지 않습니까.”

비굴함, 짜증, 조소를 머금은 저급한 웃음들이 한데 어우러진 소리들.

“어…?”

그 소리들, 하나하나가 에린의 귓가를 때리면서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젠장! 아버지가 전력에 도움이 되라고 붙여줬다지만, 전혀 쓸모가 없는 년이잖아!”

배급으로 스프를 받고, 자신의 텐트로 돌아가던 에린은 그 짜증 섞인 어조, 목소리의 톤, 분위기 속에서 떠올리기 싫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행동을 멈췄다.

“응?”

자신들 쪽을 바라보고 있던 에린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짜증을 잔뜩 토해내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느낀 방향을 바라보았고, 많은 인파들 속에서 정확하게 에린의 모습을 찾아내었다.

“설마?”

자신이 잘못  것이 맞나, 재차 확인하던 남자의 모습을 에린이 천천히 뜯어보았다.
학교에서 자주 마주쳤던 교복이 아닌, 휘황찬란한 왕국의 인장이 박혀있는 갑옷을 착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기사가 됐구나. 결국에는.”

“하, 하하! 하하하!”

에린의 모습을 발견한 남자 기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에린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게 누구신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한데 모으기 위해 익살스럽기 짝이 없는 제스쳐를 취하며, 남자 기사가 양팔을 들어 올려 과장된 행동을 보였다.

“아이테르에서 쫓겨난 평민이 아니신가?”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자신을 도발하는, 과거에 자신을 강간하려 했던 ‘빌라드 오르바’의 행동에, 에린의 주먹이 꽉 쥐어지며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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