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8화 〉238. 소모품을 인격체로(2) (238/730)



〈 238화 〉238. 소모품을 인격체로(2)


[후후, 스쿨드가 그렇게 말했더냐?]

“…네.”

기쁜 미소를 짓는베르단디의 질문에, 은현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행보를 인정하겠다는 말과 함께 받았던 정중한 사죄의 말이 은현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그것은 기쁨이나 감동 같은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당혹스러움이 묻어난 반응으로 이어졌다.

[잘됐구나.]

그렇게 은현이 애매모호 한 반응을 보이고 있을 때, 베르단디가 은현의 몸을 꽉 끌어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보듬어주었다.

[기쁜 일이 아니냐. 드디어 스쿨드도 아이가 지금까지 노력해오면서 이뤄낸 성과를 인정해주고 있던 것이니.]

“그런 그렇지만요….”

[지금은 그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떠냐?]

“…네. 그럴게요.”

은현은 베르단디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몸을 꽉 끌어안았던 베르단디의 팔이 풀리고, 은현의 손을 맞잡자, 둘을 둘러싼 공간의 배경이 물감이 풀어진 물처럼 뒤바뀌었다.
이전에 여신들의 회의에 참석하면서 와본 기억이 있었던 회의장.

“여신님?  저를 이곳에…?”

[아이가 걱정할  같아서 내가 조금 도움을 요청했다.]

“도움이요? 그게 무슨….”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으려던 순간,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신의 모습에 은현은 말을 잇지 못하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프로세르피나님.”

[어머?  이름을 알고 있군요?]

“지난번 제가 참석했었던 회의에서 뵀었으니까요.”

살짝 의외였다는 듯 놀랐던 프로세르피나의 표정이 미소로 바뀌면서 은현의 인사를 받았다.

[그렇군요. 저도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그대의 이야기는 현재 신들의 사이에서도 화젯거리랍니다.]

“그런 송구스러운….”

지난번 회의에서 ‘불카노스의 망치’를 공식적으로 수여받고, 사적으로 미네르바에게서 ‘아이기스’를 받았던 만큼, 노른의 세 여신의 사도는 신들의 사이에서 화제의 대상이었다.
사도로서 하계에서 많은 업적을 이뤄내고, 신의 무구를 영혼 속에 품어 신력을 가지게 된 새로운 ‘반신(半神)’.
신의 피가 섞이지도 않았던, 흔하고 흔한 평범하기 짝이 없는 태생의 인간에 불과했던 존재가 이렇게까지 성장을 해올 수 있었던 것에 호기심을 품고 있는 신들도 많았다.
그 신력을 품게 된 것의 시작이 ‘신의 무구’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여신과 관계를 가지게  것’이 원인이라는 것을 신들은 모른다.
은현은 신들의 이런 과도한 관심이 조금 거북스럽게 느껴졌다.
재빨리 화제를 바꾸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희 여신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데려오신 이유는 혹시….”

프로세르피나는 명계의 주인인 플루토의 아내이며, 명계의 안주인이다.
죽은 자의 영혼들을 징벌, 정화, 환생 등, 망자들의 많은 부분을 관리하는 여신인 만큼, 은현은 베르단디가 자신을 프로세르피나와 만나게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이 걱정하고 있는 것을해소를 시켜주기 위해 준비한 여신의 배려였다.

[당신의 스승이었다고 했던 그 망자는 제대로 명계에 도착했습니다.]

“아, 아아….”

데스나이트의 몸이 소멸하면서, 혹시라도 시에테 영혼이 다시 메디아에게로 귀속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걱정했던 부분을 은현에게 확신시켜주기 위해 베르단디가 프로세르피나에게 부탁을 했던 것이다.
프로세르피나의 그 한마디에 은현은 작게 탄식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스승의 영혼이 제대로  안식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은현의 가슴을 울린다.
안도, 기쁨, 슬픔 등의 다양한 감정들이 휘몰아쳤고, 탄식은 미세한 떨림을 낳는 오열로 바뀌었다.
여신들의 앞에서 못난 꼴을 보일  없다는 오기로 필사적으로 두 눈에서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소리 없는 흐느낌으로 슬픔의 감정이 흘러내리는 것을 억지로참았다.
이윽고 어떻게든 마음을 추스른 은현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고 자신에게 기쁜 사실을 전달해준 프로세르피나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정중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제 스승의 안식을 확인해주셔서…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프로세르피나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명계로 와야 할 망자의 영혼들을 억지로 하계에 잡아두고, 존엄을 무시한 농락을 일삼는 사령술사의 존재는  남편을 포함한 명계의 존재들에게도 쉽게 간과할  없는 문제였습니다.]

은현은 프로세르피나의 말을 듣고 과거에 회의장에서 했었던 여신의 설명을 떠올렸다.

-분하지만 그렇네요. 명계에만 그 영혼들이 도착한다면, 정화의 과정도 없이 곧장 소멸시키는 강수도 취할 수 있겠지만…영혼들이 하계에 묶여 있는 이상, 저나 남편이 손을 쓰는 건 불가능해요. 하계에 대한 간섭은 정말 뚫기가 어려우니까요. 애초에 그 존재는 정말로 규격 외의 존재에요. 명계에 간섭하여 영혼을 강제로 끄집어가는 존재라니….

명계에 간섭할  있는 초월자.
은현이 한번 죽였던 상대는 그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더욱 강대한 존재로 성장하면서 인간의 카테고리를 벗어난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메디아가 신들에게도 섣불리 처리할 수 없는 곤란한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저의 남편도, 당신에게 걸고 있는 기대가 크답니다.]

“네?”

[아이는…내 아이다.]

느닷없는 프로세르피나의 말에 베르단디가 경계의 기색을 띄우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후후,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굉장히 자신의 사도를 아끼고 계시는군요.]

[그, 그렇지는….]

뜨끔한 베르단디가 부끄러운 기색을 보이며 프로세르피나의 시선을 피했다.

“프로세르피나님 한 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있습니다.”

[혹시 당신과 인연이 있었던 인물들이 당신의스승과 같은 처지로 그 사령술사에게 영혼이 귀속되어 있는지 여쭤보려는 건가요?]

“아…네.”

정확히 자신의 질문을 꿰뚫어 보는 프로세르피나의 질문에 은현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마치 예상했던 질문이 나왔다는 반응이다.

[걱정할 것 없이, 모두 명계에 있거나, 명계를 거쳐 가면서 환생했습니다. 아, 다만….]

“다만…?”

[망자가 되어도 명계로 바로 오지 않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어서말이죠. 후후.]

“그게 무슨…?”

두루뭉술한 설명은 평소에 은현이 잘 짓지 않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이끌어내기엔 충분했다.

[당신이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리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알겠습니다.”

뭔가 애매한 투로 설명을 해주었지만, 확신에  투로 안심을 시키는 여신의 말을 듣고, 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저와 남편이 당신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은현이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그와의 거리를 좁히고, 은현의 왼쪽 가슴, 심장이 위치한 부분에 오른손을 올렸다.
여신의 오른손에 피어오르는 하얀색의 불꽃, 성염(聖炎)이 화르륵 불타오르더니 이내 은현의 몸속으로 스며 들어간다.

“이건….”

이전 ‘불카노스의 망치’와 ‘아이기스’를 받았을 때와 비슷한 감각을 느낀 은현이 자신의 몸속에 곳곳이 퍼지는 신성한 기운을 감지해냈다.

[‘코르누코피아’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풍요의 뿔’이라고도 하지요. 당신의 몸속에 존재하는 신력을 증가시켜주는데, 큰 도움이 되겠지요.]

“이런 걸…저에게 주셔도 상관없는 건가요?”

[아까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와 저의 남편은 당신에게 걸고 있는 기대가 크다고요. 당신은 하계에서 이미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 초월자가 되어버린 그 사령술사에게 대항할  있는 유일하다시피  존재입니다. 제가 드린 신의 무구가 부담스럽게 느껴지신다면, 그 사령술사를 쓰러뜨림으로써 그 무구를 정당하게 소유할 수 있다는 자격을 증명해주세요.]

“…….”

꽤나 무거운 기대를 받고 있는 것에, 은현은 거북함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 그리고 코르누코피아는 또 다른 효과도 가지고 있습니다.]

“효과인가요?”

[정력의 증강이죠.]

“……!”

자세한 말이 필요 없는 확실한 설명에 은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내 민망한 기분을 애써 감추기 위해 프로세르피나에게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다.

[내,  아이에게 어찌 그런 상스러운…!]

[어머? 듣기로는 부인이 둘이나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 저, 그게…. 맞기는 맞는데….”

[인간 남성은 관계를 너무 많이 맺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를수도 있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신력의 증가와 함께 하계에서 많은 도움이  수 있는 무구로 당신에게 드린 것이었는데…필요 없으신가요?]

“필요합니다! 진짜로 엄청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프로세르피나님!”

[아이야….]

혹시라도 다시 회수해갈까 봐,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은현의 모습을 보고, 베르단디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은현을 쳐다보았다.

“여신님. 여신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최근의 저 진짜로 일리아나와 엘레노아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낍니다.”

[아니…. 그건 나도  안다.]

“예?”

항상 은현과 아내들이 관계를 맺을 때면 신계로 올라가며 모습을 감췄던 베르단디가 어째서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인가, 은현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이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또다시 떠올렸다.

-말했지 않느냐. 간섭할 수는 없었어도, 아이의 모든 행동은 지켜보고 있었다. 그….

-설마…. 전부 다 보고 계셨나요?

“여신님, 설마….”

[…….]

 관음 행위를 신계에서 쭉 해왔다는 뜻인가?
은현과 마찬가지로 민망해졌는지, 베르단디가 은현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피했다.

[후후, 그럼 저는 이만.]

“아, 네…. 스승님과 다른 분들의 영혼의 확인,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은현은 프로세르피나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잠시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마음속 한구석으로 계속해서 걱정하고 있었던 시에테와 다른 과거의 인연들의 영혼들의 행방을 듣고, 근심 어린 걱정이 눈 녹듯 스르르 사라졌다.
프로세르피나가 떠나고, 회의장 안에는 은현과 베르단디만이 남았다.

“…….”

[…….]

또다시 아까의 해프닝을 떠올리고, 여신과 사도의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은현이다.

“여신님.”

[…왜 그러느냐?]

“감사합니다.”

[……?]

“저를 위해서 명계의 신님께 수소문을 해주시고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셨잖아요.”

베르단디는 다시 은현을 끌어안아 포옹하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아이의 걱정을 해소시켜주고 싶었을 뿐이다. 감사는 됐다. 그저….]

포옹하고 있는 베르단디의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가면서 은현의 상체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베르단디의 가슴이 더욱 강하게 밀착되어왔다.

[나는 아이가 더 이상 상처 입지 않고 지금처럼만 열심히 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감사합니다.”

[하아아….]

서로를 강하게 끌어안고 포옹하며 마음을확인하고 베르단디는  가지 결심을 했다.

[안 되겠구나.]

“네?”

[더는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말을 끝으로 여신과 사도를 감싸고 있는 풍경이 또 다시 물감을 풀어버린 컵 속의 물 마냥 흐려지고, 하나의 방이 형성되어 갔다.
은현에게는 굉장히 익숙했던, 던전 주택의 자신의 방을 그대로 본떠 만든 가상의 공간.
여신과 처음으로 관계를 가지면서  번 경험을해보았기 때문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다른 것 때문에 놀라움을 느꼈다.
그때 이후로 전혀 시간이 흐르지 않은 듯 익숙한 밤꽃 냄새가 풍겨왔기 때문이다.
베르단디가 이 공간의 시간을 그때로 고정시키면서 정지를 시키고, 하계에서 은현과 아내들이 관계를 맺으며 사랑을 탐하는 모습을 관음한 것도 모자라, 은현의 냄새를 맡으며 자신을 위로해왔다는 것을 은현은 모른다.

“여신님? 여기는….”

공간이 뒤바뀜과 동시에, 이미 실체화를 한 베르단디의 터무니없이 선정적인 복장을 보고, 은현이 할 말을 잃었다.

“이리 가까이 오거라.”

“…예?”

아름다우면서도 가녀린 여신의 손가락이, 여신의 사도의 바지 속으로 스르륵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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