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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화 〉200. 협상 테이블(3) (200/730)



〈 200화 〉200. 협상 테이블(3)

“흐음…. 뭐 좋습니다. 세실리아님.”

“네.”

알렉스의 부름에 답하며 모습을 드러낸 세실리아와 함께,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오던 집사들이 수십 개의 나무 상자를 운반해 왔다.
이윽고 알렉스의 앞에 나무 상자를 차곡차곡 쌓았다.

“세실리아 교수…?”

“세실리아님은 저희 공작가문에서 운영하는 공방에서 마나스트림의치료제를 개량하는데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덕분에 더 적은 양의 재료들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죠. 효과도 당연히 검증을 받아 낼 있었습니다.”

여기서 현재 페르니아스 왕국 내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연금약학 교수인 세실리아의 개발 참여와, 약효를 직접 공증을 하는 것의 여파는 절대로 작지 않다.
단숨에 신뢰도가 상승함과 동시에 귀족들의 판단을 더더욱 다급하게 만들어 부추기고 있다.

“…….”

“치료제 한 개를, 금화 5닢에 팔도록 하죠.”

“금화 다섯 닢….”

솔직히 귀족들의 입장에서 그리 부담스러운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 다수는 이미 레니온 헤르샤의 배임횡령을 했던 사실이 들통나 왕국에 어마어마한 양의 벌금을 납부해야 하는 신세이기도 했기에, 재산을 함부로 남용하기엔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자신의 아들을 살려야한다는 생각을 우선순위로  귀족은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어 알렉스에게 가져다 바쳤다.

“3개월 치.”

짧은 알렉스의 말에 옆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집사가 세박스를 운반해 돈주머니를 갖다 바친 귀족의 앞에 두었고, 알렉스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

“부디 아드님이 쾌차하시길 빌겠습니다.”

“크으…!”

무릎을 꿇었던 귀족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하인들을 시켜 박스를 운반시키고, 혹시라도 중간에 다른 귀족들이 자신이 구매한 치료제를 빼앗아 갈까 봐, 황급히 공작저택을 떠났다.
굴욕적인 표정으로 인사의 한마디 없이 그대로 저택을 나가버리는, 굉장히 무례한 태도였지만, 알렉스는 오히려 그런 귀족의 반응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남아있는 아홉 명의 귀족들을 바라보고, 다시 입을 연다.

“금화 여섯 닢입니다.”

“어…째서!”

“수요는 그대로고, 재고가 줄었으니까요. 그리고 이제는 네 명에게 밖에 팔지 않을 예정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담담하게 당연한 걸  묻냐는 알렉스의 태도에 귀족들이 이를 갈았다.
이윽고 결국 알렉스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다른  명의 귀족들이 치료제를 구매하여 황급히 저택을 나갔고, 중앙의 홀에 남아있는 귀족들은 끝까지 알렉스의 앞에서 자존심을 굽히지 않은 다섯 명뿐.

“이제 처음 예고했던 다섯 분이 모두 가셨군요.”

“약은…아직 남았지 않은가….”

“그러게요. 아직까지 자존심을 굽히지 않은 여러분들의 의지에는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건방진 놈이….”

자신을 농락하고 있는 알렉스의 태도에 오르바 백작이 이를 갈았다.

“생각보다 재고가 많이 남았네요. 그냥 팔도록 하겠습니다.”

“…뭐?”

“끝까지 굴복을 하지 않으신 것에 대해 감복해서 드리는 제 마음입니다. 대신 개당 금화 15닢입니다.”

“크윽….”

결국 오르바 백작마저도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알렉스에게 부들거리는 손으로 돈을 건냈다.
끝까지 이전의 귀족들처럼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냈다는 얄팍한 자기 위안을 삼으며, 남아있는 재고의 약들을 가장 비싼 가격에 구매한 귀족들은 저택을 나갔다.

“오르바 백작. 그 치료제를 개발한 장본인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뭐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르바 백작이 저택을 나가려고 했을 때, 알렉스가 입을 열어 오르바 백작에게 말을 걸었다.
백작의 시종들이 열어준 저택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던 오르바 백작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곧바로 알렉스의 옆에 서 있는 세실리아를 바라보았지만, 세실리아는 매우 담담한 표정.
당연한 생각이었지만, 세실리아는  치료제를 개발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개량을 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했다.
애초에 치료제가 절실히 필요한 페르닌의 고위 귀족들에게 치료제가 독점이 되도록, 연금약학에 종사하고 환자를 생각하는 세실리아의 마음을 부추겨 공작령으로 보낸 것은 다름 아닌 오르바 백작을 포함한 고위 귀족들이었다.
마나스트림 중독 증세를 치료시키는 특효약을 개발한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누군가.
오르바 백작은 알렉스가 어째서 지금 이 타이밍에 치료제의 개발자의 이름을 꺼내는 것인지, 의도를  수가 없었다.

“이번에 제 매제가 되는 남자가 개발시켰습니다.”

“그것은…크윽!”

알렉스의 매제라고 하면, 여동생인 엘레노아의 남편.
페르닌에서 가장 화젯거리가 되어 시끄러웠던 남자로 엘레노아와 결혼 예정의 소식과 동시에, 검은 마녀의 남편이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자, 은현과 자신 사이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을 떠올리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신의 아들인 빌라드 오르바가 은현이 보호하고 있는 에린이라는 소녀를 납치하여 강간하려 했었던 사실은 당사자들을 제외하면 극히 일부만 아는 오르바 백작 가문의 수치였다.

“그놈이….”

이미 구매해버린 약의 출처가 은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존심이 상한 오르바 백작이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제가 이 은현의 존재를 밝히는 이유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죠.”

“…….”

이것은 알렉스를 포함한 공작 가문이 자신들에게 칼을 들이댔던 왕당파의 귀족들에게 보내는 경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은현이 오르바 백작에게 보내는 지극히 개인적인 메시지.

- 할 수 있겠어? 해 봐,  번. 댁이 가진 권력, 재력, 무력을 다 동원해서.

가지고 있는 권력, 재력, 무력.
은현은 페르니아스의 귀족은커녕 백성도 아니다.
하지만 공작 가문의 사위로 들어가게 되면서 사실상 지위나 권력은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치료제를 개발하여 판매해내는 수완과 궁정 회의장에서 애슈턴의 횡령죄로 백금화 200닢을 망설임 없이 일시불로 납부할  있는 재력.
무력은 이미 한차례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정도로 몸소 체험까지 해보았다.

“크으…!”

권력이나 재력, 무력도  어떤 면에서도 자신이 우위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르바 백작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그저 마녀에게 빌붙어서 기둥서방처럼 삶을 사는 한심한 남자라고 생각했던 자의 진가가 오르바 백작의 기분을 비참하게 만들고 자존심을 짓뭉갰다.
오르바 백작은 과거 은현이 자신에게 했던 경고의 말을 떠올렸다.

- 백작님, 이건 경고에요. 싸움을 거실 거면, 걸어오세요. 받아드릴 테니까. 그리고, 댁의 아드님이 에린한테 씻을  없는 상처를 주려 했던  사과하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런데 적어도 우리 애 앞길은 막지 마세요. 적어도 에린의 근처에 얼씬도 거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시겠습니까?

알렉스가 치료제의 개발자가 은현이라는 것을 굳이 오르바 백작에게 밝힌 이유는 이 경고의 연장선상에 지나지 않는다.
한 번만 더 쓸데없는 짓거리로 에린이나 공작 가문에 손을 대면, 정말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

“참고로 이것은시작에 불과하다는 말도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

오르바 백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공작 저택을 떠났다.
귀족들과의 협상이 모두 끝나고, 어마어마한 양의 금화가 쌓인 테이블 위를 응시하며 세실리아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로…정말로 괜찮았던 걸까요?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피해를 입는 것은 저 귀족들의 재산이지. 사람들의 목숨이 아닙니다.”

알렉스는 조용히 의자에 몸을 기대어 눈을 감았다.
이윽고 이미 페르닌으로  있을 은현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다음은 부탁한다….”

◆ ◆ 

“젠장! 건방진 놈이! 소공작이라는 지위를 와 치료제를 믿고, 감히 나에게 이딴 수모를 줘!?”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자신의 저택으로 복귀한 오르바 백작은 심호흡을 하며 기분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생각했다.

“괜찮아.  치료제가 필요한 귀족들은 많으니까. 빌라드의 상태가 호전되고 치료제의 양에 여유가 생긴다면, 금화 16닢, 17닢에 팔아서 손해를 메꾸면 돼.”

알렉스는 더 적은 양으로 많은 생산을  수 있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그 의미는 페르닌에도 조만간 치료제가 풀릴 것이란뜻.
물량이 풀리고 공급이 안정되기 전에, 일부러 많은 양의 치료제들을 구한 이유는 당연 아들인 빌라드를 치료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 이외에도 자신이 대량으로 구매한 치료제들을 페르닌의 다른 귀족들에게 되팔기 위함이라는 노림수도 있었다.
페르닌에는 아직도 치료제가 없어서 마약 중독을 치료하지 못하고 있는 귀족 자제들이 많다.
수요는 아직도 얼마든지 있다.
치료제의 구매로 재산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사용한 만큼, 굉장히 뼈 아픈 손실이었지만, 더 비싼 값에 다른 귀족들에게 판매를 한다면 그 손실도 메꿀 수 있다.
일단은 자신보다 먼저 개 당 금화 5닢이라는 가격에 치료제를 구입했던 귀족들에게 연통을 보내어 금화 10닢에 사용하고 남은 치료제들을 모두 구매하겠다고 설득을 하여 더 많은 치료제의 물량을 독점한다면,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원하는 가격의 통제가 더더욱 쉬워진다.
치료제가 대량생산되어 페르닌에 퍼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치료제들을 비싼 가격에 팔아치운다면, 지금의 뼈 아픈 지출은반드시 큰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멍청한 놈. 결국에는 마약에까지 손을 대!?”

기분을 약간 가라앉혔던 오르바 백작은 갑작스레 이 사태의 원흉인 자신의 아들을 떠올리고  다시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이전 궁정회의에서 은현에게 자신의 아들인 빌라드가 에린을 강간하려 했다는 사실로 은현에게 당했던 위협과 굴욕을 맛보았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아들에 대한 한심함과 실망감이 점점 더해져만가고 있었다.
치료제를 통해서 마약 중독을 치료하고 나면, 다시 교육을 시켜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으면서, 오르바 백작은 발걸음을 옮겼다.

“여보! 왜 이제 오셨어요!”

“…무슨 일이 있었소?”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이는 자신의 부인의 모습을 보고, 오르바 백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빌라드의 마약 중독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구해왔어요! 지금 그걸 먹고 빌라드가 잠들었는데 의사의 말로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데요!”

부인이 전해오는 희소식에 발걸음을 뚝 멈춘 오르바 백작은 벌레를 씹은 얼굴로 자신의 부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약을 구했다고 했소?”

“네? 네. 저희뿐 만이 아니라, 지금 공작령에서  상인이 그 치료제를 유통시키고 있어서, 치료제를 구매한 의사들이 모두 발 벗고 나서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어요.”

점점 더 선명하게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상상에 오르바 백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도대체 어떻게…?”

모든 치료제들을 자신을 포함한 왕당파벌의 귀족들에게 판매하였던 것이 아니었던 건가?
게다가 더욱 의문이 들었던 것은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치료제들을 페르닌 안에 유통시킬 수가 있었을까.
게이트를 통한, 거리와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이동 수단의 존재를 모르는 오르바 백작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당혹스러운 소식이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같은 충격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든 오르바 백작은 불길한 상상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자신의 아내에게 물엇다.

“그 치료제  개의 가격은…얼마였소?”

“네? 개당 금화 1닢이었는데요?”

페르닌에 이미 금화 1닢에 많은 물량이 풀려있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굳어진 얼굴이 점차 분노로 일그러졌다.
안정적인 물량으로 합리적인 가격의 치료제가 공급이 되고 있다면, 금화 15닢이라는 비싼 값에 대량으로 구매하여 독점했던 치료제를 더 비싼 값에 판매하려고 해봤자, 그 누구도 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결국 편지에 낚여 공작 가문을 찾아간 것부터가, 페르닌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도록 일부러 끌어들인 함정이었다.
자존심과 무릎을 굽혀가며 5배가 넘는 가격에 구매를 하거나, 끝까지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며 15배씩이나 부풀린 가격에 구매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완전히 자신들을 농락하고  엿을 먹이기위한 술수였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자신의 가문이 가지고 있는 전재산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너무나도 허무하게 공작 가문에 뒤통수를 맞고 뜯겼다는 사실.
그것도 일부러 귀족들의 무릎을 꿇려 굴복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 가지고 있던 자존심을 처참하게 짓이긴 끝에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친 것만 같은 모욕감을 느낀다.
이윽고 오르바 백작은 공작령에서 자신을 생각하며 비웃고 있을 은현과 알렉스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이 개자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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