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6화 〉176. 사냥개들(6) (176/730)



〈 176화 〉176. 사냥개들(6)

“이 마력은…?”

바깥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파동에 란델이 인상을 찡그렸다.
평범한 인간의 마력과는 명백히 다른,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기 때문.
그렇다고 자신이 품고 있는 흑마법의 마력이나, 악마들의 힘의 근원인 마기, 사제들의 신성력과도 다른 처음 느껴보는 특별한 기운이었다.

“도대체 뭐지?”

신수의 기운을 본 적이 없는 란델이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했다.

“다른 생각할 여유가 있나보군.”

“…….”

슬슬 짜증이 난 란델이 단검을 들고 자신을 대치하고 있는 제라드를 노려보았다.

“말했지 않습니까. 당신의 단검으로는 저를 벨 수 없다고요.”

“그거야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그렇겠지.”

시전자에게 가해지는 위협에서 자동에 가까운 원리로 지켜준다는 그림자 방벽이 굉장히 우월하고 훌륭한 성능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거창하게 말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그저 검을 이용한 물리공격으로 마법의 장벽을 부수는 것.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과 같다.

“그래도 너 같은 새끼 하나 어떻게 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했으면 형님, 누님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영웅의 칭호를 거머쥐지도 못했어.”

그렇게 대꾸하던 제라드가 문득,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기술은 오로지 인간을 죽이는 것에만 특화된 암살기술이야. 앞으로 있을 싸움에서는 인간 이외, 마수들과의 싸움에서도  기술이 먹힐 거라는 보장은 아무것도 없어.

정말로…그럴까요?

- 육체의 능력으로 커버를  수 있는 수준에는 명백히 한계가 있으니까. 게다가 엄밀히 말하자면 너는 리오드보다 특정 분야에 더 특화되어 있는 만큼, 다른 분야에서 너무 취약해. 당당하게 가만히 서있는 아니에스의 몸에 생채기 하나도 내지 못했잖아.

- 아니…. 그걸 왜 예시로 드십니까? 그건 리오드 형님이나 레이넌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 리오드는 굳이 검술이 아니더라도 신체적인 밸런스가 좋으니까. 아니에스를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지지는 않아. 걔는 엄밀히 말하자면 천재의 부류니까, 자기가 알아서 앞으로 싸워나갈  있는 자신의 방법을 강구해나가겠지. 레이넌은 애초에 걔한테 공격능력을바라는 것도 아니었고, 그게 장점도 아니니까. 하지만 너는 달라. 네가 갈고 닦았던 그 기술이 전혀 먹히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도태되는 건, 우리 중에서 너와 나야.

- …형님이 저희  중에서 가장 도태될 거라는 상황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데요?

- 신체적인 우위도 점할 수 없고, 마력도 선천적으로 낮아, 신의 간택을 받지 못해 신성력도 없어, 가지고 있는 재능도 뛰어나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범재의 수준.

- 아무리 형님이라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진짜 상처받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내 얘기이기도 해.

- …형님이 저와 비슷한 신세라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알겠습니다. 알았다고요! 말꼬리 안 잡을 테니, 귀찮다는 표정 짓지 마세요! 그럼 저는…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뭐 별거 있나? 그냥 될 때까지 해봐야지.

- 예? 뭐를요?

- 벨  없게 되면, 벨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강구하고, 한계에 부딪쳤으면 그 한계를 부숴버릴 방법을강구할 때까지 쉬지 않고 움직여.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의 양이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 보답은 절대로 어디론가 가지 않아. 지금부터 내가 알려주는 기술들을 한  익혀봐.

- 아니, 형님! 이 기술들 너무 어려운데요!

- 음? 어쩔 수 없지. 그럼…맞으면서 몸으로 익혀보자.

“아, X발.또 트라우마가…. 이런 또 욕을 사용해버렸군.”

평생을 함께해줄, 자신의 반려가 될 여자를 찾아다니며 구혼을 하고, 잘생긴 중년 미남 신사를 연기하고 있던 제라드의 과거의 성정은 그렇게 온화하지 못한 편이었다.

“…….”

혼자서 몸을 부르르 떨고 미친 사람 마냥 중얼거리고 있는 제라드를 보며 란델이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다.
그런 란델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제라드는 자신의 양손에 쥐어져 있는 쌍단검에 마력을 실었다.
일렁이는 푸른색의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그 마력의 흐름이 심상치가 않다.
응집된 마력이 단검의 칼날에 갇혀서 나가고 싶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만 같았다.

“그건….”

단검의 칼날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마력을 확인한 란델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지기 시작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깨지지 않았던 자신의 그림자 방벽이 처음으로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란델이 개인의 무력으로는 한참이나 뒤처지면서, 사냥개들을 자신들의 부하로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론을 비롯한 사냥개들이 란델의 조영술로 구현된 그림자 방벽을 깨고 위해를 가하지 못한 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
일리아나의 여섯 자릿수 상위 마법을 막아낸 전적까지 가지고 있는, 자신의 흑마법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철두철미하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뒤에서 암약하는 방식을 사용해왔던란델의 유일한 허점이었다.
물려받은 아버지의 유산들인 흑마법들을 훌륭하게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개량해낸 것에 대해서 느끼는 도취감이 방심의 원인이다.

“쯧…!”

란델은 머릿속으로 떠오른 상상에 얼굴을 찌푸리고 감춰두었던 비장의 수를 꺼냈다.

“나와라! 쉐도우 하운드!”

어두운 방안에서, 불꽃의 아지랑이가 일렁이듯이 꿈틀거리는 검은 형체들.
이내 그 형체들은  발이 달린 짐승, 사냥개의 형태를 갖춰나갔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살생을 저지르는 자신의 부하들, 바론 일행을 칭하는 ‘사냥개’가 아닌, 진짜 짐승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사냥개.

“…….”

제라드는 물끄러미 란델이 소환한 쉐도우 하운드들을 응시했다.

크르르

제라드를 응시하며 으르렁거리고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근원은 질량이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하지만 그 그림자들이 명백히 실체를 가지고, 짐승과 마수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이것들은 란델이 조영술을 통해서, 그림자 속에서 ‘혼’을 만들어낸 인공적인 ‘정령’에 가깝다.

“공격해!”

주인의 명령에 응해, 쉐도우 하운드들이 제라드의 몸을 물어뜯기 위해 일제히 돌격해온다.
실체를 가지고 있는 그림자들은 단단한 경도를 자랑하며, 제라드의 칼날을 튕겨낼 정도.
란델은 제라드의 공격능력으로는 자신의 그림자 정령들을 처리할  없다고 확신에 가까운 판단을 하고 있다.
그것은 일리아나의 상위마법을 막아내거나 제라드의 단검을 튕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근거들을 바탕으로 쌓아낸 자신의 확신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껏 수집한 데이터들로 생각해낸 예상일뿐이다.
제라드의 말대로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고 이런 난관도 해쳐나가지 못했다면 그는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지도 못했다.

[제라드 속성비기]
[뇌광(雷光)의 이빨]

파직!

단검에 담겨있는 마력의 색깔이 노란색으로 바뀌고, 두 사람이 있던 방 안을 단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뇌전의 빛이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이내 자신의 몸을 사정없이 물어뜯기 위해 달려오는 섀도우 하운드들을 향해 한 차례 검을 휘저어 버리자.

파지직!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그림자의 짐승들이 종잇장이 찢어발겨지듯이 갈기갈기 뜯겨져 나갔다.

“이, 이럴 수가…!”

“영광으로 알아. 이 기술은 아무에게나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은현의 조언과 훈련으로 성장하면서, 은현과 함께 고안해낸 뇌광의 이빨은 제라드의 최후의 비기이자, 리스크가 명확한 양날의 검이다.
신체, 마력, 재능, 신의 간택 등,  어떤 면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없었던 제라드가 리오드나, 일리아나, 아니에스 등 영웅들과 함께 최전선에서 싸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탄생한 기술.
이것은 체내에 존재하는 얼마 되지 않은 마력을 쏟아 부어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적들을 찢어버리고 불태워 없애버릴 수 있는 강력한 뇌전을 생성해내고, 그 뇌전으로 무기와 신체를 강화한다.
유지시킬 수 있는 시간은 거의 2~3분이 한계지만 그에 반해, 소모되는 마력은 체내에 보유하고 있는 마력의 절반 이상.
연비가 여러모로 좋지 않은 기술이지만, 이 기술이 발동한 시점부터 2~3분 동안, 제라드는  내에서 일리아나 다음으로 가장 압도적인 공격력을 발휘할  있었다.

파지직!

뇌전이 가미된 제라드가 움직일 때마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정령들이 허무하게 찢어지며 형체를 잃었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고, 더 이상 제라드를 대적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리며, 란델이 도주를결심한다.

“젠…!”

“이번엔 안 놓쳐.”

순식간에 이형환위로 잔상을 남기며 란델의 등 뒤를 점거하고, 제라드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란델의 목을 그었다.

파지직!

적의를 감지한 그림자 방벽이 재빠르게 란델의 목을 감싸며 보호를 했지만, 뇌전을 머금은 노란빛의 칼날이 그림자 째로 란델의 목에선을 긋는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그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머리가 없어진 그의 목은 뇌전으로 불태워져서 새카맣게 익어버린 상태.

“…뭔가 찜찜한데.”

몇 년을 가까이 쫓아왔던 남자를 죽였음에도, 제라드는 일을 해결했다는 달성감이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사건의 해결이 너무나도 쉽고 간단해서 허무해질 정도였기 때문에, 아직도 무언가 수작질을 부린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콰앙!

“…밖에 무슨 일이?”

바닥이 흔들림과 동시에 점점 거세지는 진동으로 이변을 감지한 제라드는 에린 일행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  ◆

“커…헉!”

내팽겨 쳐진 에린의 몸이 건물의 벽에 부딪치면서 금이 가기 시작하고, 등에 가해지는 충격이 전신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어, 일순 정신을 잃을 뻔했다.

“흐…으윽!”

힘겹게 몸을 일으킨 에린이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신수의 힘으로 강화된 신체능력이 올라갔던 덕이 크다.
에린은 재빨리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괜찮아. 아직은 움직일 수 있어. 그냥 벽에 부딪쳤을 뿐이지만…. 어서 백귀님과 에밀리아를 도우러….’

바론에 의해서 허공에 내던져지고,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건물 벽에 등을 부딪쳐 정신을 잃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린은 손에 꽉 움켜쥐고 놓지 않았던 자신의 레이피어를 지팡이 삼아 지탱하고는 느린 발걸음을 옮겼다.
힘겹게 걸음걸이를 옮기면서, 에린이 주위를 둘러보며 싸움의 전체적인 양상을 눈에 담았다.

‘…안 좋아.’

자신이 소환한 백귀 둘과 에밀리아의 도미너스 전투 인형들, 그리고 열이 넘는 다수의 사냥개들 간의 싸움은 비등해보였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이 늘어만 가는 쪽은 자신의 편인 백귀와 인형 쪽이었다.
숫자는 거의  배차이가 나며, 1대 2의 구도를 철저하게 유지하면서 백귀와 인형들의 전력을 깎는 전법은 시간을 들일수록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적어도 에이라 언니가 아르티아의 기사님들을 불러오기 전까지 만이라도 버티면 되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냥개들의 우두머리이자, 자신의 몸을 날려버렸던 바론이다.
순식간에 뒤를 점거당한 순간부터 에린은 그와 자신 사이의 실력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기는 건 힘들겠지만….’

- 상대와 자신의 격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싸움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 차이를 깨닫고 이길 수 없다고 단정 지어선 안 돼.

은현의 조언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알아. 나도 알지만 도대체 어떻게?’

사냥개들의 우두머리를 이기는 그림이 도저히 그려지지가 않는다.
에린이 그렇게 혼란에 빠져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상황은 에린이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쿠웅!

높은 점프로 에린의 앞까지 도달한 바론이 자신의 검을 지팡이 삼아 휘청이는 에린의 몸을 걷어찼다.

“쿠흡!”

“약자를 괴롭히는 건 딱히 취향이 아니지만, 상황이 상황이라서 말이야. 아르티아의 기사들이 와서 일이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빨리 정리하고 여길 뜨고 싶단 말이지.”

“으…윽!”

에린은 자신의몸을 덮치는 짙은 살기에 숨이 턱 막힐  같은 중압감을 느꼈다.
그 감각에 최대한 저항하기 위해, 마력을 전개하고 레이피어를 꽉 쥐며 전투의 태세를 취한다.

“하! 진짜로 아쉽네! 본래라면 천천히 가지고 놀다가 죽였을 텐데, 지금은 그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서 말이야!”

에린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바론의 얼굴을 응시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호족요술(狐族姚術)]
[여우불]

아름다운 은색빛을 띄우던 아홉 개의 꼬리가 푸른색의 불꽃을 띄운다.
꼬리의 끝에 생성시킨 여우불을 바론에게 쏘아 던졌다.
그리 빠른 투사체가 아닌 여우불을 바론이 몸을비스듬히 돌리는 것으로 피해냈지만, 처음부터 에린이 노렸던 것은 바론이 아닌 바론의 주위.
투척시킨 여우불을 조작해 마력을 활성화 시킨다.
바론이 피하면서 주위에 포진되어 있던 여우불의 화력이 점차거세지며 바론을 중심으로 하나의 울타리가 만들어졌다.

“같잖은 술수를.”

겨우 이런 걸로 자신을 가둘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시간 끌기 밖에 안 되는 얕은 술수에 귀찮다는 표정을 짓던 바론이 마력을 실은 검을 휘둘러, 자신의 주위에서 거센 불을 내뿜고 있는 여우불을 베어 넘겼다.
이내 점차 약해지는 여우불 너머에서 에린이 뛰어들었다.

[갤러해드 세검술]
[질풍사(疾風射)]

여우불들을 바론의 주위에 원을 그리도록 포진시키고 높은 울타리를 만들어 시야를 가리고, 기습을 통해 바론의 복부를 관통시키려는 에린의 수.
가속도가 붙어 극한의 관통력을 가진 찌르기가 바론의 복부를쇄도하려는 찰나.

“흥.”

카앙!

완벽한 타이밍에 가까운 에린의 기습이었으나, 에린의 레이피어를 검으로 쳐내며 공격을막아낸다.
그 수가 먹히지 않았던 것은 상대가 너무 나빴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아직!’

당연히 자신의 찌르기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염두 해 두고 있었던 에린은 바론의 검에 의해서 레이피어를 쥔 오른손이 위로 튕겨져 나가는 것과 동시에.
왼손을 뻗어 그의 복부에 가져다대고 마력을 응축시켰다.

[주현성 극원류]
[호접발경(胡蝶發勁)]

응축시킨 마력을 터뜨리면서 복부에 충격을 가해 내장을 뒤흔드는 강격한 내상을 유발시키려 했지만.

“흐음.”

그것마저도 바론의 손에 에린의 손목이 붙잡히면서 제때 마력을 터뜨리지 못해 불발이 되어버린다.
에린 또한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바론의 손목을 붙잡고 신수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구미호 고유능력]
[에너지 드레인(Energy Drain)]

“……!”

순식간에 자신의 체내의 기력들이 모두 빨려나가는 위화감을 느낀 바론이 에린을 상대하면서 처음으로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힘도, 속도도, 마력도, 경험도, 무엇하나 바론에게서 우위를 점할  없었던 에린이 유일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
자신의 몸의 변화를 알아차린 바론이 곧장 그녀의 숨통을 끊어버릴 기세로, 그녀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었지만.

카앙!

살을 찌르고 파고드는 감각이 아닌, 단단한 무언가에 가로막히는 감각에 바론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자신의 공격을 막았던 에린의 무언가에서 이상한 기시감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린다.
무언가가 소녀를 지키고 있다.
이내 다리를 들어 올려 있는 힘껏 소녀의 옆구리를 걷어차면서 억지로 자신의 손목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크…흐윽!”

옆구리에 발차기를 얻어맞아, 날아갈  한 몸을 억지로 지탱하고 이빨을  깨물고 휘청이려는 자신의 몸을 오기로 버텨내고 있다.
지금 자신이 쓰러지고 바론의 손목을 붙잡은 팔을 놓게 된다면, 에린의 수를 눈치  바론은 다신은 그녀의 손에 접촉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의 신체에 아무런 경계도 없이 손을 직접 접촉시킬 수 있었던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절…대 안 쓰러져!”

“하핫!”

자신의 몸에서 기력이 모두 빨려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론은 소녀의 눈속에 깃들어 있는 투쟁심을 보고 재미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고개를 가로저으며 검을 높게 들어올렸다.

“죽어.”

에린의 머리를 양단하기 위한 그의 검이 에린의 이마에 닿으려던 순간.

카앙!

 다시 한 번, 바론의 검을 막아내며 에린을 지켜내는 무언가.

“어?”

이번에는 에린도 그 무언가를 정확히 인지해낼 수 있었다.

“그림자….”

자신의 품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검은 형체의 그림자를 보고, 에린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 그림자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 깨닫는다.

“일리아나님이 주신 검은 구슬이….”

- 후후, 아가에게 주는 선물이야.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이게 아가를 지켜줄 거야.

일리아나의 그 말을 떠올림과 동시에, 그녀의 품속에 있던 구슬이 스스로 움직여 허공을 부유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구슬을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마력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만들어지는 것은 실체를 가지고 있는사람의 모습.

“아….”

그리고 언제나 학대하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던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남자의 등을 떠올린 에린이 작게 탄식했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에린은 기대감을 가득 채우며  말을 입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

검은 구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 정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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