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154. (H)깨닫는 마음(1)
에밀리아의 분석으로는 한 모금만 마셔도 일반적인 여성에게는 효과가 나타나고 과도하게 복용한다면 정신을 무너뜨릴 수 있는 수준의 강한 미약이라는 설명을 듣고, 은현은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에밀리아가 그런 분석과 미약의 종류를 알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지금의 엘레노아의 상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 마음이 무거운 심경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브로스와 알렉스, 그리고 루네스 공작부인.
은현이 엘레노아를 무사히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한 그녀의 가족이다.
“X발….”
얼굴을 볼 낯이 없어진다.
“마스터, 야영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은현이 생각을 멈추고 모닥불 앞에서 일어섰다.
마찬가지로 모닥불 앞에서 불을 쬐며 나무에 기대고 있는 엘레노아에게 다가갔다.
“기분 나쁘시더라도 조금만 참아요.”
“흐으….”
로브가 덮여진 그녀의 신체를 조심스레 안았다.
작은 교성을 내뱉는 엘레노아가 작게 몸을 떨었다.
남자의 손길에 만져져 최음제를 복용한 지금 상태의 엘레노아가 어떤 기분을 느낄지, 은현으로써는 예상이 가지 않았다.
경기를 일으키거나 뿌리치려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엘레노아는 저항은커녕 은현의 상체에 머리를 기대며 자신의 체중을 은현에게 맡겨왔다.
엘레노아의 몸을 들어 올리자, 그녀의 몸을 덮고 있던 로브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자연스레 우악스럽게 찢겨진 사제복 위로, 무방비한 그녀의 유방이 모습 드러냈다.
로브를 줍기 위해 급하게 다시 몸을 굽히려 했지만.
“괜찮…아요…. 그냥, 그냥 이대로…이대로 옮겨줘요.”
은현의 목에 양팔을 두르며 꽉 끌어안는 엘레노아의 돌발행동에 그녀의 맨살의 유방이 은현의 상의에 짓눌렸다.
“…….”
명백히 자신이 무슨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 엘레노아 자신도 제대로 자각을 못하고 있다고 은현은 생각했다.
일단은 그녀의 요망대로 발걸음을 옮겨 그녀를 텐트 안으로 옮기는 것을 집중했다.
이윽고 텐트 안의 매트리스 위에 엘레노아의 몸을 눕힌 은현은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녀의 풍만한 유방을 담요로 덮어주고, 곧장 텐트를 나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가지 말아요.”
황급히 은현의 손목을 붙잡은 엘레노아의 가녀린 손을 느낀 은현이 행동을 멈췄고, 물끄러미 엘레노아를 바라보았다.
“가지 말아요. 제발….”
“…공녀님.”
“제발, 조금만 더 제 곁에 있어줘요. 부탁이에요.”
“공녀님.”
“날 두고 가지 말아요. 날 혼자 두지 말아요. 날 버리지 말아요.”
“…안 버립니다.”
애원이 섞인 절망스러운 얼굴을 본 은현은 결국 텐트를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엘레노아의 손을 맞잡아주었다.
천천히 다시 자리를 잡고 매트리스 위에 은현이 앉았다.
엘레노아는 은현의 손을 끌어당기고는 자신의 뺨에 은현의 손등을 가져다 댔다.
손등에 자신의 뺨을 비비며 뜨거운 숨결을 토해낸다.
“하아아….”
“왜 제가 공녀님을 버릴 거라고 생각을 하셨습니까?”
“당신은…매정한 사람이니까.”
“제가요?”
“선인도 악인도 아니면서 철저하게 이해득실만으로 움직이니까요.”
날카로운 지적에 은현이 어깨를 조금 떨었다.
이내 동요의 기색을 지우며 시치미를 뗀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도 말했잖아요. 오라버니를 구출하러 가는 원정을 둘이서 갔을 때, 당신이 말했잖아. 걸리적거리면 버릴 거고, 필요하다면 나도 희생시킬 수 있다고.”
“그건…공녀님을 원정에 따라오지 못하게 하려는 위협의 의도가 더 컸는데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의 목숨도 판 위에 깔아놓는 남자니까. 페르닌을 습격한 악마 사건 때, 스스로 감옥에 투옥되고 공개재판에 자신의 목숨을 올려두는 미친 짓까지 서슴없이 저지르는 걸 보고 확신했어요.”
“하지만 그것과 이건 다릅니다. 저는 공녀님을 구출하고 공작님과 알렉스에게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겁니다. 이제 와서 공녀님을 버리고 혼자만내뺄 리가 없잖아요.”
이렇게까지 설득을 했음에도, 엘레노아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모르겠어. 당신이 왜 여기에 왔고 무슨 목적으로 나를 구하러 왔는지, 왜 우리 집안을 돕고 있는 건지부터 시작해서 당신에 대해서 계속 알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다 모르겠어. 지금도 나를 버리고 그냥 가버릴 것만 같아. 불안해서 미치겠어.”
언제나 이지적이고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여주면서 에린의 동경을 샀던 여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불안 증세에 시달린 그녀의 말에서는 논리적이지 못하고 두서가 없다.
불안감을 해소시켜주기 위해 설득하고, 말로 다독여도 봤지만, 엘레노아의 몸은 덜덜 떨리고 두 눈동자에는 조금씩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명백히 정신이 무너지기 직전의 상황이라는 것을 꿰뚫어본 은현이 점점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것에 인상을 찡그렸다.
은현의 손을 꼭 붙잡고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담요 속으로 끌어당겨 은현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이끈다.
“…공녀님!”
“하아아….”
자신의 유방에 은현의 손이 닿자, 이상한 감각을 느끼며 엘레노아가 교성을 내뱉었다.
“이상한 약을 먹이고 스무 명이 넘는 남자들이 내 가슴을 보며 저급한 웃음을 지었어요.”
“…….”
“양 손이 묶여서 저항하지 못하는 내 몸을 시선으로 마음껏 훑고 하반신을 우뚝 세우고 바지 속에 손을 집어넣으면서 이리저리 흔들면서 내 몸을 시간(視姦)했어요.”
“…공녀님.”
“바르크 사제가 바지 속의 물건을 우뚝 세우면서 내 가슴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내 유두를 핥으려고 했어요.”
“공녀님. 이제 그만….”
“그런데 당신의 손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많은 남자들의 시선으로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고, 기분 나쁘게 만져지면서 능욕을 당하는 기분이었는데, 당신의 손은 따뜻해, 상냥해. 계속 어루만져주었으면 좋겠어.”
매트리스 위에 누워있던 엘레노아가 자신의 몸 위에 덮인 담요를 걷어냈다.
자신의 유방에 가져다 댄 은현의 손을 놓아줄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듯 꽉 움켜쥐고 입을 연다.
“나를 안아줘요.”
이성이 무너진 엘레노아가 결국 은현에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오기 시작한다.
“당신은 공작가문의 공녀입니다.”
“알아요.”
“이러시는 건 공녀님 스스로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미련한 짓이에요.”
엘레노아에게는 언젠가 다른 귀족가의 남성에게 시집을 가야하는 정해진 수순이 존재한다.
그것은 공작가문의 여성으로써 태어난 그녀에게 부여된 책임이며 의무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자신과 이런 식으로 엮여봐야, 은현에게도, 엘레노아에게도 좋은 것은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나쁜 점들만이 가득했다.
“난 오늘 당신이 오지 않았으면 스무 명의 남자들한테 강간을 당하고, 내 처음을 빼앗겼겠죠. 게다가 애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를 아기를 뱃속에 만들었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왔지 않습니까.”
계속되는 설득에도 엘레노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그 상황에서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남자가 당신이었어요. 내 처음을 바쳐야한다면 당신이었으면 좋겠다고, 내 마음이 그렇게 말했어요.”
“…….”
“안겨야하는 남자와 안기고 싶은 남자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잖아요. 저는 오늘 제 마음을 깨달았어요. 다른 남자가 나를 안는 건 싫어. 오직 당신만이…나를 안아줬으면 좋겠어요.”
귀족가문의 여성의 사고방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말.
가문의 책임과 의무를 던져버리고, 이성이 무너지고 수많은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할 지경이 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자신의 진짜 감정과 마음이 터무니없이 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이다.
엘레노아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면서, 은현을 똑바로 직시하며 자신의 꾸밈없는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했다.
“저는 곧 결혼할 남자입니다.”
“괜찮아요. 마녀님은 내가 설득할 테니까. 자신 있어요. 저희 아버지도 일부이처였는 걸요. 전 마녀님의 자리를 노릴 생각도 없어요. 엄밀히 말하자면 저도 첩의 자식이었으니까. 그냥…당신이 내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아직 관계를 맺겠다고 말을 꺼낸 것도 아닌데, 엘레노아는 이미 자신과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심히 당황스러웠다.
이 여자의 추진력이 이렇게 두렵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다.
“전 이 나라의 귀족도 아니고, 오히려 외국인에 가까운 입장입니다. 공녀님의 신분과는 어울리지 않아요.”
“상관없어요.”
“공작과 알렉스가 저를 가만히 두지 않을 텐데요.”
“아버지와 오라버니도 설득할 자신이 있어요.”
두 사람은 겉으로는 잘 표현하지 않지만,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는 엘레노아를 끔찍이 아낀다.
여기서 정말로 일선을 넘어버리면, 아브로스와 알렉스가 자신을 찢어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지 않을까.
물론 싸우게 된다면 져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이 문제로 불필요한 트러블을 만드는 것은 사양이다.
게다가 공작가문은 자신과 공생관계이면서, 페르니아스 왕국을 지탱하는 하나의 한 기둥이지 않은가.
머릿속으로 일리아나가 떠오르고, 이 나라의 정치적인 관계를 떠올리면서 은현은 딜레마에 빠지고 있었다.
“내가…싫나요?”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은현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생각을 밝히려 했지만, 불안함을 넘어서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엘레노아의 얼굴을 보고 숨을 삼켰다.
만약 여기서 싫다고 말 한마디라도 잘못 꺼냈다간 정말로 마음이 무너져 버려 자살이라도 할 것 만 같은 위태위태한 얼굴.
그만큼 과도한 최음미약의 복용으로 이성과 정신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엘레노아는 위험한 상태였다.
“나 책임져 준다고 했잖아요.”
그 책임이 이런 책임을 염두 해두고 했던 말은 아니었는데.
말이 ‘아’다르고 ‘어’다르듯이 그 ‘책임’이 이런 ‘책임’이 되어버린 사태에 은현은 자신의 입술을 꿰매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일부분, 엘레노아의 주장은 옳은 부분이기도 했다.
유리아 왕녀의 미래예지 속에서, 엘레노아는 본래,식량을 포함한 신전의 대규모 물자지원을 대가로 바르크 사제와 정략결혼을 맺음으로써, 하르칸 주교가 있는 베스타 신전으로 팔려간다.
하지만 은현이 아니에스를 불러와 하르칸 주교를 파면시킴으로써 그 미래는 바뀌었다.
결국에는 엘레노아가 납치를 당해 최종적으로 바르크 주교에게 강간을 당할 뻔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미래는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기도 힘들다는것이 얄궂은 점이기도 하다.
이 상황은 엄밀히 말하자면 정해져 있던 미래를 은현이 억지로 틀어쥠으로써 바뀐 결과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말하고, 생각을 해보니까, 괜히 없던 책임감도 생겨버릴 지경이다.
“…….”
순간, 은현이 머릿속으로 페르닌을 나오기 전에, 일리아나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 다치지 말고 살아서 돌아만 와. 그러면 다른 여자를 만들어서 와도 다 용서해줄 테니까.
‘…얘는, 언제 미래예지 능력이라고 깨우쳤나?’
이 상황을 염두 해두고 그런 말을 했을 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어쩌면 그냥 해본 말일 수도 있다.
정말로 엘레노아와 관계를 맺고 돌아와서, 사실을 일리아나가 알게 된다면.
‘…상상도 하기싫다.’
엘레노아가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은현은 호의적인 감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은현이 엘레노아를 거절해버린다면, 엘레노아는 반드시 무너진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그녀에게는 좋지 못한 결말이 될 것이라는 것이 은현을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사랑하지도 않는데, 그녀를 안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니, 생각해보면….’
일리아나와의 첫 관계에서도 은현의 마음은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이 없는 관계에서 시작을 해도 사랑이 생긴다는 것을 은현은 일리아나와의 경험을 통해서 배웠다.
“후우…공녀님. 정말로 괜찮으세요?”
“네.”
“…질게요. 책임.”
“정말로요?”
잔뜩 망설이며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던 은현이 뜻밖에도 승낙의 의사를 밝히자 엘레노아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은현이 대답 대신 엘레노아의 몸을 끌어안고는 그녀의 입에 키스를 했다.
“츄읏. 하아….”
입술과 입술만을 포갠 퓨어한 키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엘레노아의 표정이 황홀하게 녹아내리며 교성을 흘린다.
명백한 미약의 효과로 인해 성적 감도가 올라간 결과였다.
“리아. 고개 돌려.”
“…명령의 수정을 요구합니다.”
“고개 돌려.”
“본 개체는 생명이 잉태되는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미지의 지식을탐구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명령의 수정을….”
“아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배란, 수정, 착상이야. 됐지? 고개 돌려.”
“명령을 수락합니다….”
묘하게 시무룩한 얼굴로 에밀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녹음기능, 녹화기능 다 꺼.”
“명령을 수락합니다….”
혹시나 싶어서 내린 명령인데, 이미 준비를 해두고 있었다는 사실에 은현이 소름을 느꼈다.
천천히 엘레노아를 다시 매트리스 위에 눕히고, 은현은 엘레노아의 입술에 다시 한 번 입을 맞추며 그녀의 입속에 자신의 혀를 집어넣었다.
“으흥…츄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