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2화 〉102. 합숙훈련(1) (102/730)



〈 102화 〉102. 합숙훈련(1)

페르닌, 일리아나의주택 안의 지하훈련장에서 격렬한 밤을 보내고, 은현은 거의  즈음 녹초가 된 일리아나를 업고 몰래 던전 주택 안으로 복귀했다.
그 이후 분위기에 휩쓸려 몇 번인가 또 관계를 맺었고, 잠이  다음날, 은현은 억지로 기지개를 펴면서 잔뜩 뭉친 몸을 풀어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으응….”

인상을 찡그리며 잠을 뒤척이는 일리아나 살포시 안아주었다.

“일리아나, 일어나. 아침이야.”

“…으응, 싫어. 더 잘래.”

“아침 안 먹을 거야?”

“나 지금 허리 너무 아파….”

어젯밤의 경험이 너무 격렬했던 탓인지, 일리아나는 굉장히 나른해 보이면서도 온몸이 욱신거리고 있는 통증이 가시지 않은 듯 했다.

“뭐 좀 가져다줄까?”

“물…목이 너무 말라.”

“하긴 어젯밤에 그렇게….”

“시끄러워! 떠올리게 하지 마!”

은현의 가슴을 찰싹 때리며 일리아나가 얼굴을 붉히자, 은현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물 갔다 줄게. 조금만 기다려.”

은현은 일리아나의 뺨에 입을 맞추어주고는 그대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방을 나왔다.

“…환기부터 시켜야겠네.”

방을 나오자마자, 확 달라진 공기를 느끼며, 은현은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 이번에 제작한 바람마법이 내장된 아티팩트를 가동시켰다.
은현의 방 안이 깨끗한 공기들로 가득 채우기 시작하고, 창문 구석에 설치된 환풍기를 통해서 방안의 공기가 배출되어 가고 있다.
이곳은 던전 내부에 지어진 건축물이었기 때문에,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고 맑은 공기가 들어오지는 않는다.
바깥의 던전의 영향을 받은 먼지가 자욱한 탁탁한 공기들이 어떤 병원균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인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은현은 바깥의 던전의 공기를 차단시키면서, 건물 내부를 청결한 공기들로 유지할 수 있도록 모색한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아티팩트의 가동을 확인하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은현이 그제서 방을 나왔다.
방을 나오고 기다란 복도를지나 거실을 향하던 도중, 은현은 자신과 비슷한 타이밍에방에서 나온 알렉스와 메르딘을 보았다.

“잠자리는 좀 어땠어?”

“드러눕자마자 골아 떨어졌는데.”

“덕분에 편하게 잤다. 정말로…믿기지 않는군.”

알렉스에게는 던전 내부에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단시간 안에 지은 것도 놀랍고, 매우 쾌적한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은현에게 불가능한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제는  무엇이 가능한 것일까, 그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아침 먹을거니까 다들 깨워와. 안 먹으면 후회할 거라는 것도 반드시 전하고.”

“그러지.”

고개를 끄덕인 알렉스는 그렇게 여성진들을 깨우기 위해 메르딘을 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곧바로 부엌으로 향한 은현은 에이프런을 두르고 아침을 준비했다.
매일 아침마다 일리아나와 에린이 먹을 아침을 만들어 먹였던 은현에게는 조금 양이 많아졌을 뿐이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아, 좋은 냄새….”

어느새, 에린이 다가와 식탁에 앉아 팔을 쭉 뻗고 늘어지며 은현의 요리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으며 헤실헤실 웃고 있다.

“일어났네.”

“응.”

“에이라는?”

“금방 오실 거야. 그나저나, 현아 우리 정말로 앞으로 여기서 사는 거야?”

“아예 여기에 살지는 않을 거야. 일단은  학교도 보내야하고 일리아나도 엄연히 메르비스 마법도서관의 관장이니까. 출퇴근은 해야지.”

“그러면? 굳이 여기에집을 만든 이유가 따로 있어?”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하지.”

“으음, 그렇구나.”

“모두 데리고 왔다.”

아침 준비를 하면서 에린을 대화하던 은현은, 알렉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흘끗 돌려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다들 자리에 앉으세요. 거의 준비 다 됐으니까.”

“당신, 요리도 할 줄 알아요?”

유리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은현에게 질문했다.

“집안에 하나는 어린애고 하나는 게으름뱅이라서, 살다보니 챙겨야할 사람이 나밖에 없더군요.”

“나, 나도 요리 할 수 있어!”

은현의 장난에 발끈한 에린이 은현을 보며 외쳤다.
킥킥대며 에린의 말을 받아넘긴 은현이 팬에 담긴 토스트를 접시로 옮기며, 정성스레 플레이팅 했고, 그것을 본 에린은 은현이 따로 시키지 않았음에도, 음식들을 차례차례 식탁으로 옮겼다.
일리아나의 저택에서 습관적으로 행동하곤 했던 두 사람의 일상적인 모습을 다른 이들이모두 가만히 지켜보았다.
귀족들의 아침식사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빈약한 양과 질이었지만, 달걀로 부친 프렌치토스트에서 올라오는 고소한 향기가 사람들의 콧속을 간질였다.
각자의 자리에 모두가 착석하고 각자의 앞에 토스트와 샐러드, 우유가 놓이자, 유리아는 침을 삼키며 조용히 응시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은현이 박수를 한  짝, 치고는 입을 열었다.

“자, 식사 시작하시죠.”

“에? 그런데 현아. 일리아나님은?”

“걔는 어제 건축을 도와주면서 조금 무리를 했나봐. 몸이  쑤시데.”

몸을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일리아나에게는 어젯밤의 격렬한 운동이 너무 큰 반동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음? 몸이 쑤셔? 마녀님이?”

고위마법사인 일리아나가 육체노동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던 알렉스였지만, 은현의 작은 거짓말을 간파 하지 못한 눈치였다.
단지, 엘레노아가 그것이 무슨 의미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며 눈썹을 꿈틀거렸을 뿐,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은현이 준비해준 나이프로 빵을 자르고 작은 조각을 포크로 찍어 입안에 넣은 유리아는 조물조물 입속의 토스트를 씹으며, ‘내가 만들었던  보다 맛있네….’라며 자신이 전생시절 만들었던 요리와 비교를 하고는 이상한 자괴감에 빠졌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은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뭘 하면 되죠? 다음 계획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시련의 궁을 클리어하고 이 던전의 주인이 된 은현이 다음의 계획을 언급했던 것을 떠올린 유리아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훈련을 할 예정입니다.”

“훈련?”

“네. 앞으로 약 3주간,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제가 훈련시킬 예정이거든요.”

“…누구 맘대로?”

처음 듣는 은현의 이야기에 유리아는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사전에 아무런 공지도 없이, 멋대로 자신을 계획에 넣어버리는 것은 유리아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행동이었다.

“알렉스를 통해서 이 원정에 편성된 순간부터, 이 계획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겁니다. 번복은 없으니 그렇게 아세요.”

“이, 이건 횡포에요! 어떻게 일국의 왕녀인 저에 대한….”

“일리아나의 마법수업. 꽤나 도움이 될 텐데요.”

“대우가 이렇게…뭐라고요?”

은현의 입에서 일리아나의 이름이 언급된 순간, 잔뜩 분개하던 유리아의 표정이 놀란 토끼눈으로 바뀌며 되물었다.

“검은 마녀님이 직접 저에게 수업을…?”

엄청난 명성과 대영웅이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있는 일리아나는 타인과 관계를 가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애초에 그녀가 페르니아스 왕국에 체류하고 있을 수 있는 이유도, 친구인 리오드의 중재로 왕국이 과도한 간섭을 제지시킬  있었던 것이 이유다.
그 성격 때문에 사람과 인연을 맺지 않고, 다른 마법사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제자를 들이는 것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법지식을 전수하지 않고 후진 양성에도 전혀 손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유리아가 일리아나에게 마법을 배우고, 그녀의 첫 제자가 될  있다면, 왕국 안에서 유리아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천재일우의 기회가 일리아나 본인이 아닌, 은현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굉장히 아니꼽지만, 유리아는 떨리는 주먹을 꽉 쥐고 자존심을 굽히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할게요.”

“어? 정말요? 아까는 횡포라고 하시더니?”

피식 웃으며 은현이 되묻자, 유리아의 얼굴이 더더욱 붉어져만 갔다.

“일리아나님에게 마법을 배우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은현에게 이런 부탁을 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했던 유리아가 이를 갈았다.

“네. 좋습니다.”

“일단은 에린, 에이라, 왕녀님, 그리고 알렉스. 이렇게 넷은 훈련 확정이고, 두 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은현이 메르딘과 아이샤를 바라보며 직접 묻자, 두 사람도 당황한 표정을 짓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우리도…함께 받는 것이 아니었어?”

“저, 저는 선배하고 같이 훈련을 받고 싶어요!”

“두 분은 이번 원정에 참가한 목적이 왕녀님의 호위 뿐 만이 아니라 알렉스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함이 목적이었지 않습니까. 솔직히  입장에서  분이 원정에 참가하는 것은 전혀 예상외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두 분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제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두 분의 소속은 엄연히 크라시르라는 곳이 존재하기도 하고요.”

자신이 보호자로 데리고 키우고 있는 에린이나, 리오드의 딸인 에이라, 알렉스나 그의 부탁으로 억지로 편성된 유리아와는 경우가 틀리다.

“나는 처음부터 저렇게 묻지도 않았으면서….”

작게 툴툴대는 유리아의 목소리에 알렉스가 쓰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왕녀님. 멋대로 왕녀님을 원정에 무리하게 편성시키도록 부탁한 건 저였습니다.”

“후우, 아니에요. 제 성장을 위해서 알렉스가 신경을 써줬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요. 단지…저 남자에게 숙이고 뜻대로 놀아나는 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에요.”

“왕녀님은 은현에게 이상한 경쟁의식을 품고 계시는 것 같군요.”

“그건…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유리아는 은현을 자신처럼, 지구에서 넘어온 ‘전생자’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같은 지구인의 기억을 가진 이로써 은현은 뭐든지 해내는 만능 같은 사기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데, 반면 자신은 아무것도 이뤄낸 것이 없고 힘도 없는 볼품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자신과 은현의 차이는 무엇이 존재했던 것일까.
유리아에게는 그것이 너무나도 답답한 문제였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해도 도리어 당황스러운  이쪽이야. 적어도 여기까지 따라온 이상 나는 너의 훈련을  받아보고 싶다고 생각해.”

“저도에요!”

은현의 끝을  수 없는 무력을 직접 본 두 사람의 입장에서 은현이라는 존재는 자신들의 실력을 향상시켜줄  있는인물이라 의심치 않았다.
은현은 적극적으로 참가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원 아침 식사를 마치고, 1시간 뒤, 1층의 훈련장으로 와주세요.”

은현은 그 말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앞에 놓여있던 음식을 쟁반에 담았다.

“응? 어디가?”

헤실헤실 웃으며 토스트를 씹고 있던 에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은현에게 물었다.

“일리아나 주려고, 아무리 그래도아침을 거르는  안 되니까.”

“아아, 그렇구나.”

에린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은현의 행동을 남몰래 유심히 지켜본 엘레노아는 눈을 가늘게 뜰 수밖에 없었다.
일리아나에게 아침을 전해주러 간다면서 어째서 은현은 그가 나왔던 방을 향해 걸어갔을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하다.
일리아나가 자고 있는 방이 은현의 방이기 때문.
엘레노아는 일리아나의 방이 따로 배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리아나가 자신의 방을 내버려두고 은현의 방에서 하룻밤을 그와 함께 보냈던 것이라면, 두 사람의 관계도 자연스레 추측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역시…그렇게 됐구나. 하아….”

아침을먹는 많은 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은현과 일리아나의 관계의 변화를 눈치 챈 엘레노아가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제대로 정의내리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 ◆ ◆

“그런데…왜 다 같이 모여 있는 거죠? 이 중에서 마법사는  밖에 없을 테니, 마법 수업은  혼자 듣게 될 텐데…?”

유리아가 의문에 쌓인 말투로 중얼거리자, 엘레노아가 자연스레 시선을 돌리며 유리아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피했다.
그것을 본 유리아가 눈을 날카롭게 뜨며 그녀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엘레노아, 뭔가 알고 있군요? 그 남자 또 뭔가 내 뒤통수를 치려고 하는 거 아니죠?”

“그게….”

어떻게 말해야할까, 고민하던 차에, 훈련장으로 은현이 들어와 모습을 드러냈다.

“이봐요!  뭔가….”

유리아가 곧바로 은현을 추궁하려 했지만, 은현의 특이한 복장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실내의 훈련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착용한 은현의 복장은 모든 이의 시선을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착용하고 있는 검은색 선글라스와 매치되는 각이 잡혀있는 검은색 모자와 검은색 티셔츠, 그리고 녹색 위주의 얼룩무늬바지, 워커 형태의 신발까지, 은현의 복장을 확인한 유리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조금씩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에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이거 어디서 많이  것 같은 상황인데.’

지구의 기억 속에서 묘한 기시감을 떠올려버린다.
자신이 직접 겪어본 적은 없으나, 인터넷이나 TV매체를 통해서 은현의 복장을 본 적이 있는 유리아에게는 지금 이 상황이 절대로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윽고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가던 불길함의 정체를 알아낸 유리아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생각났어! 이거 군대에서 한다는 그 훈련이잖아!’

전생에서 여자였던 유리아는 그 훈련의 이름까지는 떠올릴 순 없었지만, 자신과 동일한 나이대의 많은 군필이었던 남자들이  훈련만을 생각하면 치를 떠는 반응을 보였던 것을 떠올렸다.
이내 은현이 어떤 훈련을 하려는 건지 깨달은 유리아가 양손의 주먹을 꽉 쥐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마법 수업은 개뿔…저 X끼가 또 나를 속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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