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8화 〉098. 새로운 집은 던전(3) (98/730)



〈 98화 〉098. 새로운 집은 던전(3)

“…세상에.”

마수의 사냥을 마치고 다시 미궁의 최심부로 복귀한 알렉스와 유리아 일행은 은현이 이전에 입장했던 거대한 은백색의 문 바로 옆에 엄청난 높이의 고층 건물이 들어선 것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미친놈이…또 뭔 짓을 한 거야?!’

대놓고 한 소리를 해주고 싶었지만, 유리아는 주위의 듣는 귀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가까스로 목구멍까지 넘어오는 욕을 억지로 삼켜낸다.
그리고는 경악한 표정을 풀지 못하고 눈앞의 회색 고층 빌라의 모습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5층으로 된 건물에 단조로운 색조와 유리창을 통해 내부의 상태가 그대로 비치는 고급스러운 외관, 신경을 쓴 디자인을 보면, 당장 인터넷에 접속해 유명한 건축가의 디자인을 보고 그대로 옮겨 따라한 것 같은 은현의 무시무시한 집념이 느껴지기도 했다.

“도대체 이 단시간 안에…이 자재들은 어디서 구했고…어떻게 둘이서 이 집을 지은거야….”

자리를 비운지 약 4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복귀해보니 떡하니 고층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 광경을 보면 누구라도 어이가 없다 못해 자신들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착각할 것이다.

“오셨군요.”

입구에서 유리로 된 문을 열어젖히고, 은현이 일리아나와 함께 파티원들을 맞이해주기 위해 나왔다.

“당신…진짜 저질렀군요….”

“이번엔 힘 좀 썼습니다. 잘 지었지 않나요?”

마치 ‘어서 칭찬해!  미적 감각을!’이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은현의 얼굴이 얄밉다 못해 화가 날 정도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일단은 넘어가도록 하죠. 지금은 좀 피곤해서.”

“아, 그러면 먼저 목욕부터 하시죠. 마침 다 완공됐으니 한  들어가 보시고 소감 좀 말씀해주세요.”

은현의 말에 유리아의 미간이 또 한 번 좁혀졌다.

“…뭐라고요?”

◆ ◆ ◆

“와, 와아….”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멍하니 감탄의 대사를 흘리는 에린의 목소리를 들리며 유리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작은 폭포수처럼 물을 콸콸 쏟아내는 사자 모양의 석상을 응시했다.

“빌라를 지은 것도 말이 안됐지만, 이건 더더욱 말이  돼. 뭐야, 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욕탕은? 물은 어디서 끌어오고 있는 거지?  배출은 어디로?”

마수의  냄새로 찌든 피로를 씻어내고 오라는 은현의 권유에 따라, 파티의 다섯 명의 여성진들이 은현이 알려준 대욕탕에 들어서자마자 멍하니 서있기만 할 뿐이었다.

“왕녀님 일단은 씻도록 하죠. 오라버니와 메르딘님에게도 차례를 양보해 드려야하니까요.”

“그러죠….”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유리아는 묘하게 동요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엘레노아를 힐끔 바라 보았다.

“생각보다 놀라지 않으시네요?”

“놀랐죠. 하지만…그 남자가 하는 일에는 놀라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걸요. 이제는 뭐랄까…익숙해졌다고 해야 할지, 순응이 빨라졌다고 해야 할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떠오르지만 피곤해지는 건, 저니까요.”

많은 것을 따지고 묻고 싶은 유리아와는 달리 엘레노아는 은현이 벌이는 짓거리들에 대해서 이제는 달관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 태도를 보며 유리아가 쓰게 웃었다.

“그런데 이거…어떻게 써야하는 걸까요?”

“이건 이렇게 손잡이를 왼쪽으로 틀면 물이 나와요.”

처음 보는 샤워기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짓던 에이라와 아이샤에게 에린이 배치되어있는 샤워기의 손잡이를 조작하여 사용방법을 알려주었다.

“…처음 보는 물건인데 익숙해 보이네?”

“헤헤, 일리아나님의 집에도 똑같은  설치되어있거든요.”

‘아마도 그 남자가 설치한 거겠지. 이런 건 쓸데없이  잘 만들었다니깐.’

지구의 문물을너무나도 손쉽게 재현해낸 것이 유리아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지구의 문물을 재현해내는 것에 한계가 존재했었던 것에 알 수 없는 경쟁심과 질투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을 쏟아내는 사자 석상에서 감지되는 마정석이나, 미스릴제의 샤워기를 본다면엄연히 아르케나 대륙의 물건으로 만든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이 대욕탕 하나를 건설하는 데에만 왕국의 예산  개월분을 들이 부어야할지도 모른다.

“하아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대욕탕 속에 몸을 담그자, 스스로도 억제할 수 없는 야릇한교성을 토해내고 말았다.
전신을 욕탕 속에 푹 담그며, 머리만을 빼꼼히 내밀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좋다…. 사치스러운 기분은 다 느껴보는 것 같아요.”

몸에 누적된 피로가 욕탕의 물에 모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욕탕의 물도 무언가 평범치 않은 물을 사용했는지, 라벤더 향의 향기까지 풍기며 여성진들의 코를 자극시켰다.
모두가 욕탕에 몸을 담그고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자신들의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는지, 킥킥대며 웃기 시작했다.

“진짜로, 이 미궁에  다시 들어가겠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미궁 안에 이딴 집을 지어놨다는 게 더 이해가 가지 않네요. 아, 그래도 이런 호사를 다 누려보다니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오.”

기분이 좋은지, 헤실헤실 웃으며 풀어진 표정을 보이던 아이샤의 말투는 그녀의 얼굴표정처럼 잔뜩 늘어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킥킥대고 있다.

“…….”

유일하게 웃지 않던 엘레노아만이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속으로 지금이라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해 줘야하지 않을까, 잔뜩 고민을 했지만, 결국에는 말하지 못했다.

◆ ◆ ◆

“어마어마하네.  집보다 좋잖아?”

“그래?”

“뭘 그래야, 그래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은현의 반응에 커다란 킹사이즈의 침대 위에 몸을 던진 일리아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책상에 앉아서 설계도의 도면을 작성하고 있는 은현을 흘겨본다.

“한 층은 네 거야.”

“내 거?”

“연구실 말이야. 가지고 싶어 했잖아.”

“아.”

일리아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이면, 그냥  공방도 같이 설치해. 요즘 재미삼아서 너랑 만들고 있는 물건들은 일일이 방 옮겨 다니면서 확인받고 조정하기 귀찮아.”

“사실 그러면서 정리랑 청소도 나한테 시키려는 수작이지?”

“…….”

  전체가 일리아나에게 넘겨주면서 일절 그 층에 간섭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은현의 의도를 꿰뚫어보면서, 그녀는 자신만의 공간이 아니라, 은현과의 공동의 작업공간을 원했던 것에는 순수한 이유보다 타산적인 이유가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은현은 피식 웃었다.

“그럼 공방만 같은 곳에 만들게.”

이제 와서 그렇다고 그녀에게 청소와 정리를 하라거나, 이래라 저래라 할 생각도 없었고, 그녀는 그녀대로 은현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것에 대한 보은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귀찮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이내 설계도의 대략적인 작업을 마친 은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했다.
곧바로 일리아나의 몸을 껴안았고, 일리아나도 그런 은현의 요구에 저항하지 않고 그의 몸을 끌어안는다.

“응…츄읏.”

서로의 입술을 겹치면서 키스를 하며 사랑을 나누고,  사람은 서서히 자신의 옷을 벗어던졌다.
서로의 맨살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져 주면서, 단단한, 부드러운 서로의 피부의 감촉을 느껴간다.
그러면서도 은현과 일리아나는 한시도 입술을 떼지 않았다.
손과 피부, 입술과 혀를 통해서 서로를 탐하고, 서로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 ◆ ◆

“으음…현이가 허락해줄까요…?”

[글쎄요. 하지만 저는 해보고 싶은 걸요.  번 권유만이라도 해줄 수 있을까요?]

에린은 심히 고민에 빠진 상태였다.
가끔가다 에린에게 말을 걸며 조언을 해주었던 갤러해드가 뜬금없는 부탁을 해왔기 때문이다.
백귀를 소환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했지만, 백귀의 혼을 불러내는데 성공한 지금의 경지는 이전 서큐버스를 잡았을 때의 수준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에린의 머릿속에 난입한 갤러해드가 내일 훈련에서 은현과의 모의 대련을 주선해달라고 에린에게 요청을  것이다.
에린의 신체능력은 은현에 비해 한없이 떨어지는 수준이었지만, 수준 높은 검술을 목격한 갤러해드는 호승심을 자극당해 은현과 검을겨뤄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한 상태였다.

“일단은 물어볼게요.”

[고마워요.]

그렇게 에린은 늦은 밤에 어두운 복도를 걸어 은현의 방을 향하고 있었다.
곧바로 노크를 하려 했지만, 에린은 방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멈칫했다.

- 너 진짜 미쳤어?

- 뭐가.

- 곧바로는 진짜로 힘들어. 나 정말 죽는다고!

- 걱정 하지 마. 내가 다 해줄 테니까.

 진짜! 하윽!

방안에서 들려오는 티격태격하는 두 남녀의 소리에 에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

“싸우시는 건가…?”

 사람이 연인관계라는 걸 알고 있는 에린은  사람이 같은 방을 쓴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새삼스럽게 의문을 표시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 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의아한 표정을 지은 에린은 노크를 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은현의 방문손잡이를 붙잡았다.

[아, 안돼요! 지금 문을 열면!]

“네? 왜요?”

화들짝 놀라며 에린의 행동을 제지하는 갤러해드의 목소리에 에린이 무슨 일이냐는 듯 순수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보았으나.

덜컥! 끼이익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소녀에게는 너무 자극적인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려버린 뒤였다.

“응…?”

방문을 열자마자 코끝을 화악 찌르는 농밀한 밤꽃향의 냄새를 처음 맡아본 에린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게 무슨 냄새야?’

“에, 에린…?! 노크도 없이 무슨 일이야?”

“어…?”

보기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은현이 자신의 뒤로 일리아나를 숨기고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어, 아니 그게….”

마치 엄마와 아빠가 즐거운 시간을 나누던 도중, 갑작스레 안방에 딸아이가 난입한 상황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맴돌기 시작했다.
옷을 모두 벗고 맨몸에 가까운 나신을 이불로 가리는 은현과 일리아나를 보고, 방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깨달은 에린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갔다.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내, 내일 아침에 다시 얘기할게! 미안해! 잘 자!”

쾅!

황급히 방을 나서며, 얼마나 급했는지 문을 있는 힘껏 세게 닫자, 복도 전체가 울릴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그대로 방문에 기대로 주저앉은 에린이 새빨개진 양 볼을 두 손으로 가리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까, 깜짝이야…. 내가 지금 뭘 본거야…. 민망해라….”

- 아, 방음하고  잠그는  깜빡했다.

미쳤어! 미쳤어! 애한테 무슨 광경을 보여준 거야! 도대체!

팡팡소리를 내며, 베개로 은현을 있는 힘껏 두들겨 패는 일리아나의 분노 섞인 노성이 방문 너머로 들리기 시작한다.
일리아나의 노성을 들은 에린이 더는 이곳에 있기가 부끄러워져,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후다닥 걸으며 황급히 자신의 방을 향했다.
커다란 침대 위에서 알몸에 가까운 상태의 두 사람이 침대 위에서 구르는 광경이 에린의 머릿속에서 잊혀 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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