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094. 인형사의 후계자(1)
기본적으로 인형사란 소환사나 정령사와 비슷한 일종으로 그들이 소환수나 정령의 힘을 빌려 자신의 무력을 강화시키는 것처럼, 인형사 또한 자신이 제작한 인형을 개조하고 강화시켜, 무력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특징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르키스의 경우에는 전혀 다르다.
그녀의 몸 자체가 인형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녀 개인의 무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은현의 기본적인 전략은 언제나 똑같았다.
일전에 구미호와의 싸움에서 아홉 마리의 백귀와 전투를 벌였던 것처럼, 가장 먼저 이 싸움의 핵심이 되는 존재를 공략한다.
그것은 바로 인형들의 머리 위에 존재하고 있는 소녀, 옥좌위에 앉아있는 아르키스의 심장을 취하기만 하면 이 싸움은 끝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은현고유능력]
[시간가속]
[사고가속]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베르단디의 권능을 사용한 은현은 ‘이형환위’를 발동시켜 재빠르게 아르키스의 옥좌 앞으로 접근했다.
잔상을 남기고 사라진 은현이 옥좌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지만, 인형들의 눈에는 모두 초고속카메라라도 달린 듯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던 은현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은현이 자신들의 여왕에게 손을 뻗으려는 광경을 목격한 인형들은 일제히 머릿속에 입력된 행동패턴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패턴G3, 최우선 순위, 여왕의 보호. 명령을 하달.]
명령과 행동패턴이 입력된 인형들의 행동은 신속했다.
정성스레 머리카락을 땋은 올림머리를 한 인형이 두 자루의 쌍검을 들고 은현의 옆에 나타났다.
아르키스의 심장이 위치한 가슴에 손을 뻗은 은현의 팔을 통째로 잘라버리기 위해 매서운 베기로 공격했지만, ‘감지’를 통해 인형들의 행동을 모두 파악하고 있던 은현은 과감히 손을 빼내는 것으로 자신의 오른팔을 지켜냈다.
인형의 올려베기가 허공을 가르며 위로 붕 떠오르자, 은현은 위로 떠오른 인형의 팔목을 붙잡고는 그래도 다리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자리의 관절에 무리가 가기 시작하여 체중을 지탱하는 것에 문제가 생기고, 은현이 균형을 잃기 시작하는 인형의 머리를 움켜잡는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바닥을 향해 내리 찌기 시작했다.
콰직!
[D3, 파손으로 전투불능, 패턴G6, 진형 변경.]
동료나 다름없는 인형 하나가 머리가 깨져 박살이 났음에도, 인형들의 맹공은 멈추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이들에게는 감정이나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과 경험이라는 것이 쌓이지 않고, 그것에 대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동료인 인형이 부서졌음에도 불구하고 분노나 슬픔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무자비하게 아르키스의 유산이며, 자식들이나 다름없는 인형들을 막 부수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최대한 파손되지 않도록 제압해보자.’
하지만 팔을 부수고 다리를 부순 상태에서도, 묵묵히 적의 말살만을 위해 돌진해오는 인형들을 파손되지 않게 제압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었다.
계속해서 달려드는 인형들의 공격들을 피하고, 때려 부수고 그 인형들의 숫자가 스물이 넘어갈 때였다.
인형하나가 구체 하나를 소환하더니, 허공을 향해 던졌다.
콰앙!
작은 폭발음을 내더니, 터진 구체를 중심으로 검보라색의 연기들이 아르키스의 궁전 내부를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아르키스의 인형 전술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은현이 저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독인가.’
저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폐가 썩고,내부의 장기를 망가뜨린다.
호흡만으로도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압도적인 살상능력을 자랑하는 저 방식은 사용자들이 인간이 아닌, 인형이었기에 사용할 수 있는 무서운 방법이다.
[한 자릿수 일반 마법]
[블래스트]
에린도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일반 마법이었지만, 은현이 만들어낸 돌풍은 전혀 초보 마법사가 만들어낸 결과와는 차원이 틀린 위력.
은현이 재빨리 만들어낸 돌풍이 궁내부의 독안개를 사정없이 흩어버린다.
“푸하아!”
독안개가 모조리 흩어 질 때까지 호흡을 참고 인형들의 맹공을 버텨내던 은현이 드디어 숨을 토해냈다.
[패턴G6 실패, 다음 계획으로 이행. 패턴G….]
“그렇겐 안 되지.”
지휘의 아래에 있는 인형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상위 인형, 엘더브레인의 역할을 하는 인형의 뒤를 점거한 은현이 그 인형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미안해. 너희에게는 악감정은 없어. 아마 지금처럼 원상태로 복구하는 건 몰라도, 반드시 고쳐줄게. 너희는 아르키스의 아이들이니까.”
[침입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
파지직!
손가락의 끝을 통해서 인형의 머릿속으로 마력을 흘려보냈다.
지구에서도 과도한 기계가 버틸 수 없는 과한 출력의 전압을 넣게 된다면 기계가 버티지 못하고 수명이 깎이듯이, 일정한 출력의 마력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인형들의 입장에서는 과도한 출력의 마력은 치명적인 독이 되는 것이다.
인형들의 모든 동력과 행동원리는 바로 마력 신호로부터 비롯된다.
짧은 시간 동안 과도한 출력의 마력을 머리속으로 주입을 받은 엘더브레인 인형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윽고 스위치의 전원이 내려간 것 마냥, 축 처져간다.
명령을 내리던 엘더브레인 인형이 전투불능에 빠지자, 주위의 인현들이 일제히 정지 상태에 돌입했다.
[엘더브레인의 전투불능을 확인. 다음 엘더브레인의 선출을….]
같은 일 대 다수전의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이전 구미호의 백귀야행과 싸웠던 때와 비교를 해서, 더욱 수월한 점이 있다면, 인형들에게는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백귀야행의 백귀들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리더였던 검사 백귀의 명령에 따랐지만, 스스로가 생각을 하고 움직일 줄을 아는 지성을 가진 이들이었다.
반면 아르키스의 인형들은 백귀야행보다 3 배에 달하는 병력의 차를 가지고 있음에도불구하고, 명령을 하달해야하는 엘더브레인이 당한다면 그 휘하에 있는 인형들은 공황상태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 작은 공백을 놓치지 않고, 은현은 품에서 꺼낸 하나의 구체를 궁의 중심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는 은현의 몸을 덮고도 남을만한 거대한 방패를 소환하였고, 아래에 기다랗게 튀어나와있는 말뚝을 바닥에 내리 꽂아 고정시켰다.
‘3, 2, 1.’
콰아앙!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돌풍이 아르키스의 궁내부를 휩쓴다.
방패의 뒤에 몸을 숨긴 은현은 바닥에 박힌 방패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팔에 단단히 힘을 주며, 방패가 밀려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버텼다.
거센 돌풍이 끝나고, 방패 안에서 몸을 일으킨 은현은 자신이 만든 주위의 참상을 확인했다.
폭발의 중심지였던 기둥과 벽들, 인형들이잠들어있었던 관들까지 돌풍에 휩쓸린 궁의 내부는 제대로 된 형태를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였다.
스파크를 튀기며, 바닥에 주저 앉아있던 주위의 인형들이 일제히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마나 펄스…일리아나랑 시험 삼아 만들어보긴 했지만, 위력은 나쁘지 않네.”
순수한 고농도의 압축된 마나를 보석 안에 담고 내부의 마나가 폭발하지 않도록 안전히 잠금장치를 걸어둔 형태는 지구의 군대에서 흔히 사용되는 수류탄과도 같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는 폭발의 중심지로부터 강력한 마력의 파장을 흩뿌리는 것으로, 이렇게 주위의 마력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인형들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원리는 지구의 전자기펄스(EMP)의 개념을 마력을 이용하여 아르케나 대륙 식으로 만든 것에 불과했지만, 은현은 이 시험작 수류탄의 효과를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애초에 위력은 최소한으로 만든 거였으니까. 높이려고 하면 얼마든지 높일 수 있지. 이제는 개량만 남은 건가.”
조금씩 마나의 주입량을 늘려가며 폭발의 위력과 범위를 조절하는 것만이 남았다.
은현은 무력해진 인형들을 둘러보던 시선을 거두고 폭발에 휘말리지 않은 옥좌에 앉아있는 아르키스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뚜벅뚜벅 걸어간 은현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아르키스의 앞에 당도했다.
“…….”
가만히 서서 고개를 숙인 채로 정지해있는 인형 소녀를 물끄러미 응시한 은현은 이내 무릎을 꿇고 옥좌위의 그녀를 올려다 볼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낮추었다.
“나를 블랙리스트에 넣었었구나.”
어쩌면 아르키스는 언젠가 은현이 자신의 유산을 누군가에게 넘기는 것이 아닌, 은현 스스로가 갈취하기 위해서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염두 해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해서 은현은 스스로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이것은 어쩌면 서운함일까?
잘 모르겠다고 스스로도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은현은 또 하나의 마력의 파장을 느끼고 고개를 위로 올려다보았다.
옥좌의 위, 거대한 태양의 문양이 그려진 벽화에 마법진이 형성되더니 마법진의 중심에 한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은현은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소녀의 얼굴이 마법 너머로 보이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르…키스…?”
[어쩌면 네가 올 수도 있겠다싶었는데, 정말로 올 줄은 몰랐네.]
무덤덤한 표정과 어울리는 담담한 어조로 아르키스는 말했다.
[어서와. 네가 이렇게 나의 미궁에 왔다는 것은 아마 둘 중 하나겠지? 후계자를 데려왔거나, 아니면 은현, 네 스스로가 나의 후계자의 자리를 이어받기 위해 왔거나.]
“…….”
[그런데 시련에 들어온 게 다름 아닌 너라면, 정말로 나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 찾아왔다는 뜻이겠지. 네가 그런 선택을 내리다니 정말로 뜻밖이야.]
사람이 아닌 인형인 주제에, 인간의 얼굴 근육까지 유사하게 모사하여 짓는 아르키스의 헛웃음은 마치 진짜 사람이 짓는 웃음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그래도 나는 네가 정말로 그런 선택을 내린 거라면 정말로 기쁘게 네 선택을 받아들이겠어.]
“뭐…?”
뜻밖의 대답에 은현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럼 도대체 블랙리스트에는 왜 지정해뒀고, 왜 인형들이 자신을 죽이도록 미리 설정을해두었다는 말인가.
[그럼 도대체 왜 블랙리스트에 널 넣었고, 내 아이들이 너를 죽이도록 설정을 해둔 거냐고 묻고 싶겠지?]
“정답이야. 죽기 전에 독심술이라도 배웠냐?”
[이건 그냥 화풀이야.]
자신의 악질적인 농담에 녹화해둔 그녀의 유언이 대답해줄 리도 없었다.
그보다 더욱 은현의 심기를 건드린 건 이후에 이어진 그녀의 말 때문이었다.
[그러게 내 인형술, 알려준다고 했을 때 배우지 왜 뻐팅겼어? 내 후계자임을 증명하는 인형술을 보여주기라도 했다면 내 아이들이 너를 섬멸하는 명령은 발동되지 않았을 거야.]
“…….”
은현은 과거에 아르키스가 자신의 인형술을 가르쳐준다고 제안을 해왔을 때,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던 적이 있었다.
신경써야할 것도 많고, 인형 제작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일에 시달렸던 과거의 은현에게는 그것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도, 정신적인 여유도 존재하지 않았었다.
무엇보다 은현은 가장 죽음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면서도, 언제나 죽음과 가까운 인생을 보내고 있는 남자다.
아르키스의 염원이 자신의 머릿속에 내장되어 있는 인형술과 수많은 지식들을 후세에 남기는 것이 목적이었던 이상, 이 부분에서 은현은 그녀의 후계의 자리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녀의 염원을 이루어줄 수는 없었다.
아르키스는 내심 그것에 대해서 심통이 나있었던 모양이었다.
할 말이 없어진 은현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마법진 속의 아르키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마워. 다른 자가 찾아왔다면 불안했을 수도 있었지만, 너라면 믿고 안심할 수 있어. 적어도 너는 나의 기술을 악한 일에 사용하지는 않을 테니까.]
은현을 만나게 된 이후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해오면서, 아르키스는 은현의 재능을 알아보고 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그녀의 마음속으로 은현을 자신의 후계로 점찍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지식과 힘, 기술을 은현에게 전수하고 그가 걷는 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지만 은현은 아르키스의 속마음을 눈치 채지 못했고, 그녀의 기술을 이어받는 것을 거부했다.
[사실 말이야. 너와 함께라면 그냥 그렇게 악마들과 싸우다가 죽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 하지만 나는 나의 기술을 앞으로의 미래에 전수해야만 하는 사명이 있었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언제나 죽음의 한복판에 서있는 너를 떠날 수밖에 없었어. 정말 미안해.]
인간과 기계, 종족은 틀리더라도 둘 사이에는 불멸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기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서로의 종족의 차이에서 나오는 가치관, 생활방식, 행동원리 등 모든 것이 맞지 않는 두 존재였지만, 불멸이라는 같은 특성을 짊어진 존재였기에 결국엔 서로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미안해하지 마.”
은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너보다 내 사명을 우선시 했어.]
“나도 마찬가지야. 나의 사명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네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어.”
아르키스가 자신에게 인형술을 비롯한 자신의 모든 지식의 정수를 넘겨 은현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을 줄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누가 그녀를 인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몸은 피가 흐르는 인간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생각해주고 위해주는 마음씨를 가졌던 그녀는 엄연히 인간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르키스는 은현의 불멸을 함께한 동지이자, 인간이며, 친구였다.
[늦게라도, 나를 찾아와주고 나의 모든 걸 받아들일 결심을 해줘서…. 정말 고마워. 하나 뿐인 나의 친구.]
“…젠장.”
이제는 고장나버린 줄 알았는데.
메마른 줄 알았던 가슴 속의 감정울기 시작하고 은현의 한쪽 뺨에서 한 줄기의 물방울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