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093. 정식 원정 출정(3)
쾌속전진으로 던전의 공략을 진행 끝에, 은현의파티는 던전의 최심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계층을 클리어하고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도달한 미궁의 최심부는 거대한 넓이의 공간에 비해 내부는 공허했다.
거대한 암벽으로 쌓여진 곳의 중심에 유독 눈에 띄는 백은색의 거대한 문이 있을 뿐, 최심부에는 마수나 트랩 같은 위험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드디어….”
최심부로 들어가는 입구 앞, 거대한 문 앞에서 문을 올려다보며, 유리아가 중얼거렸다.
이전, 이곳을 목표로 왔던 유리아에게 있어서는 감회가 남다른 장소였다.
그것은 기쁨이나 뿌듯함, 기대와는 다른 아쉬운 감정이 잔뜩 차지하고 있었다.
파티를 주도하여이곳으로 이끈 것이 자신이 아니라, 옆에 서 있는 은현이라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이 다음에는 저 혼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은 건가?”
“애초에 이 문 너머의 시련은 혼자 밖에 들어가지 못해. 아르키스의 후계자를 선별하는 시험은 오로지 단독으로 치러야하거든. 그렇죠. 왕녀님?”
“…네.”
아쉬운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유리아의 확인을 뒤로 하고, 은현은 파티원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현재 이곳은 세이프티 존으로 마수들이 나오지 않는 지역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텐트를 설치하고 쉬도록 하죠. 다행히 우리 이외에 사람이 있지도 않을 것 같으니, 경계도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음 편히 있도록 하세요.”
은현의 말에 파티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오더가 내려지자, 파티원들은순조롭게 텐트를 설치하고 곧바로휴식에 들어갔다.
하지만 은현이 휴식을 취하지 않고 계속 문 앞에 서있자, 에린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바로 들어가려고?”
“어. 마침 몸도 풀었고 적당히 달아올랐으니까. 지금이나을 것 같아서.”
“…조심해.”
“아무렴. 내가 누군데.”
은현이 피식 웃으며 농담으로 에린의 불안을 풀어주려 했지만, 에린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은현이 이 파티의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던전 안의 위험한 곳에 제 발로 걸어들어가는 것이 걱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갔다 올게.”
“응….”
“시간은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식량 자체는 모두가 공평하게 먹는다면 3일 분 정도를 챙겨왔지만, 2일 이내로 제가 나오지 못한다면 곧장 이 미궁을 탈출하세요.”
“저기요.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여기까지 당신 힘 덕분에 올 수 있었는데, 당신이 빠진다면 우리는 또 다시 그때처럼 고립될 가능성이 충분한데요?”
유리아의 기억 속에서는 자신의 판단 착오로 자신과 자신을 호위하기 위해 따라온 근위기사단을 위험으로 빠뜨린 이 장소는 트라우마나 마찬가지였다.
핵심 전력이나 다름없는 은현이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불안 요소로 다가왔기에, 결국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꺼낸 것이다.
“그때는 내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도 알지만, 난 그때처럼 또 그런 경험을 하기 싫어요. 게다가 지금 이 파티에는…아직 아이들도 있잖아요.”
유리아가 걱정되는 시선으로 에린과 에이라를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사제인 엘레노아가 참가하고, 이전보다 밸런스가 좋아지는 구성을 짰다고는 하지만, 은현을 제외하고 일곱 명의 파티원 중 두 사람은 제대로 된 마수와의 전투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짜 중의 초짜다.
두 소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파티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 던전은 서식하는 마수들의 등급이 높은 수준에 속하지만, 자기 수복능력이나 마수의 생산이 생각보다 빠른 편은 아닙니다. 최심부까지 빠른 속도로 내려오면서 던전 안에 있는 마수란 마수는 싸그리 없앴고, 함정도 모두 해체하면서 들어왔어요. 적어도 3, 4일 정도는 버텨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적어도 파티원 모두가 무사히 던전을 나가는 데는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군요.”
납득한 듯 유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모든 마수들을 정리하고 몇 시간 만에 최심부로 내려왔던 이유는 이걸 대비한 것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은현은 거대한 문을 있는 힘껏 밀어 열어 젖혔다.
문 너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대로 은현을 감싸기 시작했고, 강렬한 빛에 이기지 못해 파티원들이 하나 둘 씩 손으로 눈을 가리며 보호했다.
잠시 후, 시간이 지나고 잠잠해지자, 파티원들은 눈을 뜨며 굳게 닫힌 거대한 문을 응시했다.
은현을 들여보내준 문은 어느새인가 소리 소문 없이 다시 닫혀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열렸던 적이 없었던 것인 양, 생각해보면 저 거대한 문이 열리는 와중에도,소음이나 진동하나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문이 열리면서 생겼던 변화는 오로지 문 안에서 뿜어내는 새하얀 빛뿐이었다.
[입장 확인]
“응…?”
““““어?””””
허공에서 들려온 가녀린 소녀의 목소리에, 파티원 전원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전자의입장을 확인했습니다.]
“어….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인데요?”
에린의 말에 모두가 위쪽을 응시했다.
[도전자의 귀환을 기다리는 일행을 위해, 스트리밍 기능을 활성화합니다.]
그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유리아였다.
마치 자신들을 안내하는 듯 말하는 투도 신경이 쓰였지만, 가장 신경이 쓰였던 것은 다름 아닌 목소리가 언급한 ‘단어’였다.
“스트리밍…?”
명백하게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단어의 언급에 유리아는 그 단어를 중얼거리며 되물었다.
그녀의 말에 호응하듯, 은현을 집어삼킨 거대한 은백색의 문 쪽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알렉스였다.
“다들 조심! 문에서 멀리 떨어져!”
“…아니, 이건 공격 마법이 아니에요.”
“왕녀님?”
멍하니 중얼거리는 유리아를 보며, 알렉스는 되물었지만, 유리아는 알렉스를 보지 않고 있었다.
거대한 문에 나타난 마법진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내 예상이 대로라면…공격 마법이 아니야. 아마도 내부를 보여주는 마법이겠지.”
유리아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마법진의 중심에서 하나의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만 같았지만 보이는 것은 자신들의 모습이 아닌, 은백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은현의 뒷모습이었다.
마법이 은현의 현재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자신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챈 알렉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마법입니까?”
“마법이겠지. 아마도….”
‘스트리밍’이라는 단어를 듣고 지구의 영상기록과 송출을 이용한 과학기술이라고 순간 생각을 했지만, 이곳, 아르케나 대륙에는 기계문명은커녕 ‘과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마법을 이용해 지구의 과학기술을 재현했다고 생각해보는 것이 옳은 추측일 것이다.
‘하긴 이미 그 남자가 나타나면서, 전생자는 나밖에 없다는 가정도 깨진지 오래니까. 지금보다 더 오래전에 전생자가 있었어도 놀랄 것은 없지.’
유리아는 스스로 자신의 추측에 납득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아…. 다치면 안 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영상 너머의 은현을 보며 중얼거리는 소녀를 보고, 유리아 또한 스트리밍되고 있는 은현의 모습을 향해 응시했다.
◆ ◆ ◆
“어마어마하네. 역시 아르키스야.”
아르케나 대륙에서 미궁으로 입장을 했던 것처럼, 차원 이동을 통해 또 다른 공간으로 전이된 장소를 보고 은현이 감탄했다.
마치 던전 안에 또 다른 던전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이런 마법 기술을 던전 안에 설치한 것은 아르키스가 아닌 다른 인물이리라.
“결국 연구 끝에 차원 마법의 비밀을 풀어내셨구나.”
자신의 숙원을 달성한 위대한 마법사의 존재를 떠올린 은현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녀의 위업을 칭송했다.
이제는 자신이 알고 있으니까.
[그 아르키스라는 아이는 어떤 아이였던 것이냐?]
“아르키스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인형이었죠.”
[사람이 아니었다고?]
“정확히는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된 인형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녀의 몸은 인간과 같은 피부와 살을 가졌지만, 뼈가 존재하지 않았고, 피가 흐르지 않는, 인외의 존재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생명체가 아니다.
인형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마정석에서 생산해내는 마나를 동력원으로 반영구적으로 가동되는 마도기계라고 할 수 있는 지구의 과학기술과 아르케나 대륙의 마법기술이 합쳐진 마도공학의 산물이다.
그 인형의 몸에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되고 스스로 생각하고 자아를 형성하게 된 최초의 인형이자, 마지막 인형사가 바로 ‘인형사 아르키스’였다.
“그런데 여신님은 제 여정을 모두 지켜보셨으니까, 아르키스에 대한 것도 알고 계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제 3자의 입장에서 하계의 아이를 지켜본 것은 맞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시선에서 아이들을 지켜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가 그 아이를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는, 아이만이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아이에게 저 인형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아르키스는 저에게…. 친구이자, 유일하게 아프지 않고 떠올릴 수 있는 좋은 기억들을 가진 친구에요.”
은현과 함께 했던 동료들은 대부분이 좋은 끝을 맞이하지 못했다.
인질로 사로잡혀 자결을 선택하거나, 적을 죽이기 위해 몸이 부서져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결국에는 최후를 맞이하거나, 함께 악마와 마수들에게 저항하다가 끝에는 죽음을 피하지 못해 시체도 찾지 못하는 등. 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결국엔 은현 혼자만이 남았다.
그 중에서 아르키스는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끝을 맞이한 몇 안 되는 존재 중 하나였다.
많은 시간을 은현과 함께 싸움에 할애했던 아르키스는 은현과 마찬가지로 수명이라는 시간의 굴레에 속박을 받지 않는 불멸의 존재였으며, 여신의 사도라는 사명을 짊어진 은현과는 달리,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던 아르키스는 자신의 후계자를 맞이하는 장소를 만들고 영면에 드는 것을 선택했다.
은현에게는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아르키스가 부럽기 그지없었다.
[그렇구나.]
베르단디는 은현의 목을 살짝 감싸 안았다.
[지금도 힘이 드느냐?]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베르단디의 질문에, 은현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여신님이 계시니까요.”
[아이의 그 말이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기쁘구나.]
그렇게 여신과 대화를 나누며 새롭게 전이된 던전의 내부를 걸었다.
전체의 길이는 약 70m정도에 너비는 10m, 높이는 15m정도의 거대한 건물의 내부는 마치, 웅장한 왕궁의 내부를 연상케 하는 광경이다.
양 옆으로 나란히 벽에 걸려 진열된 관들과 기다란 길 끝에 중앙에 놓여 있는 화려한 의자, 그리고 그 의자에 앉아있는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한 소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검은색과 남색의 어두운 색조의 고딕 드레스를 입고 있으며 연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짧은 단발머리의 어린 소녀는 약 400년 만에 만나보는 은현의 옛 동료의 모습이었다.
“정말 오랜만이네. 아르키스.”
이제는 작동이 멈춰버린 인형 소녀는 반가운 은현의 인사를 들었음에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런 은현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아르키스의 미궁 내부에 오로지 무감정한 마법으로 구성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도전자의 입장을 감지했습니다.]
[시험 시작 전에, 도전자의 시험 자격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전자의 미궁 클리어 시간, 51분. 합격.]
[도전자의 마력 능력치 측정, 합격.]
[도전자의 인형사의 후계 증명 여부, 불합격. 오류를 확인.]
[…아이야?]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베르단디가 불길한 낌새를 느끼곤 은현을 불렀다.
하지만 은현은 여전히 축 처져 있는 인현을 응시할 뿐이었다.
“미안해. 아르키스. 원래는 정식으로 네 후계자를 찾아와 이곳에 데려다 놓고 싶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바뀌었어.”
은현은 지금까지는 영웅을 만들고 이끄는 자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르다.
은현, 스스로가 영웅이 되고자 마음을 먹기로 마음먹었으니.
필요한 것들은 양보하지 않고 모두 자신이 차지하고 자신의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다른 누구도 그것을 뭐라 할 수 없었으며, 오로지 그에게 제약을 걸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인 여신이 그것을 허락했다.
“인형사의 후계자. 자격이 없더라도, 내가 억지로 쟁취하겠어.”
이것은 영웅이 되기 위한, 은현의 첫걸음의 시작이었다.
[설정된 블랙리스트와 대조를 시도.]
[확인 결과. 최고 위험 리스트의 침입을 확인. 30초 이내로 미궁을 나가지 않을 시 섬멸 조치.]
[30…29…28…27.]
[아이야!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서 이곳을 나가지….]
베르단디는 급하게 은현을 재촉했지만, 은현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은현의 생각을깨닫고 그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정말이지…. 여전히 무모한 길만을 골라서 가는구나.]
한숨을 쉰 베르단디는 더 이상의 설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했다.
[0. 블랙리스트 ‘은현’을 ‘도전자’ 또는 ‘손님’이 아닌, ‘침입자’로 간주. 지금부터 섬멸을 시작합니다.]
경고의 음성에 가까웠던 소녀의 안내가 끝나기 무섭게, 양 옆의 나란히 진열되어있던 관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도미너스 부대. 목표를 확인. 섬멸모드를 가동합니다.]
붉은 안광을 내뿜는 감정이 없는 수십 대의 인형들이 일제히 은현을 쳐다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