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0화 〉050. 검술 대련(2) (50/730)



〈 50화 〉050. 검술 대련(2)

진검이 아닌, 가검 또는 목검을 사용하는 비살상 대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심리전을 동반한 ‘수 싸움’이 주된 요소다.
급소를 노리고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아닌, 상대를 무력화 시키는 것으로 패배를 인정시키는 대련은 정해진 규칙 사이에서 서로의 역량을 겨루며 실시되는 경기이다.
서로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살인’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스포츠맨 쉽’, 또는 ‘선수 정신’과도 같은 성격을 띄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수 싸움’이다.
자신의 역량과 상대의 역량을 파악하고 서로가 상대방의 공격을 예측하고, 막아내며 반격한다.
은현이 에린과의 대련을 통해서 에린에게 가장 먼저 각인시켜주고 싶었던 것이 바로  수 싸움과 심리전이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잘 보고, 자신에게 어떤 공격을 해오는지, 어디를 방어하는지 파악하고 분석하고 그에 대응하여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타악!

은현과 알렉스의 목검이 맞부딪치며 경쾌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첫 합의 충돌을 시작으로 두 합, 세 합 서로의 목검이 부딪치면서 두 사람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서로의 충돌로 서로의 수준을 조금씩 가늠해보며 간을 보던 사이에 먼저 공격에 나선 것은 알렉스 쪽이었다.
지금껏 목검을 가볍게 휘두르던 알렉스가 체내의 마력을 끌어올려 신체 강화의 정도를 높여갔다.
전반적으로 향상된 신체 능력을 기반으로 알렉스가 속도를 높여 은현을 향해 빠른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일격, 이격, 목검을 휘두를 때마다 가속도가 붙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하는 알렉스의 검을 은현이 침착하게 눈으로 쫓으며 모두 쳐내고 있었다.
공격의 횟수가 점차 쌓이더니 약 여섯 번째의 검격부터는 일반인의 눈으로는 제대로 쫓을 수도 없는 속도였다.

“와, 와아….”

두 사람의 공방전을 보던 에린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대련을 관전하고 있었다.

‘나도 너의 의도에 넘어가주도록 하지.’

그렇게 생각했던 알렉스는 은현을 주시하며 목검을 쥐고 있던 자신의 팔을 높게 들어올렸다.

“아!”

익숙한 광경이라는 것을 깨달은 에린이 작게 탄식했다.
은현이 자신과 대련 당시에 보였던 행동과 똑같지 않은가.
하지만 은현은 높게 들어 올린 알렉스의 목검과 팔에는 눈길 따위도 주지 않았고 발걸음 놀려 몸을 옆으로 빼는 것으로 바닥을 내려치는 알렉스의 종베기를 피했다.
허공을 베던 알렉스의 목검이 그대로 바닥을 내리쳤고, 큰 동작의 공격 이후의 생기는 빈틈을 노리고 은현의 목검이 알렉스의 목을 향해 날아들어 왔다.

타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은현의 공격이 가로막혔다.
알렉스가 비어있는 왼손을 들어 올렸고, 마력을 끌어올려 단단하게 강화한 팔로 은현의 목검을 가로막은 것이다.

“크윽!”

집중적으로 강화하여 단단한 경도를 뚫고 가해지는 충격에 알렉스의 이마가 찡그려지며 신음을 내뱉었지만, 알렉스는 은현의 공격을 막았던 왼팔을 이용해서 재빨리 은현의 목검을 붙잡아 추가적인 공격을 제한했다.
목검을 붙잡혀, 방어의 태세를 취할 수도 없는 상황.
알렉스가 왼팔로 은현의 목검을 붙잡는 것과 동시에, 바닥을 내리쳤던 목검을 이용해서 은현의 턱을 노리고 올려치기를 먹이기 위해 목검을 쥔 오른팔에 힘을 쥐었다.

타악!

제대로 힘을 실어 올려치기도 전에, 알렉스의 목검이 무언가에 부딪쳐 튕겨나간다.
놓쳐버린 알렉스의 목검이 훈련장의 바닥을 나뒹굴었다.
은현이 정확히 목검의 날을 발로 걷어 차버리며 튕겨낸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튕겨나간 자신의 목검 쪽으로 시선이 향했던 알렉스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의 왼손이 쥐고 있던 은현의 목검의 무게가 갑작스레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이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왼손을 돌아보자, 그제서 그 이유를 알아챘다.
은현이 아예 자신의 목검에서 손을 놓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목검에서 손을 떼고 맨손이  은현이 순식간에 알렉스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몸을 살짝 숙이며 왼팔을 뒤로 살짝 뺐다.

“아!”

“왜, 왜 그러세요?”

익숙한 기시감을 느낀 엘레노아가 기겁하며 탄식하자, 옆에 있던 에린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엘레노아는 은현의  자세를 한  보았던 적이 있었다.
아르키스 대미궁의 1계층에서, 우연히 조우한 미노타우로스의 앞에서 똑같은 자세.
뒤로 한쪽 팔을 조금 빼며, 허리를 비틀고, 꽉 쥔 주먹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응집되는 과정 하나하나가 그때와 너무나도 똑같다.
그리고 무슨 공격을 하려는지 깨닫고 기겁하며 탄식을 내뱉은 것이었다.
은현의  공격을 맞았던 미노타우로스의 복부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까지 그녀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위험성을 직감한 것은 알렉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시간가속을 통해 빨라진 신체능력으로 사용한 기술이 아니었기 때문에, 알렉스에게도 은현의 동작을 인식할  있었던 것이 천만의 다행.
그럼에도 너무나도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이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할 뻔 했지만.
몇 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알렉스는 은현의 주먹에 응집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을 보고 온 몸에 닭살이 돋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신체 전체를 강화하고 있던 강화를 풀고, 체내에 남아있던 모든 마력을 끌어 모아 양팔에 집중시킨 뒤, 양팔을 교차시키며 막는 자세를 취했다.
머릿속으로 외치는 생존본능에 반응해 자신에게 가능했던 최선의 방어 자세를 취하는 알렉스를 보며 은현이 미소 지었다.

“아, 안 돼!”

기겁하는 모습으로 다급하게 은현의 행동을 보며 소리쳤지만 엘레노아의 비명에 가까웠던 목소리는 은현과 알렉스의 귀에 닿지 않았다.

[주현성 극원류]
[삼매붕권(三昧崩拳)]

은현의 주먹이 알렉스의 양팔을 향해 내뻗어졌다.

파아앙!

“꺄아악!”

공기가 폭발하는 파쇄음을 내며 훈련장의 내부를 사나운 돌풍이 채운다.
은현의 주먹에 응집되어 있던 마력이 해방되고 미쳐 날뛰기 시작하며 훈련장의 내부를 헤집고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대련을 관전하고 있던 엘레노아와 에린은 자신들을 덮치는 돌풍을 정면으로 맞게 되자 얼굴을 가리며 정면에서 불어오는 돌풍에 미약하게나마 저항하며 버티고 있었다.
몇 초 뒤, 사나운 돌풍이 잠잠해지마 얼굴을 가리고 있던 팔을 내린 엘레노아가 다급하게 알렉스를 찾았다.

“오, 오라버니!”

“…….”

엘레노아가 그렇게 찾던 알렉스는 가드하고 있던 자신의 양팔을 풀지 않고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엘레노아는 알렉스가 멀쩡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알렉스의 양팔에 닿기 직전이었던 은현의 주먹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주먹을 내질렀지만 정확히 알렉스의 앞에서 멈춰서 있는 은현의 주먹을 보고 알렉스도 은현이 처음부터 이 공격을 맞힐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공격을 맞았다면 틀림없이 자신은 죽었을 것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각인된  생각만큼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었던 은현의 무력의 일부를 엿본 느낌이었다.

“하아아….”

“후우우….”

알렉스와 엘레노아, 두 남매가 동시에 바닥에 주저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직도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는지 엘레노아가 도끼눈을 뜨며 은현은 노려보고 소리쳤다.

“이봐요! 당신 정말로  그렇게 사람 떨리게 만들어요! 오라버니가 다치는 줄 알았잖아요!”

“거 시끄럽긴.  다쳤잖아요.”

“그게 지금 말이라고!”

“화내지 말고 일단 알렉스부터 치료하세요. 왼쪽 팔, 아마도 뼈에 금이 갔을 테니까.”

“예?”

엘레노아가 놀라 반문하며 급하게 주저앉아 있는 알렉스의 왼팔의 소매를 걷어 올려 상태를 확인했다.
새빨갛게 부어있는 팔을 보고 이 상처가 알렉스가 은현의 검을 팔로 막았을 때 생긴 상처라는 것을 눈치 챘다.

“육참골단(肉斬骨斷)…그 상황에서 대담한 선택을 했네.”

자신의 살을 내어주고 상대방의 뼈를 자른다는 의미.
자신의 뼈에 금이 갈 것을 상정해서라도, 은현에게 한방을 먹이고 싶어했던 알렉스의 의지가 대단했다.
서로를 죽이는 살육전이 아닌, 서로의 역량을 시험하기 위한 대련에서 스스로의 데미지를 감수하면서까지 저렇게 공격적으로 나오는 이는 매우 드물다.

“나도 고작 대련에서는 이렇게까지 위험한 선택은 하지 않지. 하지만 널 상대한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의표를 찌를  있다고 생각했다.”

“뭐, 확실히. 그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으니까.”

은현도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엘레노아의 신성마법으로 회복될 것을 상정했기 때문에 조금의 위험도 감수할 생각도 했던 것이라 생각했다.
은현은 멍하니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던 에린에게 시선을 돌려 말을 걸었다.

“어땠어?”

“어? 아, 그…. 대단했어.”

“언젠가는 너도 할 수 있어.”

“정말…나도 강해질 수 있을까?”

“노력만 한다면.”

노력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렉스와 엘레노아는 알고 있었지만, 굳이 그것을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은현은 에린이 노력만 한다면 강해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었으니까.
알렉스는 그런 은현의 밑에서 배우고 있는 에린이라는 소녀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종종 부탁하지.”

“뭐, 네 동생 분, 자주 데려와 준다면. 못해줄 것도 없지.”

“시끄러워요.”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이었지만, 은현이 엘레노아를 불러들이는 이유가 단지 ‘회복 셔틀’로써 이용할 생각만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던 엘레노아는 굉장히 자존심 상한다는  인상을 찌푸렸다.

◆ ◆ ◆

최근 아이테르 안에서는 미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 미묘한 분위기의 원인은 바로 자신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이물질 취급했던 한 평민 소녀의 변화 때문이었다.
최근 좋지 않은 의미로 화제의 인물이었던 평민 소녀, 에린은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 지난사이에 눈에 띌 정도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난함의 상징이라도 보여주듯 제대로 된 식사도 챙겨먹지 못해 빈약하기 짝이 없었던 소녀는 어디서  먹고 다녔는지, 커다래진 흉부와 늘씬해진 각선미를 뽐내는 다리, 가냘픈 허리를 갖추기 시작했다.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가야 할 곳은 들어가며 성숙해진 소녀는 얼굴만 반반한 평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초라한 시절과 대변되듯, 어디의 귀족영애도 꿇리지 않을만한 아름다운 외모로 탈바꿈하여 주위의 남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뿐  아니라 언제나 기운이 없고 잔뜩 위축되어 있었던 모습과는 달리, 밝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을  있게  표정에서는 어딘가 마음의 여유까지 보이고 있었다.

“이봐, 평민.”

“응?”

에린은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며 고개를 돌렸다.
한 남학생이 자신을 따르는 두 명의 시종을 데리고 에린의 앞에 서있었다.

“오늘 저녁, 수업이 끝나고 날 따라와라.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광을 평민, 너에게 주겠다.”

“……?”

에린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 뿐 만이 아니다.
최근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남학생의 비율이 늘어난 것과 동시에 대부분이 이 남학생처럼 자신에게 영문 모를 권유를 해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에린은 갑작스럽게 이것들이 왜 이러는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저, 죄송하지만 제가 좀 바빠서요.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죄송합니다.”

오늘 밤에도 은현과 훈련을  예정이었던 에린은 고민도 하지 않고 단칼에 남학생의 제안을 거절했다.

“가, 감히 나의 제안을 거절한다고?”

설마 자신의 권유를 거절할지는 몰랐는지, 기분이 상한 남학생이 얼굴을 붉히며  쥔 주먹을 떨자 에린은 당황했다.

“저기…. 제가 정말로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런데요. 정말 죄송하지만….”

“시끄러워!”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높은 목청이 교실 안을 감싸자 떠들썩하던 교실의 분위기가 싸늘해지며 정적에 잠겼다.

“너에게 선택권은 없다. 방과 후 시종이 널 맞이하러 갈 테니. 조용히 따라와라.”

“아, 저…!”

자신이  말 만을 남기고 교실을 떠나는 남학생을 뭐라 불러 세우지도 못한 에린은 순식간에 자신에게 집중되는 주위의 시선에 살짝 몸을 떨었다.

“으….”

주목을 받는 것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던 에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쳇….”

그런 에린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학생들 중, 한 여학생이  상황이 못마땅하다는 듯 작게 혀를 찼다.
에린을 해코지하려다가 은색머리카락에 붉는 눈동자를 가진 한 남자의 난입으로 섬뜩한 경험을 했던 여학생, 마르바 베르만은 자신의 손톱을 깨물며, 눈엣가시 같은 에린을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