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049. 검술 대련(1)
에린의 교육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어 이루어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신체 능력의 향상을 위한 기초적인 체력 훈련.
추 번째는 향상되고 있는 신체 능력을 기반으로 배우게 되는 검술 훈련.
마지막 세 번째는 싸움에서 활용 될 수 있는 마력 훈련이었다.
탁!
넓은 지하의 훈련장 안에서 나무와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은현과 에린이 서로 목검을 들고 서로를 향해 공격을 하며 대련을 하던 중이었다.
살상력이 없는 목검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자가 마력을 운용할 줄 아는 사용자라면 사정이 매우 다르다.
파앙!
푸른색의 기운이 일렁이는 두 목검이 서로 교차하며강력한 파공음을 내며 훈련장의 내부를 울리기 시작한다.
은현의 공세를 받아내던 에린의 몸이 조금씩 밀려났다.
“신체를 강화하고 있는 마나가 또 흐트러졌어.”
“으.”
신체를 강화시킨 마력을 유지하는 상태로 은현의 공격을 눈으로 보고 막아내고, 다시 역공을 취하는 등의 말로 설명하기엔 간단하기 그지없는 훈련이었지만.
그동안 검 한 번 잡아본 경험조차 없었던 에린의 입장에서는 육체적인 피로는 물론 정신적인 피로까지 몰려오는 힘들기 그지 없는 훈련이었다.
그럼에도 에린은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이를 악물며 은현의 지적에 다시 마력을 끌어올려 신체의 강화를 다시 유지하기 시작했다.
밀려남으로써 다시 벌려진 거리를 좁히고 공격을 하기 위해 에린이 은현을 향해 돌진했다.
“하아!”
기합소리와 함께 돌진으로 속도가 붙은 에린의 종베기가 은현을 향해 그어졌지만, 은현은 목검으로 뻔한 공격에 가까운 에린의 목검을 쳐낸 뒤, 비어있는 손으로 주먹을 쥐고는 그대로 에린의 복부 안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커헉!”
에린의 입에서 숨이 터져 나오며 복부의 타격을 기점으로 그녀의 신체가 공중으로 떠오른다.
떠오른 에린의 몸이 그대로 공중을 부유하며 날아가기 시작했고, 훈련장의 벽에 부딪쳐버렸다.
축 늘어져 버린 에린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리면서 에린은 뒤늦게 찾아오는 복부의 통증에 자신의 배를 양팔로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으, 우읍….”
타격이 너무 강했던 탓인지 헛구역질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는 에린에게 은현은 말했다.
“상대의 검만 보지 말고, 상대의 행동 전체를 끝까지 봐. 적은 항상 네가 보이는 빈틈을 놓치지 않아. 그 빈틈을 보이는 순간 너는 죽은 목숨이야.”
공격을 하던, 방어를 하던,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것은 절대불변의 진리였다.
공격을 시도 했으나 막히고 빈틈을 보인다면, 적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빈틈을 노려 목숨을 앗아간다.
“알…았어.”
조금도 사그라 들지 않는 아픔을 참아내며 이를 꽉 다문 에린은 손에서 놓친 목검을 다시 쥐며 지팡이 삼아 간신히 일어나면서 대답했다.
다시 둘 사이의 대련이 재개되었다.
훈련이 시작되고 3개월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에린의 신체능력은 눈에 띌 정도로 향상되었다.
매일 하루를 쉬지 않고 꾸준히 병행해온 달리기와 각종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조금씩 근육이 붙도록 만들어준 훈련들이 드디어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효과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향상된 신체능력과 체력을 기반으로 에린은 열심히 목검을 휘두르며 은현에게 교육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공격해도 은현이 검술을 배운지 반년도 채 안 되는 초보자의 공격을 맞아 줄 리도만무했다.
홀가분하게 서있으면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에린의 모든 공격을 쳐내는 은현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고, 하나하나의 행동이 흐르는 물처럼 유려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에린의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은현의 반격은 벼락보다 날카롭고 빠르며, 강렬하기 짝이 없다.
은현이 목검을 쥔 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자, 에린은 반사적으로 위를 쳐다보며 칼을 쳐올리고 방어의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직후, 시선이 위로 쏠린 틈을 타 은현이 에린의 발을 걷어차며 후려 버리자, 에린의 몸이 공중에 붕 뜨기 시작했다.
“꺄아악?!”
방어태세를 취하며 은현의 공격을 대비하던 에린이 영문을 모른 채 공중을 부양하더니 바닥을 향해 추락했고 아니나 다를까, 딱딱한 돌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다.
“아야야….”
“상대가 무기를 치켜들었다고 해서 무기로 공격해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
“아, 아파아….”
복부의 타격에 대한 통증도 아직까지 가시지 않고 남아있었는데, 엉덩이까지 찧게 되자, 지금껏 참아왔던 전신의 통증들이 머릿속에 고통을 호소해온다.
마침내 에린이 울상을 지었다.
“상대의 검만을 보지 말고, 상대의 전체를 보며 생각하고 움직이라고 했지?”
충고를 해줬는데도 제대로 주의하지 못하니까 두 번씩이나 당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으으….”
에린은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은현을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은현에게 반격을 당하기를 대여섯 번, 아마 몸 전체에 쑤시지 않는 곳이 없을 터.
하지만 그럼에도 저렇게 다시 일어서서 자신에게 목검을 들이대는 에린의행동이 기특하기 그지없어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한 번 더!”
“얼마든지.”
몇 번이나 이어졌을 두 사람 사이의 대련이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그 광경을 관전하고 있던 두 남매는 각자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적어도 아이테르 보다는 수준이 높군.”
훈련을 받는 에린의 수준은 아직까지도 별 볼 일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를 훈련시키고 있는 은현의 수준은 남다르다.
정확히 소녀의 한계를 가늠하면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타격들로 구성된 반격만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소녀의 빈틈을 찌르면서 직접적인 고통을 일깨워주고 그것을 교훈삼아 성장시키도록 유도한다.
흔히 말하면 ‘모르면 맞으면서 배워야지.’같은 거칠기 짝이 없는 방식이지만, 소녀는 그런 거친 훈련에 이를 갈고, 통증에 울상을 지으면서도, 계속해서 훈련을 따라간다.
“그렇다고 해도…꼭 저렇게 심할 정도로 몰아붙일 필요가 있나요?”
아르미타스의 남매는 은현과 에린의 지도 대련을 보며 두 사람 모두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은 비슷했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었던 관점은 ‘기사’로서의 관점과 ‘귀족 영애’로서의 관점이었기에 두 사람 사이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에요. 저렇게 맞으면서까지 이런 힘든 훈련을 해야 할 필요는….”
“동시에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않았던 힘든 경험을 했던 아이이기도 하지.”
“…….”
알렉스와 엘레노아는 지금까지의 에린의 과거를 알고 있었기에 지금처럼 그녀가 필사적으로 훈련을 받는 이유를 이해하고 있었다.
“저 훈련은 저 아이의 의지와 결심으로 시작된 훈련이기도 하다. 우리가 나설 문제가 아니야. 그보다도 역시나 저 남자는 대단하군.”
에린의 실력이 아무리 갓 검을 잡은 초보자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3개월 만에 이룰 수 있을 만한 성장은 아니었다.
이대로 계속 훈련을 받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재적중인 아이테르 내에서는 수련 기사 수업을 받는 다른 남학생과도 견줄 정도의 수준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귀족가의 자제들이 수련 기사로 아이테르에 입학하기 전에, 집안에서 초빙된 가정교사를 통해 2,3년 정도의 교육을 받고 아이테르에 입학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들과 견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3개월 만에 갖추게 만든 은현의 재능은 분명히 특출 난 것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가장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은 이미 대여섯 번을 반격당하고 기절할 뻔 했던 고통을 억지로 참아내고 계속해서 대련을 유지해나가는 정신력이었다.
저 굳는 결심과 눈빛만은 기사단 안에서도 드물 정도로 강한 의지를 느끼게 했다.
이렇게 계속 성장만 해준다면, 에린도 훌륭한 기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품게 해주는 잠재력을 가진 소녀였다.
“꺄아악!”
“시도했던 공격이 막혔다면 곧바로 상대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 그리고 방어를 할지, 회피를 할지, 판단을 내려.”
또 다시 공중을 날아간 에린에게 은현의 지적이 날아왔다.
“자,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우으으으…오늘도 한 번도 못 때렸어….”
“엘레노아님.”
분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에린의 상태를 살피던 은현은 멀리서 훈련을 관전하던 엘레노아를 불렀다.
“네.”
그의 부름에 응한 엘레노아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에린의 상태를 살폈다.
‘정말 몰라볼 정도로 변했네….’
3개월 동안 꾸준한 운동과 훈련을 해왔고 어미새가 아기새에게 먹이를 주듯이 좋은 것만 먹이고 키운 에린의 몸은 비쩍 말라 빈약하기 그지없었던 3개월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제대로 된 식습관과 운동의 덕분이었는지, 살이 붙기 시작하여 한창 성장기였던 에린의 몸은 제대로 성숙한 여성의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몰라보게 커진 흉부나 군살 하나 보이지 않는 탄탄한 허벅지와 팔뚝, 마력의 훈련의 효과로 내부의 노폐물이 빠져 잡티하나 없는 깔끔한 피부 등 많은 요소들이 합쳐져 아름다운 건강미를 뽐내고 있었다.
‘도대체 뭘 했길래, 3개월 만에 이렇게….’
에린의 상태를 살피며 신성 마법으로 여기저기 멍이 든 그녀의 몸을 치료하면서 몰라보게 변모한 에린의 몸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같은 여자로서 눈에 띄게 예뻐지고 있는 어린 소녀를 보고 부럽고 호기심 어린 감정이 들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었던 사실이었기에.
엘레노아는 에린의 변화의 원인이었던 은현을 흘끗 쳐다보았다.
“다음은 나와 한 수 겨뤄주지 않겠나.”
“…아니, 공자님. 안 바쁘십니까?”
은현은 노골적으로 귀찮은 티를 내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상냥하면서도 훈련만큼은 악독할 정도로 몰아붙였던 에린을 대할 때와 너무나도 다른 태도 알렉스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근위대는 기본적으로 근무제라서. 오늘은 휴일이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어 찾아왔지.”
은현이 3개월 전, 엘레노아의 아르키스 대미궁으로 향한 구조 요청을 받아드리는 대가로 엘레노아에게 요구 했던 조건은 간단했다.
- 우리 애 훈련 좀 시킬 예정이니까 매일 와서 신성 마법으로 회복 좀시켜주시죠.
페르니아스 왕국의 모든 군사권한을 가지고 있는 아르미타스 공작가문의 여식에게 한다는 부탁이 고작, 매일 이곳을 찾아와 한 소녀에게 신성 마법을 퍼부어주는 ‘회복 셔틀’ 신세라는 것에 엘레노아는 적잖이 불만을 품었다.
- 예? 안 들어주신다고요? 정말로? 어라? 진짜로? 그러면 안 될 텐데.
비열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선보이며 자신의 성격 나쁨을 여실 없이 드러내던 은현을 보고 열이 뻗친 엘레노아는 어쩔 수 없이 은현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건 먼저 도움을 요청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며, 자신의 오라버니와 자국의 왕녀를 구출하는 데 은현이 큰 기여를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단지 저렇게 성격이 나쁜 인간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은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한 세 번 쯤은 더 고민해보았을 것이었다.
“후우, 좋습니다.”
“너도 노리고 있는 게 있는 것 같군?”
“뭐, 없는 건 아니죠.”
은현이 흘끗 에린을 바라보더니 알렉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존대도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나는 내가 너보다 더 가치 있고 존대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너와는 신분 같은 거를 떠나서 순수하게 친우로서 지내고 싶은 마음도 드는군.”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호의가 꺼림직 하기 그지없습니다만.”
은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여전히 상쾌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금발의 미남을 쳐다본다.
이상할 정도로 자신에게 호의를 보내오는 저 시선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어차피 나에게 존대를 하는 것도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지 않나? 존중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로만 존대를 해주는 가식 따위는 치워줬으면 좋겠군.”
실제로 말로만 존대를 하지 대하는 태도 자체는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알렉스는 은현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특별한 접점도 없었는데 이상해서 의문이 들 지경이다.
“오라버니, 친구는 가려서 사귀시는 게….”
“거기, 회복 셔틀은 조용히 해주세요.”
“아, 진짜!”
분개한 엘레노아가 은현을 째려보았지만, 은현은 가소롭다는 듯 시선도 주지 않고 알렉스를 보고 있었다.
확실히 엘레노아를 대하는 태도에는 존중이나 배려 따위는 전혀 없었다.
“뭐, 좋아. 그걸 바란다면 그렇게 못해줄 것도 없지.”
“후.”
고개를 끄덕인 알렉스는 아까 전까지 에린이 쥐고 있던 목검을 주워들더니 손에 쥐며 이리저리 휘둘러보며 목검의 상태를 가늠해보고 있었다.
이내 어느 정도 가늠을 마친알렉스는 은현을 향해 목검을 겨누고는 물었다.
“선공은 내가 하도록 하지.”
“그래.”
은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렉스가 은현의 품에 파고들어온다.
그가 쥐고 있던 목검이 은현의 가슴을 노리고 매서운 찌르기가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타악!
간단하게 알렉스의 목검을 내치며, 두 사람 사이의 대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