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025. ‘엑스트라’는 ‘주인공’에게 ‘희망’을 제시한다(1)
사건이 끝난 지 2주가 가까이 지났다.
리오드의 수사 종결 선언과 동시에 그는 왕실을 포함한 궁정귀족들에게 사건을 이렇게 보고 했다.
레니온 헤르샤가 배임 횡령을 저지르고 빼돌린 금화들은 모두 아버지를 고발했던 엘빈 헤르샤가 훔쳐 타국으로 도주하던 도중, 그를 추적 중이던 리오드와의 전투에서 사망하였다고.
전투 과정에서 그가 흑마법사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흑마법이라는 술수를 이용해 기사단의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하자 모든 비난의 화살이 엘빈에게 쏟아졌다.
비리를 주도했던 애슈턴이나 아르미타스 공작가문의 이름은 일절 나오지 않았다.
이 부실한 수사과정을 포함한 결과의 발표에 납득이 가지 않았던 일부 귀족들도 있었지만, 수사지휘권자인 올리비온 후작과 수사를 명령했던 군무장관 아르미타스 공작, 그리고 재무장관 보리스 후작 이렇게 세 가문이 나서서 이 발표를 긍정하자, 밝혀지지 않거나 부실했던 정황이 명확함에도 이의를 제기하는 귀족들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이 사건과 연관성이 전혀 없었고 사고로 머리를 부딪쳐 혼수상태로 밝혀진 에린 헤르샤에게는 헤르샤 부자가 저지른 배임횡령과는 일절 관계가 없었다는 것을 주장하여 아르미타스 공작 쪽에서 죄를 묻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것 또한 리오드와 버나드의 지원이 있었기에, 사실상 에린의 신변의 보호를 위해 공작과 후작 둘이라는 고위 귀족 셋이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모두 은현이 의도했던 대로, 그가 만든 상황대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리고 현재 은현은 새로운 일이 생겼기에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 지금 아이테르의 학교장실에 와있었다.
“저는 교수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정말 안 되겠는가?”
“몇 번을 물어보셔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어째서인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가능한 한 모두 지원해주겠네.”
“애들 가르치는 건 영 아니라 서요.”
제대로 된 정보도 없고 출신도 불분명한 은현을 학교의 교수 자리에 앉히겠다는 것부터가 귀족들과 다른 마법 교수들의 반발을 살 것이다.
그 정도는 올리버가 앞장서서 무마시킬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은현도 남들 앞에 나서서 행동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싫어했기 때문에 단칼에 거절했다.
애초에 은현이 일리아나의 조수를 자처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이름을 멋대로 팔고 다니면서 몰래 행동하기 쉽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은현이 마녀의 연인이라는 것을 모른다.
일리아나가 은현을 놔줄 리도 없었다.
“그럼 용무도 마쳤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은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올리버에게 인사를 했다.
“끄응…….”
“학교장님. 이 권유는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은현은 학교장의 대답을 듣지 않고 바로 학교장실을 나왔다.
[저 자도 꽤나 끈질기구나.]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서 더 곤란하네요. 차라리 애슈턴처럼 인간쓰레기였다면 물 먹이고 학교장직에서 사퇴시키도록 했을 텐데. 나쁘지는 않죠. 하지만…어째서인지 일리아나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아서 왜 그런 건지 그게 좀 마음에 걸리네요.’
일리아나 케니퍼라는 검은 마녀는 리오드와 함께 이 대륙에서 전쟁을 종식시킨 대영웅 중 하나다.
‘보잘 것 없는 마녀’라고 불릴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올리버 바오트만은 이 나라의 백작위에 해당하는 귀족이자, 아이테르의 학교장이라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마법사들 간의 서열에서는 일리아나에게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한다.
구태여 마녀의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는 자신을 마녀에게서 빼내오려는 목적을 모르겠다.
“흐음.”
은현은 그렇게 자신의 몸, 정확히는 심장에 깃든 ‘사도의 권능’과 동화된 여신, 베르단디와 사념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몇 일전, 다른 신들의 도움을 받아 제약을 뚫고선 은현을 따라 하계로 내려온 베르단디가 은현의 몸 안에 깃들었다.
설마 지구에서 살 때는 ‘신내림’ 같은 것과는 인연도 없을 줄 알았는데, 자신이 이렇게 ‘무당’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다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고 은현은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가 또 경박한 생각을 품고 있구나.]
가장 곤란했던 것이 이것이다.
멋대로 자신의 생각을 읽고는 신에 대한 안 좋은 생각을 하거나 이상한 생각을 할 때마다 이렇게 어김없이 핀잔을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다.
세 살배기 어린 아이에게 조곤조곤 타이르듯이 베르단디의 모성애가 은현에게는 너무나도 어색했다.
하지만 이것도 어쩔 땐 자신이 원했던 형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으며, 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현은 학교의 도서관에 반입될 장서들을 유통한다는 명목을 빌려 최근 일주일 동안 학교에 출입할 수 있었다.
진짜 목적은 에린의 주위를 관찰하며 그녀가 어떤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었지만.
일단은 계속 학교를 다녀보고 싶다는 에린의 선택을 존중했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절대로 좋을 리 없는 선택이었지만, 은현은 에린을 말리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하는 짓이 완전 스토커나 다름없네.”
스스로가 하고 있는 행동이 주위에서 보게 된다면 완전 범죄자나 다름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새삼 인식하여 입으로 중얼거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며 관찰했다.
사실상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도 학교에 다시 나오게 되면서 에린의 입장은 매우 좋지 못했다.
에린의 아버지와 오빠가 저지른 부정한 짓은 귀족들에게 모두 알려졌고 그 귀족가의 자제들이 다니는 아이테르의 학생들이 에린의 집안일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다.
그런 상황에 학교를 다닌다는 것을 자존심 강하기로 콧대가 높은 귀족가의 자제들이 용납할 리가 없었다.
이미 실종 전에도 양아버지인 레니온 헤르샤의 범죄 사실로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폭력과 폭언으로 에린의 마음이 갈가리 찢고 있었는데, 지금의 상황은 더 심했으면 심했지 절대로 나아지지 않았으리라.
공개적으로 공작가에서 에린에게 연좌제를 적용하여 죄를 묻기는커녕 오히려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에 의해, 은현과 공작가 사이의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귀족들은 그저 불쌍한 전 준귀족의 여식에게 구원의 손을 내미는 아르미타스 공작의 선행으로 보여 졌다.
예상 못한 상황으로 공작가의 호의를 받게 되었다는 것에 아무것도 모르는 학교의 학생들의 괴롭힘은 눈에 보이지 않도록 더 교묘해졌으며 잔인해져갔다.
공작가의 비호는 연좌제라는 법에게서 그녀를 보호해주는 역할도 있었지만, 다른 귀족들과 자제들의 질투와 시기심을 부추기는 단점도 있었다.
은현은 괴롭힘을 묵묵히 당하고만 있는 에린의 정신이 혹시라도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최소한의 대비만 해두고는 스스로 나서서 그 상황을 해결해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에린은 졸업 때까지 지원하주겠다던 공작가의 사과와 선의를 거절했으며 스스로 해결해보겠다는 선택을 했다.
때문에 이것은 자신이 해결해줄 문제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가 고른 길이기에 자신이 나서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왜냐하면 은현은 지금껏 자신이 해왔던 행동의 방침과는 달리, 처음으로 ‘주인공’의 가능성을 가진 인물의 인생에 간섭하는 행동을 한 것이다.
“정말 너 같은 게 어떻게 고위 귀족님들의 눈에 들었을까.”
“그러게 말이야.”
“외모는 반반하니까 얼굴 때문이었을까?”
아무도 보이지 않는 외진 곳, 뒤뜰에서 키득거리며 조롱하는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그것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은현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었다.
“응? 에~린? 정말로 궁금해서 그래. 어떻게 너 같은 게 공작님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범죄자의 딸 주제에.”
“킥킥.”
“으….”
에린의 작게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에게 묻는 소녀의 말에는 상대방의 존중이나 배려의 의사 따위는 없고 자신보다 한없이 약한 존재인 소녀를 조롱하고 비웃는 감정만이 담겨있었음에도 그녀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자신이 싫어하거나 저항한다면 더더욱 즐거워하면서 더 강도가 강해진다.
차라리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꾹 참는 것이 낫다는 것을 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내 말이 말 같지도 않나봐?”
“어머? 지금 말을 씹는 거야? 같잖은 평민이 건방지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슬슬 이런 그녀의 반응이 지겨워진 한 여학생이 에린의 남청색 머리카락을 한 손에 움켜쥐고 거칠게 흔들었다.
“하, 하지 마….”
자신의 머리채가 붙잡혀 깜짝 놀란 에린이 미약하게 저항하는 목소리로 자신의 머리채를 쥐어 잡은 여학생에게 말했지만.
그런 에린의 반응에 여학생은 오히려 더욱 만족한 모양이었다.
“그럼 말해보라니까? 어떻게 공작님의 눈에 들었냐고, 그것 뿐 만이 아니지. 후작 귀족 두 분도 아주 널 직접 도와주겠다고 발 벗고 나서셨다며? 도대체 왜? 아양이라도 떨었니? 어떻게 떨었는지 좀 알려달라니깐!”
“꺄악!”
여학생이 에린을 밀치자 에린은 비명을 지르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내 말이 말 같지가 않나보네. 정신이 좀 번쩍 들게 해줄까?”
순간 좋은 생각을 떠올렸는지 비열한 웃음을 짓는 여학생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에린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여학생의 손위로 바람이 일더니 점점 모인 수증기가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푸른색 구체가 만들어졌다.
마치 투명한 그릇에 담겨져 있는 맑은 물처럼 출렁이는 구체의 내용물을 보고 에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물속성의 기초 마법 중 하나인 ‘워터볼(Water ball)’.
다른 속성의 마법에 비해서 살상능력은 떨어지지만 애초에 여학생이 발현한 워터볼은 저항을 하지 못하는 여학생 하나를 어떻게 하는 데는 충분한 마법이었다.
마법을 발현시킨 여학생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눈치 챈 다른 두 여학생이 에린의 양팔을 하나씩 붙잡고 저항하지 못하도록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었다.
“이, 이러지 마.”
붙잡힌 자신의 양팔을 세차게 흔들며 두 여학생에게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렇게 거세게 저항하는 반응이 여학생들이 원했던 반응이었기에 여학생들은 에린이 저항하고 싫어할수록 더욱 즐거워하고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읍, 읍?!”
여학생이 자신의 손에 있던 워터볼을 에린의 얼굴에 가져다 댔고 저항하지 못한 에린의 머리가 워터볼 속으로 들어갔다.
호흡을 하지 못하게 된 에린의 얼굴이 워터볼의 안에서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거품이 나오고 있었다.
호흡을 하지 못하게 될수록 에린의 저항이 점점 거세져만 갔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워터볼을 발현시킨 여학생과 에린의 양팔을 붙잡고 있던 두 여학생.
세 명이 모두 비웃으며 에린의 괴로워하는 얼굴을 즐기고 있었다.
에린은 거세게 발버둥 치면서도 어째서 그녀들은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잔인한 짓을 할 수 있을 걸까,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녀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생각하면서 점차 의식이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선을 넘네.”
파앗!
빠른 속도로 선을 그으며 날아오는 무언가가 여학생의 워터볼을 터뜨리고 지나갔다.
“뭐, 뭐야!”
깜짝 놀라며 자신이 발현시킨 워터볼을 터뜨린 무언가를 시선으로 쫓은 여학생이 벽에 꼿꼿이 박혀있는 나뭇가지를 보고 경악했다.
“서, 설마, 나뭇가지를 던져서 저기에 박힌 거야?”
그것도 정확히 자신의 워터볼을 터뜨리고 날아갔다는 걸 생각하고는 만약 저 나뭇가지가 자신의 손을 노리고 날아왔다면 어땠을지 상상한 여학생은 섬뜩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고 나뭇가지가 날아왔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여학생이 쳐다본 곳에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평민의 신분인 것처럼 그렇게 좋지 않아 보이는 옷감의 옷을 입고 있지만, 밝게 빛나는 은색의 머리카락과 피를 연상케 하는 붉은 눈을 가진 남자의 고요한 시선을 받은 여학생은 알 수 없는 섬뜩한 감각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아이야? 나서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아니었느냐?]
‘마음이 바뀌었어요. 여신님. 이제는 엑스트라 역할을 수행할 필요도 없으니까. 조금은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하셨죠?’
[그랬지.]
‘그럼 이제 좀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봐도 될까요.’
[후후,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었다. 어디 원하는 대로 하려무나.]
보통이였으면 은현은 이런 일에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에린에게 닥칠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고, 개입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의 가슴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짜증이라는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까지는 언제나 여신의 사도로서 참고 또 참으며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집중했을 뿐.
그는 언제나 사건을 방관하고 몸을 숨기고 ‘주인공’들이 스스로 운명에 저항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만을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다.
자신의 여신이 직접 선언해주었으니까.
자신의 행동이 너무 과하다고 여겨진다면 자신과 함께하고 있는 여신이 자신을 말려 주리라.
은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항상 자신이 걸었던 ‘엑스트라’라는 배역의 제약을 지키고, 죽을 때까지 평생을 참고 살아온 남자가 이제는 자유로운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을 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은현은 조금씩 ‘엑스트라’라는 배역에서 해방되어가고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는 순간이었다.
“콜록콜록!”
에린의 얼굴을 뒤덮고 있던 워터볼이 사라지자 코와 입으로 들어간 물들을 토해내며 거칠게 기침을 했다.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방금 자신이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아…….”
그렇게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과 동시에 마법이 풀리면서 장막이 깨지고 면서 담겨져 있던 물들이 그대로 에린의 몸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몸은 물에 빠진 생쥐마냥 홀딱 젖어버린 상태로 새하얀 셔츠 사이로 살결과 파란색 속옷이 비치자 황급히 양팔로 자신의 가슴을 가렸다.
갑작스레 조용해진 주변을 이제야 감지한 에린이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지금껏 잔인하게 자신을 괴롭혔던 여학생들을 쳐다보았다.
여학생들 세 명은 모두 잔뜩 굳은 표정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만 보고 있었으다.
에린도 그녀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향한 곳에 서있는 남자를 확인하고 작게 탄식했다.
“아…….”
하필이면 자신의 이런 모습을 가장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남자가 눈앞에 서있었다.
빛나는 은색의 머리카락과 매서운 야수 같은 빨간색의 눈동자를 가진 남자, 은현은 가만히 서있는 상태로 에린을 포함한 네 명의 여학생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세 명의 여학생 중 가장 높은 서열을 가지고 있던 여학생은 아까 전 건물에 박힌 나뭇가지를 머릿속으로 상기시키며 긴장했다.
침을 삼키며 은현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고 그녀의 부하나 다름없었던 두 여학생도 그녀와 은현을 번갈아보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숙녀들만의 사교 모임 시간에 끼어드는 매너는 도대체 어디의 누구에게서 받은 가르침일까?”
‘감히 어디서 굴러들어온 지도 모르는 게 즐거운 내 시간을 방해하려고 들어?’라고 말하는 것을 돌려 말하는 우두머리 여학생의 표정과 태도에 은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고 그런 그의 웃음을 본 여학생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다시 말했다.
“웃어?”
“아아, 실례. 그게 사교 모임의 시간이었다니. 꽤나 색다른 방식이었던 것 같아서. 이 학교의 학생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사교를 배우나?”
은현은 여학생을 보고는 비웃으며 이야기했고, 여학생들은 은현의 비아냥을 듣자, 그가 처음부터 자신들이 에린을 몰아세우고는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건지 모두 보았다는 것에 재차 긴장했다.
하지만 여학생은 동요를 애써 감추고 은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 그래서 어쩌라고? 더 이상 상관 말고 꺼져. 그리고 너 누구야? 어느 집안이야? 내가 누군지 알아?”
하고 있는 은현의 차림새를 보고는 그가 에린처럼 가난한 준귀족의 집안이거나 기껏 해봐야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는 남작 또는 자작 정도의 집안의 자제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전혀 자신이 저자세로 나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거만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집안이나 신분 따윈 알 거 없고.”
얼굴에 드러난 비웃음을 지우지 않고 은현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이내 거만한 태도를 고수하던 여학생과 거리가 좁혀져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나도 그 사교 모임에 껴줄 수 없을까 해서.”
“하?”
“저 아이한테 하던 거 나한테도 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