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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1. 이단심문관은 하렘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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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단심문관은 하렘을 꿈꿨다.
신의 선택을 받아 마왕에게 대적할 수 있는 힘을 받은 용사.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가능케 하는 영웅.
돈을 받고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시민들을 보호하는 헌터.
몬스터들을 죽인다는 것 빼고는 본질적으로 전혀 달라 보이는 그들에게는 한 가지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여자가 더럽게 잘 꼬인다는 거지.”
수많은 악마와 거대 마수의 시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눈꼴 시린 광경에 속이 뒤틀렸다.
S급 헌터라 불리는 남자는 수많은 여성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인과율을 비틀 수 있는 격을 얻었다는 영웅은 한층 더 나아가서 자기 검에서 나온 여자 정령과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용사는….
“부단장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이야.”
“왜 그러십니까? 단장님.”
피를 잔뜩 뒤집어쓰고 마수의 시체를 의자 삼아 기도를 올리고 있던 부단장이 고개를 돌렸다.
평상시라면 저 아저씨의 기도를 방해할 엄두가 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저 쌍ㄴ… 아니 성녀는 교단의 지침을 따르지 않아도 괜찮나?”
안 그래도 안하무인 한 여자였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서 저딴 짓을 벌이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부단장은 무슨 소리냐는 듯.아니 도리어 질문한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갑자기 뭔 헛소립니까? 교단 소속이라면 그 누구도 지침을 어길 수 없다는 건 이단심문관들을 이끄는 단장님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잖습니까.”
반박할 수 없는 정론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일손이 부족해 몬스터와 악마들을 때려잡느라 교단 내부의 일을 부단장을 포함한 다른 부하들에게 맡겼다고 해도 교단에 있었던 시간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고 해도 자신이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학창시절과 청춘을 희생한 15년이란 시간을. 영웅이나 헌터가 되어 얻을 수 있었던 돈과 명예와 영광을.
신을 믿지도 않았던 자신이… 뭐 지금도 그 쫌생이 같은 작자들을 믿고 있지는 않지만, 하여튼 교단에 모든 것을 바치면서 얻은 자리가 이곳이니깐.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거 같았다.
“나나 성녀 같은 고위급 신성력을 가진 존재들은 연애나 결혼이 불가능한 거 아니었나?”
대악마 앞에서도 멀쩡했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지금까지 이루었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었으니까.
교단에서의 지위? 이단심문관으로서의 힘? 다 필요 없었다. 평생을 바라왔지만 이룰 수 없었던 것이 저곳에 있었다.
“에이 무슨 소리십니까. 약점을 만들면 안 되는 이단심문관을 제외하고는 전부 자유롭습니다, 우리가 뭐 꽉 막힌 종교도 아니잖습니까.”
그러나 내가 힘겹게 꺼낸 얘기를 부단장은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하하…. 그래서였던가.”
헛웃음이 나왔다.
교단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찾아왔던 어렸을 적 소꿉친구가, 항상 자신을 챙겨주던 후배와 선배가 지침이라는 이유로 고백을 거절당했을 때 지었던 그 표정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으니깐.
별의별 핑계를 대며 거절하는 거로 보였겠지. 나조차도 이단심문관들에게 이런 규칙이 있다는 걸 입교를 결정하고 나서야 알았으니깐.
근데 지금은 지나간 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얼굴을 바라보며 뜬금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부단장의 멱살을 잡은 뒤에 붉은 피가 흐르는 검 끝으로 저 멀리 떨어진 용사 일행을 가리켰다.
“시발 나는 납치되다시피 입교해서 32살이 될 때까지 동정인데 교단에서 빨아주는 성녀라는 년은 어?”
이단심문관이 되면서 제일 처음 배웠던 것이 감정을 주체하는 법이었고, 15년 동안 감정을 죽이며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지금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다… 단장님 그래도 성녀님에게 년은 조금….”
“아! 내가 뭔가 착각했군. 우리 성녀님께서는 거룩하신 신의 미명아래 종의 보존을 위해서 노력하고 계시는건데. 안 그런가?”
“죄송합니다.”
부단장은 떨리는 검 끝을 따라 용사파티가 있는 곳을 확인하고는 이제야 상황을 파악했는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 고개를 숙였다.
하긴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거다. 나한테는 항상 신성력 때문에 동정을 유지하라 했는데 성녀라는 년이 거대 마수의 시체를 가림막 삼아 용사와 허리를 흔들어 재끼고 있었으니.
자기들 딴에는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겠지만,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최전방 중에서도 최전방이라는 것과 성녀와 마법사가 친 인식저해결계를 무시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갖췄다는 걸 간과한 듯싶었다.
평상시라면 당장 결계를 찢고 들어가서 성녀는 건드리지 못하더라도 바깥에서 함부로 놀린 용사의 아랫도리를 깔끔하게 도려내겠다고 길길이 날뛰었겠지만.
“뭐 됐다.”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일까. 자신은 곧 자칭 신이라는 쫌생이 같은 작자들 곁으로 갈 예정인데.
검을 거두고 부단장의 멱살을 놓아준 뒤 이물감이 느껴지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살살 눈치를 보고 있던 부단장이 평소에 사용하던 존칭도 집어치운 채 다급하게 다가왔다.
“이지훈 무슨 상황이야!”
“별거 아니야 그냥 간단한 저주에 걸렸을 뿐이야.”
평소답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보아하니 예상은 했지만 내 꼴이 썩 좋지는 않나 보다. 하긴 칠공에서 피가 쏟아져나오는 모습이 멀쩡하게 느껴질 리가 없긴 했다.
“젠장. 대악마라는 년이 곱게 소멸할 때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어. 성녀를 불러올 테니 가만히 있어라.”
성녀를 제외하면 최강의 신성력을 지녔다고 알려진 내가 해주를 시도하지 않는 모습에 심각성을 느꼈는지 열심히 번식 활동을 벌이고 있는 성녀를 끌고 오려 했지만, 나는 그의 뒷덜미를 잡아채 행동을 제지했다.
“불가능하니깐 그냥 즐기게 놔둬.”
마계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악마가 모든 위격을 소모하며 발동시킨 저주이다. 이걸 해주 하려면 대천사 아니, 신이라도 강림해야 했다.
그러나 부단장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심정인지 자꾸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려 했고, 나는 단장이 된 이후로 사용하지 않았던 호칭을 꺼냈다.
“진성 아저씨 호들갑 떨지 말고 앉아봐 어지러우니까.”
“그렇지만….”
자꾸 망설이는 모습이 보이자 나는 마수의 시체를 등받이 삼아 먼저 주저앉았다.
“나도 유언이란 걸 남겨봐야 할 거 아니야. 아저씨가 간 사이에 죽어버리면 어떻게 하라고.”
솔직히 그렇게까지 급박한건 아니라 시간은 꽤 남아있었지만, 마지막을 추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저씨는 그제야 내 뜻을 이해해줬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는 많은 것이 함축된 질문을 던졌다.
“아쉽지는 않냐?”
나는 대악마와 함께 나타난 붉은 달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솔직히 많은걸 포기한 건 맞았지만 부족한 건 없는 인생이었다. 신성력을 얻지 않았다면 전란의 시대에서 비참하게 죽어 나갔을 것인 데다 명예에 욕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재물을 밝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렸을 때 꿈을 이루지 못한 거려나.”
같이 달을 올려다보던 아저씨에게 혼잣말이 들렸는지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대꾸를 해줬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해탈해 보이던 너한테도 꿈이 있었나?”
“당연히 있었지.”
나는 손을 뻗어 용사가 있는 장소를 가리킨 뒤 태연하게 말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 임에도 파티원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용사를 보면서.
“연애. 아니 여러 미녀에게 둘러싸인 하렘이 내 꿈이었어.”
“뭐?”
나를 따라 용사를 지켜보던 아저씨는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다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32년산 동정치고 꿈이 너무 큰 거 아니냐?”
“그러게 말이야.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몰래몰래 여자도 만나고 다닐 걸 그랬어. 이 임무만 끝나면 은퇴한 뒤에 실컷 놀 생각이었는데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죽을 줄 어떻게 알았겠냐고.”
“묘비에는 ‘대악마를 죽인 32살 동정 이단심문관 단장 하렘을 꿈꿨다’라 적어주마.”
“그렇게 쓰면 불쌍하게 여긴 사람들이 기일마다 야한 잡지라도 얹어주려나?”
소소한 농담 따먹기 이후로도 용사파티의 전위예술을 안주 삼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길 십여 분. 나의 변화를 알아챈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더 이상은 무리냐?”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함을 못 느낄 정도로 샘솟던 신성력은 더 이상 없었고, 그나만 남아서 저주를 억누르던 신성력도 거의 고갈되었으니깐.
아저씨는 몸을 일으킨 뒤 내 앞으로 걸어와 한쪽 무릎을 꿇고는 주먹을 쥔 오른쪽 손을 심장이 있는 곳에 올렸다. 이단심문관으로서 신을 제외한 인간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는 자세였다.
“갑자기 무슨 짓이야.”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씀 없으십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유언을 남긴다는 핑계로 장난스럽게 붙들어 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진지한 모습에 걸맞은 대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교황으로부터 하사받은 검을 뽑은 뒤 저주로부터 심장을 지키고 있던 마지막 신성력을 검신에 둘렀다.
수많은 생명들이 저물고 요사스러운 붉은 달이 떠오른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성스러운 빛이 타올랐다.
“단장님….”
아저씨는 검에 둘린 신성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있기에 눈을 질끔 감았지만, 나의 마지막 행동을 막지는 않았다.
나는 고맙다는 말 대신 살짝 미소를 지은 뒤에 순백의 빛을 뿜어내는 검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이단심문관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김진성 단장님.”
망설이고있는 새로운 단장의 손에 억지로 검을 넘긴 뒤 주위를 둘러봤다.
고위급 신성력의 발현 때문인지 사람들이 이곳을 바라봤고, 이제야 상황을 깨달았는지 용사를 비롯한 모든 인원들이 급하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래도 인기가 없는 건 아니었구나.’
나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이것을 끝으로 나의 의식은 깊은 수마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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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부터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저 멀리서 비추는 한 줄기의 빛을 보며 드디어 끝이 왔음을 느꼈다.
‘이제부터 쫌생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면 되는 건가.’
신성력을 얻을 당시의 계약에 따라 천계로 이동하리라 생각했다. 모든 욕구가 사라지는 곳이어서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마계보다지 낫겠지 싶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빛을 벗어난 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천사들이 아니었다.
“와….”
자연스럽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서큐버스 서큐버스 서큐버스 서큐버스 서큐버스.
반라 차림의 수많은 서큐버스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