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문이 열릴 때 [4]
토요일 저녁 모처럼 서희와 함께 외식을 하고 어느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다가 문득 그녀가 남자 친구 이야기를 했다. 지금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는데 상대도 자기를 좋아하고 있어서 교제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일요일에 집으로 데리고 와도 좋으냐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이전부터 남녀교제를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었다. 남녀관계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이상하게 금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버리는 것보다 다소 괴롭더라도 따뜻하게 지켜주자는 것이었다. 비록 어린 아이지만 그의 판단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기에 앞서 이 아빠에게 먼저 소개해주어야 한다."
이전부터 그렇게 일러왔던 것이다.
준비는 해왔었지만 아빠로써 역시 복잡한 심경이었다. 온갖 애정을 다해 길러온 딸이 나 이외의 다른 남자에게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야 우리 서희 대단한데 벌써 남자친구가 생겼구나. 아니야 오히려 늦은 편인가...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때부터 남자친구를 사귄다고 하던데..."
착잡한 아빠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웃음지며 그렇게 가볍게 말했다.
서희는 조금 뺨을 붉혔지만 기쁜 표정으로 그 눈동자는 밝게 빛나고 있었다.
(늘 어리게만 보았던 서희. 이제 곧 여자가 되고 말겠구나)
문득 서희의 모습을 훑어보니 어느새 여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제법 가슴도 볼록하게 솟아 올라있고 가느런 허리가, 균형을 잡아가고 있는 엉덩이로 인해 더욱 늘씬한 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 얘길 듣고 그 앨 바라봐서인지 이젠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눈에 비쳐지는 것이었다.
아빠인 내가봐도 저렇게 아름다운데 다른 남자애들이 가만히 있다는게 오히려 이상하겠지...
문득 이상한 생각이 스쳤다.
(가만있자. 혹시 이미.....)
(아냐 그럴 리 없을거야. 설마 서희가..... 하지만 요즘 애들은 그 쪽으로 상당히 빨라졌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만났니?"
나는 딸애의 표정을 살피기 위해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3개월쯤 됐어요. 우리 음악서클 리더 오빠인데 키도 크고 멋쟁이예요. 다른 친구들도 그 오빠와 무척 사귀고 싶어해요."
서희는 모든 걸 숨김없이 말해주었다. 솔직하고 진실한 아이였기 때문에 모든 걸 아빠에게 이야기 하는 딸이었다.
"어느날 집에 함께 오는 길에 그 오빠의 프로포즈를 받았어요."
"....... 기분이 어땠니?"
"처음엔 그 오빠에 별 감정이 없었는데, 그날 이후로 이상하게 그 오빠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프로포즈 받고 넌 뭐라고 했니?"
"그냥 아무말도 못했어요. 부끄러워서 얼굴도 못들고...."
"................."
"처음엔 오빠가 좀 두려웠는데, 사귀어보니 좋은 오빠였어요. 자상하고 매너도 있고 얼굴도 잘생겼어요. 서클 활동 끝나면 매일 절 집 앞에까지 데려다줘요."
"그래 좋은 남자로구나."
"네, 지금은 저도 그 오빨 좋아하게 됐어요."
서희는 행복한 표정으로 그 남자애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손도 잡았겠구나?"
"..........."
내가 묻자 그냥 큰 눈망울만 깜박이며 대답대신 미소로 대답했다.
"키스는?'''"
왜 그런 난처한 질문을 던졌는지 갑자기 후회가 됐다. 그냥 널 믿는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 정도에서 마무리지어야 했는데..
".........."
놀란 표정으로 서희가 나를 바라봤다.
"아니야. 그건 이상한게 아니야. 남자와 여자가 좋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접촉하는 거란다. 아빠와 엄마도 키스한 것은 두번째 만나서였지. 아빠가 고등학생때였고 엄만 중학생이었어"
"어머 정말?"
"그럼, 그래서 서희는 어떤가 하고 아빠가 궁금한거지..."
조금 지나친 말을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 했지만 좀더 솔직한 대답을 서희에게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지난번 음악캠프때 서클 멤버들과 같이 일박으로 바닷가에 갔었잖아요. 그때 그 오빠와 밤에 바닷가를 거닐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그곳에서.....)
최후의 말은 사라질 듯한 작은 목소리였다.
(역시....)
그러나 깊은 관계까지는 아직 안 간 것 같았다. 서희의 표정을 보며 느낌으로 엿볼 수 있었지만 그러나 둘은 조금만 용기가 있었으면 그렇게 되었을 상황이었을 것이다. 또 실제로 키스까지라고는 했지만 서희와 그 남자애는 이미 정신적으로 성교하고 있는거나 다를 바 없었다. '여자가 키스를 허락했을 때엔 이미 그녀의 모든 것을 허락한 것이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내 아내와 나 역시 키스이후로 더 급속도로 가까워졌었고 다음번 만남에는 키스로 만족하지 못했음을 상기했다.
"아빠, 그래도 그 오빤 아빠에 비하면 형편 없어요. 아빠같은 남자라면 나도 훨씬 좋을텐데.... 근데 그런 남자들은 아직 못만났어요. 게중에...."
내 침울한 표정을 느꼈는지 서희는 웃는 표정으로 내 목을 껴안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으나 그 이상의 질문이나 대화는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주일간 그 생각으로 해서 내 머리는 복잡했다. 이번 주 일요일에는 서희의 남자친구녀석을 만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것도 사리에 밝고 이해심이 많은 아버지로써 만난다는 것은 둘 사이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되면 그들이 최후의 선을 넘기기란 시간문제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