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나은은 상처 입은 자존심의 수복을 위해서 복수의 칼날을 품고 커피를 쪽쪽 빨아댄다. 분노일까? 아니면 그때를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달아오른 걸까?
높아진 체온 때문에 안경에 김이 서리자 눈매가 고양이처럼 확 치켜 올라간다. 살짝 혀를 차며 안경을 벗어 조심스레 닦아낸 뒤 다시금 고객들을 만나러 하이힐 소리를 내며 길거리로 나아간다.
‘아 정말이지 얼마나 처박아댔으면……벌써 며칠 째야.’
까득 하는 소름 돋는 이가는 소리가 길거리로 사라져가는 정나은에게서 들려온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어야 할 그녀의 걸음걸이가 무언가 불편한 듯 묘한 건 어떤 이유였을까? 그 이유는 김우영과 정나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시끌시끌한 회사원들이 하나씩 전화통을 부여잡고 각자 자신의 고객들과 씨름을 하는 이곳은 안정수가 일하는 영업부 사무실이다. 안정수도 전화통을 부여잡고 자신의 고객이 물어오는 업무관련 전화로 정신이 쏙 나갈 무렵 부장 자리에서 콧노래나 부르고 있는 김우영 부장이 눈에 들어온다.
‘참 속 편해 보여서 좋겠네.’
영업부 사원들은 밀려들어오는 업무 처리 때문에 미칠 노릇인데 부장이라는 사람은 콧노래나 부르며 의자에 쭉 뻗어있다. 안정수는 얼마 전에 있었던 중요한 계약의 의견 조정이 아직도 안 끝나서 미칠 것 같다.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아내에게 평소라면 하소연이라도 했겠지만 아내는 최근 굉장히 저기압인 모양이라 아내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스트레스만 잔뜩 쌓이기 시작했다.
‘후~정말이지. 선물이라도 사가야 하나?’
그 날 외식을 못 한 게 그렇게 아쉬웠던 걸까? 아내는 요 며칠 사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고양이처럼 올라간 눈매가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잘못한 건 자신이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며 집에서도 편히 쉬기가 힘들다.
‘잠시 쉬자.’
안정수는 뒷골에서 올라오는 혈압에 전화통을 잠시 내려놓고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평소와 똑같이 커피 하나를 뽑아 밖으로 나왔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에 담배 하나를 꼬나물곤 깊게 빨아들인다.
“후~”
푸른 하늘 너머로 사라지는 쾌쾌한 담배연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조금 기분이 풀린다.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걸쭉한 목소리가 자신을 찾는다.
“안정수 씨 불 좀 빌려주겠나?”
“음? 아, 김우영 부장님.”
아니나 다를까? 아내에겐 이가 갈리는 원수 김우영이 능글맞은 미소로 다가와 불을 빌려 담배를 꼬나물고 곁에 앉는다. 안정수는 편안한 휴식 시간에 이 능구렁이가 갑자기 끼어들자 좋아지던 기분이 다시 가라앉는 것 같다.
“그나저나 안정수 씨는 자식이 있던가?”
“예? 아뇨. 아내도 직장인이다 보니 서로 여유가 없네요.”
“허허. 지난번에 본 아내분이 굉장히 미인이시던데 능력까지 좋아?”
갑작스레 시작된 대화에 안정수는 의아해 하면서도 말을 맞춰준다. 이런 평범한 대화가 오가는 게 정상임에도 영업부 내에 깔린 부장을 무시하는 분위기 때문인지 꺼려지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보면 참 이 사람도 대단해.’
영업부 전체가 부장에게 업무적인 이야기 말고는 전혀 사적인 이야기를 안 하는 걸 보면 정말이지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 그의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심심한 나머지 얼마 전에 본 아내의 모습에 이야기꺼리 삼아 이렇게 다가온 걸지도 모른다.
“대단하죠. 저한텐 과분할 정도로 좋은 아내입니다. 남편 기도 살려주고, 지난번처럼 뭐 빼먹어도 가져다주고, 일 잘하고, 가사도 완벽하죠.”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가끔 곤혹스럽지만 그 점이 귀엽다는 소리는 쏙 집어넣었다. 아내 자랑이 너무 과하지 않게끔 적정선에서 끊은 셈이다.
“허허 안정수 씨가 여자 복은 있나보군. 어때 아내와의 잠자리는 좋은가?”
“예?”
뜬금없이 튀어나온 잠자리 이야기에 안정수가 벙 찐다. 안정수는 이 사람이 웬일로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나 했더니 역시 무리였나 보다. 자신이 벙 찌건 말건 김우영 부장은 한 번 터진 성적인 이야기를 주워 담을 생각이 없는지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한다.
‘참……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지.’
술자리에서도 여자이야기, 업무는 뒷전이고 여사원 꽁무니 따라다니기, 입만 열면 터져 나오는 성적인 농담과 이야기. 안정수는 푸념 들어주는 심정으로 그가 하는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오호 얼마 전에 한 유부녀를?’
안정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고 해도 그도 남자인지라 남자끼리 하는 수위 높은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관심이 쏠린다. 김우영은 그가 관심 있어 하는 모습이자 더욱 진한 미소를 입가에 띠며 이야기에 박차를 가한다.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 지적이고, 청순한 분위기의 유부녀는 업무상 만나게 되었는데, 어찌나 자존심이 강한지 그 모습에 정복욕이 끓어올라 오랜 시간 작업을 했다고 한다. 자존심이 강한 여자여서 상당히 힘들었지만 결국 배아래 깔아뭉갰다고 한다.
“그때 찍은 사진도 있는데 어떤가 한 번 볼 텐가?”
“예? 사진도 찍으셨어요?”
“아 못 찍을 건 무언가? 그녀만 허락하면 되지.”
김우영 부장은 자랑하듯이 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들어 스마트 폰을 조작하는 듯싶더니 안정수의 눈앞에 스마트 폰 화면을 드리운다.
“오호? 대단하신데요?”
“그치? 죽여주지 않나?”
안정수는 스마트 폰 화면에 띄워진 사진에 침을 꿀꺽 삼킨다. 어두운 방 안에서 조명을 터트리며 찍었는지, 방안 풍경과 여성의 얼굴은 내려앉은 어둠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알몸은 적나라하게 잘 보인다.
‘부장님 정력이 절륜한가 보네…….’
사진 속의 유부녀는 완전히 사지가 풀렸다는 걸 사진만으로도 그 느낌이 전해진다. 찢어진 검은 스타킹에 감싸인 다리는 절정으로 인한 떨림이 전해지는 것 같고, 두툼하게 살이 오른 둔부와 그 아래에서 흘러내리는 하얀 정액의 모습에 살짝 놀란다.
‘안에 싸질렀어? 아무리 유부녀라지만 이러다 애 생기면 어쩌려고…….’
안에 싼 것도 놀라운데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침대 시트를 푹 적시고도 가랑이 사이에 말라붙은 정액의 모습에 안에 싸지른 건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 매끄러운 복부나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가슴은 유부녀답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능력 좋으신데요?”
“후후 비행기 태워줘도 뭐 안 나오네?”
“그건 아쉽군요. 그럼 전 이제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게나. 참 조만간 부부동반으로 밥이나 한 끼 하지? 다른 사원들도 불러서 내실이나 다지자고.”
안정수는 김우영 부장의 뜬금없는 제안에 눈살이 찌푸려지려는 걸 겨우 막았다. 회식이라는 녀석은 업무의 연장이다. 회식 문화가 많이 개선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회사가 많고, 우리 영업팀 역시 아직 그런 분위기다. 그의 말대로 내실이나 다지자고 모이는 회식자리에 계급 떼고 노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부부 동반? 이 양반이 미쳤나?’
자신에게만 제안 한 것이면 아내가 바빠서 안 된다고 거절 하겠지만 다른 사원들도 부르자는 이야기는 반쯤 강제란 소리다. 알아서 미운 털 박힐 짓만 골라하는 저 김우영 부장의 모습에 깊은 한숨이 터져 나오려는 걸 틀어막고 고개를 끄덕인다.
군대나 사회나 계급이 깡패다.
“아내가 바쁜지라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알겠습니다.”
안정수는 주머니에서서 느껴지는 스마트 폰 진동에 황급히 일어나 사무실로 복귀한다. 안정수 사원이 사무실로 복귀하는 걸 지긋이 바라보던 김우영은 다 태운 담배를 비벼 끄며 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손에 쥔 스마트 폰을 바라본다.
“고년 참 맛있었는데 말이야. 어떻게 할까나.”
스마트 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조작해 옆 사진으로 넘어가자 안정수 사원에게 보여준 사진과 달리 방안 풍경과 얼굴이 제대로 찍힌 유부녀의 사진이 화면에 떠오른다.
그 자존심 강하다는 유부녀는 완전히 여자의 얼굴이 된 채 쾌락에 푹 젖은 여체를 주체 못하고 실신하기 직전인 정나은의 적나라한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안정수는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선물이나 외식 등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 자신의 정성이 먹힌 걸까? 아내는 고마워하면서도 미안함을 표했다.
오늘은 아내가 컨디션이나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저녁 거하게 쏜다고 해서 두 사람 모두 퇴근하자마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고 있다.
“아, 정말이지 이번 계약자가 말이야…….”
“그런 타입 있지. 정말 짜증나는…….”
두 부부는 저녁을 먹으면서도 겪은 사회생활의 고충을 토로한다. 같은 일을 한다는 건 이런 게 좋은 것 같다.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 고충을 서로 토로함으로써 어느 정도 스트레스도 해소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뒷담화지만…….
그렇게 저녁식사를 마무리 짓고, 술도 조금씩 들어가 양 뺨이 살짝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아내의 모습은 정말이지 아름답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잔잔한 음악. 강하지 않은 조명은 지적이면서도 청순한 정나은의 매력을 더욱 끌어올려준다.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응? 후후 그러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든 점이 바로 술이다. 아내는 회식자리에 나가도 많은 술을 안 먹는 편인데, 근래 들어 어쩐지 주량이 늘은 것 같다.
‘고민이라도 있나?’
안정수는 아내의 어깨를 살짝 끌어안아주며 그저 조용히 어깨를 빌려준다. 아내도 싫지만은 않은지, 자신의 어깨에 기댄 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한다.
코를 간질이는 화장품 냄새와 그 속에 은은하게 섞여있는 아내의 향기로운 살내음은 오랜만에 가슴 속의 성욕을 끓어오르게 한다. 붉은 립스틱으로 물든 두툼한 입술이 오늘따라 왜 이리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자신도 취한 것 같다.
“그만 갈까?”
“응? 그러자.”
술을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분위기를 타 술까지 먹은 관계로 어쩔 수 없이 대리를 불렀다. 아내는 오늘따라 술이 잘 받았는지, 살짝 풀린 동공하며 비틀거리는 걸음 거리가 불안하다.
“조심해.”
“으음…….”
퇴근하자마자 외식을 한 관계로 두 사람 모두 불편한 정장차림이다. 아내는 하이힐까지 신어 제대로 서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안정수는 그런 아내를 부축해 먼저 차에 태운 뒤 대리기사가 오길 기다리며 담배를 태운다.
“이거 참 저렇게 푹 퍼져서는 오늘 밤 하기 힘들겠네.”
오랜만에 분위기 좀 잡아보려 했더니 이미 꿈나라로 떠나신 공주님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쉰다. 그 자존심 강한 아내가 저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자신뿐이다. 이렇게 때때로 반전 매력을 보여주니 어떻게 저런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차 안에서 색색 소리를 내며 잠든 아내를 바라보며, 담배를 다 태울 무렵 대리기사가 도착했다. 집을 향해 미끄러져가는 자동차에서 잠든 아내의 옆모습을 훔쳐본다.
‘……장난치고 싶네.’
안정수는 미인 아내를 가지고 있기에 그에 대한 불안감도 많지만 동시에 자랑하고 싶은 과시욕도 조금씩 생겨났다. 최근 아내와 잠자리를 제대로 같지 않아 성욕이 쌓일 때로 쌓인 그는 슬금슬금 올라오는 장난기와 술기운이 섞여 한 가지 재미있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볼까?’
안정수는 백미러로 보이는 대리기사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본다. 준수하게 신뢰감이 묻어나는 한 가정의 아버지의 모습. 자신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야 5~10살 정도밖에 안 날 것 같다.
정나은이 생각하는 남편은 순댕이에 덜렁이인 이미지다. 하지만 모든 남자는 가슴속에 늑대를 품고 있으며, 때때로 그 늑대는 짓궂은 장난도 서슴없이 한다는 걸알까?
그리고 이미 고개를 든 그 늑대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안정수의 가슴속에서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덥다고? 알았어. 잠시만.”
꿈나라에서 뛰놀고 있는 정나은이 대체 무슨 말을 했다고 이러는 걸까? 안정수는 마치 아내가 덥다고 칭얼거렸다는 듯이 혼잣말을 하며 그녀의 정장 마이의 단추를 풀러 벗겨준다. 아내의 피부처럼 뽀얀 와이셔츠가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며 안정수의 눈을 어지럽힌다. 안정수는 완전히 채워져 있는 와이셔츠 단추 몇 개를 풀러 옷맵시를 흐트러뜨린 뒤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린다.
‘오늘은 살색 스타킹이네.’
검은 정장 치마 아래로 시원하게 뻗은 아내의 다리는 살색 스타킹에 감싸여 스타킹이 있는 듯 없는 듯 불빛이 비춰질 때만 때때로 그 매끄러운 질감을 표현한다. 취한 아내의 다리를 자신의 손으로 조금 벌어지게 한다. 벌어진 정장 치마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아내의 가랑이 사이를 살짝살짝 건들며 자극한다.
“으음…….”
안정수는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눈을 안 뜨는 아내를 보며 오늘 제대로 가셨다고 생각하며 더욱 대담하게 아내의 가랑이 사이를 스타킹 위로 괴롭힌다. 그 묘한 자극에 정나은은 잠결에 달콤한 숨결을 뱉으며 더욱 다리가 넓게 벌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걸…….’
안정수는 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동영상 촬영모드를 누른 뒤 아내의 모습이 잘 찍히도록 운전석 뒤에 달려있는 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뒤 돌연 대리기사를 부른다.
“아 기사님 죄송한데, 지금 급해서 그런데 잠시 차 좀 세워주실 수 있나요?”
“예? 아……예.”
“저쪽으로 차를 돌리면 작은 공원이 나오는데 그쪽으로 좀 부탁드립니다.”
안정수의 요청에 대리 기사는 핸들을 돌려 5분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 입구에 도착하자 안정수는 배를 움켜잡는 시늉을 하며 차에서 내린다.
“이거 죄송합니다. 갑자기 신호가 와서……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배탈이라도 났는지, 배가 요동치네요. 근처 화장실이 있지만 열렸을지 모르겠네요. 한 20분쯤 걸릴 것 같은데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러죠.”
대리기사는 시간이 늦춰질수록 돈 벌이가 줄어든다. 그걸 아는지 안정수는 더 얹어주겠다고 하며 자기가 올 때까지 대신 아내 좀 잘 부탁한다고 잠든 아내를 손으로 가리킨다.
“술 많이 마셔서 토할지도 모르니 낌새가 이상하면 부탁드립니다! 꼭이요!”
대리기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별 반응이 없자 안정수는 적극적이지 않은 대리기사의 반응에 마음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고 화장실로 향했다.
“하긴 요새 여자 잘못 건들면 훅 가서 그런가?”
공원 화장실 근처에서 담배나 뻑뻑 태우며 시간을 죽인 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차 근처에 왔을 땐 일부러 발걸음 소리를 크게 내며 다가갔다. 거의 땅을 찍듯이 다가왔으니 이 고요하기만 한 작은 공원에 자신의 발걸음소리가 울려 퍼지다시피 한다.
‘흠……그냥 운전석에 있네.’
안정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미안함을 표하고 차에 탔다. 아내는 자신이 내릴 때와 같이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스마트 폰을 회수 하고 작은 공원에서 차가 집을 향해 다시금 출발했다. 집에 도착하자 대리기사는 돈을 받곤 거의 날아가다시피 사라지는 걸 보며 안정수는 무슨 일이 벌어지긴 했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곤 다시금 차에 올라타고 스마트 폰에 찍힌 영상을 확인한다.
‘잠시만 기다려 이것만 확인하고.’
색색 잠든 아내 곁에 아내가 희롱 당했을지 모르는 영상을 확인하고 있자니 벌써부터 입안이 마른다.
흘러가는 영상에는 아내가 잠든 모습이 계속해서 찍히더니 내가 차를 떠나는 게 보인다. 한동안은 조용한 아내의 숨소리만 들리더니 곧이어 찰칵하는 운전석이 열리는 소리가 나며 대리기사가 내린다. 곧이어 뒷좌석 문이 열리더니 잠든 아내 곁에 한 인영이 드리우는 게 보인다.
‘그럼 누구 아내인데……이런 여자를 보고도 흥분 안하는 건 남자가 아니지.’
결혼 한 뒤 무의식적으로 아내에 대한 과시욕이 생긴 안정수다. 평소 자신도 모르게 억눌러 오던 과시욕이 술이 들어가면서 차곡차곡 쌓인 성욕이라는 폭탄에 불을 붙은 결과다. 내일 술이 깨면 후회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늑대라는 본능이 좋다고 박수치고 있다.
대리기사는 잠시 그렇게 곁에 앉아있더니 아내의 어깨를 흔들어보는 등 아내의 반응을 잘 살피고 있다. 아내가 완전히 꿈나라에서 헤매며 정신이 없는 걸 확신했는지 곧이어 대리기사는 아내의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가슴을 와이셔츠 위로 꽉 움켜쥔다.
‘허어? 이 사람 생각보다 대담하네.’
처음에 소심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아내의 가슴 형태가 일그러질 정도로 강하게 쥐는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와이셔츠 위로 대리기사의 손이 파고들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면서도 아내는 그저 잠꼬대만 할 뿐 별 반응이 없자 대리기사는 재빨리 다른 한 손을 아내의 정장 치마 안으로 쏙 집어넣는다.
한 손으로는 아내의 가슴을 탐하며 정장 치마 속으로 들어간 한 손은 영상을 보고 있는 자신에게까지 초조함이 전해지는 빠른 손놀림으로 아내의 가랑이 사이를 탐한다.
“각도가 약간 아쉽네.”
운전석 뒤쪽 주머니에서 촬영한 영상이라 아내의 정면이 아니다. 양껏 벌어진 아내의 다리사이를 오가는 대리기사의 팔뚝과 아내의 육덕진 허벅지 때문에 그 안까지는 영상에서 확인이 되질 않는다.
-흐으음……으음…….
그렇게 가슴과 가랑이 사이를 탐하는 대리기사의 손놀림 때문이었을까? 아내는 달콤하면서도 뜨거움이 느껴지는 숨결을 내뱉자 대리기사는 화들짝 놀라며 손이 멈춘다. 하지만 아내가 깨어난 게 아니란 걸 깨달았는지 영상 속에서 대리기사의 안도의 한숨소리가 새어나오더니 아내의 가슴과 치마 속에서 손을 뗀다.
“응?!”
아내의 가슴은 둘째 치고 아내의 치마 속에서 꺼내든 대리기사의 손가락에는 반짝이는 무언가가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는 게 보인다. 안정수는 깜짝 놀라 곁에 잠든 아내의 정장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찔꺽.
‘허허~나은이도 많이 굶었나?’
자신의 손가락에 찍혀 딸려 올라온 건 여성의 기쁨의 눈물이라 할 수 있는 애액이다. 안정수는 바지 속에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자신의 육봉을 느끼며 다시 영상에 집중한다.
대리기사는 손에 묻은 애액을 관찰하는 듯싶더니 잠시 몸을 일으켜 운전석으로 손을 뻗는다. 화면이 잠시 흔들리는 걸 보니 운전석을 조작하는 것 같다.
‘뭘 하려는 거지?’
곧이어 화면의 흔들림이 멈추자 어쩐지 화면이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아내의 전체적인 모습이 더욱 잘 보이는 걸 보아 운전석을 약간 앞으로 민 것 같다. 운전석을 앞으로 밀자 생겨난 그 작은 공간에 대리기사가 쪼그려 앉자 화면이 꽉 차는 느낌이다. 앉은 채 잠든 아내에게 손을 뻗은 대리기사는 아내를 옆으로 눕힌다. 영상에선 대리기사의 몸에 가려 아내의 하반신만 보인다.
“으엥?!”
안정수는 이어진 대리기사의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당황해 소릴 내버렸다. 대리기사가 바지와 함께 팬티까지 확 내려버린 것이다.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 자신의 심정도 모르고 영상을 계속해서 흘러간다.
화면 가득 차지하는 대리기사의 지저분한 엉덩이가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한눈에 봐도 힘을 주는 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대리기사의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며 허리를 낮춘다. 그렇게 허리를 낮춘 채 잠시 정적이 흐르는 사이 한손으론 아내의 탐스런 엉덩이를 주물럭거리기 시작한다.
-음…….
대리기사의 억눌린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더니 낮췄던 허리를 천천히 들었다가 내리기 시작한다. 안정수는 그 모습에 깜짝 놀라며 한 장면이 떠오른다.
‘지금 아내 입에 넣은 거야?!’
아내 얼굴 쪽에서 천천히 허리를 놀리기 시작하는 대리기사의 뒷모습을 보며 그 대담함에 혀를 내두른다.
-으, 우웁…….
대리기사의 허리놀림은 초조함이 극에 달했는지, 조심스러우면서도 최대한 쾌락을 탐하는 그 모습이 영상 너머로도 전해진다. 간간히 아내의 무언가를 머금은 목소리는 더 할 나위 없이 안정수에게 흥분을 제공한다.
대리기사의 허리놀림은 서서히 그 초조함이 절정에 달해가자 아내의 엉덩이를 더듬던 손도 덩달아 정신없이 아내의 하체를 탐하며, 엉덩이나 육덕진 허벅지, 그리고 질척이는 가랑이 사이를 오간다.
-흐으!
대리기사의 초조함이 극에 달했는지, 그 억눌리고 낮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차체가 들썩일 정도로 허리를 흔들기 시작한다. 처음에 그 조심스럽던 모습은 어디가고 완전히 쾌락을 탐하는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버린 대리기사를 보며 자신의 아내는 이런 아내라고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걱정해야할지 모르겠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은 그저 흥분된다는 것.
-큭!
-으웁!
곧이어 대리기사의 작은 신음과 함께 아내의 괴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요동치던 허리와 정신없이 아내의 하반신을 탐하던 대리기사의 손은 정지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춘다.
대리기사의 손은 아내의 살색 스타킹에 감싸인 육덕진 허벅지를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고 있고 위에서 찍어 내리다시피 들린 허리와 지저분한 엉덩이는 힘이 잔뜩 들어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힘줄이 툭 튀어나온 대리기사의 허벅지 사이로는 아주 작게 아내의 입술로 보이는 붉은 색이 보이고 그 붉은 색이 무언가를 가득 머금고 있는 것이 화면에 작게 보인다. 아내가 머금고 있는 것이 커졌다 작아지며 무언가를 토해내고 있다. 대리기사는 위에서 찍어 내리다시피 들렸던 허리를 서서히 핀다.
‘보이나?!’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일까? 굉장히 조심스럽게 허리를 피자 화면 안을 꽉 채우던 남성의 엉덩이보단 그 허벅지 사이에 아내의 얼굴이 조금씩 보인다. 술기운 때문일까? 숨이 막혔던 걸까? 살짝 상기된 아내의 양 뺨과 붉은 입술 가득 머금어져 있던 대리기사의 육봉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게 보인다.
-후우…….
많은 것이 묻어나는 대리기사의 숨소리와 동시에 아내의 입은 해방감을 되찾는다. 단편적이지만 아내의 잠든 얼굴이 보이는 게 그렇게 흥분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걸 대리기사가 알기라도 하듯 확 바지를 끌어올려 버리자 허벅지 사이로 보이던 아내의 얼굴이 전혀 안 보인다.
그렇게 바지를 추켜올린 대리기사는 재빨리 아내를 일으키곤 옷맵시를 정돈하는 등 한참을 난리를 친다. 아내의 입가 주위에 번들거리는 액체는 재빨리 휴지를 뽑아 닦아 한 치의 흩트림도 용서 못 한다는 듯 몇 번이고 아내의 입가나 옷맵시를 체크한 뒤 뒷좌석에서 물러난다.
“이거야 원…….”
안정수는 대리기사의 대담함에 입맛을 다신다. 기껏해야 무방비한 아내의 몸을 다른 남자가 주무르는 걸 생각하며 벌인 일인데 일이 커졌다. 하지만 용솟은 치는 하반신과 풀 액셀을 밟은 듯 쿵쿵 뛰는 심장은 이성 따위 날려버린다.
‘그래. 아내도 모르고, 자신도 모른 채 하면 되겠지.’
곁에 잠든 아내의 입술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본다. 방금 전까지 저 두툼한 붉은 입술에 이름도 모를 남성의 육봉이 들어갔으며, 그의 욕망의 덩어리를 있는 대로 털어 넣었다고 생각하니 죄책감보단 성욕이 더욱 샘솟는다.
“에라 모르겠다!”
안정수는 한동안 아내와의 잠자리를 가지지 못해 쌓이고 쌓인 성욕이 이끄는 대로 폭탄을 터트렸다.
야심한 시각. 안정수와 정나은 두 부부가 살고 있는 보금자리 주차장에는 수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늦은 시각임에 틀림없어 더 이상 들어오는 차도, 나가는 차도 없는 정적이 감돌며 주차장 특유의 쾌쾌한 냄새와 싸늘한 냉기가 서서히 올라온다.
지상보다 주차장이 온도가 따스해 한 마리의 길고양이가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주차장으로 숨어들었다. 길고양이는 본능적으로 더 따스한 자동차를 찾아 그 아래에 자리를 잡곤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몸을 눕혔다.
길고양이가 자리 잡은 그 자동차는 다른 자동차보다 기묘하리만치 열기를 내뿜고 있다. 곧이어 그 열기를 내뿜던 자동차의 창문에는 불쑥 살색 스타킹으로 감싸인 여성의 두 다리가 올라온다. 곧이어 정적만이 흐르던 주차장엔 무언가 들썩이는 소리와 함께 그 묘한 열기를 띄우던 자동차가 꿀렁이기 시작한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여성의 두 다리는 자동차의 진동에 맞춰 힘없이 흔들린다. 힘없이 흔들리던 여성의 다리는 정신을 차린 듯 힘이 들어가더니 두 다리를 교차해 누군가를 꼭 껴안듯 내려간다.
고요한 주차장 안을 자동차가 들썩이는 소리 외에도 사랑하는 이와 사랑을 나누는 여성의 기쁜 비음도 조금씩 섞여 은은하게 주차장 안에 퍼져나간다.
“갸르릉~”
하룻밤을 편히 보내기 위해 주차장에 숨어든 길고양이만이 갑작스런 소란에 불만어린 울음소리를 내고 들썩이는 자동차를 멀리하고 주차장을 나간다.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은 도시 서울.
주말이면 이 숨 막히는 곳에서 뛰쳐나가 자연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이 종종 찾는 곳이 있다. 차를 타고 서울근교와 경기도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연산림장이나 작은 펜션들은 그런 지친 도시 현대인들을 상대로 장소를 제공해주는 곳이 많다.
불타는 금요일이라는 말이 있듯 금요일 저녁이 되면 이런 펜션들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서울에서 차를 타고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이 한적한 마을의 이름도 없는 작은 뒷산에 지어진 펜션도 오늘은 만원사례를 맞이하고 있다.
주위에 마을이라고 해봐야 몇 가구 살지도 않고, 절경도 없고, 그저 적막함과 한적함만이 장점인 이 펜션. 서울에서 보기 힘든 드넓은 밤하늘과 조명대신 캠프파이어를 설치해 분위기를 잡았으며,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맛있는 바비큐, 신선한 음식들이 계속해서 제공되고 있어 지친 현대인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생각보다 제대로인데?”
“……그러네.”
캐주얼한 복장의 안정수와 그의 아내 정나은도 그 사람들의 무리에 끼어있다. 이 펜션에 모인 사람들은 안정수에겐 매일같이 살을 비비고 사는 회사동료들이었으며, 그들은 하나같이 부부동반으로 이곳에 놀러왔다.
김우영 부장이 제안했던 부부동반인 내실다지기라는 명목하의 큰 회식이다.
지나가는 말투로 한 줄 알았던 부부동반의 회식은 김우영 부장의 적극적인 추진에 따라 그 규모가 커져 당일치기긴 해도 서울 근교의 펜션까지 빌려 이렇게 모인 것이다.
‘그나저나 통 크네…….’
지금 이 펜션을 빌린 것도, 음식을 내놓는 것도 전부 김우영 부장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금요일 밤이라는 짧다면 짧고, 다음 날 쉬는 날이라는 점도 고려해 주도면밀하게 날짜까지 잡아 사원들이 도망 못 가게 계획을 잡은 것도 참 용하다.
‘그래도 여사원들은 도망갔지만.’
대부분 이 회식에 참여한 건 영업부 남성 사원들이다. 물론 부부동반이라는 점 때문에 남녀 비율이 안 맞는 건 아니지만 이런 자리를 싫어하는 여사원들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빠졌다. 공짜 밥과 자연이 가득한 펜션에서 하룻밤이라는 좋은 미끼를 덥석 문 여사원도 몇몇 되지만…….
대부분 차를 끌고 와 술을 안 마실 줄 알았던 이 회식은 다음 날 오전 12시까지 이 펜션을 대실했다는 김우영 부장답지 않은 통 큼과 배려에 다들 환호를 지르며 좋아했다. 거기에 자지 않고 돌아갈 사람을 위해 펜션 측에서 대리기사도 준비해놨다고 하니 어찌 술을 안마시고 버티겠는가?
완전히 축제가 벌어졌다. 오랜만에 정말 회식다운 회식에 다들 졸라맸던 허리띠 풀고 먹고, 붓고 계급장 뗀 채 놀고 있다.
‘정작 당사자는 자리를 슬슬 피해준단 말이야?’
김우영 부장은 정말로 사원들을 편하게 즐기게 해주려고 배려를 한 것일까? 처음에만 부장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이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덕담과 이런 저런 말을 한 뒤 잠깐, 잠깐씩 회식자리에 모습을 보여줄 뿐 어딘가에 처박혀서 모습조차 보여주질 않는다.
“아무렴 어때.”
안정수는 피식 웃곤 그저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도 다지고,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술과 맛있는 음식도 먹고 사랑스런 아내까지 곁에 있으니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이런데 온 것도 오랜만이다. 그치?”
“응? 응. 그렇긴 하네.”
고기를 접시에 나눠담고 있던 아내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다. 안정수는 알딸딸하게 들어간 술 때문에 더욱 아내가 예쁘게 보인다.
어스름한 어둠 속 캠프파이어 불빛에 보이는 아내는 자신처럼 편한 복장인데, 여전히 긴 생머리는 깔끔하게 틀어 올려 고정시켰고, 산속은 밤이 되면 추울까봐 입고 온 크림색 스웨터와 하얀색 스키니 진을 입었다. 직장 여성의 전유물인 하이힐도 벗어던지고 편안한 운동화까지 신으니 지적이고, 청순하기만 하던 아내가 20대 대학생처럼 쾌활한 분위기를 띈다.
‘내 아내지만 자기 관리는 참 잘해요.’
군살하나 없는 매끄러운 라인에 크림색 스웨터 위로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두 가슴과 딱 달라붙는 스키니 진 때문에 탄력적으로 툭 튀어나온 아내의 업 된 엉덩이는 때려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헤실헤실 징그럽게 웃는 안정수를 눈치 챈 걸까? 정나은은 고양이처럼 눈매가 올라가며 남편의 징그러운 시선을 털어내듯 몸을 휙 돌려버린다.
찰싹!
“꺅?!”
사람들의 시끌시끌한 웃음소리와 말소리 속에 찰진 소리와 함께 정나은의 귀여운 비명이 섞이더니 곧 흩어져 사라진다.
“이 사람이?!”
“하하하 우리 아내 엉덩이 참 예쁘네?”
고양이처럼 확 치켜 올라간 정나은의 눈매는 완전 무장상태다. 평소라면 아내의 저런 날카로운 태도에 깨갱하며 꼬리를 말았겠지만 술만 들어가면 이상하리만치 대담해지는 그다. 그렇기에 그저 고양이처럼 날 선 아내의 모습에도 하하 웃을 뿐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모습에 정나은은 피식 웃으며 한숨을 쉴 뿐이다.
‘하여간 이 사람은 평소에 그렇게 순댕이에 덜렁이면서 술만 들어갔다 하면…….’
정나은은 남편의 술버릇에 한숨을 쉰다. 평소 어딘가 나사 빠진 것처럼 덜렁거리고, 그저 사람 좋은 미소로 헤헤거리는 남편은 술만 들어갔다 하면 사람이 변한다. 원래 평소 화 안 내는 사람이 한 번 화를 내면 무서운 것처럼 남편도 약간 그런 스타일이다.
‘다만 해소 시키는 방향이…….’
평소에 자존심 강한 자신의 엉덩이 밑에 깔려 기가 죽은 탓인지, 대담해지고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성적 욕망이 터져 나오는 스타일이다. 술만 마셨다하면 얼마나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오는지 자신이 피곤하건 말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사랑을 나눈다.
‘얼마 전에도 술이 들어갔다 싶더니만 결국 차에서…….’
멀쩡한 집 놔두고 집 주차장에서 한참을 그렇게 사랑을 나눴던 걸 떠올리자 뺨에 열기가 올라온다. 뭐 저런 면도 다 사랑스럽기에 결혼한 거다.
‘이럴 때라도 기를 펴줘야지.’
평소 남편의 체면을 살려주려고 노력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자존심 강한 자신을 데리고 살려면 알게 모르게 고충이 심할 것이다. 술기운에 터져 나온 그의 어리광을 이럴 때라도 받아줘야지 언제 받아주겠는가?
“이거나 먹고 잠이나 자.”
정나은은 헤실헤실 쪼개고 있는 남편에게 고기와 술을 반쯤 강제로 먹이며, 아예 보내버릴 생각을 한다. 어중간하게 먹었다간 또 밤이 고달파진다.
‘그나저나 그 빌어먹을 놈 한 방 먹이려고 왔는데…….’
정나은은 남편이 동료들에게 가버리자 음식을 먹으면서도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눈매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한 사람을 찾는다. 남편이 이곳에 오자고 했을 때 분명 그 빌어먹을 놈이 또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생각에 고민했지만 어차피 얼굴을 봐야 한 방 먹일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엿 먹일지 모르겠단 말이야.’
사진까지 찍혔다. 오히려 그런 사진이 증거가 되 100% 잡아들일 수 있지만……이놈의 자존심은 그걸 용납 못 한다. 어떻게든 한 방 먹이지 않으면 분이 안 풀리는 그녀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강한 자존심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르겠다. 어차피 호랑이 굴에서 잠 잘 생각은 없으니 적당히 먹고 즐기다가 빠져야지.”
김우영이라는 짐승이 언제 아가리를 벌리고 덮쳐올지 모른다. 주위에 사람도 많고 남편도 있지만 유비무환이다. 집에 가서 자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김우영이 산다는 음식을 꾸역꾸역 입으로 쑤셔 넣는다. 그놈의 돈을 한 푼이라도 더 거덜 내기 위해…….
밤이 깊어감에 따라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높아지고, 동시에 발치에 굴러다니는 술병의 수는 늘어만 간다. 김우영은 펜션 주인이 준비해준 곳에서 절대로 술에는 손을 안 댄 채 음식을 먹으며 종종 회식자리에 걸음을 옮기며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다.
‘흐음~어쩔까나?’
정나은의 생각대로 김우영은 이런 자리를 비싼 돈 들여가며 마련한 이유가 다 있다. 안정수 사원의 아내 정나은의 캐주얼한 모습도 참 매력적이다. 그녀 말고도 유독 눈에 띄는 여성이 하나 더 이 자리에 와 있다.
박경원 사원의 아내인 김수진이다.
20대의 풋풋함이 남아있는 정나은과 달리 유부녀로써 무르익은 성숙미와 차분하면서도 수수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어깨 아래까지 늘어뜨린 흑단 같은 머리는 살짝 펌을 넣어 웨이브가 들어갔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푸른색 파스텔 톤의 롱 프릴 원피스는 그녀의 차분함을 한층 살려준다. 원피스 바로 아래로 곧게 뻗은 가느다란 다리와 하이힐 신는 게 어색한지 때때로 불편해 하는 모습은 귀여움을 자아낸다.
“어떤가? 눈여겨 볼만한 사람은 있는가?”
“아 최 사장님이시군요. 흐흐 글쎄요? 사장님은 어떠신지?”
김우영과 아는 사이인지, 서로 능글 맞는 미소를 짓는 그는 이 펜션의 주인이다.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답게 살짝 작은 키가 흠이지만 호탕해 보이는 외모에 힘쓰는 일을 많이 하는지 구릿빛 피부에 알이 꽉 찬 근육들을 자랑하며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 같은 모습이다.
“자네가 말한 년과 저기 저 년 어떤가?”
“역시 최 사장님 저랑 취향이 같으시군요.”
턱으로 정나은과 김수진을 이년, 저년 하는 최 사장은 김우영과 아는 사이를 넘어 이런 일을 할 때 동업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그저 계약 관계로 만났는데, 성적인 취향까지 같고 행동으로 옮기는 대담함까지 갖춘 두 사람은 금세 의기투합했다.
“그럼 자네가 말한 년은 분명 돌아갈 테니 침도 못 발라보겠군.”
“후후. 최 사장님 너무 아쉬워하시는 거 아닙니까?”
“뭐, 알아서 하게나. 그럼 난 평소처럼 술이나 돌리겠네.”
이 짓을 하루 이틀 한 게 아닌지, 최 사장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비장의 술을 꺼내들어 사람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직접 담금 과일주인데, 달달함 뒤에는 확 올라오는 그 취기에 다들 훅 가는 녀석이다. 최 사장이 노골적으로 박경원 사원과 그의 아내 김수진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걸 보곤 김우영은 누군가에게 시선을 살짝 던진다.
‘오늘의 메인 디시는 정나은이니깐.’
헤롱거리는 남편을 부축하며 그가 마음에 안 드는지, 눈매가 고양이처럼 올라간 정나은의 모습을 보며 펜션으로 들어갔다.
최 사장은 박경원과 그의 아내 김수진에게 고기를 구워주는 둥 친근하게 다가와 술을 건네기도 하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며 김수진을 곁눈질로 훔쳐보고 있다. 차분하고 수수한 외모와 다르게 품이 넉넉한 원피스를 입고 있음에도 부풀어 오른 아름다운 곡선은 육감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허허~오늘 몸보신 가능하려나?’
집에서 집안일만 하는지, 창백하기 까지 한 피부에 사근사근한 목소리. 남편에게 헌신적인 모습이 천상여자다. 차분한 아내와는 다르게 남편 박경원은 상당히 음주가무를 즐기는 듯 아내에게도 권하고 신나서 떠들며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거하게 취했다. 그런 남편을 따라다니면서도 한 잔, 한 잔 받은 술 때문인지 김수진도 상당히 취한 모습이지만 남편은 아랑곳 않고 아내에게도 먹이고 자신도 먹이며 사람들 사이를 오간다.
“허허 박 선생님 아내분이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어떻게 주무시고 가실건지?”
최 사장은 박경원에게 시골 아저씨처럼 티 없는 미소로 다가간다. 최 사장의 말에 아내를 바라보자 불편한 하이힐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다리가 풀렸는지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아내가 위태롭게만 보인다. 초점도 잡히지 않는 게 완전히 갔다.
“벌써 가면 어떻게 이 여편네야?!”
박경원은 음주가무를 상당히 좋아한다. 밤은 이제부터인데 벌써 가버린 아내에게 입맛을 다시며 최 사장에게 아내를 부탁한다.
“사장님 그러면 자고 갈 테니 방 좀 준비해주시겠어요?”
“방이야 이미 준비 되어있죠. 제가 모셔드리고 올까요?”
박경원은 최 사장의 호의를 좋다고 받아들였다. 최 사장은 술에 잔뜩 취한 김수진을 부축해서 펜션으로 데려갔다. 작은 산속에 있는 이 펜션은 큰 건물 하나가 아닌, 띄엄띄엄 한 가족이 하나씩 들어갈 정도로 작은 오두막집으로 지어져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예? 예에…….”
낯선 남자가 자신을 부축하고 있기 때문일까? 김수진은 의식의 끈을 부여잡기 위해 노력중이다. 오두막집으로 올라가는 최 사장은 비어있는 집들을 지나쳐 조금 더 길게 뻗은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최 사장의 눈에 곧이어 작은 오두막집이 보이고 그곳으로 취한 김수진을 데리고 들어간다.
노골적으로 보통 오두막집보다 좀 높은 위치와 거리를 두고 지어진 이 오두막집은 평소에 잘 사용을 안 한다. 한적함을 느끼기 위해 특별히 요청한 고객이나, VIP를 위해 만들어진 이곳은 구태여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이곳에 오두막집이 있는지도 모른다. 빽빽이 우거진 산림 때문에 방음은 더 할 나위 없다.
하지만 웬걸? 최 사장은 금세 오두막집에서 나와 김수진의 남편 박경원에게 돌아와 내외분을 잘 모셔놓고 왔다고 보고까지 해준다. 이에 박경원은 안심하고 더욱 음주가무에 힘을 쏟는다. 최 사장은 그런 박경원 곁에 붙어 더욱 그에게 음주가무를 즐기게 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른 게 없다. 김수진이 잠들어 있는 오두막집에서 최 사장이 나오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둠을 틈타 한 인영이 조용히 김수진이 잠들어 있는 오두막집으로 들어간다. 잠겨있는 오두막집을 너무나 자연스레 들어가는 한 인영에 의심을 품을 새도 없이 그 안으로 사라져 버린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펜션 아래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회식이 서서히 파장으로 치달아갈 무렵 굳게 닫혀있던 오두막집의 문이 열리며 한 인영이 불쑥 튀어나와 칙 소리와 함께 입에 담배를 꼬나문다. 라이터 불빛에 비친 인영의 얼굴은 다름 아닌 김우영이었다.
“슬슬 가볼까?”
김우영은 담배를 끄고 회식자리로 걸음을 옮긴다. 슬슬 파장할 시간인지, 거하게 취해 널브러져 있는 남성들과 여성들이 보인다. 이미 대리기사를 불러 집으로 간 건지, 아니면 펜션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는지 시작했을 때보다 사람이 많이 줄어있다.
김우영은 최 사장에게 눈짓으로 무언가 신호를 보내자 최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곁에 있는 박경원에게 더욱 술을 권하며 달라붙어 있다. 김우영은 시선을 돌려 남아있는 사람들 면면을 살펴보자 안정수와 그의 아내 정나은이 남아있는 걸 발견했다.
‘오호? 예정대로 잘 되어 가는데?’
솔직히 그들이 남아있을지 어떨지는 반쯤 도박이었다. 술에 거하게 취한 안정수가 오랜만에 고삐를 풀고 음주가무를 즐긴 것도 있지만, 정나은이 김우영의 돈을 한 푼이라도 거덜 내기 위해 남아 꿋꿋이 음식을 배속으로 쑤셔 넣은 탓도 있다.
“자~슬슬 파장합시다. 아 물론 여기서 자고 가실 분들은 더 즐기셔도 무방하나, 대리기사들도 퇴근해야죠.”
김우영의 파장선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사람과 남아서 더 음주가무를 즐기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최 사장이 돌아갈 사람들 수를 조사하는 도중 어째서인지 곤란해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돌아가네요. 준비해둔 대리기사 수가 부족하겠는데요?”
사람들은 그 소리에 경악한다. 하지만 최 사장은 걱정 말라는 듯 안심시키며 한 사람정도 부족하다는 뜻을 전하며 자신이 대신 끌고 가주겠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최 사장은 사람들에게 음식과 술을 제공했을 뿐이지 한 모금도 술을 마시지 않았던 걸 떠올린다.
“그럼 다들 월요일에 보세.”
그렇게 대리기사와 짝을 지어 하나, 둘 집으로 향하는 이들을 보낸 뒤 최 사장이 마지막 남은 사람을 부른다. 다름 아닌 안정수와 정나은 부부였다.
“아 미안한데, 나도 좀 데려다 줄 수 있나? 술을 마셔서 차를 끌고 갈 순 없네. 중간에 내려줘도 되니.”
김우영은 술은 입에 대지 않았으면서도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허허 미리 말씀 하시지…….”
최 사장은 굉장히 곤란한 듯 안정수와 정나은 부부의 눈치를 본다. 안정수는 얼마나 술을 먹었는지 완전히 축 처져 코까지 골고 있다. 정나은은 이 빌어먹을 남편을 부축하느라 힘든 것인지, 약간 먹은 술 때문인지 뺨이 살짝 발그레할 뿐이라 맨 정신이다. 그렇기에 최 사장의 말에 의사결정을 자신이 해야 한다.
‘저 빌어먹을 놈이 무슨 꿍꿍이지?’
곤란해 하는 최 사장과 김우영은 아는 사이인 듯 보여도 서로 말을 높이는 걸 봐선 그저 면식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방패막이가 될 남편을 자신의 손으로 보내버린 걸 아쉬워하며 머리를 굴린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술 안 먹이는 건데.’
자신의 손으로 완전히 보내버린 남편의 자는 얼굴이 그렇게 얄미울 수 없다. 취하기만 하면 침대로 기어들어오는 버릇만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떡이 되게 안 보내버렸을 것이다.
“아 내외분 주시겠어요? 제가 차까지 부축해드리죠.”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사이 최 사장이 일단 안정수를 받아들더니 비척비척 차로 간다. 정나은도 천천히 최 사장을 따라가며 뒤 따라오는 김우영의 기척에 입맛을 다신다.
‘……설마 남편도 있고, 다른 사람도 있는데 무슨 짓을 하진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고,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지만 자존심 강한 그녀는 자신이 피한다는 기색을 보여주긴 죽어도 싫어서 그의 동승을 허락했다.
이미 이야기가 끝난 최 사장과 김우영은 속으로 웃으며, 재빨리 남편을 차에 태운다.
“아……잠깐.”
“자 그럼 어서 가죠. 저도 돌아와야 하니까요.”
정나은이 곤란해 하며 최 사장을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재빨리 안정수를 보조석에 태워버린다. 당연히 보조석엔 김우영이 타고 남편과 자신이 뒷좌석에 탈 줄 알았건만 이 눈치 없는 펜션 사장은 그냥 쑤셔 넣더니 벙 찐 정나은과 김우영을 재촉한다.
“안 타시나?”
김우영은 끌끌거리며 재빨리 뒷좌석에 탄다. 정나은은 그의 조롱에 까득 이를 갈며 눈매를 한참 치켜 올린 채 자존심이 팍 상한 얼굴로 뒷좌석에 올라탄다. 음주가무가 한참인 펜션을 뒤로하고 네 사람을 태운 차는 매끄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 서울 근교에 존재하는 작은 펜션에서 출발한 안정수와 정나은 두 부부의 차는 어디를 달리고 있을까?
잘 닦인 도로를 달리고 있을 두 부부의 차는 어째서인지, 아직도 비 포장된 흙먼지가 날리는 도로를 달리고 있다. 서울 근교여도 사는 사람 수도 적고, 한적하며 고요하기까지 한 이 도로를 천천히 나아가던 그 자동차는 도로마저 벗어나 어둠이 더욱 짙게 깔린 곳으로 이동한다. 들짐승의 기척조차 나지 않는 어두운 곳에 서서히 차가 정차하더니 완전히 시동마저 끈다.
그나마 자동차 라이트에서 나오던 불빛마저 사라지자 순식간에 어둠이 들이닥쳐 자동차를 감싼다. 곧이어 운전석이 열리며 한 사람이 내렸는데 안정수와 정나은 두 부부를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 줘야 할 최 사장이었다. 최 사장은 어둡고 길마저 보이지 않는 이곳을 잘 아는 눈치다. 최 사장은 뒷좌석 창문을 주먹으로 탁탁 내려치며 간다고 신호를 보내며 중얼거린다.
“자~굿을 봤으니, 이제 떡을 먹으러 가보실까?”
최 사장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주차해둔 자신의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 잘 무르익은 차분하면서도 수수한 그 육감적인 남의 떡을 먹기 위해 서둘러 펜션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렇게 최 사장이 떠난 인적도 드물고, 어둠마저 짙은 곳에 주차된 두 부부의 차는 서서히 들썩이며 꿀렁이기 시작한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어도 착각할 리 없는 육덕지면서 뽀얀 여성의 다리가 때때로 자동차 창문으로 보이며, 적막하기에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누군가의 코고는 소리와 뜨거움이 묻어나는 신음소리는 몇 시간이고 울려 퍼졌다.
김수진은 오랜만에 남편과 먼 곳까지 나와서 기분이 좋다.
집안에서 집안일만 하는 게 나쁘진 않다. 아침에 남편을 출근시키고 여유롭게 집안일을 하며 즐기는 아침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도 재미있고 동네 사람들과 장바구니를 들고 길거리에서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겁다. 그럼에도 절경이라 할 것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시골 풍경의 한적한 곳이지만 북적이는 사람들과 남이 해준 맛있는 음식, 무엇보다 오랜만에 맛보는 술이 몸에 스며드는 감각이다.
“정말이지. 술 좀 적당히 먹어요.”
남편은 자신의 만류에도 그저 신난 어린애마냥 사람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는 모습이 오늘 아주 날 잡은 것 같다. 이런 날은 반드시 마지막까지 남는 게 그이다. 남편을 따라다니며 한 잔, 한 잔 들어간 술은 이미 허용치를 넘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일렁이는 캠프파이어가 더욱 크게 보인다.
‘취한 건가?’
평소 운동을 안 한 탓도 있지만, 모처럼의 외출이니 예쁘게 꾸민다고 익숙지 않은 하이힐까지 신고 있으니 발에 피로가 더욱 누적된 느낌이다. 살짝 풀린 초점 때문일까? 남편과 펜션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펜션 사장이 자신을 부축하기 시작한다.
‘으응? 뭐지?’
남자치곤 작은 키지만 바깥일을 많이 하는지, 건강한 구릿빛 피부에 속이 꽉 찬 근육을 자랑하는 팔로 자신의 허리를 감싼다. 낯선 남자의 땀 냄새와 손길에 경계심을 품었지만, 자신의 허리를 두른 굳건한 팔을 풀 자신도 없어서 그대로 그가 부축하고 이끄는 데로 발걸음을 옮겼다.
귓가를 울리던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나 웃음소리를 멀리하고, 따스했던 캠프파이어의 불빛까지 닿지 않는 어두컴컴한 산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간다. 멍한 의식 속에서도 의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그 가느다란 실을 꽉 붙잡아 본다. 몇몇 오두막집을 지나 조금 더 적막하고 한적한 산길을 따라 올라갈 무렵 낯선 남자는 다 와간다는 말로 자신을 안심시킨다. 김수진을 부축하고 있는 최 사장은 펜션 앞마당 벌어지고 있는 회식자리와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됐다고 생각하자 김수진을 부축하고 있는 팔에 더욱 힘을 줘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긴다.
‘햐~향기 좋네.’
최 사장의 코에는 가장 먼저 여성용 화장품의 향기와 더불어 그 속에 은은하게 피어나는 그녀 특유의 살내음에 노골적으로 코를 벌렁거린다. 인사불성이긴 해도 무의식적으로 경계를 하는지,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그녀의 초점 잃은 눈동자를 곁눈질로 훔쳐보며 의식의 끈이 끊기는 순간순간을 노려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자신의 팔로 그녀의 젖가슴 아랫부분을 건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