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느 집이나 아침 풍경은 비슷하다. 바쁜 일상에 치이는 직장인들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맞벌이가 대부분인 젊은 부부들은 아침을 간단히 먹고 각자 회사로 출근할 준비를 한다.
“이놈의 월요일은 왜 자꾸 찾아오는지.”
“후훗! 월요일이 찾아오고 싶어서 찾아오겠어? 너무 뭐라 하지 마.”
남편 안정수는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현관 앞에서 구두를 신으며 투덜대자 그 뒤에서 아내 정나은은 그런 남편을 달랜다.
두 부부 모두 깔끔함이 묻어나는 정장을 입고 있는데, 아직 아내는 준비가 덜 된 것인지 겉옷 상의만 입지 않은 모습이다. 부부는 닮는다고 했던가?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에 지적이고, 신뢰감이 묻어나는 분위기를 풍긴다.
“그럼 먼저 갈게. 저녁에 봐.”
안정수는 오늘 늦게 출근하는 아내를 향해 아침인사를 건넨다. 정나은은 그런 남편에게 잘 다녀오라고 배웅을 하며 미소를 짓는다. 안정수는 아내가 미소 짓자 주위에 꽃이 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며 자신에겐 과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아내의 아름다운 외모를 찬찬히 뜯어본다.
‘요새 욕구 불만인가?’
30대 초반인 아내는 지적이면서도, 20대의 싱그러움과 유부녀로써의 농익은 색기를 조금씩 풍겨대니 남편으로써도 밤마다 고역이다. 자신처럼 돌아다니는 일이 많은 아내는 햇빛을 많이 받아, 건강미 넘치는 피부에 자그마한 콧방울 위에는 가벼운 반무테 안경이 올라가 있어 지적인 이미지를 물씬 풍기며, 선 분홍빛 입술은 윤기가 돈다.
풀면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는 직장인답게 깔끔하게 틀어 올려 고정시켰으며, 유부녀가 되며 더욱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가슴을 감싼 하얀색 와이셔츠는 그녀에게 청순한 이미지를 부여해준다. 잘 발달된 골반과 무릎까지 덮은 검은 정장 치마는 그녀의 매력적인 엉덩이 볼륨을 감출 생각이 없는지 치마 위로 보이는 엉덩이 라인은 남편이 봐도 침이 넘어간다. 무엇보다 직장인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검은 스타킹은 그녀의 매끄러우면서도 속이 꽉 찬 그녀의 다리를 감싸고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 반짝 빛을 내고 있다.
정장 위로도 확연히 알 수 있는 부풀어 오른 가슴이나 엉덩이 라인을 보며 침을 질질 흘릴 남자 사원들을 생각하면 콧대가 높아지지만, 외식자리만 있다고 하면 걱정이 앞서는 건 미인 아내를 둔 남편의 숙명인가 보다.
“뭘 그렇게 아침부터 징그러운 눈으로 봐?”
그녀 스스로는 똑 부러지고 일 잘하는 사회인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은근히 지기 싫어하는 성격도 있어 눈매가 살짝 고양이처럼 올라갈 때가 있다. 지기 싫어하는 그녀답게 여자로써 음흉한 눈길이 기분 나쁘지 않다는 뜻이다. 살을 맞대고 사는 자신만이 아는 비밀이다.
“응? 아니. 예뻐서.”
“뭐야? 용돈 필요해?”
두 부부의 아침풍경은 깨가 쏟아진다. 그렇게 남편이 나가자 정나은도 슬슬 출근 준비를 하며,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영업일을 하는 두 부부는 서로 회사는 다르지만, 남편은 좀 빡빡하고, 자신은 집안일과 겸할 수 있는 좀 느슨한 회사를 다니다보니 출근시간도 이렇게 차이가 난다.
“……우후훗. 오늘 밤 오랜만에 분위기 좀 잡아볼까?”
아침에 자신에게 향한 남편의 음흉한 눈초리도 마냥 싫진 않다. 오늘은 오랜만에 두 부부가 레스토랑에서 외식하기로 한 날이다. 맞벌이 부부가 그렇듯 외식이 많긴 해도 오늘처럼 날 잡고 나가는 날은 기분이 좋다. 결혼한 지 3년 차인 그들은 슬슬 아이를 가져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안정수는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꼬이기 시작한 일과에 머리를 싸맨다.
“하필 오늘에 한해서…….”
오늘 오전에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그 회의 자료를 집에 두고 온 걸 회사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지만 자신이 갔다가 오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게다가 도착하자마자 들려온 비보는 자신이 담당한 계약에서 사소한 의견 충돌이 있어 그걸 조정하려면 오늘은 일찍 퇴근하기엔 그른 것 같다.
‘계약자에게 오며 가는 시간만 해도 오늘 다 잡아먹겠군.’
오전엔 회의 때문에 외근을 못 간다. 그렇다면 오후부터 움직여야 하는데, 아무리 빨리 처리해도 이미 늦은 저녁일 것이다. 안정수는 깊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직 출근 안 했을 아내에게 전화한다.
“……그렇게 됐어. 미안해.”
“하여간……가져다주는 건 상관없는데, 하필 오늘 저녁이야.”
정나은은 남편의 전화를 받고, 좋았던 기분이 싹 날아가는 걸 느낀다. 방금 전까지 기분 좋아서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까지 흔들던 걸 멈추고 짜증을 내보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영업일에서 사람 상대하는 게 얼마나 지랄 같은지 나도 아니깐.’
남편은 모르겠지만 자신의 몸을 노리고 다가오는 계약자도 상당히 많았다. 그렇기에 그 진상들을 떠올리면 치가 떨리는 건 뼈저리게 알기에 기쁜 마음으로 승낙하고 남편의 회사로 출발한다.
안정수는 다행히 이해해준 아내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며 전화를 끊는다. 그와 동시에 걸쭉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사무실에 들어오는 남자가 보인다.
“좋은 아침~”
김우영 부장. 이번에 새로 우리 부서로 발령 온 남자다. 문제라면 그는 상당히 무능하다. 어떻게 부장의 자리까지 올랐는지 궁금할 정도로 보고서조차 작성을 못하는 그의 무능력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 졌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인맥이 폭넓고 깊단 말이야. 외모? 언변?’
영업에서 중요하다고 하면 중요한 인맥. 그가 가진 인맥은 장난이 아니어서 일까? 덥석, 덥석 한 번씩 우리로는 꿈도 꾸지 못 할 건수를 물어오는 기묘한 행보에 저 자리까지 올라 온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는 40대 중반에 들어섰다. 빼어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며, 나이 탓인지 슬슬 아랫배까지 튀어나온 전형적인 상사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뛰어난 언변으로 사람을 구워삶느냐 하면 그것도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진다.
‘아 물론 술자리에서 여직원들에게 추근대는 거나 저질농담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나지만.’
발령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그의 술자리 스타일은 모두가 몇 번 가지지 않았음에도 혀를 찬다. 얼마나 여직원들에게 노골적으로 추근대는지, 저러다 잡혀가는 게 아닐까란 걱정이 들 정도로 적극적이다. 그러면서도 입만 열었다하면 튀어나오는 저질 농담은 기상천외할 정도다. 회사에서 보는 그의 어리숙한 이미지가 거짓말일 정도로 유창한 언변을 자랑한다.
‘역시 술자리에서 다 구워삶나?’
술자리를 좋아하는 만큼 계약자들도 술자리에서 대부분 만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는 저렇게 출근해도, 회의에도 참석도 않고 하루 종일 빈둥빈둥 거리며 여직원들과 놀려고만 하니 아주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도 계약은 확실하게 잘 물어오니, 쳐내기도 그렇고 안 쳐내기도 애매모호한 그런 계륵 같은 존재가 김우영 부장이다.
“후~내 코가 석자지.”
그래도 상사는 상사다. 직원들과 상사들이 서로를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사는 것도 한계가 있듯 계급이 깡패다. 부장의 자리까지 올라간 무능한 저 남자를 정말 무능한 취급해야 할지, 능력이 뛰어나다 해야 할 지……안정수는 아내가 가져다 줄 회의 자료를 생각하며 서둘러 회의 준비에 들어갔다.
정나은은 남편의 회사에 들어섰다. 회사에는 바로 외근 나간다고 전화했기에 출근할 필요가 없다.
‘이럴 땐 우리 회사가 참 편해.’
하는 만큼 가져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출근을 안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기본 월급이 지급되는 있는 이상 받는 만큼은 일을 해야 하지만.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남편이 기다리고 있을 영업부 사무실로 향한다. 회의가 정확히 몇 시부터라곤 못들은 그녀는 최대한 빨리 왔지만 사실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안정수는 미리 회의실에 들어서서 회의준비를 하고 있느라 아내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응? 아무도 없나?”
사원들은 회의 때문에 전부 회의실로 출발했기에 남편의 사무실은 텅텅 비어있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스마트 폰을 꺼내드는데 걸쭉한 목소리가 자신의 귀를 사로잡는다.
“누구신지요?”
바로 회의에도 참석 안하고 사무실에서 빈둥거리고 있던 김우영 부장이었다. 정나은은 그의 의아해하는 얼굴에 스마트 폰을 잠시 손에 든 채 인사를 한다.
“아, 안정수 사원의 아내 정나은이라 합니다. 회의 자료를 빼놓고 가서 전해주러 왔는데……사무실에 아무도 없고, 남편도 모습이 안 보여서…….”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 폰을 보여주며 연락하려고 했던 참이라고 알려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영업 하는 사람의 버릇이 나온 것이다. 언제나 미소. 짜증나도 미소. 불쾌해도 미소. 곧 죽일 놈이라도 미소!
청순하고 지적으로만 보이던 정나은의 얼굴 주위로 화사하게 꽃이 핀다. 영업 사원의 첫 번째는 좋은 인상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오랜 영업 일을 하며 만든 필살 미소는 상당히 호감을 주며, 침 넘어가는 몸매까지 더해지면 남자라면 이야기 정도는 들어준다.
“아하! 안정수 사원은 지금 회의하러 갔을 텐데. 제가 전해주죠.”
그러면서 김우영 부장은 정나은의 손에서 회의 자료를 건네받으며 재빠르게 그녀의 몸매를 시선으로 훑는다. 정나은은 그런 시선을 한, 두 번 받은 게 아닌지라 이제는 담담해진 그녀는 이름도 모를 남자에게 끝까지 호감어린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고하…….”
“아, 혹시 모르니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예?”
자신의 말을 뚝 끊고 잠시 기다려 달라는 김우영 부장의 말에 일그러질 뻔 한 미소에 힘을 주며 되묻는다.
“아하하! 혹시 빼놓은 게 있을 지도 모르니 가서 확인 받고 오겠습니다. 오늘 하는 회의는 그가 꽤나 공들인 회의인 것 같더군요. 망칠 순 없지 않습니까?”
“아, 그럼 잠시 기다리죠.”
자신이 굳이 기다릴 필요까진 없어 보이지만 남편이 꽤 공들였다는 소리에 잠시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김우영 부장이 권해준 자리에 잠시 앉아 기다린다.
‘뭐 저 남자의 속셈은 눈에 훤하지만.’
잠시 자신의 몸을 훑고 지나간 그 징그러운 시선에 그의 생각이 짐작 간다. 아마 이야기나 좀 나누자고 붙잡아 둘 것이다. 이 남자가 남편과는 어떤 관계인지는 몰라도 어떤 사람이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게 사회다. 남편의 직장 동료라면 안면정도는 나쁘지 않다.
“그럼 다녀오도록 하죠. 아 이름도 말씀 안 드렸군요? 전 영업부 부장 김우영이라 합니다.”
“아, 부장님이셨군요. 오호호~새로 오셨나 보네요?”
“예. 얼마 안 됐지요. 그럼 커피라도 드시면서 잠시 기다려주시길…….”
정나은은 아니 꼬아도 영업용 미소를 짓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커피를 마시며 회의실로 사라지는 김우영 부장을 보며 시간을 죽인다.
“부장님?”
안정수는 아내의 전화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건만 정작 회의 자료는 부장이 가져다주자 놀란다.
“아아~신경 쓰지 말게. 아내분이 와서 이걸 전해주기에 건네 주러만 온 것이니.”
“아 감사합니다.”
“그럼 난 이만 가보지. 회의들 열심히 하게나. 아 오늘은 외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울 테니 일들 보게나.”
김우영 부장은 그렇게 말하곤 회의실 밖으로 사라진다. 안정수는 부장이 가져다 준 자료로 황급히 회의 준비를 끝마치고 회의를 시작한다.
‘이따 고맙다는 전화라도 해야겠네.’
사실 얼굴보고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하려고 했던 안정수지만 아내도 직장인이다. 서로 바쁜 몸이니 날짜가 바뀌어야 얼굴 볼 때도 있는 만큼 전화로 고마움을 표할 때도 많다. 회의를 진행하면서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뿌리치고 회의에 집중한다.
회의를 끝마치고 노곤함에 커피를 뽑아 잠시 휴식을 취하러 나왔다. 예상보다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바람에 회의시간이 길어져 오전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담배를 태운다. 담배를 다 피우고 텁텁한 입안을 커피 향기로 바꾸며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사람 만나나보네. 안 받네.”
영업하는 사람인지라 연락도 굉장히 중요하기에 전화 연결이 안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있는 경우는 상당히 중요한 사람을 만나고 있는 도중이 대부분이다. 영업을 뛰는 사람으로서 그 마음 모를 리 없는지라 계속되는 연결음에 전화를 포기하고 문자를 넣는다.
-오늘 고생했어. 괜히 바쁜 사람 회사까지 불러내고 미안해. 덕분에 회의는 잘 끝났어. 아까 말 한데로 오늘 늦을 것 같아. 기다리지 말고 자. 저녁에 봐.
간단하게 문자를 입력하고, 커피를 마시며 찌뿌둥한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후에 외근 나갈 땐 우산을 챙겨야 하나 걱정하며 일하러 들어갔다.
정오가 다되어가는 무렵, 해는 중천에 떠올라 그 강렬한 햇빛을 쏟아 부어야 하지만 오늘따라 하늘이 비라도 오려는지 찌뿌둥하게 구름이 껴 햇살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안정수와 정나은 부부의 집에도 아침과 달리 햇살이 하나도 스며들지 않아 아침과 달리 짙은 음영이 드리워있다.
특히나 두 부부 모두가 집을 비우는 만큼 낮에도 커튼을 치고, 문단속을 철저히 하기 때문에 환기도 안 되고, 다른 집보다 더욱 음침하다. 시끌벅적하고 깨가 쏟아지던 아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삐리리리리~삐리리리리~
집에 전화라도 온 것인지, 경쾌한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전화벨 소리는 반쯤 열린 부부의 침실에서 들려오고 있었으며 아침에 나갈 때 정나은은 집 정리를 하다 만 것인지, 현관부터 옷가지가 떨어져 난잡하게 침실 쪽으로 이어져 있고, 아무도 없어야 할 부부의 침실에선 경쾌한 전화벨 말고도 다른 소리가 섞여있다.
삐걱, 삐걱대는 소리와 끈적한 물소리, 둔기로 뭔가를 치고 있는지 찰지면서 육중한 소리가 지속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무언가 억눌린 가느다란 목소리도 들려오지만 경쾌한 전화벨 소리가 가장 커 곧 묻혀버리고 만다.
검은 정장 치마 주머니 속에서 반 이상 빠져나와 바닥에 내팽겨 쳐져 있는 스마트폰에선 계속해서 전화벨을 토해낸다. 시끄럽게 울려대던 벨소리는 곧 끊어지고, 문자가 한 통 도착한다. 화면에 뜬 메시지 내용은 잠금이 되어 있어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수신인은 알 수 있다.
-덜렁이.
덜렁이라 쓰여 있는 수신인의 메시지는 그렇게 화면에 떠 있다가 스마트 폰의 배터리 절약 기능으로 잠시 뒤 화면이 어두워진다. 화면이 어두워지자 스마트 폰 화면에 부착되어있는 액정 보호 겸 거울의 기능도 해주는 필름에 의해 어두운 방안이 조금이지만 반사되어 보이기 시작한다.
스마트 폰 화면에 반사된 침실 풍경은 아주 단편적이다.
침대 시트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으며, 침대 기둥은 끼익, 끼익 계속해서 어떤 진동을 견뎌내느라 힘들어 보인다. 그것 말고도 스마트 폰 화면 구석에는 지저분한 남성의 엉덩이가 지속적으로 오르내리고 있었으며, 이따금 여성으로 보이는 검은 스타킹에 감싸인 자그마한 발이 버둥대는 모습이 잠깐씩 비춰졌다.
김우영 부장은 회의실로 향하며 방금 전에 본 안정수 사원의 아내를 떠올린다. 서서히 무르익는 그녀의 여체를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침이 넘어간다.
‘이것 참 이번에도 사고 치면 안 되는데.’
사실 이번에 새로 이 부서로 발령 받은 이유가 전 부서에서 워낙 여직원들에게 추근대서 항의도 많이 들어왔지만 사원의 아내와 바람피우는 걸 들키는 바람에 인사발령이 난 것이다. 그것도 가는 곳마다 그런 사건이 터지니 회사 입장에선 해고할 만한데도 그를 데리고 있는 이유는 그가 물어오는 계약은 규모도 그렇지만 건수도 상당하다.
회사에서도 더 이상 사고치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며 보낸 곳이 이곳이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지라 하루아침에 고쳐질 리 없다. 게다가 그의 술자리 스킬과 성적인 농담으로 사로잡는 고객들이 한, 둘이 아니니 어떤 의미로는 그만두려야 그만 둘 수 없는 생계수단이다.
“아 저기 있군.”
안정수 사원에게 회의 자료를 넘겨주자, 살짝 의아해하는 눈치지만 곧 회의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며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외근 나간다고 해놨으니 안정수 사원 아내와 어디 놀러 라도 갈까?’
하지만 그녀가 정장을 입고 있는 걸 봐선 직장인일 확률이 높으니 오늘은 꽝이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부서로 돌아가는 길에 회의실로 향하던 같은 부서 직원과 마주쳤다. 부장이 회의에도 참가 안하고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모습에도 시선 한 번 던지지 않으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며 회의실로 들어가는데 그들의 이야기에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오호? 안정수 사원이 따낸 계약에서 의견충돌이?’
최근 그가 따낸 계약이 상당히 큰 건수다. 아마 중요한 계약인 만큼 사소한 의견 충돌에도 직접 찾아가 서로 이야기를 맞추고 하려면 오늘 필시 야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안정수 사원의 아내가 기다리고 있을 부서로 돌아온다.
“허허……이것 참.”
커피를 마시며 다소곳하게 앉아 기다리고 있는 정나은의 모습을 보니 회사에서 사고치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것이 엊그제 같지만 아랫도리로 피가 쏠리는 건 막기 힘들다. 막 피어난 꽃처럼 싱그러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서히 벌레를 유혹하는 진한 향기를 잔뜩 머금은 유부녀의 자태는 참으로 아름답다.
김우영 부장은 턱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고민한다.
‘확 자빠트려?’
김우영 부장의 고객은 남자보단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남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대부분의 남자도 아내의 입김에 계약을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상했겠지만, 그 남자 계약자의 아내는 전부 김우영 부장의 배아래 깔렸던 여자들이다.
계약으로도 이어지지 않는 사원의 아내를 배아래 깔아뭉개는 건 순수하게 그의 쾌락을 채워주는 도구이며, 그에게 있어선 다른 의미로 가장 공들이는 행위다.
‘계약자는 일 때문에, 이런 여자는 내 욕구를 채워주니깐.’
일 때문에 맺는 관계와 자신이 원해서 맺는 관계는 쾌락의 정도가 당연히 틀리다. 이런저런 음흉한 고민을 하며 정나은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먼저 눈치 채고 말을 걸어온다.
“아, 남편은 뭐라 하나요?”
정나은은 자신을 발견하자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정작 정나은은 영업용 미소를 지은 것뿐이지만, 김우영 부장은 한순간 확 꽃이 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며 음흉한 마음에 더욱 불이 거세게 타오르며 확 자빠트리기로 결정했다.
‘이런 년을 보고도 그냥 넘어가면 내가 아니지.’
자고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남이 먹던 음식이고, 남의 떡이다.
정나은은 고된 사회생활을 하며 갈고 닦은 자신의 무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일을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남편의 체면을 생각해 싱글싱글 웃어줄 뿐이다.
“허허……이것 참 말씀드리기 곤란하군요.”
김우영 부장은 이런 짓이 한 두 번이 아닌 만큼 자연스럽게 잠시 시간을 끌며 머리를 최고속도로 회전시킨다. 곤란해 하는 김우영 부장의 모습에 정나은은 남편이 분명 또 뭔가를 빼먹은 게 분명하다고 속으로 터져 나오려는 열불에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오호? 이놈의 덜렁이가 또 뭔가를 빼먹었다 이거지? 나중에 들어와 봐 아주 죽었어.’
차마 남편의 직장 그것도 부장 앞인지라 필사적으로 표정관리를 해보지만 부장의 입에서 터져 나올 이야기만 생각하면 솟구치는 열불 때문에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주체 하느라 죽을 맛이다. 하지만 정작 김우영 부장은 그런 정나은의 모습을 못보고 고민을 거듭하던 도중 회의실로 들어가던 부서 직원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안정수 사원이 오늘 오후에 만나 봐야 할 계약자에게 보여줄 자료를 그만 깜빡 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전해준 자료가 전부가 아니었나요?”
영업일이다 보니 집에서도 가끔 확인 받아야 할 때가 있는 만큼 자료를 집에 가져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신이 빼먹은 것 같진 않지만 확실히 전화 통화할 때 오늘 계약에 문제가 생겨서 야근해야 한다고 언질을 받은지라 알고 있는 눈치를 준다. 김우영은 정나은이 아는 것 같은 눈치를 보이자 속으로 씩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차피 전 이대로 외근 나가야 하기에 제가 가져다준다고 했죠. 그러자 집 주소하고 현관문 키를 주려고 하기에 아내분이 아직 기다리고 있으니 함께 다녀오겠다고 말했더니 아내도 직장인이라 무리일 것 같다며…….”
김우영은 절묘한 부분에서 말을 끊으며 능숙하게 대처한다. 아마 이 뒤에 이어질 이야기는 정나은도 쉽게 예상이 갈 것이다. 아내를 고생시키기 싫어 부장에게 집 주소와 키를 넘기는 부하직원이 자기 남편이라고 생각하면 얼이 빠질 거다.
“그, 그런가요? 오호호호~이것 참 오늘 안 바쁘다고 그렇게 말 했는데. 부장님 손을 번거롭게 할 필요도 없어요. 걱정 마시고 제가…….”
아니나 다를까? 사회생활 오래해본 그녀답게 바로 눈치 챘지만, 갈고 닦은 그녀의 미소마저도 이런 상황에선 도저히 웃을 수 없는지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곤란한 표정으로 웃는다. 아마 속으로는 눈치 없는 남편을 어떻게 잡아먹어야 할이지 고민하고 있을 아내의 모습에 김우영은 거의 다 먹혀들어간다고 속으로 웃으며 치고 들어간다.
“아닙니다. 정말로 외근 나가는 길인데, 잠시 들르는 것엔 지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내 분께서도 사회생활로 바쁘실 것 같은데……그러면 이렇게 하죠? 함께 집에 가서 자료만 가지고 가도록하죠. 그렇게 되면 아내 분께서는 여기 다시 올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전 아무도 없는 부하직원 집에 들어갈 일도 없죠.”
묘하게 비효율적이기 그지없는 김우영의 제안에 정나은은 의아해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확실히 자신이 다시 여기 올 시간은 줄일 수 있고, 이렇게까지 한사코 문제없다고 말하는 부장의 모습에 계속해서 부정하며 입씨름 할 자신도 없다. 직장 상사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는 게 한국 사회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오늘 들어만 와봐! 아주 그냥 확! 어휴 진짜 못 살아!’
당장이라도 불을 뿜어낼 것처럼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에 김우영은 속으로 남편 욕 엄청 하고 있을 정나은의 속마음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걱정 말라고. 잠시 뒤면 남편 바가지 긁을 생각조차 안 들 테니.’
김우영은 앞장서서 걸어가는 정나은의 뒤태를 훔쳐본다. 잘 벌어진 골반과 정장 치마 위로 탐스럽게 올라온 엉덩이 라인, 그 아래로 시원하게 뻗어있는 다리는 검은 스타킹에 감싸여 매끄러운 라인을 뽐내고 있다. 또각, 또각 울리는 하이힐 소리를 들으며 정나은의 뒤를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정나은이 타고 온 차를 타고 함께 이동하고 있다. 김우영은 차를 안 끌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자 정나은이 굉장히 의심하는 눈치였지만 어쩔 도리가 있나? 이미 함께 움직이기로 결정한 마당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
매끄럽게 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는 묘한 정적이 흐른다. 이런 경우 운전대를 잡는 건 남자지만 정나은의 차이며, 상대가 남편의 상사라는 점까지 작용해 그냥 자신이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초행길인 김우영 부장보단 자신이 훨씬 빨리 갈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합쳐졌기에 운전대를 잡았건만…….
‘아~진짜 남편의 상사라지만 정말 노골적이네.’
조수석에 탄 김우영 부장의 음흉한 눈은 자신의 몸매를 위, 아래로 쉬지 않고 훑고 있다. 처음에는 곁눈질을 하며 시선을 숨기려고 하는 듯싶더니, 곧이어 숨길 생각도 않고 노골적으로 자신의 몸을 훑는 그 모습에 치가 떨리지만 꾹 참는다.
‘크크큭. 노골적으로 몸매를 훑어대니 아주 곤혹스런 모양이네.’
이 와중에도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 정나은의 직업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남편을 곤란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단단히 마음먹은 것 같다.
‘신경 쓰지 말자. 이런 시선은 얼마든지 받아봤으니깐.’
남자 고객이라면 대부분이 이런 시선을 보낸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보내는 고객은 거의 없지만, 아까같이 눈치 없는 남편 때문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보단 낫다고 생각하며 신경 끄고 운전에 신경 쓴다.
‘흥! 그런 시선 한 두 번 받아보는 줄 아나? 이래봬도 몸매에는 자신 있다 이거야.’
지기 싫어하는 그녀답게 또래 여성들에게 몸매로 밀리는 걸 용납 못하는 그녀는 몸매에도 상당히 신경 쓰는 편이다. 이런 시선은 오히려 자신에 대한 칭찬으로 여기며 기분이 살짝 좋아져 눈매가 고양이처럼 조금 올라간다.
‘눈매가 살짝 올라가네?’
김우영은 작은 그녀의 변화에도 눈을 떼지 않고 잘 기억해두며 계속해서 음흉한 시선을 던진다.
이런 시선을 던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은연중에 자신이 남편의 상사이며,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란 걸 인식시켜주기 위함과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보기 위해서다.
사회생활을 오래한 여성들은 이런 시선을 보내면 대부분 견적이 나오는데, 하나는 노골적으로 불편해하며 쏴붙이는 여성. 다른 하나는 괜히 건수 잡히기 싫어 참아보는 여성.
‘남편의 상사인 것도 한 몫 해서 인지 이번엔 후자군.’
참으면서도 이 와중에도 미소를 절대 무너뜨리지 않는 걸 봐선 능력 있고, 자존심이 강한 여성이다. 잘못 건들면 노골적으로 쏴붙이는 여성보다 더 위험하다.
‘어쩔 수 없지. 오늘 날 잡아야겠어.’
검은 정장 아래로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가슴을 내려다보며 어떤 속옷을 입고 있을지 상상하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자 드넓게 펼쳐진 하늘에선 조금씩 먹구름이 모여들며 음영이 조금씩 드리워지기 시작한 두 사람의 보금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정나은이 문을 열고 먼저 들어선다. 김우영은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가며 조용히 현관문에 잠금장치를 건다. 철컥하는 현관문의 잠금장치 소리가 울려 퍼지지만, 정나은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자료가 있을 방으로 걸음을 옮긴다.
“자료가 어떤 이름으로 되어 있는지 아시나요?”
“아, 분명히…….”
김우영은 대충 둘러대며 책상 위 어질러진 자료를 뒤지기 시작하는 정나은의 뒤태를 바라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일정을 물어본다.
“이거 죄송합니다. 아내 분께서도 출근하셔야 할 텐데. 시간 괜찮으신가요?”
“오호호~신경 쓰지 마세요. 저희 회사는 느슨한 편이라 오늘은 바로 외근 나간다고 보고 했으니, 출근 안하고 고객들 만나러 가면 되요.”
“그러시군요.”
자연스럽게 오늘 하루 그녀의 스케줄을 확인한 김우영은 가방 속에서 작업용 젤 하나를 꺼낸다. 술기운도 없이 자존심 강하고, 능력 있는 사회여성을 잡아먹고도 뒤탈이 없으려면 철저하게 해야 한다.
‘약점을 잡거나, 아주 쾌락에 푹 적셔야지.’
약점을 잡는 것도 재미있지만, 상대는 유부녀다. 한 번 맛 본 극상의 쾌락이란 건 좀처럼 잊혀 지지 않는다. 괜히 성욕이 3대 욕구가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맛보면 더욱 맛있는 음식을 찾듯 쾌락도 마찬가지다.
유부녀란 건 어느 정도 성욕과 쾌락의 맛을 알고 있기에, 이 맛이 얼마나 강하고, 극상의 맛인지 더욱 잘 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 날 잡고 쾌락으로 버무려 주지.’
약점을 잡는다는 풍류를 모르는 짓보단, 쾌락에 몸부림칠 유부녀의 자태를 상상하며, 무방비한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그 자료가 있긴 한가요?”
정나은은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다시 한 번 되물으며 서류더미를 다시 한 번 뒤진다. 등 뒤에서 느껴지던 인기척이 확 다가오자 정나은은 화들짝 놀란다. 밀착하듯 곁에 선 김우영 부장의 행동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살짝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이정도로 곤혹스러워하니 알아서 떨어져 나가겠지?’
짜증이 확 솟구쳐 오르지만 최대한 억누르며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보여준다. 김우영은 그런 정나은의 최대한의 항의를 받아들였는지 미소 짓는다.
“허허 부인께서 찾고 계신 자료가 있을 리 없죠.”
“……무슨 뜻이죠?”
장난이라면 도가 지나쳤다. 정나은은 더 이상 영업용 미소로 답해줄 의향이 싹 사라졌는지 차가운 얼굴로 곁에 달라붙은 김우영을 떼어내려는 순간 소름끼치는 감각에 온 몸이 굳었다. 치마 위로 거친 손길이 엉덩이를 주무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뜻이지? 어때?”
정나은은 온 몸에 돌고 있던 피가 차갑게 식는 착각이 든다. 너무 열 받으면 오히려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냉정해진다는 게 이런 뜻인가 보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거친 손길을 탁 쳐내며 김우영 부장을 밀쳐낸다.
“어이쿠~거참 까칠하시네?”
김우영은 잠시였지만 옷 위로도 느껴진 그 탄력적인 엉덩이 감촉을 떠올리며 조롱어린 시선을 던진다.
“미안하지만 당신이 신경 쓸 정도로 내 남편이 무능력 한 것도 아니고, 나 역시 그렇게 싼 여자 아니거든?”
정나은은 자신이 그렇게 싼 여자로 보였다는 것에 자존심이 확 상하며 눈매가 고양이처럼 올라가며 사나워진다. 김우영은 또 다시 눈매가 올라가는 걸 보고 그녀의 버릇을 대충이지만 눈치 챘다.
‘자존심이 강한 여자답게 자존심이 상했을 때나 남들과 비교해서 우쭐할 때 눈매가 올라가는군?’
마치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한 것처럼 음흉하게 미소 짓는 그의 모습이 짜증난다.
“당장 나가요!”
정나은은 이런 남자를 두 부부의 소중한 보금자리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다. 날카롭게 소리치며 현관을 가리키는 그녀의 모습에도 김우영은 미동도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빤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우영과 눈싸움을 한다.
오싹!
“…….”
정나은은 김우영과 눈싸움을 하는 도중 갑작스레 소름이 등골을 타고 달리는 걸 느낀다. 여자로써의 직감일까? 아니면 노골적으로 질척질척한 욕망이 묻어나는 그의 음흉한 시선 때문일까?
아니다. 그저 방 안을 서서히 채우는 이상한 분위기가 자신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뭔가 잘못됐어.’
입안이 바짝 마르는 걸 느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켜 봐도 거칠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은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 그렇게 숨 막히는 정적이 방 안을 서서히 채워갈 무렵 이변은 단 번에 일어났다.
정나은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방에서 뛰쳐나갔다. 방밖으로 뛰쳐나온 정나은은 갑자기 시야가 빙글 도는 걸 느끼며 바닥에 쓰러진다.
우당탕탕!
갑자기 등 뒤에서 느껴진 강한 잡아당기는 힘 때문에 넘어진 것이다. 정장 상의에서 느껴지는 당기는 힘에 자신의 상의를 김우영이 붙잡아 잡아당겼다는 걸 알 수 있다.
“큭!”
넘어지면서 부딪힌 다리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새어나오는 목소리를 억누르고, 정나은은 재빨리 정장 상의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벗어버린다. 상의를 벗어버리자 발목을 잡고 있던 당기는 힘이 사라지는 걸 느끼며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서 현관문을 향해 달린다.
철컥!
“어?!”
자신의 집임에도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잠겨있는 걸 깨닫지 못하고 당황한 정나은의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또 다시 찾아온 부유감을 느낀다.
후두둑!
“꺄악!”
하얀색 와이셔츠는 등 뒤에서 당기는 강한 힘에 단추가 뜯겨 날아가며 브래지어를 가리기 위해 와이셔츠 아래 덧입은 얇은 민소매 티가 드러난다. 그녀의 애처로운 비명과 함께 폭하고 누군가의 품에 안긴 감각에 정나은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이이익!”
자신의 몸을 그 두터운 팔로 끌어안기 직전 그녀는 귀여운 기합을 내지르며 김우영의 품에서 뛰쳐나갔다. 그 과정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와이셔츠의 단추를 스스로 뜯어내고 도망갈 정도로 절박함이 묻어나던 그녀의 도주는 무의식적으로 부부의 침실로 향했다.
집이라는 건 보금자리 외에도 안전한 곳이라는 인식이 남아있다. 또한 집 안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곳은 자신이 잠드는 곳이다. 현관이 막힌 이상 가장 안전한 곳이라 여긴 침실 쪽으로 무의식적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김우영은 손에 쥔 다 뜯긴 와이셔츠를 바닥에 던지고 그녀를 따라 침실로 따라 들어간다. 현관에서부터 이어진 그녀의 허물은 침실 쪽으로 이어져있고, 김우영의 침입을 저지하지 못한 부부의 침실에선 우당탕탕 하는 거친 소음이 터져 나온다.
“놔! 놓으라고!”
정나은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반쯤 열린 부부의 침실에선 그녀가 입고 있던 정장 치마가 바닥에 내팽겨 쳐지며 그 안에 있던 스마트 폰이 그 충격으로 튕겨져 나오는 게 보인다. 곧이어 김우영이 입고 있던 정장도 바닥에 한 꺼풀씩 던져지더니 곧이어 무언가 찢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 잠깐! 안 돼! 놔! 이 빌어……우우우웁!”
절박함이 묻어나는 정나은의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지더니 곧이어 억눌린 그녀의 신음소리와 함께 퍽 하는 강렬하면서도 찰진 소리가 은은하게 퍼진다.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르던 부부의 침실에선 억눌리고 가느다란 목소리와 함께 삐걱거리는 침대의 비명과 질척하면서도 찰진 육중한 소리가 지속적으로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삐리리리리~삐리리리리~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정나은의 스마트 폰에선 경쾌하기까지 한 벨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 경쾌한 벨소리는 정나은에게 한 번 더 발버둥 칠 힘을 불어넣어주지만 마음과 달리 그녀가 자유롭게 버둥댈 수 있는 건 검은 스타킹에 감싸인 자신의 두 다리 뿐이었다.
육중한 중년남성의 배아래 깔려 버둥대던 한 떨기 꽃은 벨소리가 끊기고 메시지가 오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뭐, 뭐야? 왜 이러지?’
자신의 배위에 올라탄 채 짐승처럼 더러운 숨결을 내뱉으며 욕정을 풀고 있는 김우영과 억지로 범해지고 있는 이 특수한 상황 때문일까? 그가 허리를 내려찍으며 자신을 잡아먹을 듯 짓누를 때마다 자신의 중심부를 꿰뚫는 욕망의 덩어리를 그 어떤 때보다 강렬하고 세세하게 느낀다.
“우웁! 으읍!”
자신의 우악스런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있어 괴로운 신음소리도 만족스럽게 내뱉지 못하는 정나은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유부녀의 육체를 마음껏 탐닉한다. 고양이처럼 날카롭던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떨리기 시작하는 걸 보니 젤에 함유된 약효가 들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설마 젤이 최음 효과가 있는 녀석이라곤 몰랐겠지.’
영문도 모른 채 점점 민감해진 자신의 음부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는 정나은의 눈빛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허리를 튕긴다. 강제로 범하면서 절정에 오를 여인은 없다. 하지만 약에 기운을 빌린다면 못 오를 것도 없다.
‘다만 약의 기운이란 것도 모르고 억지로 범해지면서 서서히 달아오르는 자신이 원망스럽겠지.’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두 과실을 감싸던 새하얀 브래지어는 가슴 위까지 끌어올려진 채 속옷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자신의 힘에 따라 위, 아래로 출렁이는 그 풍만한 언덕을 다른 한 손으로 희롱하며 계속해서 허리를 놀린다.
“으읍……!”
정나은은 가랑이 사이에서 올라오기 시작한 쾌락을 견디느라 미칠 노릇이다. 자신이 이렇게 민감한 여자였는지 착각과 억지로 범해지는 상황에서도 흥분해가는 자신의 몸뚱어리가 원망스럽다. 그렇게 힘겹게 견디고 있는데 자신의 민감한 가슴까지 그 까칠까칠한 손으로 희롱하자 허리가 자신도 모르게 튕겨져 오른다.
‘오호? 반응 좋고?’
약이라 해봤자 몸의 자극을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이정도로 강한 반응을 보일 정도의 약이 아니란 뜻이다.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튕기고 그 반응이 수치스러웠는지, 떨리던 그녀의 눈동자엔 힘이 실린다.
정갈하게 틀어 올렸던 머리카락은 많이 흐트러져 요염함을 뿜어내고, 서서히 달아오르는 유부녀의 몸에선 수컷을 자극하는 야릇한 체취가 뿜어져 나오며 그 탐스러운 자태에 향기까지 머금으니 아무리 반항적인 눈빛으로 바라봐도 오히려 수컷을 흥분시킬 자극제밖에 되질 않는다.
“후후……이것 참 아내 분께서는 아직도 기가 살아계시는군요.”
잠시 허리를 멈추고 그녀의 속이 꽉 찬 허벅지를 주무르며 동시에 매끄러운 검은 스타킹의 감촉을 즐긴다. 정장을 입혀놓고 범하는 맛도 있지만 오늘은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어야 하니 알몸이 편하지만 스타킹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 힘으로 박기 편하게 가랑이 사이만을 찢었다.
“후웁! 후웁!”
강렬하면서도 열이 느껴지는 정나은의 얼굴부터 차근차근 그녀의 몸매를 감상한다.
자신의 육중한 몸에 밀려나 억지로 벌려진 유부녀의 하반신은 군데군데 찢어진 검은 스타킹은 그녀가 얼마나 발악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김우영이 내려다 본 두 남녀의 하반신은 딱 달라붙어 있어 마치 한사람의 몸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살짝 볼까?”
김우영은 허리를 뒤로 살짝 움직여 그녀의 안에서 자신의 육봉을 꺼내든다. 틀어막은 자신의 손에 그녀의 뜨거운 입김이 토해져 나오는 걸 느끼며, 그녀의 안에서 구해낸 육봉을 내려다본다.
젤과 함께 투명하고 점성 높은 액체가 번들거리는 걸 보며 다른 한 손으로 그 액체를 찍어낸다. 그녀에게 보여주듯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로 길게 늘어지는 액체를 보여주며 자신의 코앞으로 가져가 냄새를 맡는다.
“발정 난 암컷의 체취는 참 매혹적이지.”
“…….”
터질 것처럼 달아오르는 정나은의 얼굴을 보며 김우영은 자신의 육중한 몸으로 짓누를 듯 그녀를 껴안곤 묵묵하게 그리고 더욱 강하게 허리를 내려친다. 발버둥 치던 그녀의 다리도, 강렬하게 적의를 내뿜던 그녀의 눈동자도 김우영이 허리를 내려칠 때마다 서서히 흐려지고 힘이 빠져나간다.
빠져나가는 힘 대신 그녀의 몸을 채우는 건 열락과 쾌락이다. 김우영이 흘리는 남자 특유의 땀 냄새와 정나은이 풍기는 유부녀의 야릇한 체취가 섞이며 부부의 침실 안을 묘한 향기와 열기로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부부의 침실 안을 꽉 채우고도 그 열기와 묘한 향기가 온 집안을 휘감을 시간이 지나자 오로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짓누르고, 범하던 수컷은 무언가 한계가 온 것처럼 더욱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강하고 빠르게 허리를 놀리기 시작한다.
“후욱! 후욱! 후욱!”
“웁! 우웅! 으으읍!”
정나은은 괴로움과 쾌락이라는 상반된 감각을 동시에 느끼며 본능적으로 지금 자신의 배위에 올라탄 짐승을 떨쳐내기 위해 마지막 발버둥을 쳐보지만 이미 자신의 몸은 그의 욕망을 받아들일 준비가 끝마친 걸 느낀다.
‘아아……이럴 순 없어. 미안해요.’
더 이상의 저항이 무의미하다. 심지어 자신의 몸뚱어리는 자신을 배신하고 그가 주는 열락과 쾌락에 빠져 더 이상 발버둥 칠 힘까지 놓아버리자 누군가를 떠올리며 사과를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눈에는 강렬한 빛이 스며들며 굳게 마음을 먹는다.
침대 시트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침대 기둥은 무너질 듯 삐걱, 삐걱 비명을 지른다. 자신의 하반신에서 울려 퍼지는 둔탁하고 질척한 소리는 어느 순간 절정을 맞이하는 짐승에 포효와 함께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밀착한다.
“크으으으으윽!”
“으우우우으으읍!”
비명을 토해내는 자신의 입을 꿰뚫고 나올 것 같은 그 강렬한 감각을 느끼며, 정나은은 쾌락에 파도에 휩쓸려 허리가 튕겨져 올라간다. 절정에 오른 그녀는 절대 이 남자를 지지대 삼아 절정의 파도에 견딜 순 없다고 보여주듯 검은 스타킹에 감싸인 두 다리는 짐승을 껴안지 않고 하늘로 치솟아 올라 부들부들 떨리며 애처롭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부드럽기 그지없던 유부녀의 몸은 지금까지의 부드러움이 거짓말처럼 딱딱하게 굳으며 온 몸을 경직시키고 있다. 다만 두 남녀가 이어져 있는 하반신만은 예외인지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파고든 남성의 육봉은 그녀의 안에서 커졌다, 작아지길 반복하며 울컥, 울컥 욕망의 덩어리를 마음껏 토해내고 있다.
짐승의 욕망의 덩어리를 모두 받아내고 있는 유부녀는 그 뜨거움과 절정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며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자신의 아랫배에 쌓이는 뜨거운 액체를 느끼며 더욱 마음을 굳게 먹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배위에서 덜덜 떨고 있는 짐승을 노려본다. 서로 그렇게 얼마나 이어져 있었을까?
“후~죽이는군. 특히 눈빛이.”
김우영은 절정에 오른 게 확실한 정나은이 절정의 파도에 덜덜 떨리는 몸을 숨길 생각도 않고 강렬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더욱 정복욕이 끓어오른다. 살짝 치켜 올라간 그녀의 눈매를 보니 절대 이런 남자에게 질 수 없다고 마음먹었나 보다.
“어디 오늘 한 번 진하게 놀아보지.”
김우영의 말을 끝으로 또 다시 두 부부의 침실에선 정나은의 애처로운 신음소리와 둔탁하면서도 찰진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가장 안전하다고 여긴 자신의 집이 새장이 되어 그녀를 옥죈다. 새장 속에 갇힌 유부녀는 짐승 아래 깔려 그 애처로운 신음소리를 내질렀지만, 애석하게도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빗소리에 그마저도 씻겨 내려갔다.
오후부터 내린 비는 공기를 차갑게 식히고, 밤이 되어도 그 차가운 비는 그칠 생각을 않는다. 입김까지 나올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자 사람들은 몸을 사리며 자신의 집으로 지친 발걸음을 서두른다.
그렇게 바깥 공기가 차갑게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음침한 두 부부의 단란한 침실은 뜨겁고, 퇴폐적인 공기로 꽉 차있다. 야릇한 체취와 비릿한 냄새로 꽉 찬 어두운 침실에 칙 소리와 함께 라이터에 불이 켜지며 알몸의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인다.
“후우~”
“하아……하아…….”
남자가 담배 연기를 내뿜는 소리와 지친 여성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담배를 꼬나문 김우영은 어두운 침실 안을 제집인 양 돌아다니더니 손에 무언가를 들고 침대로 돌아온다. 침대를 전체적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은 김우영은 손에든 무언가에 스위치를 누르자 번쩍하며 강렬한 조명이 터진다.
강렬한 조명이 한순간 어둠을 몰아내고, 침대 위를 비추며 그 장면을 김우영의 스마트 폰에 담는다. 계속해서 터지는 강렬한 조명에 침대 위에 널브러진 유부녀의 여체가 보인다.
군데군데 찢어진 검은 스타킹은 끝까지 벗기지 않았는지 경련하는 다리를 감싼 채였으며, 가랑이 사이에서 왈칵, 왈칵 욕망의 하얀 덩어리를 토해내는 두툼하게 살이 오른 둔부 주위는 그 욕망의 결정체로 잔뜩 더러워진 채 검은 스타킹 때문에 더욱 또렷하게 보이며, 침대 시트를 푹 적시며 그 진하고 비릿한 향기가 풍겨 올라오고 있다.
유부녀라고 믿어지지 않는 매끄러운 복부는 땀으로 번들거리며, 그녀가 숨을 몰아쉴 때마다 탐스럽게 오르내리는 두 과실과 이어져 있는데,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그녀의 가슴에는 투명한 땀방울이 맺혀 가슴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 가느다란 그녀의 손가락은 얼마나 침대 시트를 쥐어뜯었는지, 하얗게 질렸으며 더 이상 팔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어 보이는 그녀의 팔은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져 있다.
“신고는 하지말자? 이건 그냥 감상용이야.”
번쩍이는 조명에 흐릿한 정나은의 시선이 향한다. 처음 보여줬던 그 강렬하고 적의가 담겼던 눈빛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초점을 잃은 불순물이 낀 것처럼 빛을 잃은 그녀의 눈빛은 결국 그녀가 정복당했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
“…….”
선 분홍빛 입술은 얼마나 일방적으로 빨렸는지, 살짝 부어올랐으며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우물거리지만 말이 되어 나오진 않는다. 틀어 올렸던 머리는 완전히 풀어헤쳐져 침대 시트 위에 난잡하게 흐트러진 채 자신과 김우영의 타액으로 푹 젖은 모습이 관능미가 철철 넘친다.
‘후~오랜만에 힘 제대로 썼군.’
김우영은 담배를 끄며, 쾌락에 푹 절여진 유부녀의 몸매를 감상한다. 커튼이 쳐져 빛이 거의 새어 들어오지 않아 어스름한 침실. 두 부부의 침대 위에는 사지가 풀려 실신 직전인 유부녀의 자태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유부녀의 몸에서 풍겨져 올라오는 야릇한 체취는 더 할 나위 없이 향기롭고, 몸에서 솟아나는 꿀은 벌레를 꼬이게 하며, 더럽히면 더럽힐수록 수컷의 정복욕을 끓어오르게 하는 끝없는 매력을 토해낸다.
숫처녀와 처음 관계를 가져봤자 애처롭고, 애달프기만 하지 침대 위에 핀 이 농익은 꽃의 매력은 절대 따라올 수 없다. 남의 꽃이라는 배덕감까지 느낄 수 있으니 이보다 매력적인 꽃이 더 있으리?
김우영은 마지막으로 침대 위로 올라간다. 그만의 마지막 행위를 하기 위해서다. 축 처져있는 정나은은 그저 텅 빈 눈으로 그가 이끄는 데로 지친 숨을 쉬고 있을 뿐이다. 김우영은 그녀 머리맡에 자리 잡더니 그녀의 왼손을 이끌어 타액으로 질척거리는 자신의 육봉을 쥐게 한다.
“아~그래. 마지막은 이거지.”
힘없이 축 처진 그녀의 손에서 무슨 쾌락을 느끼는 것일까? 자신의 얼굴 위에서 자신의 왼손을 이용해 자위하고 있는 김우영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어스름한 어둠 때문에 지저분한 그의 하반신만 보일 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정나은의 왼손을 이용해 자위를 하던 김우영은 어느 순간 억눌린 목소리를 내더니 그녀의 손으로 자신의 육봉을 꽉 움켜쥐게 하더니 하반신을 덜덜 떨며 욕망의 마지막 한 방울을 정나은의 지친 얼굴 위에 울컥, 울컥 싸지른다.
“……흐읏.”
정나은은 얼굴에 쏟아진 역겨운 욕망의 결정체에 눈을 꼭 감는 것 말곤 저항할 수 없다. 자신의 왼손에서 울컥, 울컥 맥동하는 욕정을 느끼며 얼굴에 피어나는 비릿하고 뜨거운 감각에 모든 걸 포기한다.
“후우!”
김우영은 사정이 끝나자 그녀의 가느다란 왼손을 자신의 육봉을 꼭 쥐게 하고 쾌락에 물든 유부녀의 얼굴에 쏟아진 자신의 욕망의 결정체를 내려다보이게끔 마지막 사진을 찍는다. 김우영은 지금도 자신의 육봉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유부녀의 손의 감촉과 왼손 약지에 낀 결혼반지의 이물감을 느끼며 만족스러워한다.
결혼반지가 껴져 있는 왼손에 자신의 더러운 체액을 전부 닦아내자 그녀의 왼손과 결혼반지는 질척거리며 그 더러운 체액으로 더럽혀졌다. 김우영은 만족스러워하며 주섬주섬 옷을 입고 모든 걸 포기하고 잠 드려는 그녀의 귓가에 악마의 속삭임을 읊조린다.
“기가 쎈 여자는 참 좋아. 이대로 자도 상관없지만……남편이 돌아올 걸?”
빛을 잃었던 그녀의 눈빛이 살아나는 걸 느끼며 김우영은 부부의 침실에서 나왔다. 쏟아지고 있는 빗줄기를 맞으며 김우영은 길거리 저편으로 사라졌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 오늘도 각자의 전쟁터로 발걸음을 옮기고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정나은도 직장과 가사를 겸업하며 오늘도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고 있다.
“하아~”
잠시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손에 꼭 쥐고 깊은 한숨을 내뱉는 그녀는 영락없는 직장인의 고뇌가 가득 담긴 모습이다. 계속해서 한숨을 토해내는 그녀의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일이 많이 힘든가 보다 라며 안쓰러운 시선을 던지고 지나간다.
정나은이 땅이 꺼져라 한숨 쉬는 이유는 고된 사회생활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다.
‘그 빌어먹을 놈을 어떻게 엿 먹이지?’
쓰디 쓴 커피를 쪽 빨며 얼마 전에 일어난 그 날을 되새긴다. 신고하면 100% 잡아들일 수 있음에도 아직까지 그녀가 그를 신고하지 않고 이렇게 고민하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남편이 괴로워 할 것이다.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는 지 걱정 될 정도로 순댕이에 덜렁이인 자신의 남편은 아마 아내가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하면 펑펑 우는 것만으로는 안 끝날 것이다.
두 번째 내 자존심이 허락 못한다.
‘그런 남자에게 깔려 실신하기 직전까지 가다니…….’
젤에 함유된 약의 기운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정나은은 그저 자신이 그 남자에게 졌다고 착각할 따름이다. 사실 약의 기운이 아니었더라도 몇 시간이고 계속된 집요하고 끈적한 그의 정사를 떠올리자 정나은은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크게 뛰고 아랫배가 뜨거워지는 감각에 화들짝 놀란다.
‘그 빌어먹을 놈 참 절륜했어.’
40대 중반에 들어섰다고는 믿기지 않는 정력과 김우영의 일생이라 할 수 있는 침대 기술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자를 배아래 깔아뭉개고도 신고 한 번 제대로 안 들어간 이유는 이런 이유이다. 억지로 범해진 정나은 마저 그때를 떠올리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데 원해서 잠자리를 가진 여자들은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다.
‘두고 봐 한 방 크게 먹여줄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