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챌린저와의 만남 그리고 지아의 정체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전에는 조금 성숙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뭐랄까, 더욱 발랄해졌다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신선하기도 했고 전에 비해 더 어려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전에 스타일도 괜찮았지만 전 지금 스타일이 더 맘에 듭니다. 대하기가 조금 편해졌다고나 할까요.”
전에 정장을 입고 있었을 때는 어딘지 모르게 조금 딱딱한 이미지였지만, 단발의 빨강 머리에 타이트한 가죽 쟈킷과 진바지는 정말 그녀를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바꾸어 놓아 어딘지 모르게 대하기가 전에 비해 조금은 더 편한 느낌인 것은 사실이었다.
헌데 내가 그녀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어 은근히 돌려 물어 보았다.
“지아씨를 보면 지아씨 어머님도 꽤 미인이었을 것 같습니다. 오늘 함께 자리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물론 오늘 자리는 공적인 부분이 있어서 어머니가 기관과 상관이 없다면 함께 자리에 착석하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기는 했을 터다.
하지만 지금껏 몇 시간 같이 있으면서 챌린저나 지아가 부인이나 엄마 얘기를 지나가는 말이라도 한마디 꺼낸 적이 없어 약간 궁금하기는 했다.
그리고 챌린저라는 사람의 부인은 도대체 어떤 여자인지도 무척 궁금했다.
헌데 아무 의미 없이 인사치례로 물어본 말에 지아의 표정이 웬일인지 한순간 우울하게 변했다.
순간 나는 내가 말을 잘못 꺼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아가 잠시 후 꺼낸 말은 역시 좋은 얘기가 아니었다.
“엄마는 골드 티어셨어요.”
지아가 앞뒤 설명 없이 자신의 엄마는 골드 티어였다는 말을 하자 나는 챌린저가 신분의 관계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지아를 낳았구나 생각하며 챌린저를 다시 보게 됐다.
하지만 아빠인 챌린저가 골드 티어인 여자와 자신을 낳았다고 해서 지아가 이렇게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어딘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헌데 그 다음 말을 듣고 그녀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헌데 엄마는 제가 7살때 용병으로 차출되셔서 전투에 참가해 다크 사이어돈에 의해 소멸되셨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얘기를 꺼내서...,”
“아니에요, 그래도 전 다른 사람들과 달리 엄마가 누군지는 기억하고 있고 현재 아빠까지 계시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 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무척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편이죠. 준수씨 우리 그런 얘기 말고 다른 얘기해요. 전 그래도 엄마를 알고 있고 현재 아빠가 계셔서 준수씨에게 많이 미안해요. 아빠가 챌린저라는 특수성 때문에 저만 이런 것 같아서 말이에요.”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챌린저님의 직위에 있다면 그 정도는 누릴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되니까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챌린저님께서 지아씨를 저와 같이 사이어돈의 전투에 보내시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세요. 물론 전투에 지아씨는 참가하지 않겠지만요.”
“아빠는 엄마를 정말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다크 사이어돈을 더욱 미워하시는 것이고요. 준수씨가 암흑 물질을 흡수할 수 있고 사이어돈이 준수씨를 무서워하고 있다는 말을 했을 때 저는 혹시 아빠가 판단력이 흐려져 순간적으로 준수씨를 어떻게 하지 않을까 무척 걱정했었어요.”
“사실 저도 챌린저님이 갑자기 저를 무섭게 노려보시길래 한순간 잘못됐다는걸 깨닫고 솔직히 조금 겁을 먹었던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챌린저님이 무턱대고 앞뒤 사정을 알아보지 않고 검증도 되지 않았는데 저를 어떻게 하실리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준수씨 말이 옳아요. 아무리 아빠가 사이어돈에 원한이 깊다고 해도 그렇게 앞뒤 가리지 않는 분은 아니시거든요. 그리고 준수씨가 사이어돈을 처치하는걸 밀어주시고 또 저를 같이 보내는 것은 완전체에 대한 방비도 있겠지만, 사이어돈이 죽는 모습을 내가 직접 확인하며 엄마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을 지켜보라는 의미가 있는 건지도 몰라요.”
“지아씨 말씀을 듣고보니 제가 암흑 물질을 흡수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챌린저님의 눈빛이 갑자기 변한 것을 보고 식급했었는데 이제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제가 완전체에 대한 해결책이나 방비차원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생각해 보십시오. 챌린저님 한분의 능력이 사이어돈 B급과 맞먹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완전체라면 태양 크기의 A급을 지나 S급 또는 SS급일지도 모르는 놈이 완전체인데 제가 아무리 강해져도 그런 놈의 상대가 되겠습니까? 아까 챌린저님의 말씀 들으셨잖습니까, 전 우주의 챌린저님 일 만명이 협공해도 놈을 이길 수는 없을 거라고요.”
“그래서 아빠는 준수씨에게 희망을 품고 있는 거예요. 비록 실날같은 희망이지만 아예 없는 것 보다는 낫잖아요. 그리고 완전체라는 놈들이 한 명일지 두 명일지 또는 백 명일지는 누구도 알지 못해요. 태양 크기의 사이어돈은 한 두개가 아닐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얘기예요. 그러면 시일이 지나며 완전체는 계속해서 탄생 할 수도 있다는 뜻도 되거든요.”
“암흑 물질과 다크 사이어돈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시네요.”
“아빠가 첼린저이다 보니 옆에서 주워들은 얘기가 많아요. 아빠가 그토록 걱정하시는 문제는 완전체가 한 놈이 아닐거라는 데에 있어요. 암흑 물질이라는 것은 수만년전 신에 의에 전 우주의 생명체들이 랭크게임을 시작하고부터 생성됐다고 해요. 그리고 지금은 많은 시간이 흘러 암흑 물질 내에서 사이어돈이 탄생하고 있고, 더욱 강력한 에너지가 생성된 암흑 물질에서는 이미 태양과 같은 크기의 사이어돈이 응축을 끝내고 밖으로 나올 시기가 됐다고 하는 전문가들이 상당수에요. 헌데 문제는 그게 한 두놈이 아니라면 우주 전체는 정말...!”
지아가 뒷말을 끝맺지는 않았지만 무슨 말인지는 뻔했다.
전 우주의 종말.
아니, 다크 사이어돈만을 제외한 전 우주의 생명체 소멸이다.
잠시 말을 끊고 고개를 젓던 지아가 나를 보며 또 황당한 추측을 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도사라는 직업은 없었어요. 헌데 갑자기 도사란 직업이 나타나고 게다가 암흑 물질의 에너지까지 흡수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준수씨가 나타난 것을 보면, 이건 신이 다크 사이어돈의 천적을 정말 보내준 것인지도 몰라요.”
“또 그러시네. 그건 말도 안돼는 추측입니다. 만약 그렇더라도 신이 왜 우주의 구석에 자리잡은 우리 은하, 그것도 우리 은하중에서도 최고로 변방에 위치한 지구로 그런 존재를 보내겠어요. 그리고 그것도 잘나지 못한 제가 그 존재라는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지아씨 추측대로라면 사이어돈의 그 천적이란 존재는 나 말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강한 다른 종족에게 그 능력을 보냈어야죠.”
“준수씨가 우리 인간에 대해 잘 모르시네요. 전 우주에는 휴먼족들이 아주 많고 그들이 거의 우주를 지배한다고 보면 돼요. 물론 육체적으로는 약간 강한 다른 외계종족보다 약할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휴먼족들의 정신세계는 모든 생명체중 으뜸으로 치고 있어요. 그리고 준수씨가 어디가 어때서요, 제가 보기에는 전 우주의 생명체중에서 제일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데요.”
지아가 농담을 하자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었다.
“칭찬이 듣기 싫지는 않네요. 헌데 지아씨 그렇게 농담 자꾸 하시면 입술 부르틉니다. 괜히 저 같은 하류 신분 놀리지 마십시오.”
“우리 아빠는 챌린저이실때 골드 티어인 엄마와 만나 사랑을 나누셨어요. 그리고 신분의 차이라는 것이 지금 시대에는 언제 뒤바뀔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그것도 준수씨 같은 플레이어라면 더욱 더요.”
지아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자 내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이 여자가 지금 나에게 대시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날 좋게 봐주어 이렇게 술친구가 된 것은 인정하지만 역시 지아가 날 좋아한다는 것은 너무 뜬금없고, 또 그녀가 날 좋아할만한 행동을 내가 했거나 그럴만한 일은 일어난 적도 없었다.
있다면 얼마 전 술을 먹고 서로 정신을 놓은 상태에서 한 침대에서 잔 것뿐이었지만, 그것은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술이 떡이 되어 서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지아씨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저 오해합니다.”
“오해하시던 말던 저는 제가 할 얘기 한 것뿐이에요. 그 다음은 준수씨가 알아서 생각하시면 되요.”
이해 못할 알쏭달쏭한 말을 하고 그녀가 약간 뽀로통한 표정을 짓자 내가 머쓱했다.
그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몰랐지만 괜히 섣부른 말로 술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 나는 여기서 그녀가 한 말에 대해서는 일단 접기로 했다.
“지아씨 우리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다른 얘기나 하죠. 그나저나 지아씨같은 분한테 왜 남자가 없을까 거듭 그것이 궁금하기는 하네요. 같은 마스터급에서 괜찮은 남자 한번 찾아보십시오.”
예전에도 했던 말을 내가 다시 무미건조하게 말하자 그녀가 나를 살짝 쏘아보았다.
“그건 예전에도 말했잖아요.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고 머리에 들은 것 없이 제 잘난척만 하는 남자들뿐이라 싫다고요.”
그녀가 웬일인지 전과는 다르게 톡 쏘듯 말하고 노려보았지만 내가 말실수 한 것도 없어 그냥 모른 척 해버렸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외모에 변형을 준 것인지 희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봐온 그녀의 행동과 성격상 빨강 머리로 물들이고 몸매가 드러나는 이런 타이트한 옷을 입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보다 눈이 호사를 누리니 나쁘지는 않았다.
지아의 몸매는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확실하게 나와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몸매를 소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외모까지 최상이라 그녀와 같이 있으니 어쩐지 어깨가 으쓱해지기는 했다.
“뭘 그렇게 쳐다보죠?”
내가 잠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자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가 물었다.
솔직히 바뀐 이미지가 매력적이라 쳐다본 것인데 바른대로 말할 수는 없어 대충 둘러댔다.
“그냥 볼 데가 없어서 본겁니다.”
“핏, 싱겁기는..,”
쏘아보던 눈빛은 어느새 사라지고 귀엽게 웃으며 술을 시원하게 한잔 들이키는 그녀다.
챌린저와 일찍 만나 헤어지고 이렇게 둘이 마신지도 어느덧 두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나나 그녀나 누구하나 먼저 일어나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헌데 시간이 10시가 넘어가자 그녀가 술이 조금 올라오는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내게 제의를 했다.
“우리 집에 가서 한잔 더 하실래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냥 집으로 가볼게요. 오늘은 조금 피곤하네요.”
오늘 그녀의 아빠인 챌린저도 소개 받았고 괜히 집에 가서 저번처럼 술이 떡이 돼 같은 침대에서 자는 실수라도 또 저지른다면 무척 어색할 것 같아 지금도 많이 마셨길래 그냥 집으로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