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드디어 골드 맵이다.
“허윽! 머리야..!”
다음날 머리를 쥐고 침대에서 일어나니 내방이 아닌 것을 알고 잠깐 깜짝 놀랐다.
그러다가 어제 드문드문 생각나는 것 중에 아레스가 자고가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거 실례가 되지 않았나 모르겠네.’
아무리 자고 가라 그랬어도 길바닥에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나왔어야 할 걸 잘못했나 싶었다.
괜히 폐를 끼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어색할거 같기도 했다.
어차피 이리 된 것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거실로 나오니 아레스는 어느새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어났니? 머리 많이 아프지? 나도 일어나고 나니 머리가 엄청 아프더라. 조금만 기다려 내가 해장국 맛있게 끓여줄게.”
그녀는 내가 잔게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고 있었다.
‘나 혼자 괜히 오버한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내가 주방 바로 옆에 식탁에 앉아 있는데 그녀가 음식을 조리하며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퇴근하고 혼자 술 먹어 버릇 했는데 이제 가끔 너와 마셔야겠다. 괜찮지?”
“저야 뭐 상관없습니다.”
그녀는 어제 나와 마셨던게 괜찮았었던 모양이었다.
나 또한 교육생 시절 짝사랑 했던 교관과 이렇게 함께 마시는게 다른 누구와 마시는 것 보다 사실 설레기는 했었다.
잠시 후 얼큰한 국과 함께 밥한 그릇이 나오자 나는 국물부터 한입 떠먹어 보았다.
“캬.. 쥑이는데요! 국물이 정말 끝내줍니다.”
“다행이네, 난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했는데.”
“아니에요, 최고에요. 교관님이 이렇게 음식을 잘 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얘가 왜이래? 나도 엄연히 여자다.”
“그런가요? 교육원에서는 너무 딱딱하시고 남자같이 행동하셔서 여자신걸 깜박했습니다.”
“넌 날 짝사랑 했다면서 여자인 걸 깜박 했다는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니?”
“아, 그런가요. 그럼 남자 같다는 말은 취솝니다.”
“정말 가끔 나와 술자리 하자, 혼자 먹다가 너랑 먹니까 재미있고 술이 더 맛있는 것 같아.”
“알겠습니다. 교관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사랑스런 제자가 따라야지요.”
“그러니까 조금 징금럽다 얘. 하지만 사랑스런 제자가 맞긴 맞지 뭐. 그리고 이제 우리 집에서 술 마시면 네가 잔 곳은 네 방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서 자고 가도록 해. 그래야 나도 맘이 편하고.”
“그럼 다음에도 집에서 마시자고요..?”
“그럼.. 술집보다야 집이 편하지, 안주도 만들어 먹는게 더 맛있고. 너 내 음식 솜씨 좋은거 모르지? 다음에는 내가 직접 만들어 볼 테니까 한번 먹어봐.”
“하긴 술집에서 취하고 그러는 것보다 집에서 마시고 맘껏 취하는게 낫죠.”
“내말이 그 말이야. 괜히 밖에서 먹다가 기분에 젖어 술이 완전히 취해 걷지도 못할 정도가 되면 어쩌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집에서 맘 편하게 맘껏 마시는게 낫지.”
아레스는 술친구가 한명 생겨서 좋은지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얼굴이 무척 환해져 있었다.
얼큰한 국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니 속쓰림과 머리 아팠던 것이 어느 사이에 모두 나아 있었다.
식사를 모두 끝내고 그녀의 집을 나와 얼마 후 집에 도착했다.
어느새 내일이면 골드 맵에 첫 참가하는 날이 됐다.
실버 맵을 단 한번만에 넘어섰다는 것이 아직 믿겨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제 골드 티어로도 24레벨이니 사신수도 모두 많이 강해져 있을 터다.
사신수를 생각하니 어떻게 변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소드마스터에게 자살을 명해서 소멸시킬 때가 21레벨이었으니 3레벨이 승급된 지금은 많이 성장해 있을 터다.
‘저녁에 한가한 곳에서 한번 불러내 볼까?’
녀석들의 모습도 궁금했고 마치 애완동물 같은 느낌이 들어 보고 싶기도 했다.
날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목숨까지 버리는 녀석들이니 정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죽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생성되기는 했지만 죽을 때 녀석들도 고통을 느끼니 녀석들도 죽는 것이 싫기는 할 것이다.
맵에 떨어지면 싸우느라고 바빠 녀석들과 공명하며 적을 죽이라는 명령밖에 내린 적이 없으니 저녁에 한가한 장소에서 소환해내어 녀석들과 놀아주기로 결정했다.
근처에 대 공원이 있어 구석진 곳으로 가면 사람들이 없는 빈터가 있을 터였다.
한동안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 공원으로 나가 구석진 공터를 찾아 곧바로 사신수 모두를 소환해 냈다.
꾸워워워! 크아아앙!
녀석들은 나오자마자 반가웠는지 우선 괴성부터 질러댄 후 주작과 청룡은 내 머리 위를 날아다녔고 백호와 현무는 머리를 내 몸에 비벼대고 있었다.
“알았다, 알았어.”
백호와 현무가 머리를 문지르니 두 녀석의 힘에 내 몸이 뒤로 밀리기까지 했다.
“3레벨인데도 많이 자랐구나.”
주작은 몸에 불의 속성을 거두어들이고 머리 위를 돌고 있었는데 이제는 무척 거대한 독수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헌데 날개를 편 그 길이가 무려 10여 미터는 될듯했다.
청룡 또한 몸 두께가 내 몸통의 세배 정도에 몸길이만 무려 15여 미터는 될듯했다.
백호도 이빨과 발톱의 날카로움이 더해지며 몸집 또한 황소의 네배 정로 자라나 있었다.
현무 또한 백호와 비슷한 덩치에 등위의 구렁이들 길이가 어느덧 4미터는 될 듯 했다.
10여 마리의 뱀들은 남들이 보기에는 무서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귀여워 보이기만 했다.
헌데 구렁이 한 마리가 내 몸을 살짝 감더니 내 몸을 허공으로 들어 올려 마치 놀이기구를 태워주듯 10여 마리가 교대로 감아 이리저리 휘저어댔다.
그러자 주작과 청룡도 낮게 날아와 근처에서 날아다니며 나를 낚아채려는 듯 장난을 치고, 백호도 그 큰 덩치를 껑충거리며 무척 신나해 하고 있었다.
얼마 후 구렁이가 나를 내려놓아 나는 의자에 앉아 있고 네 녀석들은 저희끼리 공터를 빙빙 돌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런 장난꾸러기 녀석들이 싸울 때는 정말 용맹무쌍한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는 혀를 내둘렀다.
눈앞에 사신수가 있으니 마음만은 정말 든든했다.
저 녀석들이 있으니 나보다 2-3레벨 상위 플레이어와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내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지긴 했지만 나보다 4-5레벨 상위였던 소드 마스터와의 싸움으로 인해 이미 증명된 것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까지 서로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 사신수를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내일은 정말 힘든 싸움이 될지도 모르니 너희들도 단단히 준비하고 있어야 할 거야.”
꾸워워웍.. 크아아앙.. 캬오오옷.. 치이이익!
사신수가 마치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장난치던 것을 멈추고 모두 내게로 다가와 괴성을 한 마디씩 질러댔다.
“알았다 알았어, 자.. 이제 그만 왔던 곳으로 돌아가서 쉬고 있거라.”
내가 말하자 사신수의 몸이 번쩍 빛나더니 이내 자리에서 사라졌다.
내일 골드 맵에서는 과연 어떤 존재들이 나타날지 긴장감 반 호기심 반의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잠을 푹 자고 일어나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후 책상에 앉아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시간이 남아 기다리고 있자니 문득 티르얀이 생각났다.
‘혹시 티르얀도 골드 티어로 승급 했으려나?’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녀와 나는 실버 티어에서 헤어지고 나는 단 한번 게임으로 골드 티어까지 승급했다.
허나 그녀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제부터 그녀와는 듀오게임에 참가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녀와 듀오게임에 참가하게 되면 내가 속한 골드 맵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 그녀는 아무리 최하위 골드 플레이어를 만나도 버티지 못하고 바로 귀환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앞으로 만날 일이 없으니 조금 아쉽기는 하군.’
그래도 두 번 같이 게임을 했다고 조금이나마 정이 들었나 보다.
그녀의 백치같은 모습과 행동을 생각하니 순진함과 귀엽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절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를 잠시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시간이 되어 내 영혼은 거대한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흐음.”
혹시나 그 전 시작의 섬과 다른 점이 있나 하는 마음에 정신을 차리니 전과 다른 점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하게 다른 점은 이제 정신을 차린 플레이어들은 누구 하나 다른 플레이어를 돌아보거나 살피는 자들이 한명도 없고 그저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거나 혼자 사색에 잠겨 있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제 어느 정도 굴러먹었으니 제법 여유들이 생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누가 하위인지 상위인지 구분 짓은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그저 먼 하늘만 바라보았다.
이제 맵에서 만나면 무조건 싸우는 것뿐 피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 이유는 이제 도태자를 벗어났기 때문에 운이 좋아 싸워서 이기면 좋지만 지더라도 상위 플레이어와의 전투로 인해 실전 경험을 쌓았다는 것에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이것 또한 도태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 완전히 해방된 여유로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골드 티어의 최하위 레벨인 21이나 22레벨자들은 경험치 삭감으로 인해 불안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미 골드 맵을 경험한 자들었기 때문에 도태자가 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었다.
문득 어제 아레스가 한 말 중에 한 가지 얘기가 떠올랐다.
[골드 티어는 그 전 티어들과는 강함에 있어서 차원이 다를 테니 조심해야 한다. 물론 너도 그만큼 강해져 있겠지만 아무튼 너무 성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첫 전투에서 패하더라도 좋은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너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야.]
내가 소드 마스터와 싸웠을 때가 21레벨이었다.
때문에 24레벨인 지금 나도 내 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와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겨뤄보면 알 일이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자신감 하나만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 충만해 있는 것은 당연했다.
또한 확실히 이제 도태자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져 마음이 편하기는 했다.
아무리 50일도 되지 않아 골드 티어가 됐다지만 은근히 도태자에 대한 압박감은 존재 했었다.
한편으로는 나도 그런 압박감이 들었는데 8-9년차, 아니 5-6년차 브론즈나 실버 티어들의 도태자에 대한 압박감은 정말 대단할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플레이어들의 영혼이 들어오자 다시 생성된 흰 빛 구멍 속으로 모두들 빨려 들어갔다.
“음..!”
주위를 둘러보며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이제 정해져 있었다.
‘하드 맵은 아니군.’
그랬다.
다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노멀인지 하드 맵인지부터 알아두는게 먼저다.
두 번의 하드맵을 경험해 보니 이제는 떨어진 맵이 어떤 맵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