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정사
그녀가 입을 열자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그녀만을 바라보았다.
“나도 들은 얘기인데 다크 사이어돈의 크기가 태양과 같은 크기도 있다고 하더군. 헌데 그 정도 크기가 되면 몸은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오히려 그 힘이 응축돼서 시간이 흐를수록 몸집이 줄어든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계속 줄어들어 결국에는 인간만큼 작아져 완전체가 되어 그 힘은 결코 신에 못지 않는다고 들었어. 물론 아직까지 그런 존재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정말 있단 말입니까?”
“전해져 오는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지. 하지만 그 완전체가 이미 완성되어 우주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를 일이야. 아니 혹시 지금 지구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럼 그 다크 사이어돈은 지성을 갖고 있는 겁니까?”
“그렇다고 들었어, 아니 강할수록 더 똑똑한 지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군. 그리고 한 가지 더, 다크 사이어돈은 암흑 물질이 생성되는 전 우주에 걸쳐서 출현하는데 약한 놈은 강한 놈의 부하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 만약 그런 완전체가 존재한다면 그 놈이 다크 사이어돈의 왕이라고 보면 될 거야.”
만약 그런 다크 사이어돈의 완전체가 벌써 존재했다면 우주에는 무슨 일이 벌어나도 벌써 일어났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나와 같은 일반 플레이어들은 알 수 없는 그런 얘기를 알고 있는 아레스를 보며 역시 교관이라 아는 것이 많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교관님께서는 그런 얘기들을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혹시 교관님께서 그 완전체는 아닌지 의심스러운데요..?”
내가 농담을 하자 그녀가 킥킥대며 웃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면 영광이지. 하지만 그런 존재가 고작 우리 은하 중에서도 변두리에 위치한 지구에서 교관 노릇이나 하겠어?”
“그거야 알 수 없죠. 다른 꿍꿍이속이 있어서 정체를 숨기고 있는지도요.”
“너 너무 오버하는 것 같다. 아무튼 그런 존재가 출현하지 않도록 비는 수밖에 없어. 거대한 다크 사이어돈 조차 우주의 생명체들이 버거워하는 판국에 만약 그런 존재가 탄생하거나 벌써 탄생했다면.. 으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전 우주의 생명체는 씨가 마른다는 것에 내 목숨을 걸 수도 있어.”
그녀의 말대로 그런 존재는 절대 탄생되어서는, 아니 절대 존재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런 존재가 나타난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있다면 신이 직접 상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모든 얘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나와 아레스는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도 나지만 아레스도 그 사이 정말 술을 많이 마셨다.
교육원에서 보였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인 그녀를 보고 나는 그녀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하고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나나 아레스가 조금은 꼬부라진 혀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녀가 문득 엉뚱한 말을 꺼냈다.
“야, 준수야!”
“네, 교관님.”
“너희들 교육생 시절에 나 좋아했던 녀석들 많았지?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았니?”
그녀의 성격에 이런 말을 꺼낸 것을 보면 확실히 취하기는 취한 모양이었다.
“교관님은 저희 코레일 교육원의 여신이신데 짝사랑 하지 않은 남자 교육생들이 어딨겠어요.”
“그건 나도 알고 있었지. 그럼 너도 날 짝사랑 했었던 거니?”
“당연하죠.”
“그럼 지금은..?”
“내가 우물쭈물 거리자 그녀가 재촉하듯 그 큰 눈을 부라렸다.
뭐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고 나도 술이 많이 취한 상태라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이내 그 말에 답해주었다.
“지금도 물론 그렇고요.”
내 말에 그녀가 그녀답지 않게 또다시 킥킥대며 웃었다.
“이거 영광인데, 앞으로 최소한 마스터가 되실 분께서 나같이 하찮은 골드 티어인 여자를 짝사랑까지 해주고 말야.”
이말 한마디로 그녀가 취했다는 것에 내 목숨을 걸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평소의 딱딱한 행동은 고사하고 말투마저 조금 여성스럽게 바뀌어져 있었다.
교육원에서의 모습보다 지금 이 모습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을 보니 어쩌면 지금 이 말투와 행동이 그녀의 본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왜 있잖은가.
술이 취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본 모습이 나온다고.
그녀의 말에 내가 곧바로 당치 않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대꾸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운 좋게 남들보다 조금 빨리 골드가 된 것 뿐입니다.”
“그렇게 겸손 떨 거 없어. 교육장님께서도 말씀하셨고 나도 생각하고 있는 것인데 넌 최소한 마스터 급이야. 솔직히 난 그 위까지도 보고 있거든.”
그 위라면 당연히 챌린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내가 말도 안됐다는 듯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교관님 그건 가셔도 너무 가신 것 같습니다. 제가 감히 챌린저라니요. 누가 들으면 어이없어서 콧방귀조차 끼지 않을 겁니다.”
내 말에 그녀가 술이 취한 중에도 조금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넌 너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어. 지금 네가 골드로 승급한게 게임을 시작하고 100일도 안 되서야. 아니 50일도 안됐잖아. 그런 속도로 승급한 플레이어는 다른 행성에서는 모르겠지만 지구에서는 네가 최초야. 내 생각에 그것은 다른 행성도 마찬가지일걸. 두고 봐.. 넌 앞으로 꼭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용기를 심어주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술이 취해서 그저 지금 기분이 좋아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이 기분 좋은 건 사실이었다.
솔직히 모든 플레이어의 꿈이 챌린저 1위를 연속으로 100번 먹고 게임을 영원히 클리어 하는 것이 꿈인 것은 모두 똑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꿈과 같은 일이라 누구도 감히 입 밖으로 내 뱉지를 못하는 것뿐이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기.. 저희 너무 마시는거 아닙니까?”
“나 내일 쉬는 날이고 모래도 게임에 참가하니 또 쉬는 날이거든. 오늘 실컷 마시고 내일 하루 종일 잠만 자면 돼, 그러니 빼지 말고 마시자고.”
“그러다 저나 교관님이나 술을 너무 마셔서 집도 찾아가지 못하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예전 은지와 같이 정신줄이 끊어질까봐 약간 걱정이 되기는 했다.
지금 상태로 계속 이렇게 술을 입에 들이 붓다가는 정말 그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 그건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럼 우리 집으로 가서 마시면 되지 않겠어?. 자 그만 일어나자고.”
“예..? 아니 전 그냥 이제 그만 마시자는 뜻으로 드린 말씀인데..?”
“사내자식이 뭐 그래? 마시면 뿌리를 뽑아야지.”
정말 그녀는 평소의 그 무표정하고 냉정해 보이기까지 한 모습은 온대간대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방금 한 말이 정말인지 곧바로 자리에서 비칠대며 일어났다.
“자, 가자고, 우리 집으로 고고..!”
내 팔을 잡아 일으키는 바람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따라 일어서야 했다.
그녀는 내가 계산하기로 했는데도 어기적거리며 계산대로 가서 손등의 칩을 스캔창에 올려놓았다.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제가 사기로 했잖습니까?”
“됐어.. 됐어. 제자에게 얻어먹기 싫어. 됐고, 빨리 가기나 하자고.”
말이 제자였지 지금 그녀의 하는 행동은 남들이 보기에는 영락없이 내가 오빠로 보일 것이 틀림없었다.
헌데 아무리 교관이었지만 그래도 여자인데 집으로 가기가 뭣해서 그녀에게 한마디 했다.
“교관님, 그래도 혼자 사시는데 이 시간에 제가 가면 조금 그렇지 않을까요?”
“졸업한 제자와 교관이 집에 가서 한잔 마시는게 뭐가 어때서?”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내 말은 무시하고 이내 다시 손목을 잡아끌었다.
헌데 그녀가 향하는 방향은 내 집쪽 방향이었다.
10여분쯤 갔을까, 그녀가 한 고급 오피스텔로 여전히 손목을 잡은 채 끌고 들어갔다.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108층에서 내린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잠깐만 앉아 있어, 나 옷 좀 갈아입고 안주하고 술 가지고 갈 테니까.
그녀는 나를 거실 바닥에 있는 탁자에 앉혀놓고 곧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헌데 잠시 후 문소리에 고개를 돌린 나는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커지며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아레스 교관이 치마를 입었다.
그것도 무척 여성스러운 치마였다.
무릎 위로 살짝 올라오는 회색치마에 흰색 남방을 걸치고 나온 그녀의 캐주얼한 복장에 나는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모습은 항상 정장만 입고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내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한마디로 귀여웠다.
단발의 짧은 황금빛 머리에 165정도의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몸매 그리고 남방색과 같은 눈처럼 하얀 얼굴.
더군다나 미소를 짓고 있는 한쪽 볼에 살짝 보조개까지 패여 있어 마치 귀엽고 깜찍한 눈의 요정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니..?”
“교관님 치마 입은 모습은 처음 봐서요?”
“이상해? 나 집에 있을 때는 항상 치마만 입고 있거든, 밖에서야 활동하기 편하게 바지만 입지만.”
“하나도 안 이상해요. 제가 보기에는 치마가 더 잘 어울리는거 같은데요.”
“그래? 하지만 밖에서는 아무래도 치마는 불편해, 집에서야 혼자 있으니까 괜찮지만. 아무튼 잘 어울린다니 고맙네.”
그녀가 곧바로 간단한 안주와 다시 카이스 주를 몇 병 가져왔다.
“집에 들어오면 가끔 혼자 마시고 잘 때가 있어서 집에 카이스주와 다른 술도 조금 있어. 도수가 조금 센 것도 있는데 그거도 마셔볼래?”
“아뇨, 전 이 카이스주 먹을게요.”
“그래, 나도 이 술이 제일 괜찮더라.”
다시 2차전이 벌어졌다.
솔직히 술집에서 마시다만 술이 모자라 나도 몇 잔을 단숨에 들이켰고 그녀도 그랬는지 나에게 뒤처지지 않았다.
몇 잔을 주거니 받거니 마시다가 내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교관님도 용병으로 차출돼서 다크 사이어돈과 싸워보신 적 있었습니까?”
“그럼, 두 번 싸워봤는데.. 흐음, 너무 끔찍했지.”
“............?”
“놈은 온몸이 검붉은 색에 뭐랄까..? 마치 공룡가죽과 같은 두꺼운 껍질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두꺼워서 그런지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어. 그리고 놈이 주로 사용하는 공격은 거대한 입을 벌리는 것이었는데...,?”
아레스는 그때를 생각하며 마치 진저리를 치듯 입술을 살짝 깨물며 인상이 한순간에 심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인상을 펴며 마저 설명했다.
“거대한 입안에는 마치 블랙홀 같이 시꺼먼 공간이 회오리치듯 돌아가고 있었어.”
그녀는 회상을 하듯 두 눈을 지그시 감더니 웬일인지 온몸을 살짝 떨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두 눈을 다시 서서히 뜨고 나를 바라보며 이내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