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실버티어 맵
그 사이 다른 방향에서 다가오던 두 놈도 얼마 후 물가에 도착해 두 놈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인상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두 놈도 물가에 들어가서 이 더위를 한순간이나마 잊어보려고 왔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속으로는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두 놈 또한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이내 싸움이 벌어졌다.
나무 위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나는 상황이 무척 재미있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다가오는 플레이어들과 괴수로 생각되는 생명체들의 거리를 가늠해보니 플레이어들이 먼저 도착할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플레이어들이 한데 모여 있을 때 놈들이 들이쳐야 그나마 버틸 수 있지, 만약 놈들이 먼저 도착해서 플레이어들이 각개격파 당하면 모든 플레이어들은 이곳에서 죽어야 했다.
얼마 후 플레이어들이 속속 들어서며 제각각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총 9팀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놈이 몹시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어 조금은 안타깝기까지 했다.
헌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뿌연 먼지와 함께 요상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자 모든 플레이어들이 싸움을 멈춰 위급한 플레이어가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실버 티어정도 되면 지금 상황이 어떻다는 것은 능히 짐작해 모두들 싸움을 멈추고 그중 상위 플레이어로 보이는 인간형 외계인인지 지구인인지 모를 한 남자가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전에 모두들 이런 일을 겪어 봤을 것이다. 이 장소에서만은 모두 동업을 하고 각자 알아서 빠져나가라.”
멀리 떨어져 있어서도 그랬지만 설사 가까이 있다고 해도 남자의 레벨은 나로서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저렇게 자신감 있게 전면에 나선 것을 보면 아마도 최하 18레벨 이상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고개를 끄떡인 후 허공에 피어오르는 먼지를 바라보며 모든 플레이어들이 그 방향으로 돌아서서 싸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나무 위에 있으니 다가오는 생명체들이 어떤 놈들인지 제일 먼저 알아볼 수 있었다.
놈들의 숫자는 어림잡아 500여 마리가 넘어 보였다.
헌데 네 발로 어기적거리며 다가오는 놈들을 보니 눈에 무척 익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을 때 보니 놈들은 전갈이었다.
얼마 전 해치운 두 놈이 상체는 가재에 하체만 전갈이었다면 지금 떼거지로 몰려오는 놈들은 오리지널 전갈과 같이 생겼다.
해치운 두 놈과 또 다른 점은 두 놈이 이족 보행에 5-8미터 크기라면, 이놈들은 네발로 걸었고 길이는 대충 사람 크기만 하다는 것이었다.
헌데 놈들의 몸 색깔은 보통 전갈 색이 아닌 몸 전체가 반투명한 회색빛을 띠고 있어 어딘가 모르게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이빨까지 양쪽에 삐죽 튀어나와 있어 그것마저도 무척 위협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치명적인 무기는 역시 끝이 뾰족한 기다란 꼬리로 보여 졌다.
나무 아래를 지나갈 때 언뜻 보니 투명한 꼬리는 반들거려 한눈에 보기에도 극독이 스며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놈들이 나무 아래를 지나치자 곧바로 전투 준비를 하고 있던 18명의 플레이어들과 맞닥뜨렸다.
나도 더 이상 두고 볼 필요 없어 나무 아래로 내려가려다가 사막 저 멀리 자기장 방향에서 다시 먼지 하나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한 놈이 더 오는군. 알아서 합류하든지 도망치든지 하겠지.’
머리가 있는 놈이라면 합류해서 경험치를 쌓을 것이요, 조금 모자란 놈이라면 위험하다고 도망칠 것이다.
내 알바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부적 네 개를 꺼내 허공과 땅바닥에 집어 던져 사신수 모두를 소환하며 용기를 북돋워주듯 소리쳤다.
“너희들이 얼마나 죽이느냐에 따라서 너희들의 강함 또한 결정되니 되도록 많이 죽이거라!”
사신수가 내 말을 알아듣고 곧바로 괴성을 토해내며 전갈들 사이를 파고들어가자 나 또한 나무에서 내려와 오러검을 생성시켜 녀석들과 합류했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전갈들의 크기가 모두 사람만 해서 500여 마리에 불과 했지만 그 수보다 훨씬 많게 느껴졌다.
치치칫!
“크어억!”
전투가 벌어진지 얼마 안 돼 벌써 한 플레이어가 여러 놈의 전갈 꼬리에 한꺼번에 꿰뚫려 허공에 들려진 채 죽음을 맞이했다.
‘생각보다 독성이 강한 놈들이군.’
아무리 하위 플레이어라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죽는다는 것은 그만큼 놈들이 강하다는 뜻이었다.
놈들이 비록 덩치가 특별나게 큰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놈들보다 몇 배는 강한 듯 했다.
꼬리의 독성도 문제지만 겉에 갑옷같이 단단한 껍질도 하위 플레이어에게는 무척 곤욕이었다.
하지만 실버 티어라면 최소 11레벨 이상이었기 때문에 잠시 당황하던 하위 플레이어들도 이내 놈들과 맞서 용감무쌍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나도 한 놈의 몸체를 오러검으로 꿰뚫어 버렸지만 놈은 죽지 않고 괴성만 질러대고 있었다.
순간 놈이 꼬리를 허공으로 쳐들며 내 정수리를 찍으려 하자 나는 재빨리 몸을 핑그르르 회전시켜 돌아가던 몸체 그대로 찍어 내려오는 꼬리를 단칼에 잘라 버렸다.
치어어엇!
꼬리가 잘려나가자 놈이 괴성을 지르며 우왕좌왕한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모습에 내 눈썹이 절로 꿈틀하며 한쪽 입가가 말려 올라갔다.
‘이 놈들 꼬리가 약점이었군.’
꼬리 잘린 놈이 비칠거리자 곧바로 내 검이 머리를 훑고 지나가니 놈의 몸체가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나는 곧바로 사신수와 공명해 놈들의 약점을 알려준 후 꼬리를 집중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주작은 온몸이 불길이니 독성에 가장 극성이라 놈들이 가장 무서워했다.
놈들에게 주작은 그야말로 독수리 앞의 쥐와 같은 꼴이었다.
현무는 등위의 뱀들 10여 마리가 3미터 길이의 몸체로 전갈의 몸을 휘감아 날카로운 이빨로 머리통을 물어버리니, 그 독성에 견디지 못하고 잠시 후 회색빛 몸이 검게 변하며 서서히 죽어 버렸다.
헌데 청룡과 백호는 둘이 협공해서 싸우고 있었다.
청룡이 허공에서 번개를 내리치면 전갈의 몸이 잠시 마비되는 틈에 백호가 재빨리 달려들어 전갈의 머리를 덥석 물어 분리시켜 버렸다.
그 뿐 아니라 주작과 청룡은 허공을 떠다니며 놈들을 공격하면서도 백호와 현무가 위험에 처하면 동시에 달려들어 백호와 현무를 여러번 구해주기까지 했다.
녀석들도 동료라고 서로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흐뭇한 마음이 들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체력이 65%로 떨어졌습니다.]
알림음이 울려와 미소 짓던 내 얼굴이 이내 다시 구겨졌다.
그 사이 뒤쪽에 있던 전갈 한 놈이 내 등에 뾰족한 꼬리를 찔러 넣은 것이었다.
촤라라락!
푸아아앗..!
곧바로 몸을 빙글 돌려 꼬리에 박힌 몸을 빼내며 연속 동작으로 놈의 꼬리를 잘라낸 후 머리통에 일 검을 꽂아 넣었다.
놈들을 많이 죽이긴 했지만 나 또한 그 사이 놈들에게 찔리고 물린게 여러 군데였다.
그렇게 얼마를 더 싸우는 사이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알림음이 다시 머릿속에 울려왔다.
[체력이 100%로 상승했습니다.]
드디어 17레벨로 승급한 것이다.
내가 지금껏 바라고 있던 것이 바로 이 알림음이었다.
내가 17레벨이 되니 사신수 또한 한층 더 강력해져 다시 힘이 나는지 종횡무진으로 놈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사신수 모두 레벨업을 하자 덩치 또한 조금 더 커져 전보다 더 위협적으로 놈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놈들에게 더욱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헌데 얼마 후 한창 날뛰던 전갈들이 웬일인지 좌우로 쫙 갈라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힐끔 그쪽을 보니 황금색 머리에 무척이나 핸섬하게 생긴 인간 한명이 검을 좌우로 휘두르며 중앙 쪽으로 이동해 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장난으로 검을 휘두르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장난질 한 번에 전갈 한 놈의 몸통이 어김없이 작살나고 있었다.
보통 놈이 아니라고 생각해 다시한번 자세히 보니 놈의 검에서는 내 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푸른빛의 강렬한 오러가 생성돼 있었다.
내 검의 오러가 검신만을 감싸고 있는 반면 놈의 검에서는 검 길이만큼의 오러가 검 끝에 더 생성되어 있었다.
나무 위에서 내려오기 전 이 자는 분명 없었는데 지금 나타난 것을 보니, 이곳으로 다가오던 마지막에 목격한 그 자가 틀림없었다.
한눈에 놈이 검술의 달인이라는 것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예전 교육원에서 보았던 미디어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소드 마스터..!’
놈의 오러를 보면 소드 마스터가 틀림없었다.
헌데 소드 마스터라면 최소 골드 중급인 25레벨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황금머리는 이미 20레벨에 이 맵으로 떨어져 지금껏 레벨업을 했다고 밖에는 생각 할 수 없었다.
가상 게임으로 골드 티어의 전투 장면을 관전하려고 했는데 실제 전투 장면을 목격하게 되자 나는 싸움을 잠시 등한시 한 채 황금 머리가 싸우는 모습을 자주 쳐다보게 됐다.
그는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정말 아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전갈들을 무심한 표정으로 해치워나가고 있었다.
하긴 골드티어가 실버 맵의 생명체를 처치하는 데에는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될 듯 했다.
잠시 그의 이런 모습을 지켜본 나는 그에게 질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금 오러검을 바싹 움켜쥐고 전갈들을 해치워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브론즈 맵에서 9레벨로 단숨에 실버티어인 15레벨까지 승급했는데, 이곳에서 나 만큼이나 빠른 승급을 한 플레이어를 보자 문득 호승심이 생겨났다.
그렇게 30여분을 죽기 살기로 해치우며 체력이 다시 75%로 떨어져 나갔을 무렵.
[체력이 100%로 상승했습니다.]
드디어 다시한번 레벨업이 됐다.
나도 이제 18레벨이다.
첫 번째 참가한 이 실버 맵에서 어쩌면 골드 티어까지 바로 승급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한껏 흥분되어 나도 모르게 얼굴 표정이 환해졌다.
헌데 문득 한쪽에서 알 수 없는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황금 머리가 나를 무심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 또한 오러검을 들고 싸우는 모습에 흥미를 느낀 것이라 여겨졌다.
피하지 않고 그의 얼굴을 나도 쳐다보니 무심함 속에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간 것이 나를 분명 비웃는 표정이었다.
마치 그깟 오러로 되겠느냐는 듯이.
마음속으로 나는 검사가 아니라 도술이 전문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사실 검술도 도사가 기본적으로 익혀야할 능력이었기에 놈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할 말이 없기도 했다.
놈이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다시 전갈 사냥을 하자, 나도 질 수 없어 공명으로 사신수를 독려하며 더욱 힘을 내 전갈들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레벨업을 하니 확실히 예전과는 또 다른 힘이 느껴져 오러가 한층 두터워졌을 뿐 아니라 도력 또한 더욱 상승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