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레벨업을 하라
여자와 사내가 다시 부딪치려하자 나 또한 곧바로 다시 부적 두 개를 꺼내 자루는 없는 양날이 무척 날카로운 단검을 두 자루 생성시켜, 마치 바람개비처럼 회전을 입혀 여자가 쏘아보낸 나무줄기를 향해 재빨리 날려 보냈다.
휘리리릿 슈라라라락
두 단검이 엄청난 회전력을 머금으며 줄기에 닿자 마치 톱날처럼 줄기들을 잘라나가기 시작했다.
만약 레벨이 더 높았다면 기로서 단검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정도의 능력은 되지 않아 아쉽지만 줄기를 몇 개 자르는 걸로 끝이 났다.
하지만 그 사이 사내가 여자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 내 공격이 그나마 도움이 되긴 했다.
솔직히 나도 오러가 입혀진 검을 들고 근접전을 펼쳐도 됐지만 사내가 근접전의 대가인 것 같아, 굳이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나는 원거리에서 지원만 해주기로 작정했다.
사실 내 목적은 두 사람이 싸우다가 서로 체력이 바닥나기를 바라는 것이었기에, 그러지 않는 것이 솔직한 내 본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내의 힘은 정말 대단해서 그녀가 뻗어내는 나무줄기들을 마치 오이를 동강내듯 토막을 내고 분지르며 점점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물론 사내도 내가 도착하기 전처럼 줄기에 여러 겹으로 몸이 감기면 위험해지겠지만, 그때마다 내가 단검이나 또는 날카로운 바람 등을 날려 보내 사내의 몸이 속박되는 것을 막아주고 있었다.
내가 원거리에서 이처럼 방해하자 그녀는 무척 화가 났는지 그때마다 마치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곤 했다.
확실히 도술은 여러 가지 공격을 가할 수 있어 단순하게 한 가지만 사용할 수 있는 직업보다는 무척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한가지 공격법만 꾸준하게 파고들어 수련하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이런 실전 전투에서는 상대가 전혀 짐작하지 못한 공격이 조금은 유리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플레이어들이 마법사나 도사들을 제일 껄끄럽게 생각하는 것이었고.
여자는 역시 레벨 값을 해서 사내와 내가 끊임없이 협공을 가했지만 아직까지도 제법 여유롭게 우리의 공격을 모두 방어하며 날카로운 공격을 해오고 있었다.
슈슈슉 솨아아앗
내가 무척 거추장스러웠는지 여자는 나를 먼저 죽여 버리려는 듯 곧바로 끝이 뾰족한 줄기 두 개를 나에게 엄청난 속도로 쏘아 보냈다.
다급한 김에 결국에는 급히 검을 생성시켜 오러를 입히고 부츠의 힘을 빌어 한쪽으로 재빨리 피하며 줄기 두 개를 그대로 잘라버렸다.
순간 여자가 놀란 듯 두 눈이 크게 떠지며 인상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 표정은 마치 ‘넌 마법을 사용하면서도 검에 오러까지 입혀 사용할 줄 아는냐’ 하는 표정이다.
검을 오른손에 들었지만 역시 그녀에게 접근해서 싸우는 것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 다시 술법을 발현해 공격하려는데, 갑자기 쿵 소리가 들려오며 사내의 두 다리가 줄기에 휘감겨 바닥에 자빠지는 모습이 보였다.
‘넌 아직 죽을 때가 아냐.’
아직 사내가 죽을 단계는 아니다.
나를 더 도와줘야했다.
사내의 약점은 처음 봤을 때 느낀 것이었는데 몸이 단단해 웬만해서는 상처를 낼 수 없었지만, 줄기 여러 개로 온 몸을 한꺼번에 조인다면 꼼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천하장사가 젓가락 한 두개는 쉽게 부러뜨리지만 여러개 모이면 부러뜨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곧바로 여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사내의 온 몸을 다른 줄기로 감으려하자, 내가 재빨리 다시 단검 두 개에 회전을 넣은 채 날려 보내 사내 몸을 속박하려는 줄기를 자르려했다.
헌데 여자가 그런 나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왼손을 비스듬히 휘저었다.
순간 여자를 감싸고 있던 몸에서 다시 두개의 줄기가 뻗어나와 재빨리 내 단검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두두둑 투투툭
줄기에 가로막힌 단검이 곧바로 회전력을 잃으며 허공중에 사라지고, 사내의 몸은 다시 뻗어나온 줄기에 팔과 함께 온 몸이 꽁꽁 묶인 신세가 되어버렸다.
헌데 이때 조금은 가는 줄기가 여자 몸에서 솟아나와 사내의 목을 휘감으며 바싹 조이는 것이 아닌가.
‘저러다 정말 죽겠군.’
목이 휘감긴 사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지며 켁켁 거리는 것으로 보아, 지금 체력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다시 품속에서 부적을 꺼내 바람의 칼날을 쏘아 보냈지만 역시 이번에도 여자가 뻗어낸 줄기에 막혀 힘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사내는 정신이 가물거리는지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며 조금씩 하예지기까지 했다.
‘저놈은 내 밥이어야 하는데.’
저렇게 그냥 여자에게 죽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 기분은 마치 내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느낌이 든다.
‘어쩔 수 없군.’
돌격 소총은 나중에 더 요긴하게 쓸데가 있을까 해서 될 수 있으면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상황이 이러니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구해줄 수 없는 이상 저대로 두면 사내는 그냥 죽는다.
총을 난사하면 혹시 마지막에 내 총알로 죽을 수도 있는 일이겠지.
사내가 죽고 나면 이제 나 혼자 저 여자를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저대로 사내가 죽어도 어차피 상대할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
있는 아이템이나 쓰고 죽자는 심정으로 곧바로 오른손에는 오러가 입혀진 검을, 그리고 왼손에는 돌격 소총을 힘껏 움켜쥐고 쓰러져 있는 사내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순간 여자가 눈빛을 반짝 빛내며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도 가소로운 것이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조금 더 접근하자 여자는 여전히 사내의 몸을 마치 미이라처럼 줄기로 온몸을 조인 채 다른 줄기를 연신 나에게 날리고 있었다.
오러가 입혀진 검은 웬만한 굵기의 줄기는 한번에 두동강을 냈다.
어느 정도 다가서자 줄기가 내 검에 정리되어 조금은 줄어들어 있었다.
타타탕 탕탕탕탕
파파팟 퍼퍼퍼퍼퍽
곧바로 사내를 향해 총알을 갈기자 몸을 조이고 있던 줄기가 한순간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총알 정도로 상위레벨의 체력을 단숨에 떨어뜨릴 수는 없지만 나무줄기는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처음에 여러군데 마구 쏘아대다가 생각을 바꿔 목을 감고 있는 줄기에만 갈기니, 목을 조이고 있던 줄기가 어느새 끊어져 내 총알이 사내의 목에 연신 박혀 들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총알이 계속 박히다가는 가랑비에 속옷이 젖듯 내 손에 사살될 것은 당연했다.
쉬리리릿
여자가 내 작전을 눈치챘는지 눈썹을 꿈틀거리며 다시 여러개의 줄기를 날려 공격했지만, 역시 왼손에 들고 있는 검으로 계속 쳐내자 줄기들이 토막나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득 여자의 식물술사 능력은 도사인 나와 상극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사내의 몸이 내 총알 세례에 연신 갓 잡아올린 물고기처럼 퍼득이며 곧 죽을 것 같은 모습을 보이자, 여자가 다급했는지 나를 제쳐두고 다시 줄기로 사내의 목을 휘감으려했다.
여자가 아무리 상급 레벨이었지만 두 군데를 공격하며 마음을 나누면 아무래도 살상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제 나를 놔두고 우선은 사내 먼저 죽이려 하니 줄기의 강도가 조금은 강해진 듯하다.
하지만 나를 내버려두니 내가 가만 있을리 없었다.
여자가 다시 사내의 목을 감기도 전에 나는 재빨리 사내에게 다가가 오러의 검을 목에 깊숙이 찔러 넣어, 마치 드릴을 돌리듯 좌우로 마구 휘저으니 사내의 목이 한순간 너덜거리며 곧바로 유리알처럼 부서져 버렸다.
“이, 이 나쁜 놈! 감히 내 밥을 네놈이..”
여자도 사내를 자기 밥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제 총알도 모두 떨어지고 사내도 내 손으로 사살한이상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재빨리 소총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급히 뒤로 물러나려했다.
하지만 화가 단단히 난 여자가 두 눈을 부릅뜬 채 두 손을 들어 올리니 수많은 줄기들이 나 하나만을 향해 뻗어오기 시작했다.
‘이번 게임은 여기서 끝인가?’
사내가 죽고난 마당에 이제는 더 이상 나 혼자 여자와 상대할 수 없어 여기가 한계라고 생각하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했다.
수없이 뻗어오는 줄기를 향해 3발 남은 유탄을 발사해볼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 줄기에 둘러싸인 여자는 사살할 수 없어 그냥 검술 수련이나 하는 셈 치고 뻗어오는 줄기들을 향해 마주 몸을 날려갔다.
츠아앗 쉬리리릿
파파팟 촤랏
부츠의 능력까지 더해 사방을 에워싸며 다가오는 수십개의 줄기들을 한순간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쳐내자, 순식간에 내 몸을 감아오려던 줄기들이 두 토막 나며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줄기들은 생명력이 없어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해 곧바로 다시금 내 몸을 에워싸며 나를 위협하며 또다시 공격해 왔다.
검과 함께 부적을 사방으로 날리며 방어해보려 했지만 역시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한동안 그나마 간신히 방어만을 하며 버티고 있던 그때, 갑자기 등 뒤를 강타하는 엄청난 충격에 내 몸이 휘청했다.
[띠링! 체력이 105%로 줄었습니다.]
다행히 치명상은 아니라 체력이 그리 많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또한 레벨이 올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팔뚝 굵기의 줄기가 내 등짝을 후려치자 그 고통에 잠시 정신이 멍해진 사이, 기어이 그녀가 재빨리 뻗어낸 조금은 가는 줄기에 두 다리가 휘감기며 곧바로 내 몸이 그대로 땅바닥에 나자빠졌다.
이런 기회를 놓칠 그녀가 아닌지라 한순간 사방에서 줄기가 날아와 내 몸 전체를 꽁꽁 감싸버렸다.
이제 정말 옮삭달삭도 하지 못하는, 말 그대로 미이라가 되어버렸다.
바닥에 쓰러진 채 줄기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아무 능력도 사용할 수 없는 처지에서 굵은 줄기를 벗어나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이 나쁜 놈, 간사한 수작으로 내 경험치를 뺏어가? 그 댓가로 네놈에게 최대한 고통을 맛보게 한 후 무참히 죽여주겠다.”
그녀의 성격을 보니 설사 내가 사내를 죽이지 않았다고 해도 어차피 나를 고통스럽게 죽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누구나가 그랬지만 나또한 고통이야 랭크게임에 참가하고부터는 각오를 하고 있던 터라 겁날 것은 없었다.
“마음대로 해봐라, 어차피 난 네년 대신 경험치를 획득했으니 이제 죽어도 상관은 없다.”
“이, 개잡놈! 어디 한번 맛좀 봐라.”
“그래 어디 맛 좀 보여다오. 헌데 정말 아깝구나.”
“뭐가 아깝다는 것이지?”
“네년을 내 밑에 깔아뭉개주고 싶었는데, 그게 안되니 아깝다는 말이지.”
“이, 이.. 나쁜 놈. 그러고도 아직 주둥아리가 살아 있으니 우선 네놈 아가리부터 찢어줘야겠구나.”
“맘대로 해라, 하지만 다음에 날 만나면 조심하는게 좋을 거야, 네년이 아무리 잔인하게 날 죽인다고 해도 난 네년이 하나도 겁나지 않아. 언젠간 네년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일 때가 반드시 있을 것이란 것을 명심해라.”
내가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꾸하자 그녀의 눈에 마치 불길이 들어있는 듯 이글거리며, 입술을 앙 다문 채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더할 수 없이 화가 난 그녀가 곧 가는 줄기를 뻗어내 내 목을 감아오며 점점 조이기 시작했다.
“컥.. 끄르르르.”
곧바로 숨이 막혀오며 눈앞이 노래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 곧바로 끝이 아주 뾰족한 줄기 하나를 더 뻗어내, 이미 줄기에 칭칭 감긴 내 배에 뾰족한 끝을 갖다 댔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라.”
말을 하고난 계집이 송곳같이 갈라진 줄기 끝을 서서히 배에 찔러 넣기 시작했다.
[띠리! 체력이 90%로 줄었습니다.]
목을 조이며 배에 부상을 입자 곧바로 체력이 떨어졌다.
이제 서서히 체력이 떨어지며 죽을 시간만 기다려야 할 판이다.
[띠링! 체력이 80%로 떨어졌습니다.]
아름답지만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서서히 죽이려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래도 고통을 내색하지 않은 채 일그러진 얼굴에도 슬며시 미소를 지어주었다.
헌데 그녀가 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목을 더 조이며 줄기를 배에 더 깊이 박아 넣으려던 그 순간.
꽈꽈꽝 퍼퍼퍽
30여 미터 반경에 둘러쳐진 줄기와 넝굴로 만들어진 울타리 한쪽이 폭발음과 함께 터져나가며 뻥 뚫려버렸다.
“이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