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1화 〉41화입니다. (41/75)



〈 41화 〉41화입니다.

“설마하니 메르씨엘 남작이 소개해준다던 사람이 이릴 양과 각별한 사이일 줄이야.”


덜그럭거리며 찻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작은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눈물의 해후를 마친 비올렛은 알폰스의 옆에 자리했다. 이릴 역시도 후작의 옆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었다. 기적적으로 다시 만났으니 잠깐이라도 떨어지기 싫었으나 하지만 서로의 입장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기막힌 우연이군. 안 그런가?”

“예, 저도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알폰스는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후작은 그에게 시선을 주고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비올렛에게 향했다.

“그래서 이릴 양과 각별하신 숙녀분은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

“...비올렛.”


“비올렛이라! 옛날 생각이 나는 이름이군. 메르씨엘 남작, 혹시 기억하는가?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리윈 왕국으로 출정했을 때 말이지.”

“리윈… 예, 기억나는군요.”

알폰스는 겨우 이름을 떠올렸다.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였으니 바로 떠올리긴 쉽지 않았다.

리윈 왕국. 비젠 제국의 남서부에 국경을 맞닿고 있는 소왕국이었다. 영토는 작았으나 내실이 나쁘지 않은 국가였다. 바다와 맞닿아 있어 배를 이용한 무역을 주력으로 했었고 날씨도 온화해 제국 귀족들이 휴양지로 자주 향하고는 하던 곳이었다.

당연하게도 제국과 그리 사이가 나쁜 곳은 아니었다. 리윈은 현명했으며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역대 모든 왕들은 제국에게 협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당대 왕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잘못된 선택 한 번으로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었다. 제아무리 제국이라고 하나 수백 년간 교류해온 왕국을 그리 쉽게 멸망시키리라고는 말이다.

‘지금은 리윈 지방이라는 이름이었던가.’

어차피 후작이 말하는 것은 그런  아닐 것이었다. 알폰스는 생각을 마치고 귀를 열었다.

“...군사를 끌고 남부 지방을 경유해서 내려가는데 제국이 좀 넓어야지. 출정을 명받았다고는 하나 제국 수도에서 남서부 국경까지 거리가 얼만가? 모든 병사가 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주일을 쉬지 않고 달려야하는데 말이야.”

“황제 폐하께서도 너무 하셨지요. 두 달 안에 전쟁을 끝내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그렇지. 고작 소왕국이라고 하나 왕국은 왕국인데 말이야.”

만약 리윈이 죽기 살기로 성문을 걸어 잠그고 저항한다면 두 달로는 부족했을 것이었다. 자신의 백성을 사랑한 왕이 일찍 항복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결국 부사령관에게 군대를 맡겨 뒤따라오게 하고 기사들과 먼저 출발했었지. 남작과 처음 만난 것도 그때가 아닌가?”


“예, 기억납니다. 애송이었지요.”


“애송이, 애송이라.”


후작은 그 말에 기억을 더듬었다. 지금보다 젊은 남작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사가  지 3년 차, 실전에 투입된 경험도 없으며 전쟁이 사실상 그의 첫 데뷔전이라고  수 있었다. 애송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처음 본 후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메르씨엘 남작은, 아니 알폰스 경은 이미 완성된 기사였다.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에 특화된 인종을 기사라고 부른다면 말이다.

검술로서는 이미 기사단 내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고 훗날 전장에서 적을 베는데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마치 수많은 전장을 헤쳐 온 베테랑처럼말이다.


그런 그를 애송이라고 부를  있는 사람은 아마 제국 내에서도 한 손으로 꼽아도 얼마 없을 것이었다.


“그래, 그때는 애송이였군.”

그리고 후작은  중 한 명이었다. 제국의 위대한 기사가 미소지으며 말하자 아직 젊은 기사가 옅게 웃었다.

“아무튼, 그렇게 말을 바꿔 타며 달리다 어느 마을에 도착했었지.”

몇 날 며칠을 없이 달려왔고 국경까지 도착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말도 사람도 모두 지쳐 있었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도중에 나타난 마을이 아니었더라면 탈진해서 쓰러졌을 것이었다. 그곳을 다스리는 귀족은 후작이 이끄는 무리를 환영했고 하루를 그곳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게야.”


보이는 초원 위를 모두 뒤덮고 있는 무수한 보랏빛을 말이다.

“난생 그렇게 많이 피어 있는 제비꽃을 본 적이 없었네.”

후작은 아련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그때를 떠올리니 그날 보았던 풍경이 다시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있던 후작의 시선이 이릴에게 향했다.


“이릴 양은 그런 경험이 없나? 경이로운 것을 보고 한참을 넋 놓고 봤던 기억이 말이야.”


“경이로운 것, 말인가요...”

이릴은 조용히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렇게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런 건 딱히 없는  같아요.”


“아쉽군.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그런 경험을 꼭 하기를 바라네.”

후작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내뱉고는 고개를 돌려 비올렛을 바라봤다.


“비올렛 양은 어떤가?”


“그런 걸 신경 쓰면서 살 수 있던 삶이 아니라 모르겠네.”

그녀의 무례한 태도에 주변에 시립해 있던 사용인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레니 역시도 경악한 표정으로 몸을 떨며 비올렛을 바라봤다.


“그런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


그들의 반응과 달리 후작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 변화 없이 손을 들었다. 레니가 쪼르르 달려와 그의 옆에 섰다.

“내 검을 가져와라.”

레니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설마하니 무례를 저지른 비올렛을 직접 벨 셈인 걸까? 마음 같아서는 그것을 거부하고 싶었으나 그녀가 아니더라도 사용인은 많았기에 결국 검은 이곳에 도착할 것이었다.

비올렛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레니는 고개를 꾸벅이며 식당을 나섰다.


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보며 후작이 말했다.


“그래, 검술을 가르친다고 했던가? 얼마나 됐지?”


“이 주가 조금  되었지요.”

“이 주… 너무 짧군.”


짧다면 짧고 길다면  시간이었으나 후작은 그렇게 말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 시간은 겨우 기본기에 익숙해질 기간이었다.


"전에 가르치던 노예는 얼마나 됐었지?"


"반년 조금 되었을 겁니다."


"반년이라, 그 치도 안타깝군. 죽지만 않았더라면지금 볼만했겠어."

마지막으로 봤을 때를 떠올려보면 견습 기사보다 조금 아래 정도의 실력이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고작 반년 만에 기사의 턱걸이에 닿은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있었더라면, 준기사 급은 되었겠지. 후작은 미약한 아쉬움을 토해냈다.

"그 녀석보다는 비올렛이  더 강할 겁니다."


알폰스의 담담한 말에후작의 눈이 크게 뜨였다.

"더 강하다고? 이제 겨우 이 주 가르쳤다고 하지 않았나?"

"보시면 알 겁니다."

"허어…"


자신하는 모습에 눈을 끔뻑거렸다.

'뭐라는 거야 이것들?'


비올렛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오가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니 아무래도 대련 같은 것을 시킬 생각인가 본데 솔직히 말해서 귀찮았다.


그녀는 빨리 이 공간에서 벗어나 이릴과 단둘이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릴역시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간혹이쪽을 보며 입을 달싹거리는 것이 묻고 싶은 게 상당해 보였다.

물론, 알폰스나 후작이 별다른 일을 벌어지 않는다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는 사이 후작의 말을 듣고 나갔던 레니가 검을 품에 안고 들어왔다. 그녀는 헥헥 숨을 고르고 후작의 곁으로 다가가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검을  손으로 후작에게 들어 올렸다.

후작은 그것을 잡으며 말했다.

"지금 바깥에 누가 있느냐."

"후트 경이 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용인 하나가 그렇게 말했다. 이름을 들으니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평민 출신이었고 작년 도적 떼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운 좋게 기사의 눈에 들어 견습 기사로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경, 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견습이었기에 작위도 없었고 기사에게 붙는 종자와 말 역시도 없었다. 그렇기에 견습 딱지를 떼고 정식 기사가 되기 위해 공에 목말라 있었다.

적절한 상대였다. 견습이라고는 하나 실력은 기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만큼 나쁘지 않았다.

생각을 마친 후작이 알폰스를 보며 말했다.


"남작이 그리 말하니 한 번 보고 싶은데 괜찮겠나?”

“안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고맙군. 후트 경에게안으로 들어오라 전하게.”

 말은 곧바로  바깥의 후트에게 전해졌다.

후트는 후작이 자신을 불렀다는 말에 황급히, 하지만 그 티를 내지 않으며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후작 각하.”

“후트 경에게 작은 부탁이 있는데들어줄 수 있겠나?”

그 말에 후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알에리 후작이나 되는 사람이 제게 부탁이라는 단어를 쓴다니? 도대체 어떤 일을 맡기려고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황급히 말했다.

“부탁이라니, 제게 가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명령하신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대에게는 조금 껄끄러운 일일 수도 있으니 하는 말이네. 원치 않는다면 하지 않아도 좋아.”

“아닙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후작은 흐뭇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어가며 말했다.


“연무장을 비워두게. 검 한 자루를 더 들고 오도록 하고, 비올렛 양이 요구하는 게 있다면 들어주도록 해. 그리고 후트 경.”

“예, 후작 각하.”


후트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 검 한 자루가 보였다. 두 손으로 공손히 그것을 받아들자 머리 위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대련에서 비올렛 양을 베게.”

“예…?”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저도 모르게 그런 멍청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후트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서 양이라는 호칭이 붙을 수 사람은  사람뿐이었다.

이릴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가끔 후작이 그녀를 불러 담소를 나누고는 했으니 말이다. 그녀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두 사람인데  명은 손님으로  귀족의 종자로 보였으니 아닐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명이 비올렛이라는 건데… 후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비올렛으로 추정되는 여인을 바라봤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머리 위에는 커다란 토끼 귀 한 쌍을 달고 있었기에 마물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아름다운 여인, 그것도 무척이나 가녀린 여성으로 보였다.


그런 이를 베라니? 후트는 무례임을 알면서도 입을 열었다.

“후작 각하, 외람되지만 비올렛 양이라는 분이 저기 토끼 귀를 지니고 계신 분이 맞습니까?”


“그렇다만. 문제라도 있는가?”


“제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평범한 여인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하지 않겠다?”

후작의 어조가 달라졌다. 후트는 냅다 엎드리며 외쳤다.

“아닙니다! 감히 제가 후작 각하의 말을 거부하겠습니까!”

“자네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걸세. 만약 일이 좋게 이어진다면 자네가 원하던 일이 이뤄지겠지.”

후트는 황급히 고개를 쳐들었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한가지 뿐이었다.

“최선을다하겠습니다!”

그 일련의 흐름을 보며 비올렛은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자신의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난 한다고 안 했는데?”

“어차피 비올렛에게는 거부권이 없는 거 알잖아요, 켁.”

“넌 조용히 해.”

옆구리에 짧게 틀어박히는 주먹에 샬럿이 몸을 웅크렸다. 후작은 고개를 돌려 비올렛을 바라봤다.

“비올렛 양에게도 나쁜 이야기가 아니리라 생각하네. 대련에서 이긴다면 간단한 부탁 정도는 들어주도록 하지.”

“간단한 부탁이라… 나와 이릴을 풀어달라고 하는 건?”

후작은 대답 없이 웃었다. 안된다는 뜻이었다. 비올렛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에게 사용인 하나가 다가왔다.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

“필요한 거라…”

비올렛은 자신의 옷을 내려다봤다. 검은색 드레스. 안그래도 얇은 허리를 더 얇게 만든다고 조여서 복부에 압박이 강했다. 어디까지나 파티용 드레스였기에 활동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는 어려웠다.

“옷이 필요해. 움직이기 편한 걸로.”

“활동성이 좋은 것으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저, 제가 도와도 될까요?”


가만히 앉아 있던 이릴이 말했다. 사용인은 후작을 바라봤다. 그는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자, 잠깐 그건 제가  일…”

고통에 몸을 부들거리는 샬럿이 그렇게 외쳤으나 두 사람과 사용인은 매정하게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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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비올렛이 줘팸.


덧글을 보니까 여러분들의 걱정하는 것이 뭔지 알겠습니다.

당장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을 테니 독자 여러분들은 안심하시고 소설을 즐겨주십시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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