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3화 〉100화. 벽화 (103/106)



〈 103화 〉100화. 벽화

< -- 114. 벽화 -- >

분명 왔던 길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출구가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릴리, 우리가 이 길로 온 거 맞지?"


내 물음에 릴리는, 심각한 목소리로 답해줬다.

"응,  길로 온게 분명해"
"더군다나 여기는 일직선이잖아"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우리들이 걸어왔던 길은 쭉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길이었다.

"이 정도 걸었으면 나와야 되는데... 어떻게 된 거지...?"

릴리의 말을 들으면서 고민에 잠겼다. 아누비스... 파라오... 피라미드... 미로... 내 생각이 맞다면 우리는 지금 미로에 갇힌게 틀림없다. 지구에서의 영화와 소설의 클리셰로 미루어 짐작해본 바,  상황과 딱 들어맞았다.


다리에 힘이 돌아오게 되면서 델타에게 그만 부축해줘도 된다고 말해줬다.

그렇게 하염없이 걸었다. 끝끝내 출구는 우리들 앞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아내들과 루이즈에게 내 생각을 말해줬다.

"우리들은 아마도 미로에 갇힌 것 같아"

"미로? 설마... 미로라면 다른 길도 있어야 되는데, 여기는 쭉 일직선 밖에 없는걸"


릴리의 말이 타당했으나 지금은 그것 말고는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촛대에 꽂아진 초가 거의 다 타고 있었다.
결국 얼마 못가 초가 다 타 버리고, 우리들은 어둠에 휩싸였다.

그 순간 내 눈에 벽에 아누비스의 그림이 새겨져 있음이 보여졌다. 측면으로 그려진 아누비스의 머리는 마치 내게 길을 안내하는 것처럼 보여졌다. 그러한 아누비스 벽화가 벽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여기 벽에 뭔가 그려져 있는데?"

"어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녀들은 내 말을 부정하면서 의문을 표출했다. 내 눈에는 또렷이 보이는데, 왜 그녀들 눈에는  보이는건지 모르겠다. 혹시 나만  수 있는 그런 특수한 장치가 걸려져 있는 것인가?

"남편, 나 무서워..."

옆에 서있던 델타가 내 팔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몸을 오들오들 떨어댔다.

칠흑같은 어둠. 하지만 내 눈에는 아누비스의 노란색 눈동자가 번뜩이고 있어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델타야, 언니가 금방 불 켜줄게"

어둠 속에서 릴리가 지팡이를 들어올리는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지금 불을 키면 안된다. 어쩌면  벽화를 따라가면 이 미로에서 빠져나갈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릴리, 지금  키지마"


"안 키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걸"

"날 믿고 키지 말아줘"
"내가 인도할테니깐 내 손 잡아"

 요청으로 릴리는 내 손을 잡았고, 그녀의 손을 랄라와 델타, 루이즈가 꼬리를 물 듯이 잡고 있음이 보여졌다. 이렇게 하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남편, 믿어도 되는거지?"


"나만 믿어"

랄라의 물음에 호기롭게 답하면서 벽화를 따라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어차피 일직선 길이었으니 아까처럼 그저 앞으로 걷기만 했다.


"저기...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기분인데요?"

"야! 남편이 무슨 생각이 있다잖아"
"한 대 맞을래?"


"죄.. 죄송해요"


"랄라, 화내지 마"
"루이즈 씨 죄송해요, 랄라가 원래 자상한 성격인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깐"

"아,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녀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돌연 벽화가 왼쪽으로 꺾여 들어갔다. 뭐지? 분명 옆으로 난 길은 못봤었던 것 같았는데...

발로  벽을 툭툭 쳐보니 허공이었다.
왼편을 향해 걸어갔다.

"레오, 왼편의 길이 나있었나?"
"분명 우리가 걸어온 길에서는 못봤었는데?"


"남편, 나 무서워"
"언제 도착해?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이 년이 꼭 이런 상황에서.. 참아"

"나 못 참겠어!"
"쌀 것 같단 말이야!!"


뒤를 쳐다보니 델타가 랄라에게 엉겨붙어서는, 떼를 쓰고 있었다. 일단은 여기서 잠시 멈춰야 되겠다.


"일단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델타도 볼  보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노려봤다. 불현듯 누군가가 내 손을 붙잡았다. 델타였다.

"남편 맞지?"

"맞아, 무슨 일 있어?"


"나 무서워서 남편 곁에서 볼 일 보고 싶어"


델타의 말에 릴리가 황급히 말해왔다.

"델타야, 그건 안돼"
"자 언니랑 저쪽가서 하자"

"싫어! 나 무섭단 말이야!"
"남편 곁에서 할거야!"

"이 년이 진짜!"
"너는 수치심도 없냐?"

앙칼진 랄라의 목소리가 날라들어오자 델타가 빽 소리를 질러댔다.

"남편은 괜찮아!"
"남편은 델타 엄청 사랑한다고! 그렇지?"

"그렇고 말고"
"남편 옆에서 하자"

아누비스의 눈동자에서 빛나는 노란 빛을 통해 델타가 바지를 내리고서는, 쭈그려 앉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들의 눈에는 안 보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조금이나마 보였다.


예의상 눈을 돌려줬다. 손만은 델타가  쥐고 있어서 바로 옆에 착 달라붙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쪼르르르르

계곡물 소리가 들려 얼른 화제를 돌렸다.
우리들은 현재 미로에 갇혀있는 상황이고, 어둠에 갇힌  상황에서 오직 나만이 유일하게 벽화를 볼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과연 아누비스가 인도하는 대로 가면 출입구가 나올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위험한 곳으로 이끄는 걸지도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앞쪽 길에 아누비스 같은 녀석들이 나타나기라도 했다가는 죽은 목숨이다.

"릴리, 스켈레톤 좀 소환할 수 있겠어?"
"앞쪽으로 먼저 보낼려고 하는데"


"문제 없어"
"몇 마리면 될까?"

"한 두 세마리면 충분할  같아"


릴리가 주문을 외우자 일순간 번쩍하고 빛이 비춰졌다. 그때 어둠이 사라졌고, 벽화도 같이 사라졌다. 주문이 끝나자 어둠이 다시 찾아왔고, 벽화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스켈레톤을 앞쪽으로 보내자마자 델타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휴우ㅡ 시원하다"
"남편 나 다 했어"


옆을 쳐다보니 그녀는 일어나서 바지를 입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대신 입혀줬다.

"델타 너 때문에 내가 늙는다 늙어"


랄라의 푸념이 들려옴과 동시에 델타의 맞받아치는 말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여기서 빨리 나가야겠다. 어둠 때문에 아내들의 심기가 많이 불편한가보다.


앞쪽에서 들려오는 스켈레톤들의 발소리를 귀기울이면서 벽화를 따라 걸어갔다.


한참을 걷자 저 앞쪽에서 초록색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있는 광경이 보여졌다. 저 빛은 분명 세른에서 내뿜어지는 빛과 그 색이 비슷했다. 드디어 빛이 있는 공간에 도착했다. 출입구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일단 빛이 있는 공간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아내들과 루이즈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니 다들 뛸 듯이 기뻐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마침내 빛이 있는 공간에 들어섰다. 눈이 확 트이고, 마음이 빠르게 안정되어져 가고 있었다.


우리들이 들어선 공간은 이집트 신전의 내부를 연상케 했는데, 벽에는 상형문자들이 새겨져 있었고, 거대한 이집트 조각상들이 서로를 마주 본 채로 벽면에  달라붙어있었다.  멀리 앞에는 검은색의 거대한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이,이건 대체..."


릴리는 이런 광경에 놀라워하면서 벽면을 손으로 흝어내렸다.


"전혀 다른 문자야"
"혹시 창조기 때 썼던 문자가 아닐까?!"

학구열을 불태우는 릴리와는 다르게 랄라나 델타는 바닥에 앉아서는, 피로를 풀었다. 루이즈는 이곳 저곳을 손으로 더듬으면서 호기심을 표출했다.

지구에서 사진으로 많이 봐온 내게는 딱히 놀라울 것이 없어, 그냥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앉으니 몸이 노곤노곤해져왔다. 재빨리 아내들 품에 파묻혀서 피로를 풀었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한게 가히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쉬고 있다가, 랄라가 릴리에게 말을 건넸다.

"언니, 이리 와서  쉬어"

"좀만 더 보고"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해"


우리가 있는 이 공간은 규모가 꽤 상당했다. 천장고는 말할 것도 없이 높았고, 천장에는 태양신 '라'가 프레스코화마냥 그려져 있었다.


천장에서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께름칙했다. 서둘러 릴리를 불렀다.

"릴리, 나중에 남편이랑 같이 보자"
"그러니깐 지금은 일로 와, 랄라 말대로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해"

내가 말하자 릴리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릴리는  곁으로 돌아와 앉아서는, 자그마한 입술을 열고 병아리마냥 삐약거리며 연달아 말을 토해냈다.


"레오, 이건 정말 역사적 발견이야!"
"투트 앙크 아멘은 어쩌면 소환되기 전의 세계에서는 굉장한 왕이었을지도 몰라!"


(굉장한 왕이라, 젊은 나이에 요절한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그리고 딱히 업적도 없었고, 매체에서 알려진 걸로는 투탕카멘의 저주... 저주?)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져왔다.
투탕카멘의 저주는 무덤을 발견한 자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이었다.


(참 그건 거짓으로 밝혀졌지)
(자신의 무덤을 찾은 자에게 축복을 내려준다는 문구가 잘못 와전된 거였었어)


솔직히 지구에 그러한 미신이 어디 있겠는가? 이세계라면 모를까... 이세계? 그러고보니 내가 있는  곳이 이세계였고, 실제로 저주가 있다.

안도감이 다시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망자의 서에도 적혀있었잖아, 내 보물과 영광을 취하라고)
(거짓으로 밝혀졌기도 했고... 하지만 여기는 지구가 아니니깐...)

"남편, 옷 벗어줄까?"

랄라의 말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벗어나고 나니 현재 내 양 손이 랄라와 델타의 한 쪽 젖가슴을 움켜쥔  조물락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답했다.


"아니, 지금 이대로가 좋아"


다시 상념에 빠졌다.

(본인이 그렇게 말했는데, 저주가 있을리가 없지)
(만약 있다면 씨발새끼인거고)

생각을 갈무리하고 난 뒤에야 젖가슴을 주무르는 것을 멈추었다. 손에 남아있는 부드러움을 떠올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우연히 루이즈의 시선과 맞닿았다. 그녀의 볼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 그녀를 지나쳐 옆에 난 거대한 의자를 쳐다봤다. 엄청나게 컸다. 마치 거인족을 위한 의자인  같았는데, 방도 그렇고 의자도 그렇고, 이 곳이 저기에 앉을 누군가를 위한 공간인 것 같았다.


한참을 쉬고  연후 천막을  준비를 했다. 일단 이곳에서 한 숨 자고 난 연후 다시 탐색에 들어가는게 좋겠다는 판단하에 그런 것이다.

천막을  연후 들어가 몸을 뉘었다.

"내일이 정말로 기대돼!"
"과연 어떤 새로운 지식들이 눈앞에 나타날까?"

"언니, 그것보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갈 출구부터 찾아야하지 않을까?"

내 양 옆에 낀 릴리와 랄라는 대화를 주고받았고, 델타는 내 자지를 머금은 채로 사정을 유도하고 있었다.

"이런 유적의 특성상 항상 마지막에 도달한 곳에 출구가 있기 마련이야"


"그치만 여기는 입구고 뭐고 없는데?"


"아마도 숨겨진 방이 있을 거야"
"이제 그걸 우리들이 찾는거고!"
"레오, 나 지금 무지 설레. 오래전부터 이런 유적을 탐험해보고 싶었거든"

자신의 가슴을  가슴팍에 뭉개면서 해맑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 사정감이 몰려오더니 그대로 델타의 입 안에 토해냈다.

크게 꿀꺽 소리를 낸 델타는 이내 내 가슴팍에 누워서는 잠을 청했다. 릴리와 델타도 대화를 멈추더니 이윽고 곤히 잠들었다. 오늘은 무척 피곤한 날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오직 나만이 잠이 안  뜬 눈으로 천막의 천장을 쳐다봤다.
오늘 같이 그런 놈들이 나타나면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조심스럽게 그녀들의 품에서 몸을 빼내었다.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있는 그녀들의 위로 담요를  덮어준  밖으로 나왔다. 세른의 빛이 눈부셨다.


"하악ㅡ 하악ㅡ 하악ㅡ"

옆에 세워진 루이즈의 천막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뭐하길래 저런 소리를 내는 건지 걱정되어 살펴보러 갔다. 앞 전에 있었던 아누비스와의 대결에서 어디 다치기라도 한 것인가?


천막문을 살짝 열어젖히니 그녀가 알몸상태로  다리를 활짝 벌린  자위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기다란 손가락은 자신의 조갯살을 쑤시고 있었으며,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젖꼭지를 꼬집어대고 있었다.


황급히 시선을 돌린 채 거기서 벗어났다.
결혼도 하지 않은 여성의 자위행위를 목격해버려 마음이 불편했다.
왠지 몹쓸 짓이라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러나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얼마나 해대는지 멈출 낌새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거대한 의자를 구경하러 갔다.

웅장하면서도 거대한 의자.


정말이지 이런 걸 어떻게 지었는지 궁금하다. 의자의 표면에는 무수히 많은 상형문자와 함께 장식들이 새겨져 있었다. 금칠까지 되어져 있으니 가히 호화로움의 극치였다.

위를 올려다봤다.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을 쓴 거구의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이,이게.. 무... 슨?"

바지만 입고 있는 거구의 사람이 나와 시선을 마주 대했다. 황금가면의 인위적인 검은색 눈동자에서 그 안에 있을 사람의 강렬한 눈빛이 느껴졌다.

숨이 졸라왔다. 누군가가 내 목을 조르는 것만 같았다.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자는 입을 열고 내게 물었다.


"용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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