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65화. 격전(2)
"이런 제기랄!!"
본대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나와 덩치가 맞먹는 늑대인간들이 침으로 번들거리는 이빨을 내밀며 바로 코 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이놈들의 외형은 수인이 아니라 그냥 늑대가 두 발로 서있는것이나 다름없었다.
"으아아아악!!!!!!"
흡혈귀들이 모험가들을 밀치고 지나감과 동시에 늑대인간들이 모험가를 덮쳐왔다. 첫 희생자는 덩치 좋은 남성 모험가였다.
덮쳐지기 시작하면서 모험가들은 각자 무기를 빼들고서는, 녀석들에게 맞서 싸웠다. 초반에는 제법 선전하긴 했으나 그것도 잠시, 점차 뒤로 밀려나면서 나중에는 도망치는 자들마저 속출하게 됐다.
"얌마! 어딜 가는거야!!!"
"같이 싸워야지! 씨발놈아!!"
녀석들의 손톱공격을 구르기로 피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으나 답변은 돌아오질 않았다.
"랄라야! 우리도 튀자!"
"여기 있다가는 개죽음이야!"
늑대인간들의 정수리를 으깨버리고 있던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델타도 황급히 달려와서는 내 코앞에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알겠으니깐 빨리 도망치자"
서둘러 뒤를 돌아 본대쪽으로 도주하려던 도중, 먼저 달려가고 있던 모험가들이 아군 기병들의 손에 의해 무참히 도륙당하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전쟁에서 탈주는 사형이다. 전쟁터에서 이탈하는 것 또한 탈주나 진배없다.
"지원군 왔으니깐 조금만 더 버티자"
"알겠어, 남편 말 따를게!"
"새 년이 목소리는 우라지게 크네"
"조용히 안해? 너 지금 정체 숨기고 있는 중 아니냐?"
"듣는 사람 아무도 없거든!"
그녀들의 말다툼을 무시한 채 놈들의 공격을 차례차례 막아냈다. 다행히 놈들의 체구가 나와 비슷해 상대하기가 수월했다.
흡혈귀들은 탈주하고 있는 모험가들의 말로를 보고 깨달은 것이 있었는지, 몸을 돌려 늑대인간들을 향해 돌진했다. 앞으로 가나 뒤로 가나 죽는건 매한가지이니 차라리 아군에게 죽을 바에 적들과 맞서 싸우다 죽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존나 양아치 같은 새끼들이네)
"공격해라! 제국을 위해서 싸우자!!"
'라이가'를 필두로 한 흡혈귀들이 기다란 송곳니를 드러내며 빠른 속도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적인 늑대인간에게 추풍낙엽으로 나가 떨어졌다.
늑대인간들은 피가 베인 살점을 주식으로 삼는데, 피를 마시고 사는 흡혈귀들은 그들에게는 최고의 음식거리였다. 힘과 체구면에서도 늑대인간들이 더 우세했다.
"씨발새끼들, 하여튼간 도움이 안돼요!"
[크와아아아아앙!!!!!!]
"이런 씨발!"
흡혈귀들에게 한 눈 판 틈에, 늑대인간 한 마리가 내게 손톱을 들이밀었다. 가까스로 검을 들어 막아내면서 얼굴의 손톱자국이 새겨지는 것을 막았지만, 점차 검을 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러다 뒤지겠네!"
주변을 둘러보니 델타와 랄라도 녀석들의 집중 공격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특히 델타는 본모습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제 힘을 못내고 있는 상태였다.
쿠웅ㅡ!
위기의 순간, 다행히도 기병들이 당도하면서 녀석들의 시선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때를 노려 녀석의 손톱을 튕겨내고서는 그대로 목에 꽂아넣었다. 죽이고나서 얼른 델타와 랄라를 지원해주면서 위기는 모면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말까지 중무장한 기병들은 놈들의 몸통을 밀쳐내고, 머리를 베어내면서 압도적인 우세를 자랑했다. 기병들을 등에 업고 안전한 곳에 짱박혀 있으면 뒤질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기병대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듯한 정중앙에 깃이 뾰족히 달려있는 투구를 쓴 남성의 지시로 인해 산산조각 부서지고 말았다.
"거기 모험가들! 당장 본대를 지원 하러 가라!"
"거기는 여기보다 훨씬 더 상황이 심각하다"
"만약 탈주할 시 세상 끝까지 쫓아가 목을 베어버릴테니 꿈도 꾸지 말도록"
(이런 미친! 거기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단 말이야!!)
"알겠습니다! 랄라야 빨리 가자"
"델타 너는 여기 있어, 흡혈귀 신분이니 우리들하고는 따로 행동해야돼"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응... 어쩔 수 없지"
기특하게도 내 말을 이해해주는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뒤, 후방 부대를 향해 달려갔다.
후방부대가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쪽은 내가 있었던 쪽보다 상황이 더 개판이었다. 부대 전체를 빙 둘러싼 채로 수많은 늑대인간들이 병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방패로 막아낸 뒤, 검으로 맞대응하면서 녀석들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뭐하냐?! 돌격해!!!'
다른 곳에서 한바탕 하고 온 것인지, 피범벅이 되어있는 경기병들의 재촉에 냉큼 돌진하기 시작했다. 가운데에는 모험가들이 양 옆에는 경기병들이 나란히 달려가고 있었다.
[쿠오아아아ㅡ 으왕?]
뒤를 돌아본 늑대인간은 내 칼에 의해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은 얼굴을 땅바닥에 떨어뜨리면서 숨을 다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기습공격을 당하면서 이런 표정을 짓는 녀석들이 많이 보였다.
"라르스 선두로!!"
대대장의 외침에 병사들 무리가 파도처럼 일렁거리더니 그 속에서 중년의 남성들이 험상궃은 얼굴을 한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라르스, 퇴로를 열어라!!!"
그의 지시에 백전노졸들은 방패로 놈들을 후려치면서, 무서운 기세로 퇴로를 개척해나갔고, 그 사이로 병사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빠져나간 병사들은 곧장 경기병과 모험가에 합세해서 녀석들의 후방을 공격했다.
고참들이 안을 굳건하게 버티며 서있고, 밖에서는 후임들이 공격을 하고 있는 상황이 연출됐다. 다리오를 비롯한 백부장들은 안에서 질풍노도의 기세로 검과 주먹을 사용해 늑대인간들을 때려잡고 있었으며 대대장은 따로, 라르스의 호위 하에 저 멀리 우뚝 서있는 늑대인간에게 다가갔다.
그 늑대인간은 다른 녀석들의 몸집에 두배나 됐으며, 흉악함도 그 배에 달했다.
(우두머리는 우두머리가 상대한다라, 이게 맞지)
녀석들과 격전을 벌이면서 대대장과 녀석들 우두머리 사이에 전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대대장은 과연 체내 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고 싶었다. 저 멀리서 벌어지는 전투가 내게 체내 에너지의 응용법에 대해 일깨워 줄지도 모른다.
우두머리는 자신을 둘러싼 라르스의 포위공격을 손톱으로 간단하게 와해시키고서는, 말에 탄 대대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씨발 방해하지좀 말아봐!!'
앞에서 손톱을 내지르는 놈의 공격을 피하면서 가슴팍을 벤 뒤, 서둘러 그들의 전투를 확인했다. 우두머리는 그의 말을 짓뭉개버렸고, 그는 황급히 바닥을 굴러 피한 후 녀석의 무릎에 발차기를 날렸다.
발차기 힘이 어찌나 센지, 맞은 무릎이 뒤로 쭉 밀리더니 녀석의 몸이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러자 녀석은 손톱을 사방팔방 휘둘렀고, 대대장은 한 걸음 물러나서 다음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남편, 위험해!!"
순간 옆에서 늑대인간이 달려들었다. 다행히도 랄라가 온 몸을 던져 녀석의 몸을 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리고서는 주먹으로 숨을 끓어놓았다.
"남편, 뭐하는거야?!!"
"정신 안차릴래? 죽을 뻔 했잖아!!"
"미,미안"
신경을 곤두 선채 날 노려보는 그녀에게 얼른 미안함을 전했다. 그녀가 화내는 것을 이해한다. 딴데 정신이 팔려있는 바람에 위험을 자초하고 말았다.
(그래, 내 코가 석자인데 지금 뭘하고 있는거냐)
"랄라, 내 등뒤로 와"
"이제야 정신을 차렸나보네?"
그녀는 내 요청을 받아들였고, 내 등을 지켜줬다. 전투는 녀석들 우두머리의 비명소리와 함께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늑대인간들은 자신들 우두머리가 내지르는 비명에 혼란한 기색이 역력했고, 이 기회를 틈타 병사들은 재빨리 녀석들과의 힘겨루기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들었다.
[크르르르르르......]
그런데 갑자기 땅에 엎어져있던 늑대와 병사들의 시체가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두 다리를 땅에 완전히 짚고서는, 우리들을 향해 달려왔다.
"리치다!! 전원 대열을 재정비하라!!!"
늑대인간들은 우두머리의 죽음과 새로운 적의 등장으로 위축이 된 것인지 다급히 사방팔방 흩어져버렸다. 전투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되었다.
"백부장! 백인대를 정렬시켜라!!"
그는 아까의 전투로 인해 독수리 앞 부리가 부러진 투구를 쓴 채로 재빨리 지시를 하달했다. 그의 지시대로 백부장들은 백인대 깃발을 들어올리며 서둘러 모이라고 재촉을 해댔다.
"병신들아! 빨리 모이라고!!"
"늦게 오는 분대는 이번 전투 끝나고 단체 기합이다!!"
"모험가 이 새끼들아, 니들은 안오냐?!!!"
그들의 고함소리에 재빨리 편재된 백인대로 달려갔다. 2백인대에 끼어들어갔고, 반갑게도 앞에는 낯이 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정찰조 병사들이었다.
"씨발 새끼야! 정신 안차려?!"
아르도는 맏후임인 막내 글렌다의 뒷통수를 후려갈기며 정신차릴것을 요구했다.
"죄송합니다!!"
"방패 똑바로 들고! 씨발!"
"검을 무슨 오줌 누듯이 잡고 있네? 똑바로 안 잡냐?!"
"잡겠습니다!"
갓 들어온 신병한테 이런 치열한 전투는 처음일 것이다. 나도 이런 규모의 집단과 집단간의 전투는 절벽 울타리에서 느꼈기 때문에 막내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존나 심장이 쿵쿵거리고, 손발이 떨려온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때처럼 눈물이 차오르지는 않았다.
"미치겠네... 늑대인간 다음에는 리치라니"
"아아! 씨발! 뼈다귀 새끼들이 왜 처 기어나오는거야!!"
그녀의 욕짓거리에 절로 흥이 돋았다.
"밀집대형!!"
"밀집대형을 갖춰라!!"
대대장이 신호를 내리자 백부장이 복명복창을 하였고, 병사들은 행동으로 복명복창을 대신했다.
"경기병! 리치를 찾는 것과 동시에 중기병과 흡혈귀들을 이쪽으로 보내도록!!"
예를 취할 새도 없이 그들은 냉큼 그의 명을 들음과 동시에 행동을 취했다. 그들이 떠난 뒤, 대대장은 다시 명령을 하달했다.
"투척 준비!!"
"대형을 깨뜨린 자는 채찍형에 처하겠다!!!"
저 앞의 망자들은 어기적어기적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다 돌연 얼굴을 우리쪽으로 들어올리고서는 질주해오기 시작했다. 백부장들은 기수들에게 깃대를 높이 들어올려 신호준비를 하도록 명한 뒤, 그들이 적당한 거리에 당도하자 투척 신호를 하달하기 위해 기수들에게 깃대를 내리라 명했다.
슝ㅡ! 슝ㅡ!
날려진 투창들은 대기를 가르며 녀석들의 몸통에 깊숙히 박혀졌다. 하지만 녀석들의 수는 던진 투창에 비해 수가 많았다.
[크르르르르아아아!!!!!]
"방패 꽉 쥐어라, 새끼들아!!"
백인대들은 서로 엉겨붙으면서 전후좌우 방면 모두 방패로 철통같이 지키고 섰다. 망자들은 그들의 방패를 향해 몸통을 있는 힘껏 부딪혀대며 안으로 파고들려 했지만, 그들의 방패는 굳건했다.
부웅ㅡ!
호각소리가 짧고 굵게 한 번 울리자마자 병사들의 방패가 위로 올려쳐지면서 녀석들의 얼굴을 날려버렸다.
"전진!!"
순식간에 대형 앞의 망자들을 물리친 뒤, 한 보 걸어가서 다시 똑같은 행동을 취하였다. 하지만 눈 깜짝할 새에 전방의 우측 열에서 대형이 흐트러지게 되면서 놈들의 침입을 허용시켜 버렸다.
"막아!!"
"막으라고 새끼들아!!!"
한 번 무너진 둑을 향해 녀석들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몰려들어왔다. 백부장들과 고참들이 안간힘을 다해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대대장은 그 모습에 다음 지시를 내렸다.
"분대 전투!!"
붕ㅡ! 붕ㅡ!
아까와 같은 호각소리가 이번에는 연속으로 두 번 울리더니, 그 소리에 병사들은 밀집대형을 풀고서는, 각자 편재된 분대로 나뉘어져 전투를 속행했다. 완전히 무너져버린 우측 열은 분대 전투를 실행할 수 없는것인지 산발적으로 전투를 진행해나갔다.
우리들 모험가들은 따로 정해진 분대가 없었으므로 각자 살기 위해서 싸워나갔다.
계속되는 전투로 인한 피비린내와 악취는 사람의 정신을 미쳐버리게 만들었다. 이제는 내가 누군지 기억도 잘 안난다.
저 앞에서 중기병들이 지원을 해오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고, 그와 동시에 랄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랄라, 괜찮아?"
"아니... 존나 힘들어"
피로 떡칠이 된 그녀의 얼굴에 피식 미소가 흘러나왔다. 손으로 그녀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주며 격려해주었다.
"조금만 참아, 곧 끝날 것 같아"
망자들의 움직임이 둔해져가고 있었다. 필시 경기병들이 리치의 뒤를 쫓고 있는 상황이 틀림없다.
다시 한 번 힘을 내 녀석들과 격전을 벌이던 와중, 망자들이 바닥에 시체마냥 고꾸라지더니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경기병들이 리치를 죽인것일테다.
"드디어.... 드디어 끝났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