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26화. 불침번 (26/106)



〈 26화 〉26화. 불침번

< -- 33. 불침번 -- >




"흐음, 어디 괜찮을 만한 의뢰가..."


기왕이면 지인이 있는 모험단의 의뢰를 받는게 좋다고 생각한 나는 테이블 위에 올라 서있는 놈들을 쭈욱 둘러봤다. 그러던 와중 저 멀리 익숙해 보이는 얼굴의 남성이 의뢰를 말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곧장 그리로 다가갔다.


"그레이슨! 미끼역할을 찾고 있는거냐?"


내 물음에 그레이슨이란 불린 배불뚝이 남성이, 나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함박미소를 지으며 테이블에서 내려왔다.

"이보게, 과감한 고.레오! 오랜만이야!"

가죽갑옷을 입고 있던 그는 갈기 머리를 흩날리며 나를 끌어안고서는 안부를 물었다.


"엄마는 잘 계시고?"

"씨발놈이?"


"하하하하하하!! 농담이네 농담!!"

그는 하마 같은 입술을 크게 벌려대며 웃었다. 그리고 다 웃은건지 자신을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근데 왜 의뢰를 말하고 있는 나한테 온거야? 혹시 관심있는거냐?"

"맞아,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말야, 비용은 내 보수에서 지불할테니 또 다른 한명을 데려가도 괜찮을까?"


"네놈 돈으로 내는거면 난 뭐라 할 말이 없지, 맘대로 하라고"


"내일 출발하는거지?"

"내일 아침종이 울리기 전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그 대화를 끝으로 나는 릴리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일을 구했으니 그녀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만 하면 된다. 테이블에 도착하자 그녀는 자신과 비교받은 늘씬한 몸매의 네크로맨서 여성을 서글프게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어린애 같은 체형과  여성의 체형을 비교하면서 우울해하고 있는 것 같다.


"릴리 씨, 모험단에서 허락했습니다"


"정말요?! 의뢰 내용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남쪽으로 십 이마일 지점에 있는 쾨스 호수에 나타난 베스티어 악어를 처단하는 의뢰입니인데, 저희들은 놈들을 호수에서 나오도록 유인하는 미끼역할입니다"


그녀는 내 설명을 듣고서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군요,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와야겠어요"


"내일 아침 종이 울리기전에 이곳으로 와야되니깐 늦지 않게 오십시오"

"예! 정말 고맙습니다, 고.레오 씨"


고개를 꾸벅 숙인 그녀는 이내 빠른 걸음으로 조합 건물을 나갔다.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씩씩하고 당찼다.








< -- 33. 저수지에서의 하룻밤 -- >









아침 종이 울리기 전 나는 모험가 조합에 도착해서, 먼저  있는 그레이슨의 케이크 모험단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레이슨을 포함한 남성 3명은 모두 머리에 바이킹 헬름을 쓴 채, 몸통에는 가죽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기를 이 복장은 케이크 모험단의 군복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들의 무식하게  도끼와 널찍한 방패를 보면 군대가 아니라 그냥 바이킹 같아 보였다. 그런 그들과 대화를 나눈지 채 얼마 되지 않아 조합 문이 열리더니 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뒤에는 커다란 배낭이 매여져 있었다. 가만보니 의뢰로 인한 긴장이 아니라 배낭의 무게로 인해 그런 것 같았다.

"이 꼬마애인가?"

그레이슨의 물음에 앞에 서 있던 그녀는 강하게 반발했지만, 내 만류에 입을 다물고서는 혼자서 씩씩대기만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릴리를 쳐다보자, 나는 빨리 출발하자고 말하며 껄끄러운 상황을 넘겼다.



-




"릴리 씨는 배낭에 뭐가 들어있길래 그렇게 부피가  겁니까?"

내 허리에 올까말까한 키의 릴리가 자신의 체형만한 부피의 배낭을 들고 있는 모습은 매우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텐트랑 반합이랑 그리고ㅡ"

그냥 살림살이를 싹다 챙겨온  같다. 그녀는 걷는내내 이마에 땀을 비오듯이 흘리면서 혀를 내밀면서 걸었다. 그 모습이 더위먹은 강아지의 모습과 닮았길래 웃음이 나왔다.

"사람이 이렇게 힘든데 웃음이 나와요?!"


"아... 죄송합니다"

머쓱해진 나는 그녀의 배낭아래를 손으로 받쳐주며 화를 풀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소심한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했다. 한참을 걸은 뒤 우리들은 한 개울가에서 멈추고서는 휴식을 취했다.

"어이 과감한 고.레오! 술 한  할래?"


"술? 좋지!"

앉자마자 나는 케이크 모험단과 같이 술판을 벌였다. 숲속에 맑은 공기와 함께 술을 마시니까 피로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에 그녀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의뢰중인데 술을 마셔도 되는건가요?"


그녀의 황당한 물음에 그레이슨을 포함한 남성들은 큰소리를 내며 웃어댔고, 그녀는 기분이 나빠졌는지 샐쭉해진 표정을 지은 채로 몸을 돌려 앉았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가죽 주머니를 건넸다.

"마실래요?"


"저 술 안마셔요"

"뭐 그러시다면야 저만 마시죠, 뭐"

나는 그녀의 옆에 철푸덕 주저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저 사람들이 고.레오 씨를 '과감한' 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부르던데, 왜 그렇게 부르는 거예요?"

"아아, 그건 제가 의뢰에서 높은 신용도와 의뢰성공율을 보여줬기 때문인것도 있고, 예전에 모험단을 구출한 적도 있었거든요"
"그 이후로 모험가 사이에서는 저를 그런 식으로 부르는 겁니다"


"모험단을 구출해요?"


"얘기하자면 긴데ㅡ"


이 년전 고대 유적의 조사 의뢰를 맡은 모험단의 짐꾼 역할을 했던 나는 그곳에서 알을 까고 있던, 상반신은 인간 여성에 하반신은 거미인 아라크네를 조우하였다. 모험단원들은 비싼 값을 받는 아라크네의 다리를 얻고자 그녀에게 덤벼들었지만 3명으로 구성된 모험단은, 그녀와 그녀의 자식들의 공격 앞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채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런 상황속에서 나는 권능을 발현해 아라크네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뒤, 모험단원들을 이끌고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다.

탈출에 성공한 뒤에는 무박훈련마냥 잠도 자지 않은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험단원들을 부축하며 무사히 메리온 교국까지 데리고 왔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내게 목숨을 빚진 금은보화 모험단은 나를 모험가 사이에서 과감한 고레오라 부르도록 선전하며 매우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라는 내용이다.

"굉장하시네요, 아라크네 한테서 모험단 전체를 구하시다니..."


그녀는 나를 이전과는 다른 존경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

"저는 철 동전인데 이렇다  성과도 없는데..."

"릴리 씨도 언젠가는 엄청난 성과를 내실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후후후, 고마워요"


 따뜻한 위로에 그녀는 미소로 화답했다. 처음에는 인맥쌓기용으로 접근했었는데, 점점 그녀하고 대화하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



"여기는 오랜만이군"

앞에 놓여진 울창한 나무  한가운에데 자리한 넓은 쾨스 호수를 바라보니 예전 의뢰일을 했던 때가 떠올랐다. 호수에 침입한 인어들을 처치해달라는 의뢰였는데, 씨발 그년들의 흉포함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물론 내가 완벽하게 호수에서 끌고나왔기 때문에 모험단 손에 의해 모두 불타 죽었다. 불타 죽는 그녀들의 냄새는 맛있는 생선구이 냄새가 났었다.


"그러고보니까 생선 안먹은지가  년이나 됐네"

"여기서 인어년들을 태워죽였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침이 고여"


내 옆에 다가온 그레이슨이 아련한 눈빛으로 인어들이 타죽은 곳을 바라봤다. 그곳은 아직까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존나 맛있는 냄새였었는데, 그런데 인어년들도 보짓구멍이 있는지 몰라"


"왜? 인어년 보짓구멍에 좆 박을려고?"

"못할 것도 없지"


"수간마 새끼"

입맛을 다시는 그를 뒤로 한 채 나는 얼른 텐트를 칠 준비를 했다. 해도 많이 저물은데다 호수에 놈들도 안보이니 내일을 기약해야  것 같다. 텐트를 치고 있는데 옆에서 릴리가 배낭에서 힘겹게 텐트를 치고 있었다. 나는 얼른 텐트를 쳐놓은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릴리 씨,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니에요,  혼자서도 할  있어요"


모닥불을 만들기 위해 나뭇가지를 주숴다 돌아왔는데도 그녀는 아직까지 텐트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릴리 씨,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물음에 얼굴이 새빨게진 채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녀의 텐트는 지지대 하나와 얇은 천조가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마도 지지대를 땅에 박지않고서 그냥 세워놓기만  것 같았다. 어떻게  동전이 됐는지 궁금했다.

"텐트 치는건 오랜만인가 봅니다?"


"...... 예, 오랜만이에요"


텐트를  치고 난 뒤 우리들은 베스티스 악어의 발자취를 조사하기 위해 호수 쪽으로 향했다. 호수 주변에는 놈들의 커다란 세모꼴 발자국이 무수히 찍혀 있었다.

"꼬추 털 마냥 존나 많이 찍혀있는게 숫자가 상당한가 보군"

그레이슨은 흙바닥에 찍힌 발자국들을 내려다보며 게슴츠레한 눈을 크게 뜨고서는 말했다. 나는 그에게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이 정도 무리면은 암컷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렇겠지, 일이  힘들어지겠어... 일단 내일 아침, 놈들이 뭍으로 나오면 그때 확인해보면 되겠지"


발자국이 많이 찍힌 호수 주변에 작은 종들이 달린 신호줄을 설치한 뒤, 우리들은 다시 텐트로 돌아와 식사준비를 시작했다. 오다가 잡은 토끼를 굽기 위해 나뭇가지를 쌓아놓고 있던 내게 그녀가 다가왔다.


"고.레오 씨, 여기 나뭇가지 더 갖고 왔어요"


"감사합니다, 거기 놔두세요"

그녀는 마땅히 할  없는지 내가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돌연 자신이 해보고 싶다고 물어왔다.

"어떻게 하는지는 아시죠?"


"저를 뭘로보고, 금방 피울 수 있거든요"


내가 건넨 철편을 잡은 그녀는 부싯돌로 있는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부싯돌이 파편을 튀기며 산산조각 부서지고 말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제가 할테니 릴리 씨는 나뭇가지 좀 더 가져와주십시오"

그녀는 큰소리 쳐놓고 부싯돌을 깨드린 것에 대해 미안했는지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미한하다고 말한 뒤 나뭇가지를 주수러 갔다.


"씨발...  부싯돌"

3 년간 나를 위해 충직하게 불을 만들어준 부싯돌은 그렇게 소임을 마치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



날이 어둑해지자 우리들은 모닥불에 모여 앉아 각자 가져온 음식들을 꺼내어 먹었다. 나도 군장에서 루나가 만들어준 수제 도시락을 꺼내고서는 먹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던 도중 그레이슨이 릴리에게 넌지시 말을 꺼냈다.


"쩝쩝쩝... 릴리 양은 네크로맨서라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딱딱해보이는 빵을 뜯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그녀는, 뜯는 것을 포기한 뒤 단호한 어조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럼  번 보여주시죠, 네크로맨서면 분명 스켈레톤을 소환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보여드리죠! 직접 보여드리는게 더 빠를 것 같네요!!"

그녀는 품에서 검은색의 나무젓가락 같은 것을 꺼낸 뒤,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에서 뼈들을 꺼내 바닥에 뿌리고서는 주문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네크로맨서의 강령의식으로써 뼈를 이용한 언데드 창조의 주문이었다. 예전에 딱 한 번 본 뒤로는 지금이  번째이다.

"나와라 리카르본!"

그녀의 외침과 함께 바닥에 뿌려졌던 뼈들이 검게 변하기 시작하면서 이내 검은 구체로 변하더니,  속에서 짐승형 스켈레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는 진돗개 수준으로  컸다.

"오오! 진짜로 네크로맨서 맞나보네?"

스켈레톤의 등장에 케이크 모험단원들은 물론 나도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런 우리들의 반응에 그녀는 자신감이 상승했는지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헤헴! 이게 바로 스켈레톤보다 훨씬 월등한 저의 리카르본입니다!!"
"네크로레임의 수석졸업생인 제가 만든 스켈레톤은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만든 것보다 훨씬 우수하죠!!"

그녀의 계속되는 자기자랑에 그레이슨은 내게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씨발 존나 꼴갑 떠는데?  번 참교육 시켜줘야 겠는데..."


"제발 가만히 좀 짜져있으라고"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도끼를 집어들고서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가 다가오자 자랑을 늘어놓던 그녀는, 입을 다물고서는 겁먹은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네크로맨서 씨, 이게 다른 것들보다  월등하다고요?"


그의 위협적인 물음에 그녀는 머뭇거리면서 답했다.

"그...그런데요...왜,왜요?"

"그렇단 말이지?"

그는 갑자기 도끼를 위로 치켜들고서는 그녀가 만든 짐승형 스켈레톤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스켈레톤은 도끼 공격에 맥을 못추린채 허망하게 부서졌다.

"뭐하시는 거예요?!!!"


자신의 스켈레톤이 파괴되자 릴리는 그레이슨에게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왜 이런 짓을 하신 거죠?!!!"

"존나 약한데? 크크크크, 이래가주고 어디 고블린하고 싸움이나 제대로 할  있겠습니까?"
"내 발기된 좆이 더 단단하겠다!!"


그는 자신의 성기를 손으로 움켜잡더니 부드럽게 매만지기 시작했다. 그 행동을 지켜보던 그녀는 이윽고 눈물을 흘려대며 숲속으로 뛰어갔다.


"이봐 꼬마 네크로맨서 씨, 어디가?!! 여기 박살난 스켈레톤 뼈는 치우고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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