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25화. 릴리
< -- 32. 디맨시아 릴리 -- >
댕ㅡ 댕ㅡ
오늘도 어김없이 도시에서는 아침을 울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창문 밖에서 상인들이 물건을 들려오는 진열하는 소리와 함께 고함을 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씨이이발! 오늘도 좆같은 하루가 시작되는군"
나는 무기력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며친 전 큰 맘 먹고 산 전신거울 앞에 섰다. 이세계에 소환된 지 3년 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전혀 딴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덥수룩했던 검은 머리는 뒤로 깔끔하게 넘겨 올려 올백머리를 유지했고 군데군데 새치가 나있었다. 웃통을 까고 있는 몸은 넓은 어깨에 근육질 몸매를 형성하고 있었고, 배에는 복근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얼굴과 몸에는 수많은 흉터자국이 나있었는데 이를 통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들을 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델타가 남긴 흉터자국도 볼에 선명하게 새겨져있었다.
거울 속에서 짙은 살기가 담겨져있는 날카로운 눈은 자기자신의 눈임에도 볼 때마다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3년 전의 내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진게 느껴졌다.
벌컥ㅡ!
거울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그 속에서 루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빠!!"
루나는 내 품에 달려들더니 가슴팍에 자신의 얼굴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얼른 그녀를 떼어내고서는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입을 열었다.
"루나야, 아저씨가 누누히 말하는데 이렇게 남자 방에 호ㅡ"
그녀는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는 볼키스를 한 뒤,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다, 루나는 이제 소녀가 아니었다. 긴 속눈썹에 초록색 눈동자는 나를 그윽하게 쳐다보고 있었고, 볼에 닿았던 입술은 분홍색을 띠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는 주황색의 단발머리로 한쪽으로만 옆머리를 묶어 말꼬리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귀여운 아이같으면서도 성숙한 여성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오빠, 잘잤어?"
그녀의 볼키스와 성숙한 여성의 목소리에 나는 벙찐 채 고개만 흔들었다. 오늘따라 그녀가 친한 여동생이 아니라 한 명의 여성으로써 느껴졌다. 최근 자위를 안한것에 대한 부작용인 것 같다.
"오늘도 다 벗고 잔거야? 그러다 감기들면 큰일나는데..."
팬티바람인 내 몸을 손가락으로 흝으면서 그녀는 그윽한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 상체에 딱 붙어있는 그녀의 옷 너머로는 봉긋한 두 가슴의 탄력이 느껴졌으며, 그녀가 손가락으로 흝고 있는 말근육인 내 다리에서는 찌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그 왜소한 체구의 소녀가 폭풍성장으로 이렇게 육감적인 몸매로 변해버리고서는 유혹을 해대니, 아랫도리가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맨날 혼자 자면 외롭지 않아? 내가 같이 자줄수도 있는데... 오빠가 원한다면 옷도 벗어줄게, 어때?"
"루나야, 헛소리 그만하고 아저씨 옷 갈아입게 나가 있으렴"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선 그녀를, 재빨리 문 밖으로 내보낸 뒤 나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먼저 가죽 바지를 입고 상의에 사슬갑옷을 걸친 뒤, 무릎까지 오는 서코트를 걸친다. 그 다음으로는 허리춤에 벨트를 차고 검과 단검, 가죽 주머니를 차면 끝이다.
모험가 조합으로 가기 위한 옷차림을 완료한 뒤 나는 굳게 잠긴 문을 열고,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루나에게 팔짱이 껴진 채 식사를 하러 1층으로 내려왔다.
"말리온, 어제 먹었던 걸로"
"오빠는 내가 직접 만들어 줄테니까 저기 가서 앉아있어~"
그에게 메뉴 주문을 하려던 나를 그녀가 막아세우며 테이블로 가게끔 했다. 주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자 접수처에 서 있던 그가, 나를 흡족한 눈빛으로 바라보고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나를 사윗감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봐 고.레오, 자네 정말 부럽구만, 저런 참한 여자애를 색시로 둬서 말이야"
테이블에 앉자 아침부터 술을 쳐마시고 있는 남성이 대뜸 내게 말을 걸어왔다. 3년동안 미친사람마냥 일을 하면서부터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이 교국의 모험가놈들 중에 나를 모르는 녀석은 없었다.
"색시가 아니다, 이 좆만아"
"클클클, 밤에 부드러운 영계의 피부는 어떤가? 역시 부드럽겠지?"
"니 그 두툼한 젖가슴이나 만져대라고, 어린 애한테 눈독들지 말란 말이야, 새꺄"
"오오! 그런 방법이"
그는 자신의 출렁거리는 젖살을 조물락 거리다가 이내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는 코를 골아댔다. 그런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며 나는 루나가 얼른 식사를 가져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뒤 그녀는 한 손 가득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테이블에 내려놓고서는 내 옆에 앉고서는 음식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한 뒤에는 직접 포크로 음식을 떠먹여주기까지 했다.
"으음... 루나야 너가 나한테 이렇게 잘대해주는 건 좋은데, 이렇게 하면 나중에 혼삿길ㅡ"
"저는 오빠랑 결혼할 건데요?"
"으응?"
"저는 오빠처럼 능력있고 성실한 남자가 좋아요, 제 이상형이에요!"
"그리고 오빠가 저희 여관을 살려주셨잖아요, 홍보도 해주시고 확장공사비용도 대주시고... 그 빚을 다 갚으려면 제가 오빠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밖에 없어요"
말랑말랑 여관은 일 년전에 말리온과 내가 고심끝에 3층으로 확장시키기로 결심해서 지금은 3층 여관이 되었다.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더 많은 손님들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3층의 가장 넓은 방은 현재 내 방이다.
"노총각 아저씨보다는 젊은 남자랑 만나서 결혼해야지"
"비리비리한 제비놈보다는 근육질 아저씨가 훨씬 낫거든요!"
그녀는 내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도록 입안에 음식을 욱여넣었다.
-
"벌레 같은 새끼들아!!! 우리 주머니 모험단에서 짐꾼을 맡을 남성을 모집하고 있다!!!!"
"우리 주머니 모험단에 발주들어온 의뢰는 서문 밖 십 칠마일 지점에 있는 광산을 점거한 코볼트를 퇴치하는 일이다!!!"
"코볼트를 퇴치하는 일은 우리들이 할테니 너희들은 코볼트의 대가리를 짊어지기만 하면 된다, 존나 쉬운일 아니냐?!!!!!!!"
평소와 다름없는 모험가 조합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테이블에 앉아 마음에 들 만한 의뢰가 들려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와중 맞은편 테이블에서 검은색 로브의 붉은 두건을 쓴 자그마한 체구의 아이가 아까 전 소리를 지르고 있던 젊은 남성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봐요, 제가 그 일 할게요, 얼마 주실거에요?"
"음, 꼬맹이? 어린애가 왜 여기있는거야?"
"저는 어엿한 성인이거든요!!"
꼬맹이라 불린 아이는 그의 말에 여성 특유의 앙칼진 목소리로 반발했다. 자신을 어린애로 부른것에 대해 기분이 몹시 상했는지 그녀는 까치발을 하면서까지 자신이 성인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이 씨발새끼야!! 니가 어른인지 애새끼인지는 신경안쓴다고!! 우리가 모집할 놈은 남성인데 여자인 네년이 왜 기어나오는거야!!!"
"저는 네크로맨서라서 스켈레톤들을 소환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짐꾼 역할에도 문제없다구요!!!"
그녀의 말에 남성은 테이블에서 내려오더니, 손을 그녀의 머리에 갖다대고서는 흔들어댔다.
"애새끼 같은 년이 헛소리나 찍찍하기는... 야! 네크로맨서는 저런 녀석들을 말하는거다"
남성은 손가락으로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붉은 색 로브를 입고 있는 젊은 여성을 가리켰다. 그 여성은 딱 달라붙는 로브를 통해 자신의 요염한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 여성의 모습에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서는 다시 앙칼진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진짜 네크로맨서라구요!!!!"
"씨발년이 당장 안꺼지면 내 칼이 코볼트 대가리를 따기 전에 네년 대가리부터 따버릴테니까,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으라고!!"
"니미 씨발, 젖 비린내나는 애새끼가 와서는 존나 일 방해하고 앉았네"
뒷걸음질 치고 있는 그녀를 뒤로 한 채 남성은 다시 테이블에 올라가서 외쳐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앉았던 테이블로 힘 없이 돌아갔다. 돌아간 뒤에는 자리에 앉아 눈가를 비벼대며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흐음... 진짜 네크로맨서인가?"
진짜 네크로맨서라면 그녀는 고급인력이다. 언데드 소환과 각종 강령술은 일에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의 체형이 어린애 같아서 쉽사리 네크로맨서라고 믿기에는 어려웠다. 적어도 남성이 가리켰던 여성의 나이정도는 되어야지 믿어줄 것이다.
나는 사실확인을 위해 테이블 위에서 자고 있는 더크를 흔들어 깨웠다.
"야이 씨발... 누가 깨웠냐?!"
잠에서 깬 그는 눈을 부라리며 자신을 깨운 존재를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포도주가 담긴 가죽주머니를 건네며 질문을 하고자 했다.
"얌마 더크, 저 꼬마애, 진짜 네크로맨서냐?"
그는 내가 건넨 주머니를 입에다 들이부은 뒤 입술을 닦고서는,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여자애를 쳐다봤다.
"망할 놈이, 왜 나한테 물어보는거야?"
"네가 여기서 정보통이잖냐, 빨리 알려줘봐"
"좆같네..... 릴리라는 이름의 스물 두 살짜리 어린년인데, 어제 접수처에서 가입하고 있는 걸 봤지, 목에 철 동전을 걸고 있는 걸 보면 다른 모험가 조합에서 넘어온 것 같아"
"흐음... 그렇군, 전향해서 온거란 말이지, 진짜 네크로맨서는 맞지?"
"그래 씨발새끼야, 이제 잘테니까 깨우지 말라고"
"그래 푹 자라, 새끼야"
원하는 정보를 들은 나는 다시 코를 골며 자고있는 그를 뒤로 한 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술사들과 미리 친분을 쌓아놓으면 나중에 모험단을 꾸려 의뢰를 할 때 여러모로 편리해짐은 물론 다른 술사들과의 인맥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그녀는 그런 수모를 겪었는데도 불구하고 테이블 위에서 의뢰를 말하고 있는 남성에게 다가가, 신나게 욕을 얻어 먹고서는 시무룩해진 채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축 처진 가녀린 어깨가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얼른 그녀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저기 네크로맨서라고 들었는데 맞으신가요?"
"누,누구세요?"
내 물음에 그녀는 자신의 앞에 선 나를 뜷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인형같은 외모로 왼쪽 눈은 파란색 오른쪽 눈은 노란색인 오드아이로, 경계어린 눈빛을 보내는 것이 필시 내 얼굴에 난 흉터를 보고 그런 것일테다. 나는 조금 더 온화한 목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
"방금 전에 본인 입으로 네크로맨서라고 하시는 걸 들었거든요"
"... 예, 저는 진.짜.로 네크로맨서입니다"
그녀는 단어에 힘을 주어 자신이 진짜라는 것을 믿어주기를, 강렬한 눈빛을 통해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애가 외계인을 봤다는 것을 믿어달라고 하는 행동과 비슷해서 웃음이 날 것만 같았다.
"근데 당신은 누구시죠? 목에 걸린 걸 보아하니 저랑 같은, 철 동전 모험가이신것 같은데"
"저는 철 동전 모험가 고.레오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 공손한 태도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녀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제 이름은 '디맨시아 릴리'라고 해요"
(첫인상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나보군)
"같이 동석해도 되겠습니까?"
"예? 예에 무,물론이죠"
그녀는 볼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옆에 난 의자를 빼주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그녀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술사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남에게 뽐내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 출신이십니까?"
"디트리런의 네크로레임 출신이에요"
"아~ 그 대륙 최남단 쪽에 있는 학술도시 말이죠? 네크로레임이라면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네크로맨서를 육성하는 기관들 중에 가장 으뜸인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후후후, 전 바로 그 네크로레임의 수석 졸업생이구요"
손을 입에 갖다댄 채 그녀는 매우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대륙에서 날고 긴다 하는 놈들을 전부 제치고 당당히 수석을 차지했죠, 저는 단 한번도 일등을 놓친 적 없는 수재랍니다!"
(그런 사람이 왜 여기 있는거지?)
"대단한 사람이셨군요?! 그럼 강령술이나 소환술에 능통하시겠네요? 유명한 네크로맨서들과도 친할테고 말이죠"
"예?....... 뭐 그렇죠....."
내 물음에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한 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그 모습이 뭔가 숨기고 있는것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그녀가 굉장한 수재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나는 그녀와 친해지기 위한 수단으로 의뢰에 대해서 물었다.
"의뢰를 찾고 계시던데, 혹 저랑 같이 의뢰를 하시겠습니까?"
"정말요?!"
내 제안에 그녀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제가 아는 모험단이 이번에 의뢰인원을 모집한다 하길래, 이왕에 하는거 저랑 같이 하시는게 어떤가해서요"
"하,할게요! 당연히 해야죠!!"
"그럼 모험단한테 한 번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수락에 그녀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인맥 쌓기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뭐 어쩌겠는가? 다 이렇게 살아가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