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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2화. 감옥 소녀 (2/106)



〈 2화 〉2화. 감옥 소녀

-- 4. 감옥 소녀 -- >


탕! 탕! 탕!


앞쪽에서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번뜩 눈을 떴다. 창살 너머에 종아리까지 오는 잿빛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꾀죄죄한 몰골에 왜소한 체구인 여자아이가 손으로 창살을 두들기고 있었다.

(뭐야, 왜 이런곳에 어린애가 있는거지?)

소녀는 얼굴을 완전히 덮은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까만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더니 손이 없는 팔을, 내가 잠들기 전 벽에다 던진 빵을 가리키고서는 다음에는 요강을 가리켰다.


(뭘 하는거지?)

내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자 소녀는 이윽고 오른편에 있는 남성이 갇혀있는 쪽의 철창으로 이동했다. 그런 행동에 나는 철창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서는 소녀를 쳐다봤다. 소녀는 좀전에 내 철창 앞에서 했던 행동을 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소녀가 뭔가를 가리키자 옆쪽 벽 너머에서 남성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씨발년아! 네년한테 줄거 없으니까 썩 꺼져라!!!"


소녀는 남성의 고함에 주춤거리더니 황급히 다음 철창으로 이동했다. 그 철창에서도 소녀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고, 그곳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철창에서 건넨 요강을 손에 쥐더니 그대로 내가 있는 철창을 지나쳐갔다. 소녀는 구석 쪽에 뜷려있는 자그마한 구멍에 요강에  내용물을 비우고 있었다.

(얘는 저 구멍으로 들어온건가?)

소녀는 빈 요강을 들고 다시 아까  요강을 받은 철창 앞으로 달려가더니  손으로 뭔가를 가리켰다.


"크크크, 미안해서 어쩌나? 너가 하도 늦게 오길래 내가 다 먹어치웠어"

"빵! 빵! 빵!"

남성의 말에 소녀는 빵이라는 단어만 반복해서 외쳐댔다. 이에 철창 너머로 주먹이 소녀의 얼굴을 향해 날라들었다. 남성이 휘두른 주먹에 정통으로 맞은 소녀는 뒤로 발라당 자빠진 채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 모습에 나는 분노했다.

"야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애를 왜때려!!!!!!"


"어떤 새끼가 나보고 버러지 같은 새끼래?!!!  죽여버린다!!!!!!!!"


"어 그래, 씨발 와서 한 번 죽여봐!! 죽여봐, 이 좆만한 새끼야!!!!!!!"


"씨발!! 씨발!! 씨발!!"

나와 남성이 욕을 주고받고 있을때 소녀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음 철창으로 이동했다. 나는 그런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방금 전 그런 일을 당했는데도 무섭지 않은건가?)


소녀는 맨 마지막 철창까지 이동한 뒤에야 터덜터덜 왔던길로 다시 되돌아왔다. 소녀가  철창 앞을 지나갈 때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소녀의 몸은 맨 끝 쪽 철창에서 죄수가 던진 요강에 든 내용물에 홀딱 젖은  똥오줌냄새가 진동을 했다.

"애야, 여기서  하는거야?"

소녀는  물음에 황급히 자신이 들어왔던 구석 쪽에 난 조그만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갔다.

"아... 이러다가 죽을때까지 여기 있는 건 아니겠지?"

어두컴컴한 지하감옥에서 하루종일 벽하고 겸상하고 있으려니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위에서는 검게 타버린 빵이 떨어지고 감옥 안에서는 죄수들의 신세한탄과 자기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년 보짓살이 정말 야들야들했는데!! 한  더 박고 싶군!!!!]
[그년이 울부짖는 소리도 한번 듣고 싶고 말이야!!!!!!]

"발정난 개새끼야! 아가리 좀 닥쳐!!!"


[켈켈켈! 내가 부러워서 질투하는거냐?]


"어디서 개새끼가 짖나? 자꾸 왕왕거리네!"

[뭐야!!!!!]


그렇게 나는 한참을 놈과 욕배틀을 한 뒤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무료한 지하감옥에서 죄수들과의 욕배틀은 최고의 유흥거리였다.

(그러고보니 그 애는 언제 올까? 그건 그렇고 아직 오늘인가? 적어도 하루는 지났겠지?)
(아이고 시발..... 내 신세야)

나는 최근에 본 한 손이 없던 여자애를 떠올리면서  한점 들지 않는곳에서 시간감각이 사라진 것에 대해 서글퍼했다.


[내 왼편에 있는 새끼,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이곳에 온거냐]


옆쪽에 있던 남성이 대뜸 내게 말을 건네왔다. 아마 놈도 심심하기 한가 보다.


"내가 용사소환에서 소환됐거든, 그런데 알고보니 내가 잘못 소환됐다고 하더라고"
"씨발것 그래서 이리로 끌려왔지... 이건  생각인데 말이야, 녀석들은 내 존재를 숨기고 싶어하는 것 같아"

[미친새끼인가?]

"진짜라니까!! 새끼가 사람 말을 못믿네?"
"아 참, 그러보니까 여기에 왔던 여자애는 뭐하는 애냐?"

"그 년? 몰라, 어느곳에나 있을 고아새끼겠지"


"말 꼬라지 하고는"


벽 너머로 들려오는 남성의 욕을 무시한 채 나는 뜬눈으로 여자애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부스럭- 부스럭-


왼편에 난 구석쪽으로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에 나는 얼른 철창가까이 다가가 그곳을 확인했다. 그 여자애가 좁은 구멍쪽에서 힘겹게 몸을 빼내고 있었다.

"애야! 애야!"

내 부름에 소녀는 화들짝 놀라더니 구석쪽으로 몸을 밀착시키고서는, 겁먹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런 소녀의 모습에 나는 창살너머로 빵을 흔들어보이며 대화를 시도하고자 했다.

"빵 먹고 싶지?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해주면  빵 너 줄게"


"빵... 줘?"

소녀는 조금씩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말하기 시작했다.

"대답... 어떤 대답?"


"여기서 뭘하고 있는거야?"

"요강... 비워... 빵... 받아"

"요강을 비워주는 대신 빵을 받는다는거지?"

내 답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은 계셔?"


[그  부모님은 다 뒈졌다네~!]


"씨발새끼야  새끼한테 안물어봤으니까 닥쳐라 좀!!!!"


나는 대화에 끼어든 남성에게 욕을 한바가지 퍼부은 뒤 재차 물어보았다. 소녀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떠듬떠듬 답했다.


"어... 엄마... 버렸어... 나... 혼자"


(부모가 버렸나보구나... 불쌍하네)

나는 어깨를 추욱 늘어뜨린 소녀에게 빵을 건네주었다. 빵을 건네받은 소녀는 세상 다 가진듯한 표정을 지으며 철창에 몸을 붙이고서는 연거푸 말을 뱉어냈다.

"빵! 고맙다! 빵! 많아!"


"그래, 그래, 많이 먹어라"

나는 빵을 가슴께에 끌어안은 소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질문을 계속했다. 소녀는 빵을  내게 호의를 가진것인지 열심히 답을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알게된 정보는 소녀의 이름은 마야로 매일 밤마다 이곳으로 온다는 것이었고, 소녀 자신이 들어오는 구멍은 지하 하수도와 이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외의 질문들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답했다.

"알려줘서 고마워, 정말 착한 아이로구나!"
"자 여기 빵 하나 더 줄테니까 오늘은 저쪽으로 가면 안돼"

내가 빵 하나를 더 주자 소녀는 몸을 폴짝 뛰며 기뻐하더니 요강을 비워주겠다고 말했다. 이에 나는 거절할려 했지만  들어찬 요강을 보고서는 어쩔 수 없이 소녀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위에서 떨어지는 빵들을 절반가량만 먹은 뒤 남은 절반은 소녀에게 주며 조금씩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됐다. 그렇게 나는 소녀가 올때마다 하루가 지났다고 판단하고서는 벽에다 돌로 선을 하나 그었다. 그것이 지금은 30개나 그어져 있었다.

"아니지, 그럴 때는 안녕하세요라고 하는거야"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소녀에게 나는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단답형으로만 말을 하는 소녀가 안쓰러워보였기 때문이다.


"아... 아녕.. 하.. 세요?"
"어려워... 안녕... 편해"


"그럼 안돼요, 자 다시 따라해봐, 안녕하세요"

"아... 안녕..."

[아 씨발! 잠 좀 자자, 존나 시끄럽게 구네!!!!!]


"니 엄마가 니놈 낳을때도 존나 시끄러웠었는데 내가 봐줬다!! 그러니까 닥치고 있으라고!!!"


[뭐?  씨발놈이!!! 뒤질래?!]

"어, 니 엄마 창녀!"

범죄자놈들을 상대할때에는 놈들 수준에 맞추어서 맞대응을 날려줘야 한다. 그래야지 놈들이 날 깔보지 않는다.

"엄마... 나... 버렸어"

갑자기 소녀가 심각한 말을 내뱉자 나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물었다.

"마야야, 갑자기 왜 그렇게 가슴 아픈 말을 꺼내는거야?"


"엄마... 나... 도둑질... 못해... 버렸어"


나는 차분히 소녀의 말을 들어주었다. 소녀의 말을 종합해보면 마야는 다섯살 때 엄마의 강압으로 도둑질을 하다 순찰대에 걸려 왼손을 잘렸다. 그  마야는 잘린부위에 피를 질질 흘린  울면서 엄마에게 돌아갔으나 그녀는 자신의 딸을 매몰차게 내쳤다.   소녀는 운좋게도 마음씨 좋은 의사를 만나 치료를 받았지만 거두어주지는 않았고 결국 오갈데 없던 소녀는 구걸을 하며 삶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여덟 살이 되던 해에 하수도에서 지하감옥과 이어져 있는 구멍을 발견한 것이다.

"손... 잘렸어... 아파"


소녀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오른 손으로 비벼댔다. 그런 마야의 모습에 나는 철창 너머로 손을 내밀어 울음을 그칠 때까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참을 운 소녀는 이내 상쾌한 표정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저씨... 쓰다듬어... 머리... 고마워"

"...... 흐흐흑"


마야의 따뜻한 손길에 나는 지금까지 참아왔던 서러움을 폭발시켰다.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뽑아져 나왔고 코에서는 콧물이 물처럼 흘러나왔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 난 잘못한게 없다고!!!)



< -- 5. 제 2왕녀 -- >





오늘도 어김없이 위에서 빵이 떨어졌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빵을 주숴들고서는 반을 자른 뒤 입에다 쑤셔넣었다. 혀에서 강한 탄맛이 났다. 하지만 그리 못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믿는게 마음이  편했다.

"야!!! 씨발새끼들아!!!!!!"


나는 대뜸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예전과 같이 욕설이 날라오지를 않았다. 한  반을 지내는 동안 이 지하감옥안에서 나는 죄수들에게 건들면 본전도 못뽑을 새끼라고 소문이 나있었다. 혹은 머리속에 톱밥으로 가득  멍청한 놈들이 본능적으로 나를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흐흐흐흐, 씨발... 내가 지금 뭐하는건지"


철컹-!

그렇게 자조하며 안을 서성거리고 있던 나는 철창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황급히 시선을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중앙에 나있는 계단위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소리로 미루어보아 내려오고 있는 자는 하이힐을 신고 있는 것 같다.


(대체 누구지?... 혹시 엘베 그 미친년인가?)

나는 드디어 그녀가 나를 풀어주러 온것인가 하는 기대감을 품으며 어서 빨리 계단을 내려오는 자를 기다렸다.

또각!

계단을 내려온 자는 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는 앳되보이는 귀여운 얼굴을  소녀였다. 화장을 한게  고등학생 정도 나이대의 소녀처럼 보였다. 소녀의 뒤에는 머리까지 완전 풀플레이트로 무장한 기사가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긴 백금발 머리의 소녀는 감옥을 지그시 둘러보다 창살에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던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안좋은 예감이 강하게 드는데)

점점 자신쪽을 향해 다가오는 하이힐 소리를 들으며 나는 황급히 감옥의 구석진 곳으로 몸을 밀착했다.

또각!


"당신이 고레오야?"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창살 앞에 선 채로 앙칼진 목소리를 내며 내게 물어왔다.

"그... 그런데요, 근데 누구신지?"

"여기 얼마나 갇혀있었던거야?"

"어... 그러니까..."

나는 소녀의 물음에 서둘러 벽에 그어놓은 선들의 개수를 헤아렸다.  42개였다.


"42일 머물렀습니다... 요"

"이런 곳에서 42일동안 머물렀다고?"

소녀는 손으로 코를 움켜잡은  불쾌하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녀의 뒤에 서있는 기사는 눈을 부라리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너 이리  가까이 와봐"


"뭐 하실려고?"

오라는 자신의 요구를 거절한 나를 향해 소녀는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씨발! 내가 오라면 오는거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소녀의 불호령에 나는 냉큼 철창 앞으로 달려갔다. 이제껏 여자들이 욕하는 것을 많이 들었지만 이 소녀처럼 살벌하게 욕을 내뱉은 여자는 처음 봤다.

"흐음...많이 야위었네?"

내 모습을 위아래로 흝어보던 소녀는 그렇게 말을 하고서는 주변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너 여기서 나가고 싶지?"


내 크게 떠진 눈을 긍정의 표시로 알아들었는지 소녀는 재차 말을 건넸다. 소녀의 그 다음말은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나는 제 2왕녀 리베 마르네 유르베, 내가  여기서 나가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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