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통수의 통수
"여기까지 상황을 유도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 분의 강림까지 앞으로 한 걸음 남았군."
"아카데미의 마법 결계 수준은 보통이 아니었을텐데 어떻게 뚫었던 겁니까?"
"아무리 강한 결계라도 결계를 친 당사자는 파훼법을 알고있는 법이지. 우리 쪽 교관을 통해 그녀에게 제안했더니 냉큼 수락하더군."
"야, 나 이번에 천세희랑 붙으면 걔 좀 따먹고 죽여도 되냐?"
"그렇게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닐텐데."
"아니 그렇게 과대평가 하지 말라고. 니가 저번에 발렸던 건 그냥 니가 좆밥이라 그런거고요~내가 털어먹는 거 보여줄게."
· · ·
"저 혼자여도 충분합니다. 여러분들은 사람들을 지켜주세요."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더니 갑자기 세희가 들어와서는 한 마디 툭 던졌다.
"응?"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천세희 학생이라면 안심이군요."
나 빼고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다. 세희가 먼치킨이긴 하지만 혼자서 전부를 막는 게 가능하다고?
"그래도 몇 분 정도는 같이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혹시나 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군."
"그럼 제가 가죠."
미아와 세희는 강당을 나섰다. 저 둘이라면 광신도들은 다 뒤진 목숨이라 봐도 무방하겠네. 명복을 빌어주......진 않고. 쌤통이다. 업보다 업보.
· · ·
"천세희 양,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미노와 무슨 관계인가요?"
미아는 천세희와 미노 사이에 무언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모두를 사무적으로만 대하던 그녀가 그에게만큼은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무슨 말 하시는 건가요?"
"시치미 떼지 말아주세요. 저는 그와 당신의 관계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건 어머니로서 하는 말인가요? 혹은 애인으로서?"
"그걸 어떻게....!"
"개인 정보 따위 얼마든지 알수 있으니까요."
"두 입장 모두 해당되는 거에요. 미노의 어머니로서도, 아내로서도 다른 여자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있으니까요."
"전 미노....아니 주인님의 여자에요. 그에게 처음을 바치고 밤새 그에게 안기면서 그의 여자가 되었어요. 그러니 미아 님은 이제 애인 행세 그만했으면 좋겠네요. 제가 얼마든지 그를 품어줄 수 있으니까요."
당당하다는 듯이 미노와의 관계를 밝히는 천세희의 모습에 미아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미노를 원망하진 않았다. 그가 그만큼 매력이 있으니까 루다도 그렇고 실비아도 그렇고 이 천세희도 그에게 끌렸던 거겠지.
루다와 실비아 때도 진심으로 화난 건 아니었다. 자신들이 세컨드, 서드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주제만 알고 있다면 얼마든지 상관없다. 어차피 정실은 자신이니까.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 건방진 여자는 뭐라고 말한거지? 애인 행세?
'미노를 품으려고? 감히? 나를 내버려두고? 주제를 가르쳐 주겠어.'
{여자의 질투는 무섭구만.....}
천세희의 등급이 자신보다 높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로서의 분노가 그녀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도 오벨리스크가 있으니 어느 정도는 해볼만 할거야.'
{주인.....나를 치정싸움 용도로 쓰려는 건가?}
'내겐 광신도랑 싸우는 것보다 이게 더 중요해.'
"살기 집어넣으시죠. 지금 해보자는 겁니까?"
"'애인 행세'라고 한 말. 취소시켜 드리죠."
두 여자가 맞붙기 직전, 광신도들이 둘을 향해 원거리 공격을 퍼부었다.
콰앙!
다행히 오벨리스크가 즉시 방패를 형성해 공격을 막아주었다.
{둘이 싸우는 거야 아무래도 좋지만 일단 저들부터 잡고 싸우지 그러나? 사람들이 죽는 걸 보고싶은건가?}
"나중에 다시 얘기해. 여보한테 직접 들어야겠어."
"여보라고 부르지도 마시죠. 불쾌하니까요."
콰과가가가강! 콰앙! 쾅! 콰앙!
둘은 서로에 대한 분노를 그대로 광신도들을 향해 분출했고 수많은 광신도들은 순식간에 휩쓸려나갔다.
· · ·
둘은 한 명을 제외한 모든 광신도들을 몰살해버렸다. 그 많던 광신도들이 정리되는 시간은 얼마 필요하지도 않았다.
"인질은 한 명이면 충분하니까요."
"이것들 때문에 주인님이 위험에 처했던 걸 생각하면 즉시 죽여버리고 싶지만......그래도 정보는 알아내야죠. 이것들을 뿌리 뽑으려면."
붙잡힌 남자는 오벨리스크에 온몸이 묶여 간신히 입만 내놓고 있는 모습이었다.
미아는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을 밖으로 불렀다. 강당 안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 · ·
"침입자 씨, 이름은?"
"제논."
"이곳을 침입한 목적이 뭐죠?"
"우리의 위대한 신을 강림시키기 위해서다."
"당신들의 신의 이름은 뭐죠?"
"슈브 니구라스."
포로는 자신의 처지를 체념한 건지 알려줘도 상관이 없는건지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하긴 대답을 하든 하지 않든 어차피 죽을텐데 고통 없이 가는게 낫긴 하지.
"당신들은 기존 아카데미를 둘러싸고 있던 결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결계를 쳤어요. 제가 싸웠던 자들의 수준을 보면 절대 그 수준은 아니었던데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거죠?"
"묻는다고 그걸 순순히 말할 것 같나?"
"그래요. 그럴 것 같았어요. 광신도라면 순순히 말할 리가 없죠.
우선 질문의 답은 나중에 한번에 듣기로 하죠. 다음 질문이에요. 당신들의 다른 일당들은 어디에 있죠?"
".....퉤!"
포로는 미아의 얼굴에 침을 뱉어버렸다. 다행히 오벨리스크가 막아주었기에 침이 닿지는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 침이 닿아버렸다면 내가 저 새끼를 죽여버렸을 거야.
"크크크......원래라면 포로로 잡힌 시점에서 자결했어야겠지만......
우리의 최종 계획을 지금 실행하겠다!"
"최종 계획?"
"우리가 승리했다면 이럴 필요도 없겠지만 결국 결과는 우리의 패배니.....한꺼번에 같이 가자!"
그 순간 강당과 근처의 땅 전체에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이건!"
"이 마법진.....정체가 뭐죠?"
"크크크......이 마법진은 슈브 니구라스 님을 부르는 의식! 대가는 건물 내부에 있는 전원, 그리고 네놈들의 목숨이다!"
"뭣....! 빨리 모두를 대피시켜....!"
"당장 발동을 멈추시죠!"
"크크....왜 이런 정보를 간단하게 알려줬다고 생각하는거지? 발동을 시작한 이상 절대 막을 수 없다......! 얌전히 너희들의 영혼까지 그 분의 강림을 위한 제물이 되어라!"
"어머, 왜 아무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근처에서 여성의 얇은 미성이 들려왔다. 교장이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절대'라는 건 의미 없는 개념이에요. 절대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불가능하다는 건 그저 가능에 도달하기 위한 힘이 모자랐을 뿐이라는 거에요."
"마법진은 이미 제게 넘어왔어요. 그러니 당신의 최후의 발악은 물 건너 가버렸네요~"
"그....그럴 수가.....어째서 당신이......! 왜 한껏 협력해놓고 이제와서 배신하는 겁니까!! 감히....크허억.....!"
남자는 돌연 피를 토하더니 죽어버렸다.
"다행히 늦지 않았네요~"
"교장, 당신 지금까지 뭘 하던 겁니까?"
세희는 화난 것 같은 목소리였다.
"대답하기 전에 일단 거슬리는 파리부터 처리해 볼까요?"
교장의 지팡이에서는 거대한 불꽃의 창이 형성되고는......라이온 교관을 향해 날아갔다. 어?
불꽃의 창은 그대로 그를 관통했고 순식간에 그를 불태워버렸다.
왜 갑자기 라이온 교관을 공격한거지?
"그는 제게 유망한 학생들의 정보를 알리면서 광신도들에게 끌어들이거나 제물로 삼으려고 했죠. 지금까지는 광신도 세력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그를 내버려두고 있었지만 이번에 한번에 처리해야겠군요."
저 교관이 배신자였다고? 이....이게 무슨.....아카데미 내부에도 스파이가 숨어있었던 거야? 그럼 날 아끼고 편애하던 이유가 광신도 세력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였던거야?
교장은 말을 이어갔다.
"아, 천세희 양. 아까 뭘 하고 있었냐고 질문했었죠? 저는 결계를 파훼하기 위한 마법을 알아보고 있었어요. 급선무는 결계를 푸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럼 저 광신도가 말했던 협력은 무슨 의미죠? 이 모든 게 당신이 꾸몄던 일인 겁니까?"
".....대의를 위한 결정이었어요. 저들은 뿌리 뽑아야 할 이단이니까요."
그 순간, 섬광이 번쩍 빛나더니 땅이 절반으로 갈라져버렸다. 세희를 보자 분노에 찬 표정으로 창을 들고 있었다. 창날에서는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개수작 부리면 내가 당신을 죽여버리겠다고. 광신도를 처리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이다니. 건방지기 짝이 없군."
"천세희 양! 조금 기다려 주게! 교장 선생님도 어디까지나 대의를 위해서였으니 넘어가 줄 수 없겠나?"
"그래 세희야! 조금 기다려봐! 교장 선생님도 어디까지나 광신도를 토벌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였잖아!"
"응? 미노 학생?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푹
어?
배에 무언가가 찌르는 감각이 느껴진다.
천천히 고개를 내려 배를 내려다보자......촉수 한 가닥이 배에 꽂혀있었다.
이게 왜? 아니 누가? 어째서 날?
내 몸에 꽂힌 촉수는 나를 꽂은 채로 교장에게 돌아갔다. 나는 꼬치고기마냥 촉수에 꽂힌 채로 그녀에게 끌려갈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구하다니요? 왜 제가 다른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거죠? 제가 말했잖아요. 이단을 뿌리뽑는다고. 진짜 그 분을 알현하지도 못했던 버러지들이 감히 그 분의 신도들을 사칭하다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진짜 그분? 알현? 사칭?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네요. 귀엽네요 그 얼굴. 평생 핥고 싶을 정도에요."
그녀는 혀를 할짝 핥았다. 소름이 돋았다.
내 반응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녀는 말을 재개했다.
"제 몸 안에는 크툴루라는 신이 깃들어 있어요. 그 덕에 진짜 슈브 님도 알현할 수 있었죠."
"저 버러지들이 보았던 건 슈브 님의 하수인 중 하나였을 뿐. 그런 주제에 기록에 적혀있던 슈브 님의 이름만 보고 마음대로 착각하여 신을 사칭하다니.....죽어 마땅하잖아요?"
"그...그럼 나는 왜....."
"당신을 데려가는 이유요? 그야 뻔하잖아요. 슈브 님이 원하시니까."
"야."
이어지던 교장의 말을 끊은 건 세희였다.
"교장....아니 이젠 교장도 아니지. 네년, 미노를 데려가는 계획은 네 계획은 잘 알겠어.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도망갈거지? 네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나에게서 도망갈 수 있을 것 같나?"
"푸훗....! 당연히 그냥이라면 크툴루의 힘을 써야 할 정도로 번거로웠겠죠~ 하지만...이미 마법진과 그 비용이 준비되어 있잖아요?"
"설마.....!"
"애초에 이 모든 상황은 제가 짰던 대로 이루어지던 연극일 뿐이었으니까요. 저들에게 알려주었던 강림의 마법진 따위 거짓에 불과할 뿐, 진짜 용도는 차원이동이랍니다?
뭐 그래도 당신들이 벌이던 촌극은 나름 재밌었으니 당신들이나 강당 내부의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을게요. 자칭 신도들의 영혼 정도면 비용으로는 충분하니까."
젠장.....이대로 끌려갈 순 없어.....저항을 해야 하는데....!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가만히 듣고있던 미아는 오벨리스크와 함께 달려들었고 세희 또한 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교장의 몸에서 나온 촉수들로 인해 그녀들은 공격은 막혀버렸고 그 촉수는 오벨리스크의 방어를 부숴버리고는 미아의 몸을 꿰뚫어버렸다.
이후 나와 교장은 빛에 휩싸였고 내 의식은.....심연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