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7화 〉습격(6) (57/78)



〈 57화 〉습격(6)

혼자서 적을 상대하는 것보다 파티로 상대하는 것이 난이도가 훨씬 쉽다. 파티원들끼리 역할이 나뉘어져 있으면 더 쉽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
왜 이런 말을 하냐고?

"스피나, 오른쪽에 광신도 셋. 세르피나, 뒤쪽 광신도 다섯. 부탁할게."

"응.""네."



지금 내가 그 상식을 체감하고 있으니까.



혼자 이동할때는 주위를 계속 신경써야 하니 늦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측면이나 후방에서 달려드는 적들은 스피나와 세르피나가 화살로 요격하고 내가 정면의 적을 맡으니 혼자 나아갈 때와는 비교도 안  정도로 빨리 이동할 수 있었다.




"스피나, 어째 좀 약해진 것 같은데?"


"예리하네요. 실은 지금 저와 아폴론님의 연결이 끊긴 상태에요. 신과의 연결이 막힌 사도가 되어버렸으니 당연히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요."

스피나가 이렇다면 세르피나도 비슷한 상황이겠지.


가호가 없더라도 광신도들을  발로 절명시키는  보면 여전히 강하긴 한가보다.



"어쨌든 지금 태양의 힘이랑 달의 힘은 아예 못쓰는거야?"

"가호에 기대지는 못하지만 무기의 능력은 쓸 수 있으니까. 이전보다 약하긴 해도 쓸 수는 있어."

어느덧 우리는 신학과 건물을 지나고 있었다. 신학과 건물은 그야말로 폐건물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부서져있었다.

"너무하네요....."

"광신도 입장에서는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을 이교도 취급할테니까. 이 건물을 용납할  없었겠지."

"그런데 여기를 부숴봤자 신전에는 딱히 영향이 없지 않나? 여기는 어디까지나 학생들을 신전으로 인도해주는 중간지점 역할일 뿐이니까."


"'보여주기'겠지. '우리들은 이런 사이비를 용납할 수 없다.'라는 걸 과시하기 위한. 그리고 중간지점이라고는 해도 수많은 신도들이 여기를 경유하니까 충분히 파괴할 이유는 있어."



실제로 건물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광신도들에게 학살당한 신학과 학생들이었겠지. 스피나와 세르피나는 그 광경을 보고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그들 또한 여신들의 사도다보니 신도 탄압을 용서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일단 마저 이동하자. 거의 다 왔으니까."


"그래요. 남은 사람들을 구조하는 게 먼저니까."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 · ·



미아는 현재 강당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강당으로 온 사람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미노를 찾았지만 그는 강당에 없었다.




'여보는 분명 사람들을 구하고 있을 거에요. 그러니 아직 오지 않고 있는 걸 거에요.'

{'여보'라는건 그를 말하는건가? 아들하고 그런 관계를 맺다니 참 특이한 여자로군.}

'제발 닥쳐요. 그리고  남의 기억을 맘대로 들춰보는 건가요?'

{내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려면 주인과 친밀해질 필요가 있어. 기억 정도는 봐도 상관없지 않나?}


'상관 있으니까 마음대로 보지 마요!'


{까다로운 여자구만. 이래서 어느 세월에 내 힘을 이끌어내겠어?}

미아는 자신의 검, 오벨리스크의 깐족거리는 말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왜 내가 이런 검이랑 시답잖은 말다툼이나 하고있는건지......'


{이런 검은 무슨 의미지? 내가 변변찮은 검이라는건가?}



이걸로 토론했다가는 또 쓸데없는 말이나 할 것 같아 미아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것보다 오벨리스크, 당신은 누가 만든 검이죠? 자아도 있고 능력도 있는 검이라면 평범한 사람이 만들었을  같지는 않은데.'

{나는 누군가가 만든 게 아니다. 내 주를 향한 수많은 신도들의 믿음이 모여 실체화된  나지.}

'그게 무슨 소리에요?'


{설명은 나중에 해줄테니 일단  앞에 오는 적들이나 막지 그래?}




그의 말대로  멀리서 광신도 여럿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군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강한 적의가 느껴지니까.

그녀의 비수들은 거인의 형상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미터가 넘는 크기의 거인은 광신도들을 향해 주먹을 내리찍었고 땅이 울릴 정도의 충격과 굉음이 울려퍼졌다.


몇 광신도들은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것 같았지만 이내 내리꽂히는 비수들에 의해 절명했다.


'내가 조종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움직이다니......자아를 가지더니 이런 것도 가능한건가? 스승님께서 이 검과 다른 무기를 같이 가지고 다니신 이유가 있었어. 나도 검을 하나 더 구해야겠네.'

{그래도 눈치는 빨라서 다행이군.}

{누가  온다.}

'저건 적이 아냐. 적의가 없잖아.'

미아에게  건 사제복의 여성을 필두로 한 사람들이었다.


'저 사람이 성녀였지? 이름이......판도라였던가?'


"저기......안녕하세요오.....여기가 피난 장소 맞죠?"

"물론이죠. 이리로 들어오세요."

여성은 당당하게 걸어오던 모습과 대조적이게 목소리는 굉장히 소심했다. 미아가 남자였다면 보호욕에 휩싸여서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었을 것이다.



'이걸로 여보 일행만 오면 끝이네. 그나저나 교장은 어디로 간거야? 한 번을 못 봤네.'




미아는 하염없이 입구에 서서 미노를 기다릴 뿐이었다.




· · ·


"미노, 느껴지는 기척같은거 있어?"


"아니....아무도 없어."

"그렇다는 건........"


"그게 맞겠지. 생존자 전무."

"저희 빼고 전부 강당에 가있는 것 같아요. 저희도 이만 돌아가죠. 가서 다른 분들과 합류한 후에 대책을 강구해 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세르피나, 나도 더 찾아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어. 이건 보물찾기가 아니니까. 최종 목적은 어디까지나 광신도들을 토벌하고 외부와 연락을 취하는 것이잖아.

세르피나도 반박할 말을 떠올리지 못한 듯 우리의 의견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 명의 생존자도 찾지 못한 채 우리는 강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가는 중간에는  한 명의 광신도조차 보이지 않았다. 전부 처치한건가? 그러나 내 직감은 안심하지 말라는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왔다.


.....뭔가 있다!




나는 본능적으로 스피나를 감싸안고 뒤로 빠졌다. 머리에서 떠올린 행동이 아니라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푸슝!



방금 전까지 스피나가 있던 자리를 정체불명의 투사체 하나가 지나갔다. 함정이었던건가?




날아간 투사체는 벽에 부딪혔고 부딪힌 부분이 서서히 녹고있었다.



맞았으면 큰일났겠는데?



스피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알아채지 못한  창피한건가?

"저....저기....미노 님....놔주세요...."

"어? 어."

괜히 나와 스피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흐흥~언니 좋았어?"

"무....무슨소린가요?"

"알면서~"



세르피나가 한껏 스피나를 놀려댔다. 겨우 함정 하나 눈치채지 못했다고 너무 놀리는 거 아냐?


· · ·

"드디어 온거에요? 다른 사람들은 다 강당 안에 있어요. 얼른 들어가요. 대책회의도 해야 하니까요."

강당 안에는 사람이 빽빽하다 할 정도로 가득 차있었다. 대피소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을 수용 가능한 넓이를 가진 강당이었지만 아카데미의 수많은 학생들과 외부인들까지 있다보니 강당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어찌저찌 힘겹게 인파를 뚫고 내부 방으로 들어가자 교관들과 세희, 그리고 연보라색 머리의 여사제 한명이 보였다. 누구지?

여사제의 외모는 세희와 동일한 수준이었다. 요즘따라 자주 쓰게 되는 말인것 같은데 저게 말이 되는 외모인가? 그럼 저 사람이 5번째 아카데미 미녀야?



크흠! 판사님 저는 절대 외모에 정신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일단 적들이 결계를 펼친 건지 외부와 일체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게다가 신들과의 교류도 막은  같아요. 신들께 기도를 드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요....."


"간단한 거 아닙니까? 정면으로 나서서 적들을 물리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적들이 무조건 싸워준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우선 결계를 파악하고 파훼하는 마법부터....."

"그랬다가는 늦을 겁니다!"


회의는 여러 의견이 난무하더니 이내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은 지금 이시국에 어디로 간겁니까? 아카데미 전체의 위기인데 나서지 않는 걸 보면 뭔가 이상한데요."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는건가?

"혹시......"

"큰일입니다! 정면에서 적들이 대규모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회의는 긴급 소식을 들고 온 학생에 의해 급하게 중단되었다.




적들이 택한 건 전면전인가? 전투민족 교관이 제안한 대로 정면으로 맞서는 건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대로 도망갈 수도 없으니  어쩌겠어.
게릴라를 펼치려 해도 우리한테는 일반 시민들이라는 모래주머니가 달려있어서 하지도 못하는데.
피할  없다면 즐겨야지.  상황이 즐길 만한 상황은 아니긴 하지만.


나는 결전을 위해 몸을 풀었다.

· · ·



미노가 결전을 대비하고 있을 무렵, 신계에서는  명의 여신 앞에 또다른 여신이 나타났다.

"다들 여기있었나?"

"아테나! 마침 잘 왔어요! 와서 지혜를 좀 써봐요! 저 지역에 걸린 결계 어떡해야 하죠? 저 안에는 내 소중한 사람도 갇혀있는데!"

아프로디테는 절규하듯 아테나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당사자인 아테나는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뭐가 걱정이지? 거기에는 내 사도도 같이 있다."


"결계 안에 있는 사도들은 사도의 힘을 펼치지 못하는데요!"

"하아.....네가 쓸데없이 가호를 내려줬던 여자, 천세희. 기억하나?"

"기억하죠.  여자를 제가 어떻게 잊겠어요."


"그 여자의 수준은 알고?"

"제가 전쟁의 여신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요. 그녀의 보지 수준이라면 알겠지만."

"그 아이가  사도다. 그녀만 있다면 위험한 상황은 절대 나오지 않을거다."

"저 결계 안에서는 가호의 힘을 쓰지 못하는데요?"


"가호 따위 없어도 상관없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가호의 힘은 그녀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녀는 사도를 넘어섰어.
그러니....신경쓰지 말고 넥타르나 마시고 있어라. 아프로디테는 그렇다 쳐도 아폴론, 아르테미스 너희들은 너희들의 사도를  믿어라. 그녀들도 훌륭한 전사니까."

아테나는 다시 떠나갔다. 워낙 바쁜 여신이었기에 들러야 할 곳이 많았다.


"저 싸가지.....흐흠! 지혜의 여신한테 저렇게 확답을 받으니 안심이 좀 되네요."

"아테나의 대답도 들었으니 다른 일 하면서 주의를 좀 돌려야겠어. 이대로 계속 신경써봤자 머리만 아플 거다. 난 음악이나 연주하러 갈테니 무슨 일 있으면 전해다오."


"저도 이만 사냥하러 가볼게요. 결계가 풀리면 연락 주세요."



이윽고 아프로디테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노이즈 낀 수정구를 바라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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