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본선-4강 (1)
기숙사로 돌아가던 길에 미아를 만났다. 원래 예뻤던 미아였지만 요즘은 한층 더 아름다워진 모습이다. 마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아.
"어머, 여기서 만나네요? 어쩐 일이에요? 여보는 보통 이쪽 거리로는 안오잖아요."
"도서관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오느라고."
내 말을 들은 미아는 살짝 놀란 기색이었다.
"우리 여보가 스스로 도서관을....!"
그거 무슨뜻이냐? 나는 뭐 도서관에는 얼씬도 안하는 공부 포기 빡대가리였다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살짝 빈정상하려 하는데?
"알아보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8강도 일찍 끝났겠다. 남는 시간을 활용할 겸 해서 갔지."
"여보가 알아보고 싶은 내용이라면 으음.....'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보러 간거죠? 혹은 미노타우로스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정확하다. 역시 귀신 같은 촉을 가진 여자답다. 하긴 내가 알아볼 만한 정보가 그것밖에 없긴 하지. 내가 마법학개론 같은 걸 알아볼 인간, 아니 반인반수는 아니잖아?
"그래서 도서관에서 뭐라도 알아낸 건 있어요?"
나는 책에서 봤던 내용을 이야기해주었다.
"으음.....광신도들이라....가끔 올라오는 이교도 토벌 의뢰의 대상이 그들이었겠군요. 제가 그 의뢰들을 맡아본 적은 없지만 예전 동료들이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거든요.
그들이 있던 장소에는 항상 불결하고 음습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기괴하게 변형된 시체들이 즐비해 있다고 해요. 또한 그들은 자기들이 죽으면 죽었지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 중에서도 극성인 놈들은 죽기 직전에 자폭 마법까지 발동한다고..."
역시 광신도들이야. 미친놈 본성 어디 안가네. 슈브도 광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여보, 내일이 4강 경기날이죠? 저 내일은 일정 딱히 없는데 여보 경기나 보러 갈까요?"
"응원하러 와주면 나야 좋지. 힘도 나고."
"여보.....내일 힘나게 해줄테니까......오늘은 저를 힘나게 해주지 않을래요?"
미아는 은근슬쩍 자신의 옷깃을 들어 가슴을 노출시켰다.
당연히 환영입니다! 아니아니아니아니 이게 아니고
"안돼. 시합 전날인데 체력을 아껴야지. 내일 상대가 평범한 학생 A도 아니고 4강 중 다른 한 명인 스피나인데...."
미아는 내 말에 뾰루퉁해져서는 뒤로 물러났다.
이해해 주는거구나.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행동은.....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고는 앞뒤로 흔들면서 혀로 핥는 시늉을 했다.
허공을 핥을 뿐인데 왜 저리 음란하게 보이는건지. 순간 방심해서 발기할 뻔했다. 이젠 자세 시연만으로도 발기를 유도할 수 있다니, 얼마나 성장하려는 거냐!
안해준다고 하니까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거 봐라. 백날 유혹해봐라. 나는 절대 넘어가지 않아!
"그렇게 해도 안돼. 오늘은 안돼 오늘은! 다음에 두배로 해줄게!!"
"흐음.....?"
내 억센 의지를 확인한 미아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제발 더 유혹하지 말고 이대로 물러나줘.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긴 했지만 솔직히 인내심이 간당간당하다고.
"저는 여보의 정액이 너무나 고픈데.....여보가 절대 주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죠. 아무 남자나 붙잡고 하는 수밖에. 여보가 상대를 안해주니...."
뭐?
저 여자가 지금 뭐라고 말한거지? 다른 남자?
나는 미아의 팔을 잡고는 거칠게 이끌었다.
"그건 내가 두 눈을 뜨고 있는 이상 용납 못한다고! 당장 따라와! 넘치도록 채워줄테니!"
"꺄아~너무 거칠어~"
그녀의 단순한 도발에 쉽게 걸려버리는 미노였다.
'다른 남자 따위에게 부탁할 리가 없잖아요. 이런 거에 걸려드는 단순한 여보도 사랑스럽네요.'
나와 미아는 그대로 근처의 비어있는 휴게실로 향했고 그곳에서 다섯 번 정도 사정했다. 다행히 여기엔 감시용 수정구는 없더라.
"흐으.....흐에에......체고오......"
미아는 눈을 까뒤집고는 혀를 빼문 채 개구리 자세로 경련하고 있었다.
다행히 사람이 오지는 않았다. 감각을 최대한 활성화해서 주변을 감지하고 있었으니 확실하다. 남의 시선을 즐기는 취향은 아니라 관음은 사양이다....보는 사람이 예쁜 여자라면 예외겠지만!
하지만 미노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휴게실의 문은 아주 살짝 열려있었고 문 앞에는 또 긴 흰색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 · ·
다음 날, 경기장에는 사람들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몰렸다.
이전의 경기들과는 다르게 본격적으로 강자끼리 붙는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나, 미아, 그리고 레아는 우선 대기실로 이동했다. 참가자들의 직접적인 지인은 따로 관람석을 마련해 준다고 한다. 지인 찬스!
16강 및 8강때는 내가 출전하고 나면 레아 혼자라 안전을 위해 대기실에서 보게 했지만 오늘은 미아도 있으니 그곳에서 관람해도 괜찮겠지.
잠시 후 스피나와 붙는다고 생각하니 손이 좀 떨린다. 솔직히 긴장되긴 해.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스피나가 감추고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 알 수가 없으니까.
"여보, 긴장하는 거에요?"
내 모습을 보고 미아가 걱정하며 말을 걸어왔다.
"하나도 긴장되지 않아.... 라고 하면 당연히 안 믿겠지?"
쪽-
미아는 입술을 살짝 부딪혀왔다. 부드러우면서도 촉촉한 감촉이 입술을 통해 느껴졌다.
"이거면 어느 정도 진정되었나요?"
아뇨, 진정은 커녕 오히려 심장이 뛰는데요?
그래도 떨림은 멎었다.
"고마워, 미아."
"저도 해줄게요!"
뒤늦게 레아도 내 뺨에 입술을 갖다댄다.
쪽, 쪽, 쪽
뺨에 뽀뽀 난사를 해댄다. 정말 귀여운 딸이다.
"레아도 고마워. 반드시 승리로 보답할게."
이후 둘은 전용 관객석으로 향했다.
한편 경기장의 일반 좌석들에는 발디딜 틈도 없이 빼곡하게 관중들이 입장해 있었고 경기 시작 전 해설자가 흥미를 돋우고 있었다.
"하이비스 종합 전투 대회 4강! 그 첫 번째 경기! 미노 선수와 스피나 선수의 경기! 잠시 후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각 선수 이력부터 봐 볼까요? 우선 미노 선수입니다!
이번 학기에 새로 아카데미에 편입된 학생으로 입학하자마자 신체점수 천점을 획득한 아카데미 역사상 유이한 학생입니다. 게다가 이번 학기 제노스 격투술 수석이 유력하다는군요! 예선전에서는 무지막지한 괴력과 기술로 혼자서 다른 모든 참가자들을 쓰러뜨렸었죠!
이후 본선 16강, 8강에서 모두 상대를 단 일격에 쓰러뜨린 선수입니다! 이번 4강전에서는 다른 양상이 나올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가 이번에 상대하게 된 선수는 이전의 선수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선수죠? 바로 스피나 선수입니다!
미노 선수가 제노스 격투술 수석 예정이라면 이 선수는 플레어 궁술 수석을 달성했던 학생이죠! 활을 다루는 능력이 아카데미 최고 수준입니다! 게다가 예선전에서는 레온 선수를 상대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레온 선수를 쓰러뜨렸던 그 일격이 다시 한번 등장할까요?"
"그럼 이제 양 선수 입장해 주십시오!!"
"지금 나가시면 됩니다."
경기장을 향해 나서자 눈부신 햇빛이 시야를 가린다. 태양에 점차 적응이 되자 눈에 들어온 것은 압도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득 찬 관객들이었다.
관람석에 있는 무수한 관객들을 보자 더욱 긴장되었다. 미아와 레아가 긴장을 풀어주긴 했지만 막상 눈 앞의 광경을 보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냐, 관객들을 신경쓰는 건 그만두자. 지금은 눈앞에 있는 스피나만 생각하는 거야. 우린 지금 아무도 없는 곳에서 1대1 대결을 하고 있는 거야.
"후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자 점차 떨림이 줄어들었다.
"스피나, 어때?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앉아서 커피 마시고 있던 친구를 대결 상대의 입장으로 마주보고 서있는 기분은?"
"최고입니다. 당신 정도의 실력자와 겨룰 수 있다니. 당신이라면 진심을 다하더라도 괜찮겠죠.
당신을 마주보고 있으니 놀랄 정도로 흥분되면서도 놀랄 정도로 냉정해지네요.
세르피나 이외의 고수와 맞붙는 건 당신이 처음이에요. 힘 조절이 서툴 수도 있으니 부디 전력을 다해주시길! 그리고 그 전력을 꺾고 제가 이깁니다....!"
스피나는 자신감 있는 말투와 함께 자신의 활을 내밀었다. 그녀의 황금빛 활이 태양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름의 도발인가? 뭐 좋아. 받아줄게. 얼마든지 덤벼. 어차피 이기는 건 나일테니."
"양측 준비...."
심판의 말에 나와 스피나는 준비 자세를 취했다. 나는 곧바로 튀어나갈 수 있도록 다리에 힘을 주었고, 스피나는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점차 시야가 좁아진다. 관객석? 심판? 그런 것들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그녀와 그녀의 활과 화살에만 모든 시각 능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어떤 움직임을 보이더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어느덧 그녀의 미세한 움직임마저 모두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근육이 이완되고 수축되는 것까지 전부!
"경기 개시!"
콰앙!
심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질러진 주먹과 쏘아진 화살이 격돌했다.
· · ·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 속, 여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나같이 인간을 초월한 외모를 가진 여인들이었다.
"아폴론, 당신은 어느 쪽이 이길 것 같아요?"
"당연히 내 사도가 이긴다. 내 가호를 받은 이상 지는 게 더 힘들다."
"푸훗. 너무 오만한 거 아닌가요?"
"사실을 말한 것 뿐이다. 내 가호와 그녀는 최고의 적합도를 보이니까."
"그렇게 딱딱하니까 아직까지도 남자 경험 한번 없는 처녀신인거에요~여동생이랑 같이 처녀 자매로 언제까지 독수공방 할거에요? 거미줄 치겠어요~"
"네년에게 듣고 싶지는 않다! 아프로디테!"
"좋은 남자라도 소개시켜줄까요?"
"꺼져라! 남자라면 신물이 난다!"
"하긴, 당신은 다프네라는 님프한테 엄청나게 시달렸으니까요."
아폴론은 다프네라는 남자 님프에게 스토킹을 당한 과거가 있었다. 그가 나무로 변장해서까지 아폴론을 강간하려 하자 분노한 아폴론이 그를 진짜 나무로 만들어 버렸다. 아폴론은 그 사건 이후 남성 혐오에 걸려버렸다. 덕분에 아르테미스와 함께 처녀신으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저런 고지식한 여자들이 막상 한번 사랑에 빠지면 엄청 깊게 빠지는데.....아쉽네요....'
"아프로디테, 너는 누가 이길 것 같지?"
"저야 당연히 남자 쪽이죠~! 여자는 남자를 못 이긴다. 당연한 거잖아요?"
"......참으로 네년다운 대답이군."
전투 자세를 잡는 미노를 보며 아프로디테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정신세계에서 잠시 동안 자신을 지배했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응원하고 있답니다? 미노 님?'
'그런데......언제쯤 제게 찾아와주실 건가요? 당신과 이어질 수만 있다면 제 모든 것을 바칠 수도 있는데....'